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룡(70‧184cm)은 원주 DB의 역사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될 이름 중 하나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프로 원년 최약체로 불리던 전신 나래 블루버드를 이끌고 챔피언결정전 준우승까지 만들어낸 명장이다. 칼레이 해리스, 제이슨 윌리포드라는 빼어난 외국인선수의 역할이 컸다고는 하지만 당시 쟁쟁한 팀들 사이에서 양과 질적으로 크게 밀리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업적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당시 나래에서 이름이 알려진 토종 선수는 ‘사랑의 3점슈터’로 불리던 정인교가 유일했다.
지난 9월 ‘농구人터뷰’에서도 밝혔다시피 최명룡 전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지도자 인생 전성기로 나래 시절을 꼽고 있다. 성적을 떠나 원주 팬들이 보낸 사랑과 지지를 잊지 않고 있는 이유가 크다. 이는 원주 팬들도 마찬가지다.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늘 팬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했던 감독 최명룡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인터뷰를 읽어본 후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원주에 살고 있는 농구팬 L씨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래 블루버드 시절 형과 함께 농구장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형은 지체 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감독님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감독님의 배려로 락커룸이라는 곳도 가보고 휠체어를 타고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20여년 이상이 훌쩍 지나버려서 감독님께서는 기억을 못하실지 모르겠으나 저희는 그때 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형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두고두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통해 해당 메시지를 전달받은 최명룡 전감독은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솔직히 말하면 당시 일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팬분의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다. 경기전 준비로 바쁜데 얼마나 신경을 써줬을까 싶다. 늘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라 작게나마 관심을 가진 것 뿐이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기억해주시는 것에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할 따름이다”고 답했다.
지금이야 팬서비스가 당연한 것처럼 정착되고 있지만 농구대잔치에서 바로 이어져온 프로 초창기에는 분위기가 살짝 달랐다. 여전히 체벌(?)이 존재하는 팀도 있었을 만큼 보수적인 잔재가 남아있던지라 사인을 해주거나 인사를 주고받는 행동에 대해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최 전 감독은 달랐다. 원주의 폭발적인 농구 인기를 보면서 ‘저 열기를 계속 지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원주팀이 좋아서 오신 분들이니까 신경을 써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원주에 농구팀이 창단되고 지도자, 선수, 프런트가 생겨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분들 덕 아닌가. 언젠가는 태백 초등학교 저학년 그리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단체로 농구를 보러온 적도 있다. 어른 팬들도 소중하지만 어린이 팬들인지라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면 평생 그 팀의 열성 팬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단체로 경기장을 찾은 어린이 팬들은 30여명 정도되는데 안타깝게도 표가 없어서 입장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워낙 원주 농구 열기가 뜨거웠던 관계로 5~6만원짜리 암표도 성행했던 시절이었다. 어린이 팬들의 부모를 통해 상황을 전해들은 최 전감독은 즉시 사무국장을 찾아 ‘서서 봐도 좋으니 무조건 입장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먼 곳에서 부푼 가슴을 안고 찾아온 어린이 팬들을 실망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덕분에 농구를 잘 보고 태백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종이학을 천마리를 접어서 최 전감독에게 보냈다. 이에 최 전감독은 시즌 끝나고 당시 농구를 보러왔던 태백초 농구부 어린이들을 찾았다. 당시 태백초 농구부는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코치 등이 박봉을 털어 유니폼이나 장비를 구입할 정도로 재정이 열악했다. 최 전감독은 농구부에 필요한 선물을 잔뜩 들고 가서 나눠주는 한편 농구도 가르쳐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인도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간판스타 정인교와 트레이드되어 전국구 스타 허재가 원주로 오자 훈련장을 찾는 팬들이 엄청 늘어났다. 선수 시절 허재는 다소 까칠한 면이 많았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힘이 드니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짜증스럽게 비키라고 하면서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때 최 전감독은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사인 다해줘. 30분이고 한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재를 보기 위해 훈련장까지 찾아온 팬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잊지 않는 것도 시즌을 치르는 일부라고 여긴 것이다.
최 전감독의 원주 농구에 대한 애정은 재임기간 내내 이어졌다. 한번은 농구를 좋아하는 장애인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원주기독교병원 병원장까지 지낸 이영희 교수와 함께 의기투합해 원주시 휠체어농구단을 만들었다. 직접 가서 지도도 해주는 등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기사가 미담처럼 쓰여질 것 같아서 살짝 걱정된다. 이런건 미담이 아니다. 원주를 대표하는 스포츠팀 중 하나의 감독으로 지내면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고 자세였을 뿐이다. 원주 출신은 아니지만 원주에 농구팀이 생겼기에 나도 이런 신흥 명문을 지휘해봤다는 훈장을 달게 되지 않았는가. 김주성 체제로 바뀐 DB가 더욱 기운을 내서 원주 팬들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주기를 바란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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