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7월에 공식적으로 경기운영본부장에 선임됐습니다. 이후 어떤 일정을 소화해 오셨나요?
정신없이 보냈어요.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가더라고요(웃음). 우선적으로 심판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심판들도 선수들처럼 체계적인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전지훈련도 함께 다녀오면서 시즌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기간을 가졌죠. 이후 퓨처스리그부터 박신자컵, 연습경기, 유소년 대회 등등 연맹 차원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경기에 모두 함께했습니다. 큰 것만 말씀드린 겁니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은 자리인 것 같아요.
조금 늦었지만 경기본부장에 선임된 소감도 부탁드립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욕먹는 자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시스템을 꼼꼼히 정비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착실히 보완해 나갈 계획입니다. 박신자컵을 통해서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해외 팀들이 전반적으로 경기 운영을 깔끔하게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선수들은 기술적이라기보단 억지로 농구를 하는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 리바운드 과정을 보면 우리 선수들은 점프 이전에 팔부터 끼는 상황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선 심판들에게도 주입하고 있어요. 반면, 일본 선수들은 깔끔해요. 수비도 스텝으로 다 따라다니고 픽앤롤, 박스아웃 등등 전반적으로 정석적인 농구를 합니다. 트랜지션도 원활하고, 찬스 나면 주저하지 않고 던지는 걸 보면 컬러 자체가 우리와 달라요. 일본 팀들처럼 경기하면 심판 입장에서도 수월하죠. 세부적으로는 WKBL도 KBL처럼 챌린지 이후 판정을 내린 상황에 대해 심판이 설명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경기운영본부장이 맡는 역할, 업무에 대해 소개한다면?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심판 관리입니다. 공정한 판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자리입니다. 몸 관리부터 체력 향상, 시스템 구축, 영상 교육, 심판 배정 등등 심판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경기부장으로 WKBL에 돌아온 건 지난 1월이었어요. 이후 6개월 정도 경기부장을 맡았던 게 경기운영본부장 역할을 소화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도 판정과 관련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었거든요.
경기부장에 이어 경기운영본부장까지 수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여자농구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저도 예전에 WKBL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던 적이 있고요. 여자농구가 더 인기 있고 재미있는 스포츠로 도약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수락하게 됐습니다.
심판들의 역량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사람이 맡는 역할이기 때문에 놓치는 장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NBA도 심판 교육 영상을 보니 개인당 2개 가까이 놓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어떻게든 그런 실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죠. 챌린지를 통해 개선되는 부분도 있고, 경기가 끝난 후 이튿날에는 경기를 복기하며 서로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KBL도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선수나 지도자 시절에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심판들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돌파를 즐기는 유형, 스텝 멈추고 슛으로 올라가는 유형 등등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하면 판정을 내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예측해서 판정을 내리면 안 되겠죠. 해당 상황을 끝까지 보고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저도 심판들과 함께 실수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판들을 위한 트레이너 채용 공고를 올렸는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지원을 받긴 했는데…. 마땅치 않더라고요. 결국 통영 전지훈련에서는 저와 박선영 경기운영부장이 다 했습니다. 전지훈련 시작할 때 보니 개별적으로 훈련을 해서 뛸 때 안정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체중이 증가한 심판도 있었죠. 다칠 것 같아서 체계적으로 전지훈련을 소화했습니다. 사다리 훈련부터 셔틀런까지 3주 정도 전지훈련을 소화하니 확실히 체력이나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심판들에게도 강조해서 얘기하는 부분인데 결국 심판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막판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전지훈련도, 트레이너 채용 공고도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기 위한 일환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신자컵에서도 심판들을 여러 항목에 걸쳐 평가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시즌 때만 평가했거든요.
감독, 해설위원, 경기운영본부장으로 각각 WKBL을 볼 때 시각차가 있다면?
처음 경기부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습관 때문인지 심판 대신 각 팀이 어떤 수비 전술을 쓰는지 보더라고요(웃음). 조금 지난 후부터 심판들을 집중적으로 보게 됐죠. 그러다 보니 심판이 있어야 할 위치, 꼭 지켜야 하는 위치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실수하기 전 심판이 각자의 위치에 있는 게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FIBA(국제농구연맹) 경기도 보면 심판들이 각자 위치에서만 판정을 내려요. 우리나라는 안 보이는 각도에서 부는 상황도 종종 있거든요. 심판들에게 정확하게 위치 잡은 후 판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경기운영부장은 심판 출신입니다. KBL, WKBL 모두 심판을 맡은 경험이 있죠. 심판 자격증이 있는 데다 경기부와도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심판 관리나 조언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김진수 어드바이저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상 교육을 통해 전문적인 메커니즘을 잡아주고 있죠. 이전까지는 본부장 혼자 하는 역할이 많았어요. 그래서 오자마자 조직을 개선했습니다. 시스템을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전문가들을 충원했습니다.
올 시즌 WKBL 경기 운영과 관련해 바뀌는 부분이 있나요?
파울 챌린지 횟수를 조정했습니다. 종전에는 1~3쿼터 1회, 4쿼터 또는 매 연장전 1회 총 2회였는데 이제는 1+1입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지만, 최초 파울 챌린지를 통해 판정이 번복되어야 다음 기회도 주어집니다.
현역 시절 얘기를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허동만 트리오’의 한 축이었는데 당시 기세나 인기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허재 형, 강동희 형 등등 함께 뛰었던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훌륭했죠. 경기할 때마다 이긴다는 마음으로 임했으니까요. 실업팀에 입단한 이후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만 하면 되니까 농구가 너무 잘됐고 재밌었죠. 어디에 가 있더라도 늘 제 타이밍에 패스가 왔고요. 제가 상대 팀 슈터를 전담 수비하다 보니 수비도 많이 늘었는데 KBL 출범 초기 제럴드 워커라는 외국선수가 있었잖아요. 제가 그 선수를 주로 맡았거든요. 그러면서 외곽수비가 늘었고, ‘반쪽 선수’라는 평가도 없어졌습니다.
공수를 겸비한 포워드로 알고 있었는데 실업 입단 이후 수비력이 향상됐다는 얘기는 놀랍네요.
사실 대학 때는 수비를 많이 안 했어요. 수비를 전담하는 선수가 따로 있었으니까요. 기아자동차 입단한 이후에는 제가 막내잖아요. 그러다 보니 수비나 궂은일을 담당하는 빈도도 늘어난 거죠. 부딪치다 보니 수비가 많이 늘었고, 더 잘 막기 위해 영상도 많이 찾아봤어요. 제가 키가 커서 유리한 부분도 있었지만, 영상을 계속 보면 상대의 스텝이나 공격 방향, 슛을 어떻게 쏘는지가 보이거든요. 제가 영상을 많이 보면서 향상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심판들에게 접목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마산고 재학 시절까진 센터를 맡았는데 중앙대 진학 후 포지션을 전향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연고대에서도 제의를 받았는데 미래를 생각하며 중앙대 진학을 결정했어요. 다른 대학이라면 4번을 맡아야 하는데 중앙대는 200cm가 넘는 정경호, 표필상 선배가 있어서 포워드 전향이 가능했거든요. 진학 후 2년 동안 엄청 고생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3학년 때부터 조금씩 3번의 움직임을 익히게 됐습니다. 현역 시절을 돌아보면 3번 전향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공수 겸비 포워드는 아마 제가 최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충희, 김현준 선배 등 이전까지 2~3번은 공격의 비중이 높았지만 제가 실업에 입단한 후 지형이 조금씩 바뀌었거든요. 후배 가운데에는 추승균이 비슷한 유형이었죠.
1997년 3월 29일 나래(현 DB)를 상대로 기록한 49점은 여전히 밀어주기를 제외하면 국내선수 가운데 1경기 최다득점으로 남아있습니다. 경기 내용이 기억나시나요?
득점을 많이 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제 기록이 아직도 1위인가요? (김선형이 2019년에 타이 기록을 세워서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웃음). 제가 원래 개인 기록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KBL이나 대표팀에서 주목하는 선수가 있다면?
저와 포지션은 조금 다르지만, 유기상(LG)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주 좋은 선수입니다. 유기상은 용산고 재학 시절에도 이세범 코치로부터 성실한 선수라는 추천을 받아서 유심히 봤는데 슛이 정말 좋더라고요. 슛 템포도 빨라 모처럼 우리나라의 슈터 계보를 잇는 선수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대표팀 평가전이나 국제대회에서도 기량을 보여주더라고요. 무엇보다 성실하다는 게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임기 내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일단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잡혀야 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기존에는 경기운영본부장을 비롯해 혼자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데 혼자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가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그래야 부족하거나 보완해야 할 점을 인지한 이후 해답을 찾는 과정도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일단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심판도 훈련이든 영상 교육이든 체계적인 시스템을 꾸준히 반복해 나가며 실수를 줄여나가는 WKBL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영만 경기운영본부장은 1972년생 3월 5일생으로 마산고-중앙대를 졸업한 후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다. 기아자동차 시절 허재, 강동희와 함께 허동만 트리오로 활약했고 KBL 출범 초기 베스트5, 최우수수비상, 수비5걸 수상 경력을 모두 쌓는 등 공수를 겸비한 포워드로 공인받았다. 1997년 3월 29일 나래를 상대로 기록한 49점은 여전히 밀어주기를 제외하면 국내선수 1경기 최다득점으로 남아있다. 기아-모비스(현 현대모비스)-SK-LG-동부(현 DB)-KCC를 거쳐 2006-2007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모교 중앙대를 비롯해 국민은행-동부 코치를 거쳐 동부 감독으로 3시즌 통산 94승 85패를 기록했다. 이후 LG 코치를 거쳐 2025년 1월 경기운영부장으로 선임되며 WKBL로 돌아왔다.
#사진_박상혁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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