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서호민 기자] 남자프로농구에서 정영삼과 강병현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들이 코트를 떠난 가운데 여자농구에서도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가 은퇴를 발표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뛰어난 미모와 출중한 실력으로 남자 팬들의 ‘남심’을 뒤흔들어놨던 박하나가 2021-2022시즌을 끝으로 코트와의 작별을 고했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을 정도로 은퇴는 갑작스러웠다. 아쉬움 속 제2의 인생에 첫발을 뗀 박하나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본 기사는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은퇴를 앞당긴 부상
2021년 2월호 점프볼에 입사한 필자의 첫 인터뷰이는 박하나였다. 1년 4개월여 만에 다시 그녀를 인터뷰이로 만났다. 마치 첫사랑을 떠나보내듯 박하나의 은퇴가 아쉬웠다. 그래서일까 사뭇 무거운 마음을 떠안고 인터뷰 장소인 충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뵙네요”라는 말로 반겼다. 박하나가 은퇴를 고민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년 전, 재활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현역 연장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해결해준 이는 삼성생명과 임근배 감독과 그리고 김정은, 최희진 등 절친한 동료들이었다. 이들의 제안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무릎 상태가 온전치는 않았지만 박하나는 코트에 나설 때만큼은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베스트5를 수상했던 시절처럼 펄펄 날았던 건 아니지만, 고참 역할과 함께 후배들의 부상 공백도 잘 메워내며 알차게 보냈다. 분명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박하나는 부상을 이겨내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불운하게도 반대편 무릎이 말썽이었다. 당초 다쳤던 왼쪽 무릎이 완전치 않은 탓에 오른쪽 무릎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이로 인해 오른쪽 무릎에도 칼을 대야 했고 또다시 기약 없는 재활에 돌입했다. 1년의 시간이 흘러 FA시장에 나온 박하나를 불러주는 팀은 없었다.

주위에서 “이대로 은퇴하기엔 아깝다”, “다른 팀에연락이라도 해보는게 어때”라는 등 은퇴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않았다.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웃음). 저 나름대로도 고민을 많이 했고 다른 팀에 가서 코트라도 밟아보고 은퇴를 하고 싶었어요. 주위에서도 다른 팀에 연락이라도 해보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굳이 그렇게까지 선수 생활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9년부터 4년 간 반복된 재활을 하면서 저 스스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지쳐 있었거든요. 이럴 거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아쉬운 마음을 접고 홀가분하게 코트를 떠나자고 결심하게 됐어요”라며 은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씁쓸한 현실이다. 불과 3년 전, 베스트5에 뽑히며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군림했던 그녀가 부상으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은퇴 발표를 했을 때, 박하나 본인보다도 주위 지인들과 팬들이 더 많이 아쉬워했다고.

하지만 후회는없다. “무릎 수술한 건 원래 다쳤던 왼쪽 무릎이 아니고 반대편 부위를 수술한거에요. 그때 당시 재활이 굉장히 잘 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2020-2021시즌 중반까지 뛸 수 있었고요. 그런데 오른쪽 무릎이 아픈거에요. 아무래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다 보니까 오른쪽 무릎을 많이 사용했고 결국 과부하가 걸린거죠. 수술을 했는데 예후가 안 좋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왼쪽 무릎 재활도 잘 되고 있었으니까 오른쪽 무릎도 수술하지 않고 재활을 택했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는 있는 것 같아요.”

박하나는 숙명여고 시절부터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여자농구의 미래’로 주목을 받았다. 뛰어난 농구실력에 예쁜 외모까지 더해져 고교 때부터 팬들을 몰고 다녔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신세계(현 하나원큐)에 입단한 박하나는 오랜 시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프로 입단 후 6시즌 동안 2013-2014시즌 평균 6.1점이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신세계에서 하나외환으로 간판을 바꿔 달은 2012-2013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14년 여름, 첫 FA자격을 획득한 그는 무려 281%라는 기록적인 연봉 인상과 함께 계약기간 3년 연봉 2억 1100만 원이라는 계약 조건에 삼성생명의 유니폼을 입었다. 전년도 연봉이 7500만 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거의 3배 가까이 올라간 것이다. 당시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변연하(은퇴)보다 높은 연봉이었다. 삼성생명의 베팅에 ‘오버페이’ 논란이 들끓었다.
삼성생명은 박하나의 성장가능성에 주목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텐셜만을 보기에는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시선이 뒤따랐다. 박하나는 이적 후 삼성생명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적 후 6시즌 동안 평균 12.0점 3.1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평균 26.1%였던 3점슛 성공률은 35.1%로 끌어올렸다. 2017-2018시즌, 3점야투상을 받으며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개인상을 수상했고, 2018-2019시즌에는 득점상, 자유투상과 함께 시즌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신세계, 하나외환 시절부터 삼성생명으로 이적하기까지 욕도 많이 먹고 저한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기를 잘 견뎌냈다고 생각해요. 삼성생명에 와서 농구적으로 재능을 꽃피우고 또 이후에 재활로 인해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당시 팀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분위기는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나요. 저는 막내급이었는데, 언니들이랑 숙소에서 놀면서 수다 떨고 했던 게 추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지금도 당시 친했던 언니들이랑 만나면 ‘아 우리 그때 정말 재밌었지’라고 추억을 회상하곤 해요.”

“(인생) 참 쉽지 않다는 걸 느꼈죠. 선수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부분이 가장 아쉬워요. 저는 10년 동안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그곳에 있던 시간이 너무 짧은 거잖아요. 이제 막 농구가 재밌어지고 길도 보이고 했는데...저에 대한 원망도 많이 하고 속상함이 컸어요. 그러면서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인가 싶기도 했고요. 여러 감정이 교차했어요”라고 돌아봤다.

삼성생명, 나에겐 고마운 팀
박하나가 삼성생명 유니폼을 입은 지도 벌써 8년 째. 비록 데뷔는 신세계에서 했지만 삼성생명의 푸른색 유니폼이 더 잘 어울리는 그다. 기록적인 FA 대박의 주인공에서 기록적인 FA 추락을 감수하는 처지에 놓였고, 커리어하이, 꼴찌, 우승, 부상을 반복하기까지 삼성생명과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해봤다. 그 과정 속에서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어야한다는 책임감도 생겨났다.
“무언가 한 단어로 설명하긴 어렵고 삼성생명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죠. 일단 처음 이적했을 때는 욕을 많이 먹었고요. 이후에 잘해서 상을 받고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도 받았어요. 비록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고요. 부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고. 마치 롤러코스터 탄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프로 생활을 돌이켜보면 삼성생명에 대한 기억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가장 오래 뛴 팀이기도 하고요. 저한테는 너무 고맙고 감사한 팀이죠.”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도 잊지 않았다. 박하나는 “삼성생명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선수들끼리 있는 단톡방을 나왔어요. 그 후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는데 그때는 은퇴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해서 일부러 답장을 안 했어요. 아직까지 선수들에게 답장을 못했는 데 미안함이 커요. 감사하게도 사무국장님께서 태백 전지훈련이 끝난 뒤, 선수단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팀원들과도 못 다했던 이야기도 나누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오는 2022-2023시즌 홈 경기 중 박하나의 은퇴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은퇴식에 서면 눈물을 흘릴 것 같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박하나는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떨까 대충 상상은 해봤는데, 아마 펑펑 울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모든 선수들은 은퇴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박하나는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았다. 선수 시절부터 어린 학생들에 특화된(?) 지도력을 발휘했던 박하나는 일찍이 유소년 농구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충주리틀삼성썬더스 코치로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딛은 박하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기쁨과 삶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박하나는 “사실 아프고 나서부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유소년 강사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마침 은퇴 이후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농구교실에 빈자리가 났다는거에요. 예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고 해서 큰 고민 없이 충주로 오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매년 선수로서의 목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는 강사로서 목표 의식을 다져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관념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하나는 “아직은 이곳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농구교실 시스템에 적응을 하고 있는 단계에요. 선수일 때는경기에 나서는 게 목표였잖아요. 거기에 맞게 몸 관리를 해왔다면, 지금은 제가 가르칠 유소년 선수들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또,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과의 관계 등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다행히 같이 일하는 조준희 대표와 삼성생명에서 같이 뛰었던 양지영 코치가 옆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결국엔 제가 실전에서 직접 부딪혀보면서 적응해나가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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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하나의 제2의 인생을 함께 할 충주리틀썬더스 코치진 |
이어 “현역 시절 욕심이 많고 열정적인 선수였는데 그 에너지를 코트에 다 못 쏟아냈어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만큼은 꼭 그런 선수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 선수들이 엘리트 농구부에 진학하고, 먼 미래에 선수가 된다면 뿌듯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 여자반도 신설해 여자 아이들에게도 농구가 재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며 유소년 선수들과 함께 할 날을 그렸다.
“선수생활하면서 팬들께서 많은 응원과 성원을 보내주셨는데 선수 할 때는 사실 그런 감사함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은퇴를 발표하고 난 뒤, 많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내가 팬들에게 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선수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코트에서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함이 크고,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선수로서 이제 끝을 맺지만 앞으로 제 인생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또, 여자농구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던 후배이기도 했고요. 농구판에 신세계 출신 선수들이 이제 몇 없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하나마저 은퇴를 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하네요. 사실 저도 큰 부상을 당해봤기 때문에 그 고통과 심정이 어떤지 잘 알거든요.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 할거라 생각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트에서 한 번이라도 뛰어보고 은퇴를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저 또한 하나의 복귀를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렸거든요. 아직도 하나가 은퇴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비록 코트를 떠나지만 유소년 농구강사로 시작하는 제2의 인생도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하나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성격이 밝고 해서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사진_유용우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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