김영환, 버저비터와 농구인생을 말하다

손대범 / 기사승인 : 2017-07-09 0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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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기자] 2007년 드래프트는 ‘황금세대 드래프트’라 불렸다. 김태술(1순위, 현 삼성)을 비롯해 양희종(3순위)과 정영삼(4순위), 박상오(5순위), 함지훈(10순위) 등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우승과 정규경기 및 플레이오프 MVP도 많았다. 8순위로 지명된 김영환은 지명당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김해가야고와 고려대를 나온 그는 무릎 상태 때문에 KBL에 데뷔할 때만 해도 ‘몇 년 못 뛸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10번째 시즌을 앞둔 지금은 평가가 다르다. 그는 지난 시즌 2007년 드래프티 중 가장 많은 시간(33분 18초, 국내 2위)을 뛰었으며, 가장 많은 득점(11.0점, 국내 8위)을 기록했다. 시즌 중 가장 극적인 슛도 터트렸으며, 리그에서 가장 신뢰받는 베테랑 중 한 명이 됐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터뷰는 5월 초에 진행됐다. 예년 같았으면 막 팀 훈련이 재개되어 분주했을 때 시기였지만, 수원에 위치한 KT의 숙소(올레빅토리움)는 조용하다 못해 심심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KBL이 시즌 종료 후 2개월간은 단체훈련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간혹 개인 훈련을 위해 체육관을 찾는 선수들은 있었지만, 감독이나 스태프의 주도아래 진행되는 훈련은 아니었다.


김영환 역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집에서 오전, 오후에 가볍게 훈련을 시작했어요. 4월 말부터 조금씩 시작했죠. 그동안은 육아에 전념했어요. 첫째가 여섯 살, 둘째가 세 살인데 주로 근처로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제주도도 한 번 가봤는데 비행기 타니까 둘째가 멀미를 해서…(웃음).” 그 웃음 속에서는 ‘아빠 됨’의 기쁨만큼이나 고단함도 느낄 수 있었다. “운전할 때 자고 있다가 내리면 놀아달라고 하니까(웃음).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게 무섭더라고요. 하하.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하니 재밌고 행복했어요.”


점프볼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 SNS를 통해 팬들의 질문도 받아봤다. 예상대로 지난 시즌 중 있었던 트레이드를 비롯해 리더십, 버저비터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그 질문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았다.



1 QTR : 리더라는 자리
김영환의 이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진중하면서도 듬직하다. LG 시절부터 그랬다. 어려울 때면 앞장서서 다독여왔다. 프로농구단의 ‘주장’으로서 그는 그렇게 제 역할을 잘 해왔다. 조동현 감독이 합류 직후 그에게 주장 자리를 준 것도 이 때문.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김영환은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그 무게감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Q. 시즌이 끝났어요. 지금 와서 LG에서 트레이드 되던 날을 돌이켜보면 어떤 가요? (박재우 님)
아쉽기도 하지만 잘 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때는 서운했죠. 힘들기도 했고…. 제가 티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최대한 웃으면서 기분좋게 떠나왔어요. 와서도 밝게 하려고 노력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쉬우면서도 힘든 시기였어요.


Q. LG에서 오랫동안 주장을 맡았어요. 그 시절, 주장 말을 가장 안 들었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이재연 님)
말을 안 듣거나 특별히 튀는 선수는 없었어요. (박)래훈이가 신인 시절부터 방을 같이 썼는데, 제게 좀 말을 많이 들었죠. 혼나기도 했고요. 지금은 시즌 끝나고 같이 만나기도 하고,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


Q. KT에서는 김현민 선수가 자주 혼난다고 하던데요.
워낙 열정적으로 임하는 선수잖아요. 그런데 가끔 냉정함을 잃고 흥분하는 경향이 있어서 잡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화로 풀려고 노력했죠.


Q. 말씀하신 것처럼 김영환 선수는 경기 중에 선수들이 흥분하지 않게 진정시키는 장면이 자주 목격돼요. 한 팬께서 적어준 질문이에요. “김현민 선수가 판정에 불만을 갖자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네요. 그 장면이 버저비터 다음으로 가장 멋졌다고 합니다. 선수들 다독이고, 이끄는 모습들이 원래 김영환 선수의 성격에서 나온 것인가요? 아니면 주장이기에 의식적으로 하는 건지? (Hyeona Lee 님)
고참이고, 주장이다보니 저까지 냉정함을 잃으면 팀이 망가질 것 같아서 신경을 쓰고 있어요. 프로선수 생활을 해오다보니 파울이 불렸을 때 확인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더라고요. 판정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강하게 어필하면 안 좋은 결과도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자제시키려고 노력 중이죠. 경험상 억울해도, 웃으면서 편하게 말 한 마디 건네는 것과 흥분해서 따지는 것은 차이가 크더라고요.


Q. 어린 선수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나이차도 벌어지고 있어요. 선수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고 있나요?
저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사실 저도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은데, 먼저 가서 장난도 치고, 안무도 물으면서 가까워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주장이 너무 가벼워서도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선을 지키려고 하죠. 특별하지 않는 한, 사생활까지는 터치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기본만 지켜준다면 말이죠.




Q. LG에서는 시즌 후 단합대회를 주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올해는 어땠나요?
올해는 5월 1일에 한 번 모일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뜻하지 않게 받은 상(shot of the season)의 상금으로 밥도 사주고, 소주도 한 잔하는 자리를 만들었죠.


Q. 베테랑 주장으로서, 혹시 팀내 차기 주장감이 있다면? (임종호 님)
김우람, 김현민 등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재도가 잘 할 것 같아요. 나이는 어려도 생활습관이나 마인드도 좋은 선수거든요. 우람이도 팀을 잘 이끌어 갈 거예요.



2 QTR : 계속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
지난 시즌 종료 후 ‘SHOT OF THE SEASON’이란 상이 신설됐다. 한 시즌 최고 명장면을 투표로 뽑고, 그 주인공에서 시상을 하는 상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다 했을 때 팬들은 이미 수상자를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김영환이 투척(?)한 슛의 임팩트가 강했다. 스스로 봐도 ‘저게 들어갈 슛인가’할 정도로 말이다. 팬들은 여전히 그 슛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 보였다.


Q. 그날 이후로 연습에서라도 그 슛을 시도해보셨나요? (이기단 님)
연습은 안 해봤고요(웃음). 그때 다음 경기에서 몸을 푸는데 방송사에서 한 번 던져볼 수 있는지 요청하더라고요. 다섯 번 던졌는데 하나도 안 들어갔습니다(웃음). 림 쪽으로 가긴 가는데 힘든 것 같아요.


Q. 본인이 다시 봐도 대단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아! ‘저게 들어갈 슛인가’ 싶기도 하고. ‘운이 따라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한 번씩 보면 짜릿하더라고요.


Q. 저희가 질문을 SNS로 사전에 받아봤는데요. 전자랜드 팬으로 추정되는 한 분께서 ‘김영환 선수 고맙다’고 글을 남겼어요. 하하. 그런데, 박찬희 선수는 정말로 치킨을 사주셨나요?
(손사래를 치며) 아유, 말만 그냥…(웃음). ‘치킨 사주겠다’고 하는데 연락이 없네요. (정)영삼이가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둘 다 가정이 있으니까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만나면 맛있는 거 사주겠죠(웃음).


Q. 고려대나 연세대 선수들은 정기전 덕분인지, 사람들 많은 곳이나 큰 경기를 치를 때도 주눅 들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해요. 김영환 선수도 그런가요?
그런 면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분위기를 겪어봤다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선수 성격차이가 더 크지 않을까요?


Q. 중요한 순간에 공을 잡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에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편인가요?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죠. 저는 일단 그런 찬스가 오면,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2점을 지고 있을 때, 동점일 때… 그럴 때는 누군가는 던져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넣으면 영웅이고, 못 넣으면 어쩔 수 없고요. 부담이 없는 상황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반대로 실패했거나 실수했던 기억도 있겠죠.
두 가지가 있었어요. KT 시절이었는데, 제가 프로 3년차 때였어요. 울산 모비스와 저희는 시즌 마지막 날까지도 정규경기 1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했어요. 5연승 중에 LG(2010년 2월 20일)를 만났어요. 6라운드 경기였고, 모비스를 따돌리려면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였죠. 마지막에 1점을 지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마지막 패턴으로 저의 드라이브인을 만들어주셨어요. 그때 선수 한 명을 제치고 떴는데, 문태영 선수에게 블록을 당했어요. 그때 70-72로 지면서 모비스에게 1위 기회를 내주고 말았죠. 그때 이겼으면 저희가 1위했을 텐데…. 실패한 게 계속 생각이 나요. ‘오른쪽으로 드라이브한 다음에 스텝을 잘 밟았어야 하는데’하는 생각들이요. (KT와 모비스는 그 시즌에 40승 14패로 동률을 이루었다. KT는 김영환이 말한 그 경기 이후 6연승을 추가했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정규경기 1위 등극에 실패했다. 절치부심한 KT는 다음 시즌에 41승 13패로 1위를 차지했다.)


또 2015년 챔피언결정전도 기억나요. 6차전이었는데, (양)우섭이가 천대현에게 블록을 당하면서 시리즈가 끝나버렸어요. 차라리 제가 그때 공을 던져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우섭이가 던질 때 그냥 나한테 달라고 할 걸’하고요.




Q. KT때 그 슛을 놓치고 혼나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그때는 제가 어렸고 중요한 경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형들도 ‘괜찮다’고 했어요. 누군가는 했어야 한다고 말이죠. 위로를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더 미안했죠(웃음). 차라리 혼났으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발끈했을텐데 말이죠. 하하.



3 QTR : 모든 이야기의 시작
프로 초창기, ‘김영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연관검색어처럼 ‘무릎’ 이야기가 나왔다. 긴 시간을 소화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몸관리에 치중하게 되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몸을 갖게 됐다. 지난 3시즌간 김영환은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았다.


Q. 농구를 시작한 나이는 몇 살이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성정아 님)
초등학교 4때 시작했어요. 반에서 키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제의를 받았죠. 교무실로 오라더니 ‘농구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어릴 때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농구라는 종목 자체를 잘 몰랐어요. 축구, 야구만 했으니까요. 선생님께서 비디오를 보여주셨는데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문제는 농구부에 들어가려면 전학을 가야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가 한 번 꽂히면 고집이 있는 스타일이거든요. 우겨서 전학까지 갔죠(웃음).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1주일 하고 그만두겠다고…(웃음). 그때 부모님께서 ‘아니, 전학까지 갔는데 그만두려는거냐’고 하셨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됐죠.


Q.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허재 감독님을 좋아했어요. 저와 같은 왼손잡이여서 많이 따라하려고 했죠. 지금도 허재 감독님을 존경해요. 그렇게 농구하고 싶어요. 한 가지만 잘 한다기보다는 다양하게 잘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선배 중에는 (김)동욱이 형을 좋아했어요.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였죠. 많이 보고 배우려고 했어요.


Q. 저는 김영환 선수 슛 포물선이 좋더라고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 포물선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2차 성장이 늦게 왔어요. 중학생 때는 키가 작았죠. 그래서 림을 맞추려면 높이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높게 던졌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키가 훌쩍 자랐어요. 그때도 그 슛 폼이 습관이 되어있다보니까 그 포물선이 나오더군요.


Q. 하루에 몇 개나 던졌나요?
중, 고교 시절에는 500개 정도, 많게는 700개 씩 던졌던 것 같아요. 1,000개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많이 던지기보다는 상황을 만들어서 연습해요. 슛감이 안 잡히면 서서도 던져보고요.


Q. 포스트업 완성도도 높았던 걸로 기억해요.
어릴 때는 키가 자라면서 포지션이 왔다 갔다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포워드였다가 중학생 때 가드가 됐죠. 그러다 고등학생 때는 저보다 큰 선수가 없어서 빅맨을 봤죠.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맡으면서 포스트업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실 그때는 몸싸움을 정말 싫어했어요. 하지만 코치님께서 안에서만 하게끔 지적하셨죠.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그때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Q. 흔히들 ‘소풍(팀 이탈)간다’고들 하잖아요. 초등학생 때 농구 안 하겠다고 한 뒤로는 ‘소풍’을 간 적이 없었나요?
고등학생 때 많이 갔죠(웃음). 세 번 정도? 그때 ‘사랑의 매’가 많았어요. 고등학생 때 코치님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죠. 하하. 그러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세 번 정도 나갔던 것 같아요. 심지어 고려대로 진학이 결정된 뒤에도 농구 안하겠다고 도망가고 그랬어요.


Q. 그때마다 잡혀서 돌아가셨나요?
갈 곳이 없으니까 집에 갔죠. 집에 가서 ‘나 농구 못하겠어!’라 말했죠. 이렇게 사랑을 받으면서는 못하겠다고요(웃음). 그런데 2~3일 쉬고 나면 다시 농구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코치님과 이야기해서 복귀하면 1주일은 편했어요. 그러다 다시 사랑이 시작됐죠(웃음).


Q. 농구대잔치 경기였어요. 상무를 상대로 33득점을 기록하면서 결승에 진출했죠. 아마도 김영환 선수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은데, 다른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요?
대학교에서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첫 정기전이 기억에 남아요. 선배들이 ‘1학년들은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 못 차릴 거야’라고 조언해주셨는데,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죠. 그런데 경기장 들어서자마자 폭죽이 빵- 터졌는데 저도 멘탈이 빵- 터지고 말았어요. 그 뒤로는 뭘 했는지 기억에 안 남아있어요. 그 뒤로는 대학교 3학년 때 첫 우승이 기억에 남아요. 상무전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학생 때 부상으로 많이 못 뛰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를 많이 못 남겼어요.


Q. 그때 무릎이 안 좋다는 말이 많았죠.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다쳐서 부상이 온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고질적으로 아팠던 거였어요. 그래서 프로 초창기에 고생했죠. 독일까지 가서 수술을 했고요. 돌이켜보면 그때 아팠던 것 덕분에 재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아요. 몸관리를 철저히 하다보니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부상을 크게 당한 적이 없어요. 고질적이었던 건데도 부상이 잦은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었죠. 하지만 어쨌든 경기는 못 뛰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죠.


Q. 2007년 드래프트는 ‘황금세대’라 불렸어요. 하지만 김영환 선수는 소외된 느낌이 있었어요.
많이 속상했죠. 아픈 거 아니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부상이 크더라고요. 소문도 무서웠고요. 그때 ‘무릎 다 망가져서 못할 거다’, ‘데려가 봤자 고생하다. 은퇴할 거다’라는 말이 있었죠. 그래서 더 독을 품고 했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시작이 안 좋아도 끝은 좋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노력해서 끝이 좋은 선수로 남으라고요. 그 말 덕분에 열심히 한 것 같아요.



4 QTR : 코트 밖 이야기
김영환의 SNS를 보고 있자면 행복이 전염(?)되는 느낌이다. 코트 위와는 전혀 다른 인상의 ‘아빠’가 SNS를 장식하고 있다. 아빠가 시즌 중에는 갖지 못했던 아이들과의 ‘일상’을 만끽하는 사진들이다. “시즌 중에는 SNS를 자제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비시즌에는 팬들에게 근황을 전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Q. 프로 데뷔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 있으신가요? (정연희 님)
부산 팬들은 모두 고마워요. LG에 있다가 KT로 돌아왔을 때 ‘잘 돌아왔다’고 격려해주신 분들도 기억에 남고요. 정말 많은 분들이 잘 해주셔서 한 분만 딱 꼽기는 그래요.




Q. 육아는 어떤가요? 시즌 끝나면 많이 도와주시는 편인가요?
최대한 많이 도와주려고 해요. 집에 있을 때는 제가 애들을 봐요. 그 사이에 와이프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죠. 사실 부족하죠. 그래봐야 1년 중에 한 달 정도이니까요. 미안하면서도 고맙죠.


Q. 딸(채은이)은 아빠 농구 선수인지 아나요?
알긴 아는데 크게 관심은 없더라고요. 일단 와이프가 체육관에 잘 안 와요. 혹시나 제가 다칠까봐서요. 그러다보니 딸도 관심이 없어 보여요(웃음). 저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농구를 시킬 생각은 없거든요. 혹시나 농구를 보고서 ‘나도 하겠다’고 하면 뭐라고 말려야 할까 고민도 되고요.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어요.


Q. 6살이면 욱할 때 있을 텐데(웃음).
6살 뿐 아니라 둘째도 말을 안 들어서요. 하하. ‘욱’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집에 자주 오지도 못하는데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최대한 참는 편이에요. 물론 안 될 때가 있긴 하더라고요(웃음).



Q. 비슷한 또래 선수들과의 대화 주제도 바뀌었죠?
그렇죠. 애기 이야기가 많아요. 이런 게 좋네, 저런 게 좋네. 이야기도 하고, 신세한탄도 해보고…(웃음). 남자들끼리 만나면 아무래도 부부동반 모임에서는 못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하하.


Q. ‘주장’으로서 숙소 폐지되면 걱정거리가 늘 것 같아요. 어떤가요?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이겠죠. 출퇴근 안전사고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거고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하는데 오가면서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팀 훈련이 쉽지는 않을 거고요. 집에 가서 잘 챙겨먹기도 해야 할텐데, 젊은 선수들은 그게 걱정이죠.


Q. 새 시즌에 기대하는 선수가 있나요?
다 기대돼요. (김)현민이는 FA 계약 잘 했으니까 더 잘 해야겠고, 재도와 우람이도 잘 할 거라 믿어요. (박)상오 형도 능력이 있는 선수잖아요. 제 친구들도 잘 되면 좋겠어요. (천)대현이나 (이)광재 모두 좋게 마무리 잘 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시즌 목표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트레이드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시즌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가 다 틀어지면서 허무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시즌 들어가기 전에 항상 목표를 세우고 들어가는데 잘 안 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올 시즌에는 다시 시작하는 만큼, 부상없이 전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6강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게끔 동료들을 잘 준비하겠습니다.


#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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