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손대범 기자] FIBA 네이스미스 트로피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31일 중국 8개 도시에서 개막하는 2019년 FIBA 농구월드컵은 사상 최다 32개국이 출전하는 역대 최대규모로 많은 농구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팀수가 몇 팀이 되든 변치 않는 사실은 결국 마지막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팀은 하나라는 것이다.
FIBA는 1967년부터 우승팀에게 농구 창시자인 네이스미스 박사의 이름을 딴 네이스미스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다. 처음으로 트로피를 받은 팀은 구소련이었다.
최근에는 미국이 NBA 선수들을 내보내고,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판세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1950년부터 시작된 대회 역사를 돌아보면 늘 미국이 최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 최다우승은 유고슬라비아
2002년, 유고슬라비아는 블라디 디박과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앞세워 네이스미스 트로피를 하늘로 번쩍 들어올렸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당시 대회는 방심한 미국의 몰락과, 마누 지노빌리나 덕 노비츠키 같은 새 얼굴들의 등장으로 화제가 됐다. 이는 유고슬라비아의 5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유럽 농구 판세에 변화가 몰아친 것은 이후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부터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월드컵 우승만 무려 5번이다. 준우승 3번, 3위도 2번이나 했다.
1960년대 열린 두 번의 대회에서 각각 준우승만 두 번했던 유고슬라비아는 1970년 자국에서 열린 6회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이후 구소련과 정상을 양분했다. 또 1990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도 올림픽 우승팀 구소련을 92-75로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이후 NBA선수들이 직장폐쇄로 나오지 못한 틈을 타 1998년 우승을 거머쥔 이들은 2002년 미국 대회마저 휩쓸면서 2연패 팀이 됐다.
역사상, 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한 팀은 브라질(1959년, 1963년)과 유고슬라비아(1998년, 2002년), 그리고 미국(2010년, 2014년)뿐이다.
197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성기를 주도한 인물은 크레스코 코지치(211cm)로 BYU에서 농구를 배우고, 1973년 NBA 드래프트에서도 지명됐던 선수였다(LA 레이커스가 권리를 가졌지만, 끝내 뛰지는 않았다).
올림픽만 4번 출전했고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도 주도했다.
기자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인 2000년대였는데, 유로리그가 선정한 위대한 50인의 기여자(2008년)에 이름을 올렸을 때였다. 그는 FIBA가 1991년 발표한 세계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인에도 선정됐고, 실제로 이에 걸맞게 유로바스켓 MVP, 명예의 전당 등 여러 영예도 함께 이루었다.
이후 1980년대에는 '유럽의 조던'이라 불렸던 드라젠 페트로비치, 이어서 블라디 디박과 토니 쿠코치, 디노 라자, 드잔 보디로가 등이 등장했다. 이중 디박과 쿠코치는 NBA에서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며 후배들의 리그 진출에 힘을 보탰다.
디박과 쿠코치는 1990년 FIBA 월드컵 토너먼트 팀에 선정되었다. 쿠코치는 또한 1990년 월드컵 MVP에도 선정됐다.
이후 연방이 해체되면서 유고슬라비아가 누렸던 그 영광의 기록들은 더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됐다. 다만 우승 기록을 비롯해 여러 출전 기록들은 세르비아가 물려받았다. 디박, 보디로가, 스토야코비치, 알렉산더 조르제비치, 젤리코 레브라차 등이 세르비아 출신이다.

▲ 미국은 미국
미국은 최다우승 타이 기록을 갖고 있다. 우승 5회, 준우승 3회, 3위 4회를 기록했다.
5번 중 3번은 NBA 선수들이 출전한 뒤에야 비로소 얻어낸 것이다. 1994년 이전까지는 NBA 선수들이 나서지 못했고, 미국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1950년, 1954년 미국의 주 득점원이었던 커비 민터(2009년 작고)는 사우스이스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소속으로 월드컵에 나섰으나 정작 NBA에는 지명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2년 만인 1986년, 미국은 구소련에 가까스로 승리(87-85)하며 2번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당시 핵심멤버로는 찰스 스미스와 케니 스미스, 데이비드 로빈슨 등이 있었다. 2019년 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맡은 스티브 커 감독도 당시 대표팀에서 평균 10득점을 기록했다. 그 외 션 엘리엇, 타이론 보그스, 데릭 맥키, 로니 사이클리 등이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2점차 패배의 아쉬움을 남긴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고 설욕에 성공,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1992년 드림팀 탄생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1994년 이후는 독자 여러분들도 아는 그대로다. 레지 밀러,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샤킬 오닐, 숀 켐프 등이 출전한 사상 2번째 드림팀은 당시 대회를 지배하며 아직은 NBA와 세계농구의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을 보였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결승전 스코어는 137-91. 농구 월드컵 결승전 사상 최다 점수차였다.
2010년과 2014년에도 미국은 월드컵 무대를 휩쓸었다. 2010년에는 홈팀 터키를 81-64로 꺾었다.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 등이 활약한 미국은 평균 92.8점, 65.9실점의 위력을 뽐냈다. 2014년 스페인 대회에서는 제임스 하든, 스테픈 커리, 앤써니 데이비스, 드마커스 커즌스 등이 돋보였다.
만일 미국이 이번 대회를 우승한다면 단독 1위(6회)가 된다. 또한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우승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주요 스타들이 하나둘씩 빠진 것이 뼈아프다. 과연 그 공백을 극복하고 정상에 설 수 있을 지 궁금하다.

▲ 역사에 남은 구소련, 우승 3회로 3위
그 외 우승팀은 구소련(3회), 브라질(2회), 아르헨티나(1회), 스페인(1회) 등이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모두 농구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가기 전인 1960년대까지 선전했다.
스페인은 2006년 일본 대회에서 파우 가솔을 앞세워 정상에 섰다. 그리스를 상대로한 결승에서 70-47로 대승을 거두기도. 당시 스페인의 최대 난적은 4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였다. 종료 1분 36초 전만 해도 73-67로 앞서갔으나 종료 28초전 2점차(72-74)까지 쫓기면서 위기에 몰렸다. 6초 뒤에는 동점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막판 호세 칼데론이 중요한 자유투를 넣으면서 75-74로 승리,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접수하려 했던 아르헨티나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반면, 가솔은 결승 진출 후 우승한 것만큼 기뻐했다. 파우 가솔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스페인은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홈에서 열린 것이 독이 됐다.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흐트러지면서 조기 탈락, 실망감을 남겼다.
구소련은 1967년, 1974년, 1982년에 우승했고, 1986년과 1990년에는 2회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러시아가 1994년, 1998년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역시 준우승에 그쳤다. 1980년대는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사루나스 마르셜오니스 등이 활약했다.
한편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필리핀의 3위가 유일하다. 1954년 대회에서 5승 2패로 3위를 차지했다.
#사진=FIBA 제공,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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