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농구 전성기 이끈 남자 사마드 니카 바라미 “2007년, 우리는 꿈을 이뤘다”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8-05 14:32:2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민준구 기자] “2007년, 우리는 꿈을 이뤘다.”

이란 농구는 200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변방 취급을 받았다. 유럽형 체격을 지닌 선수들이 즐비했음에도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 그리고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 등 여러 제한이 겹치면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타 중동아시아 국가가 지배한 아시아에서 이름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는 이란 농구의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마드 니카 바라미가 있었다.

바라미는 이란 농구의 레전드로서 하메드 하다디와 함께 아시아 최정상을 이끈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에는 아시아 정상이란 목표를 꿈꾸지 못했다. 그만큼 이란 농구는 낙후되어 있었고 발전 요소가 적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FIBA 아시아컵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바라미는 “어린 시절, 우리는 조국에 농구라는 스포츠가 아시아 정상에 설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 가능성이 있다는 걸 믿었다. 중동아시아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시기에 나는 15~17살 정도에 불과했고 이란은 다른 스포츠에 집중하던 때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내 친구들과 함께 종종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 언젠가 프로선수가 되어 해외에 진출하고 많은 돈을 벌면서 유명해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때는 꿈에 불과했지만 점점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달라졌다”라고 덧붙였다.

조금씩 변화하던 이란 농구는 2007년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2007 FIBA 도쿠시마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역사상 최초로 정상에 선 것. 그동안 중국, 한국, 필리핀, 일본만이 차지할 수 있었던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이란이 5번째로 차지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는 경험 많은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공존했다. 근데 베테랑들이 부상으로 인해 1명씩 나가면서 전력 약화가 두드러지고 말았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이란이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할 거라고 언급했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선수들이 너무 젊어서 해내지 못할 거라는 평가, 경험이 없는 선수들로는 안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을 믿고 있었기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우리는 목표를 이뤘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던 이란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요르단, 필리핀, 중국과 함께 A조에 속한 그들은 3전 전승을 거두며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했다. 2라운드에서는 레바논과의 최종전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면 카타르와 대만을 차례로 꺾고 당당히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카자흐스탄과의 4강전을 75-62로 승리한 이란은 결승에서 레바논과 다시 만났다. ‘아시아의 조던’ 파디 엘-카티브가 버틴 레바논은 아시아 최강의 팀. 4강전에서 김동우(23득점)가 분전한 한국을 76-74로 꺾으며 분위기까지 최고조에 올랐다.

바라미는 “레바논과의 결승에서 승리하면 2008 베이징올림픽에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올림픽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다. 그저 가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만 할 때였으니까. 그때 이란농구협회장이 보드판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적어놨다. 그렇게 우린 승리했고 레바논을 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라커룸으로 들어간 뒤 보드판에 적힌 것처럼 ‘우리는 올림픽에 간다’라고 소리쳤다”라고 회상했다.

2007 후 이란 농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되는 시기였다.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세계 최고의 농구가 펼쳐지는 올림픽에도 초대받을 수 있었다. 젊고 강한 이란의 사자들은 2009년 중국 톈진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정상을 차지했고 그렇게 중국이 가지고 있었던 정상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었다.

“2009년 대회는 2007년보다 훨씬 쉬웠다. 누군가는 2007년 중국의 전력이 최정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2009년 결승에서 더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라미가 꼽은 아시아 베스트5는 누구일까. 그는 평생을 함께한 메흐디 캄라니, 하메드 하다디는 물론 필리핀의 게이브 노우드, 요르단의 자이드 압바스, 그리고 경쟁자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파디 엘-카티브의 이름을 기억했다.

바라미는 “샘 더글라스, 자이드 압바스는 2011년의 우리를 꺾은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파디 엘-카티브는 아시아 최고를 다투기 위한 경쟁자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아시아 정상을 다투던 시절을 기억한다. 서로를 존경했고 또 경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며 “누구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전쟁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았다”라고 밝혔다.

# 사진_점프볼 DB, FIBA 제공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민준구 민준구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