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 특집] D-10 : 전설들이 기억한 월드컵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

민준구 / 기사승인 : 2019-08-21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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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아시아의 호랑이’ 대한민국은 1970 유고슬라비아세계농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14 스페인농구월드컵까지 총 7회에 걸친 월드컵 도전사를 써내려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고, 전패로 무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도전은 아름답다. 대한민국 농구의 전설들이 수놓은 월드컵 도전사는 그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전설들이 이야기한 월드컵,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말이다.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도전은 1970 유고슬라비아세계농구선수권대회였다. 신동파, 박한, 김인건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은 1969 태국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발을 디뎠다.

첫 월드컵 도전이었음에도 대한민국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득점기계’ 신동파를 앞세워 세계 강호들과 정면 승부를 펼쳤고, 캐나다 전에서 사상 첫 승을 거두기도 했다. 당시 세계 랭킹 2위였던 브라질,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패했지만, 매 순간 접전 승부를 펼치며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농구의 매운 맛을 마음껏 느끼게 했다. 대한민국은 순위결정전에서 3승을 추가하며 최종 4승 4패, 11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 대회 최고의 스타는 신동파였다. 경기당 32.6득점을 퍼부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예선 마지막 상대였던 이탈리아는 신동파를 막기 위한 특별 전술을 펼치기도 했다. 농구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의 선수에게 유럽의 강호가 펼친 박스 앤드 원은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다.

신동파는 “너무 오래 전 일이기 때문에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 경기 30득점 이상씩을 넣었다. 그 당시에는 3점슛과 팀 파울이 없었다. 위치에 상관없이 모두 2점으로 인정했는데 현재의 3점슛 라인에서 들어간 슛들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아마 평균 득점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회상했다.

이어 신동파는 “그 당시에도 우리는 신체적인 조건에서 열세였다. 대한민국 전체 선수들이 잡은 리바운드보다 브라질 센터 한 명이 잡은 리바운드 수가 더 많은 적도 있었다. 신체적인 한계는 예전에도 존재했다”며 “우리가 극복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슛이었다.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성공시켰다. 그만큼 팀플레이가 좋았고, 슛 성공률도 대단했다”고 이야기했다.

비록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신동파의 존재감은 대회 최고 수준이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중 단 한 명도 평균 20득점 이상 올린 이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패했지만, 신동파만큼은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콤했던 첫 대회의 추억은 금세 잊혀졌다. 1974 푸에르토리코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나서지 못했고, 어렵게 올라선 1978 필리핀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선 1승 6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갖고 돌아와야 했다.



‘농구대통령’ 허재의 첫 출전 및 이충희, 故김현준, 김유택, 한기범 등이 나선 1986 스페인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선 5전 전패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시 이충희와 故김현준의 쌍포는 위력적이었다. 두 선수는 평균 득점 3, 5위에 나란히 오르며 득점력 하나만큼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적까지 함께 가져오지는 못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의 선전은 1990 아르헨티나세계농구선수권대회의 전망을 밝게 했다. 강동희와 정재근, 김진 등 새 얼굴들의 합세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1승 4패, 15위라는 성적을 낸 것이다.

1994 캐나다세계농구선수권대회는 기대에 비해 실망감을 안겼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에이스 허재를 중심으로 ‘허동택’ 트리오가 건재했고, 대한민국 농구의 황금기를 이끌던 ‘농구대잔치 세대’가 등장하면서 세계 무대에 힘껏 도전했다. 크로아티아, 호주, 쿠바와 B조에 속한 대한민국은 3전 전패로 다시 순위결정전으로 떨어졌다. 9-16위 결정전에선 스페인, 아르헨티나를 만나며 다시 한 번 좌절을 느껴야 했다. 앙골라와 이집트를 차례로 잡으며 3승 5패를 기록했지만, 13위에 그치고 말았다.

문경은 SK 감독은 “세계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아시아까지만 해도 내외곽을 오고 가며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선 슛말고는 그 이상의 것을 하기가 힘들었다. 동포지션에서 맞붙은 상대는 나보다 한 뼘은 더 컸고, 기량 역시 좋았다. 현실의 벽을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전희철 SK 코치 역시 “예선에서 만난 크로아티아는 토니 쿠코치가 포인트가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211cm의 거구가 앞에서 뛰어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웃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4-5번을 오고 갔을 때니까…. 어떤 거대한 벽과 부딪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보다 젊어진 대한민국은 4년 후인 1998 그리스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 농구의 벽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1986년 대회 이후 12년 만에 전패 수모를 겪게 된 것. 농구대잔치 세대를 중심으로 김주성이 새로 합류했지만,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채 귀국해야만 했다.

1998년 대회에 참가했던 추승균 전 감독은 “슛 한 번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2m 가드가 앞에서 뛰어다니고 210cm 센터가 골밑에 있으니 림이 보이지도 않더라. 사람이 아니라 벽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진출사는 1998년 대회를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갖게 된다. 그동안 중국과 쌍두마차를 이뤘던 시절이 지났고, 오일머니를 퍼부은 중동의 귀화선수 러쉬가 시작되면서 아시아의 강호 자리 역시 위태로워졌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세계 대회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도전은 16년이 지난 2014 스페인농구월드컵에서 다시 역사를 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나선 세계 대회는 낯설기만 했다. 상대국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1승 상대조차 고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전력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신구 조화가 잘 이뤄졌고, ‘타짜’ 문태종까지 합세하며 빈틈이 없었다. 12인의 선수들 모두 각자의 색깔이 짙었던 만큼 잘 버무리기만 한다면 예선에서의 승리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1승 상대로 꼽은 앙골라 전 패배 이후, 대한민국은 내리 5연패 수렁에 빠졌다. 심지어 정예 멤버로 나서지 않은 멕시코와의 예선 최종전 역시 무기력한 모습 끝에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선수단은 충격에 휩싸였고, 몇몇 선수들은 농구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양동근은 “거대한 벽에 막힌 느낌이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정말 막혔다는 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월드컵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언급하는 건 바로 ‘신체적인 한계’였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피지컬적인 부분의 영향이 큰 농구이기에 신체적인 한계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문제는 유효하다. 대한민국 역시 전체 선수단의 신장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신체적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신동파는 “신체적인 한계는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내기 힘든 부분이다. 그렇다면 정면 승부를 피해야 한다. 그들이 신체적인 우위를 가져가기 전에 공격을 끝내면 된다. 그만큼 손발이 잘 맞아야 하며 슛 성공률도 좋아야 한다”며 “농구에서 기술은 곧 실력을 뜻한다. 기술이 없다는 건 실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체 조건은 타고날 수 있지만, 기술은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기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전희철 코치는 “선수들의 전체적인 기량은 예전 우리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팀플레이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예전 선수들과 현재 선수들의 차이는 바로 호흡에 있다. 눈만 마주쳐도 딱 맞았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무의미한 실책이 너무 많다. 이런 부분을 줄여야만 세계 대회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전했다.

추승균 전 감독 역시 “신체적인 조건에서 밀린다면 지공보다는 속공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젊고 빠른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본다. 밀린다는 생각은 접고 한 번 부딪치자는 마음으로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오는 31일부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중국농구월드컵에 출전한다. 아르헨티나, 러시아, 나이지리아와 B조에 편성됐다. 현실적인 평가로는 3패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이미 세계 대회를 경험한 선배들, 그리고 전설들은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선수단에 힘을 실었다. 마치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이다.

“세계 대회에서 승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부딪쳐야 한다. 1승, 1승보다는 대한민국의 강점을 살리는 농구, 쉽게 무너지지 않는 농구를 선보였으면 한다. 대등한 승부 끝에 오는 패배는 좌절감보다 자신감을 얻게 한다. 승리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세계와 부딪쳤으면 한다.”

▲ 대한민국 역대 농구월드컵 도전史
1970 유고슬라비아 세계농구선수권대회/4승 4패(11위)
1978 필리핀 세계농구선수권대회/1승 6패(13위)
1986 스페인 세계농구선수권대회/5패(13위)
1990 아르헨티나 세계농구선수권대회/1승 7패(15위)
1994 캐나다 세계농구선수권대회/3승 5패(13위)
1998 그리스 세계농구선수권대회/5패(16위)
2014 스페인농구월드컵/5패(23위)

# 사진_점프볼 DB, 신동파 선생,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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