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이민욱 칼럼니스트]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기 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남자농구대표팀은 유럽의 대표 강호 중 하나였다.
유로바스켓에서 이들은 우승 1회(1946년), 준우승 6회(1947, 1951, 1955, 1959, 1967, 1985), 3위 5회(1935, 1957, 1969, 1977, 1981) 등 나갈 때마다 뭐 하나씩은 가져왔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분리 독립 이후, 이는 과거의 영광이 됐다.
침체기 체코가 택한 리빌딩 방식
이후 남자농구는 침체일로를 걸었다. 결국 체코는 리셋버튼을 누린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당장 성적을 내기보다 ‘싹’이 보이는 어린 유망주들을 대거 기용하여 밝은 미래를 꿈꾸는 ‘유망주 육성’에 힘쓴 것이다.
이 영건들은 처음 발탁된 당시만 해도 검증이 거의 안 된 이들이었다.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체코는 어정쩡한 베테랑보다는 유망주에게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체코는 유로바스켓 본선 진출이 걸린 지역 예선이나, 디비전 A에서 디비전 B로 내려갈 팀을 가리는 강등 라운드에 적극적으로 유망주들을 기용했다.
1991년생인 토마스 사토란스키(201cm, G)는 겨우 만 16세에 성인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데이비드 옐리넥(1990년생, 196cm, G)과 얀 베슬리(1990년생, 211cm, F/C)는 19살에 유로바스켓 디비전 B대회에 출전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대회 경중을 떠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러한 강도 높은 투자는 ‘달콤한 열매’로 돌아왔다.
이 중 사토란스키는 현재 시카고 불스 소속이고, 베슬리는 2018-2019시즌 유로리그에서 MVP가 됐다.
디비전 A에서 디비전 B까지 강등될 정도로 ‘밑바닥’을 경험했던 체코는 영건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팀을 재건했고, 결국 2012년에 열린 2013년 유로바스켓에서는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진 2015년 유로바스켓 16강에서는 강호 크로아티아를 80-59로 대파하며 파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비록 8강에서 세르비아(75-89), 5~8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70-85)에게 거푸 패해 분위기가 어두워지기도 했지만 이어진 7~8위전에서 라트비아를 97-70으로 꺾으며,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 유로바스켓 2015 본선 16강 체코-크로아티아 하이라이트 +
그 뒤로도 한동안 체코는 부침이 심했다.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2017년 유로바스켓 본선 등에서는 모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그랬던 체코가 달라진 건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부터였다. 특히 2차 예선에서는 알렉세이 쉐베드(198cm, G)가 나섰던 러시아를 잡는 이변(80-78)도 연출했다.
+ 월드컵 유럽 지역 2차 예선 체코-러시아 하이라이트+
팀의 핵심은 사토란스키
체코의 감독은 이스라엘 출신의 로넨 긴즈버그이다. 1963년생인 긴즈버그 감독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긴즈버그 감독이 펼치는 공수 전술의 ‘만능 키’는 단연 사토란스키다.
체코의 공격 전술을 잘 살펴보면 메인 볼 핸들러이자 에이스인 사토란스키가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비에서도 로테이션 수비 이해도가 높은 사토란스키의 존재감은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 외에 사토란스키와 팀의 ‘원투 펀치’로서 스크리너로 시작하는 2대2 전개력이 우수하고, 공수에서 뛰어난 운동능력과 풍부한 활동량을 잘 활용하는 베슬리의 팀 비중도 크다. 특히 인사이드에서 위력이 대단하다.
그런데 최근 불행한 소식이 체코를 덮쳤다. 베슬리가 무릎 부상으로 월드컵 참가가 불발되었던 것. 체코는 팀 전력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토란스키의 과부하가 예상되고 있다. 사실 체코의 가장 큰 약점이 사토란스키가 막힐 경우, 경기를 좀처럼 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수에서 사토란스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베슬리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한 점은 체코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이렇게 체코를 절망에 빠뜨린 소식도 있지만, 최근 대표팀 분위기를 들뜨게 하는 희소식도 있다. 바로 대표팀의 ‘미래 에이스’로 성장할 10대 인재를 발굴했다는 뉴스였다.
베슬리 공백 메울 신예, 크레이치는 누구?
그 주인공은 만 19세(2000년 6월 19일생) 비트 크레이치(201cm, G/F)이다. 사토란스키처럼 2m의 장신에도 가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며,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성향을 지닌 크레이치는 스페인 1부 리그(Liga Endesa) 사라고사 소속이다.
+2018 유럽 U18 디비전 B, 비트 크레이치 하이라이트+
비록 평가전이기는 하나, 크레이치는 어린 나이에도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듬뿍 받으며 경기에 나서고 있다. 올해 7월 유럽 U20 디비전 B(포르투갈 마토지뉴스, 7/12-21) 대회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나와 14.9점 5.1리바운드, 5.1어시스트의 체코를 준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U20 대회가 개막하기 전, 6월에 발표된 체코 대표팀 20인 예비 엔트리에 생애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크레이치는 쉴 틈 없이 2019 FIBA 농구월드컵에 나서는 성인 대표팀 평가전에도 나서게 된다.
스페인 1부 리그이기는 하나 3년간(2016-2019) 고작 3경기를 뛰고, 2018-2019시즌, 4부 리그(Liga EBA)에서 계속 시간을 보낸 10대 선수에게 평가전이라 하더라도, 고정된 출장 시간은 주기란 정말 힘든 결정이다.
그런데 긴즈버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크레이치를 벤치만 달구게 하지 않고, 경기에 적극적으로 내보냈다. 결과는 아직까지는 기대 이상이다. 11일 크레이치는 요르단과의 평가전(98-67 승)에서 단 21분을 뛰고 팀 내 최다득점자(15점)가 되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19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VTG 슈퍼컵(독일, 체코, 폴란드, 헝가리 참가) 헝가리 전(103-83)에도 12분 34초간 5점(야투 2/4, 3점 1/2) 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크레이치에게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은 가드이다. 나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경기 조율을 해낼 줄 알고, 좋은 스텝과 볼 핸들링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코트 비전도 넓다. 수비가 앞에 있어도 돌진하여 가볍게 덩크를 꽂을 정도로 운동능력도 대단한 수준이다.
그러나 나이가 매우 어린 선수 인만큼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 공격에 비해 수비에서 약점이 많다. 가로채기와 블록슛은 곧잘 하는 편이나,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하다.
앞으로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몸에 힘을 더 키워야 한다. 물론 사토란스키, 크레이치 외에도 체코에서 체크해야 될 이들은 참 많다.
얀 베슬리(211cm, F/C)가 뛰지 못하면서 인사이드에서 더욱 중요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페인리그 빌바오 소속의 217cm 장신 빅맨, 발빈을 먼저 살펴보자. 발빈 역시 사토란스키, 베슬리와 함께 10대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에서 경기를 뛰었다. 스페인리그 세비야(2010–2016) 시절에는 사토란스키,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21cm, F), 윌리 에르난고메스(211cm, C)와 한솥밥을 먹었다.
발빈은 순발력, 민첩성이 떨어지기에 스피디한 현대 농구에 맞지 않은 빅맨이다. 그러나 장점도 분명하다. 큰 신장을 이용한 공격과 수비는 상대에게 위협적이다. 또한 스크리너로 시작하는 2대2플레이에서 상황 판단도 빠르다.
님부르크 소속 선수들도 경계해야
사실 체코의 선수들 가운데에는 체코 프로팀인 님부르크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 많다.
님부르크는 현재 자국에서는 명문팀이자 최강팀. 체코 1부리그(NBL) 우승만 2018-2019시즌까지 무려 16회를 기록했다.이 님부르크에서 뛰는 체코 선수들 가운데, 먼저 왼손잡이 특급 득점원 야로미르 보하치크(198cm, G/F)를 눈여겨보자.
보하치크는 팀의 주득점원 역할(12경기 13.6점)을 톡톡히 해내며 체코의 월드컵 진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한 번 감을 잡으면 무섭게 터지는 3점슛(46.0% 29/63)이 보하치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보하치크의 프로팀, 대표팀 동료인 3번(스몰포워드)에 가까운 1989년생 보이테흐 하루반(202cm, F)도 득점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이다.
하루반은 2018-2019시즌 유로리그, 유로컵 다음 수준의 컵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에서 팀 득점 1위(평균 14.6점)를 차지할 정도로 가공할 개인 공격력을 뽐냈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13.2점 4.3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체코의 월드컵 본선 행에 큰 힘을 보탰다. 하루반의 장점은 득점력이다. 3점슛이 뛰어나고, 상대 수비 틈이 생기면 돌파를 이용한 득점도 적절하게 해낸다. 뿐만 아니라 운동능력을 이용한 농구에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전성기는 한참 지났지만, 미국 출신의 귀화 선수인 1983년 노장, 블레이크 쉴(201cm, F)도 팀의 핵심이다.
3점슛 능력이 뛰어난 쉴은 한때 유로리그에서 2시즌 연속(2012-2013, 2013-2014)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유럽에서 잘 나가는 선수였다.
현재 그는 프랑스 1부 리그(Jeep ELITE Pro A) 샴페인 샬롱-랭스(정규시즌 참가 팀 18팀 중 13위, 13승 21패) 소속으로 경기를 뛰고 있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지난 시즌 33경기에서 31.9분이나 뛰며 13.4득점을 올렸다. 그는 유럽 농구의 장점인 ‘팀 농구’ 이해도가 매우 높다. 또한 나이가 든 베테랑들이 그러하듯, 볼을 쥐고 있을 때나 혹은 볼이 없는 상황에서 움직일 때, 무리하며 덤비기보다는, 안정적이고 노련한 농구로 상대 수비를 요리한다. 그의 장기는 3점슛이다. 2018-2019시즌에는 41.2%(54/131)로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 월드컵 지역예선 핀란드전 하이라이트 +
주장인 1986년생 파벨 펌플라(198cm, G/F)는 유럽 최고의 단일리그인 스페인리그에서 무려 4년을 뛰었으며, 돌파에 의한 득점력이 좋다.
+ 펌플라의 2013-2014 스페인리그 하이라이트 +
한편,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체코가 슈터 데이비드 옐리넥(196cm, G)을 예비 엔트리에도 포함시키지도 않고 철저히 외면한 점은 참 아쉽다. 스페인 모라방크 안도라 소속의 옐리넥은 현대농구에 잘 어울리는 슈터다. 지난 시즌에는 유로컵에서 평균 10.7득점을 기록했고, 소속팀의 창단 후 첫 유로컵 4강 진출도 도왔다.
‘옐리넥이 이번 대표팀에서 왜 배제되었는가?’와 관련된 구체적인 뉴스는 아직 없다. 사실 현재 대표팀 수장인 로넨 긴즈버그 감독은 3년 전,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을 준비할 때 옐리넥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옐리넥은 예비엔트리에는 올랐지만 끝내 최종엔트리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현재의 체코는 베슬리, 옐리넥이 빠져서 김이 빠진 면은 있으나, 이번 4개국 국제농구대회와 월드컵에서 눈여겨볼 구석이 있는 팀인 건 사실이다.
아직 국내 농구팬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농구에서 점점 떠오르고 있는 팀인 체코.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자. 체코는 4개국 대회에서 24일 앙골라, 25일 한국 27일 리투아니아와 경기를 치른다. 또, 월드컵에서 체코는 미국, 일본, 터키와 E조에 편성되어 있으며, 1일 미국, 3일 일본, 5일 터키와 조별리그 경기를 갖는다.
# 사진_FIBA 제공(토마스 사토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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