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2군→ NBA 주전, 쿠룩스의 인생역전
[점프볼=이민욱 칼럼니스트] 2018-2019시즌 브루클린 네츠 경기를 보다보면 눈길이 가는 유럽선수가 한 명 있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루카 돈치치(201cm, G/F)만큼은 아니지만, 애초 미국땅을 밟았을 때의 기대치는 이미 넘어선지 오래 된 준척급 신인이다.
바로 1998년생 유망주 로디온스 쿠룩스(205cm, F)다. 돈치치가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NBA에 입성했다면 쿠룩스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던, 보장된 것이 아무 것도 없던 선수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스페인 2부 리그 소속 선수였기 때문이다.
소속은 바르셀로나였지만 주로 경기는 2부 리그에서 뛰었고, 유로리그는커녕 1군 무대에서도 부름이 없었다. 그랬기에 NBA에서의 질풍가도는 놀랍기만 하다.
쿠룩스는 라트비아 국적이다.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21cm, F/C) 다비스 베르탄스(208cm, F) 같은 NBA 리거들을 배출한 라트비아의 체시스에서 나고 자랐다. 프로선수가 된 것은 2012년으로, 자국 최고 명문구단인 VEF 리가에서 시작했다.
이 시기 VTB 유나이티드리그와 유로컵을 경험한 쿠룩스는 2015년 7월 스페인리그의 강호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더 큰 무대를 경험할 준비를 마쳤다. 물론 NBA 스카우트들의 레이더에도 쿠룩스는 집중 관심 대상이었다.
당시 NBA 관계자들은 쿠룩스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최종 철회하기는 했으나, 한때 드래프트 익스프레스(Draftexpress)에서는 2017년 NBA 모의 드래프트(2017년 1월 기준)에서 그의 위치를 로터리 끝자락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유망주들의 무덤’에 가까웠다. 그들은 1990년대 후반 스페인 ‘황금 세대’ 파우 가솔(216cm, C) 후안 까를로스 나바로(193cm, G) 이후로는 유망주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심지어 동생 마크 가솔(215cm, C)도 바르셀로나에서 뛰지 못해 다른 팀에서 자신을 어필했다. 그나마 바르셀로나에서는 2014-2015시즌 마리오 헤조냐(203cm, F)가 영건치고 기회를 많이 얻은 편이었으나, 그도 팀의 기대만큼 성장한 건 아니었다.
쿠룩스도 기회가 없었다. 유로리그나 1군은 베테랑들 중심으로 운영됐다. 아직 경기경험이 부족한 그는 2군 기회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무릎 부상도 겹쳤다.
+쿠룩스 바르셀로나 2군 시절 하이라이트+
그렇다고 바르셀로나가 쿠룩스의 재능을 마냥 낮게만 보지는 않았다. 언젠가 쓸 의지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다.
쿠룩스가 더 큰 무대에서 뛰는 걸 보고 싶어했던 NBA 관계자들은 답답해했다. 당시 쿠룩스의 상황을 ESPN 마이크 슈미츠 기자가 2018년 4월 8일 기사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슈미츠 기자는 “바르셀로나가 쿠룩스를 NBA 관계자들에게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한 NBA 팀은 쿠룩스가 나오는 전 경기에 특별히 구단의 해외 농구 스카우트(International Scout)를 파견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후에 바르셀로나는 브루클린이 쿠룩스를 지명한 이후, 바로 NBA로 데려오기 위해 바이-아웃을 시도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게 했다. 참고로 바르셀로나가 내건 쿠룩스의 바이-아웃 금액은 무려 500만 달러(한화 약 56억 원)에 달하였다. NBA 팀이 바이아웃을 위해 낼 수 있는 최고 금액은 70만 달러다.
그래서 금액을 낮추기 위해 시작된 네츠와 바르셀로나 간의 협상이 길어졌고, 이로 인해 쿠룩스는 서머리그에 뛸 수 없었다.
올해 4월, 그는 2018년 드래프트에 다시 얼리 엔트리로 참가했다. 그러나 2017년 드래프트 때와는 달리 바르셀로나에서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지 못한 쿠룩스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러나 브루클린의 션 막스 단장만큼은 쿠룩스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막스는 쿠룩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네츠데일리」의 9월 5일 기사에 의하면 2017년 NBA 드래프트에서 막스는 1라운드 22순위로 쿠룩스를 뽑을 생각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막스는 쿠룩스가 자신들의 순번(2018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40순위)까지 남아 있자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지명했다.
원래 2018년 NBA 드래프트에서 브루클린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유망주는 따로 있었다. 바로 1라운드 29순위로 뽑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 유망주, 자난 무사(205cm, G/F)였다.
그러나 2018-2019시즌 현재, 둘의 입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무사가 NBA 경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이, 쿠룩스는 ‘반전 드라마’를 쓰며 팀의 핵심이 되었다.
최근 그의 활약상을 알아보자. 2018년 12월 12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전(127-124 승)에서는 19분간 13점(3점 슛 1/1) 3스틸을 기록하며 ‘대어 잡이’를 도왔다. 이틀 뒤 열린 워싱턴 위저즈 전(125-118 승)부터는 아예 선발로 출전했다.
쿠룩스는 선발(23경기 기준)이었을 때 평균 10.3점(야투 47.6%, 3점 슛 31.3%) 3.9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유럽산 신인치고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으며, 이 시기 20점 이상 넣은 경기도 2번이나 있었다. 쿠룩스가 선발로 코트를 밟았을 때 브루클린은 17승 6패의 호성적을 거두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갑툭튀’ 신인 쿠룩스가 코트에서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올리자, 코칭스태프와 동료들도 ‘쿠룩스 PR’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네츠의 케니 엣킨슨 감독은 쿠룩스가 커리어-하이인 24점을 기록한 인디애나 페이서스 전 후 인터뷰에서 “쿠룩스를 경기에서 교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원래 나는 그를 34분(이날 쿠룩스의 출장 시간)이나 뛰게 할 생각이 없었다. 쿠룩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출장 시간을 얻어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쿠룩스의 팀 동료인 조 해리스(198cm, G/F)는 “로디(Rodi, 쿠룩스를 지칭)는 좋은 수비수이고, 대단한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림 어택도 잘한다. 이런 점이 우리 팀에게 많은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역시 쿠룩스와 같은 네츠 선수인 자레드 더들리(201cm, G/F)는 자신의 1월 3일자 트위터에서 쿠룩스를 보면 누가 연상되느냐는 한 트위터 유저의 질문에 AK-47(안드레이 키릴렌코의 별명)이 기억난다고 답하며 쿠룩스의 농구 실력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그는 농구 선수로서 신체조건(윙스팬 218cm)이 무척 좋다. 그 외에 2(슈팅가드), 3(스몰포워드), 4(파워포워드)번을 볼 수 있는 다재다능함도 갖추고 있으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노련한 편이다. 공격에서 쿠룩스는 볼을 끌면서 개인 공격을 전개할 때보다 볼 없을 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거나, 혹은 팀원들의 패스를 받아서 빠른 결정으로 개인 공격을 펼칠 때, 자신 있게 농구를 펼치는 것 같다.
그의 주요 공격 루트는 볼이 없을 때 기민하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림 근처로 뛰어 들어가는 커트인과 3점 슛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자신의 큰 키와 스텝을 이용한 돌파도 과감하게 시도하는 편. 경기당 실책 개수도 많지 않다는 점(1.4개)도 눈여겨볼 점이다. 속공과 리바운드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수비에서도 강점이 많다. 코트에서 적극성을 보이며 매치업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긴 윙스팬을 이용해 상대 공격을 방해하는 센스도 갖추고 있다. 도움 수비 타이밍도 마찬가지.
그러나 개선해야 할 점들도 있다. 상대가 수비에서 강하게 압박했을 시기에 버텨낼 수 있는 볼핸들링 능력을 키워야 하며, 힘도 더 길러야 한다. 아울러 오른쪽 위주로만 공격을 시도하려는 습성의 경우 개선이 절실하다. 상대 팀에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분석되면서 수가 읽히기 시작하면 개인 공격 전개가 힘겨워질 수 있기 때문. 또 경기를 치를수록 부정확해지는 3점슛(31.3%)도 올 여름의 보완 과제다.
오랜 시간 브루클린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2018-2019시즌, 짜임새 있는 팀워크를 앞세워 동부지구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 네츠의 상승세에 쿠룩스의 ‘깜짝 활약’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한때 진흙탕을 굴렀으나 미국 농구 진출 이후 인생역전에 성공한 쿠룩스가 과연 NBA에서 어디까지 인생역전 스토리를 써내려갈지 궁금하다.
#사진=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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