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김영기도 진심이었다. 운동부 순회대사는 옛 이야기. 농구부를 그만둘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운동했다. 부모의 반대는 여전했다. 농구부 유니폼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김영기에게서는 농구 냄새라도 나는 모양이었다. 부모는 태도가 누그러지기는커녕 점점 더 걱정스럽게 아들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부모가 반대하면 할수록 김영기는 농구에 대한 애착이 깊어갔다.
몹시도 더운 어느 여름날.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김영기는 러닝슛 훈련을 하고 있었다. 농구부원이 전부 참여하는 훈련이었다. 함께 훈련하던 부원 하나가 김영기에게 눈짓을 했다. 그가 눈짓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니가 보였다.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은 어머니가 막 본관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김영기가 운동하고 있는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건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김영기는 마음을 다잡고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러닝슛 다음은 러닝 패스, 그 다음은 드리블 훈련이었다.
“김영기!”
농구부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정신은 어디다 갖다 버렸어!”
다시 러닝 패스, 그리고 또 드리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훈련에 집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영기는 자기도 모르게 본관 쪽을 흘끗거리며 어머니의 자취를 찾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모습을 다시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훈련하고 있는데 아까 그 부원이 다시 눈짓을 했다. 얼른 돌아본 그곳에는 어머니 대신 담임선생이 서 있었다. 선생은 축대 위에 혼자 서서 훈련하는 김영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김영기는 가슴이 일렁임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태연한 척 훈련을 계속했다.
“십 분간 휴식!”
반갑지 않은 휴식 시간. 김영기는 담임선생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동료 부원들과 함께 수돗가로 걸어갔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지나쳐갈 일은 아니었다.
“김영기. 훈련 끝나는 대로 교무실로 와!”
김영기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김영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보인 채 본관으로 향했다. 훈련은 한 시간쯤 뒤에 끝났다. 김영기는 수돗가에서 땀을 대충 씻은 다음 교무실로 갔다. 무슨 서류인지 들여다보던 담임선생은 김영기를 앉게 한 다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선생은 김영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김영기가 답답하다 싶을 때쯤에야 입을 열었다.
“농구부에는 언제 들어갔지?”
“다섯 달 전입니다.”
“그 전에는 무슨 운동을 했어?”
“스케이트를 했습니다.”
“그 전에는?”
“역도했어요.”
“다 말해봐.”
“…….”
선생이 처음으로 김영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유도도 하고, 육상도 하고, 탁구도 하고, 축구부에도 좀 있었고….”
“이놈아! 넌 그게 탈이야!”
“…….”
“그게 운동하는 거냐? 이틀이 멀다하고 옮겨 다니니, 인마 그래서 뭐가 돼?”
“…….”
“그 식으로 나가면 농구도 며칠 하다 또 집어치울 거지? 그러다간 어느 부로 가도 후보도 못 되고 밤낮 남의 공이나 주워 주는 게 고작이겠다! 그렇다고 네 성적은 또 그게 뭐냐. 나아지지는 못할망정 학기마다 떨어지고 있지 않아!”
“…….”
“도대체 넌 어느 쪽이냐? 운동이야, 공부야?”
“…….”
“이것도 저것도 아니잖아! 아까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부모님이나 나나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란 말이야. 한 가지라도,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네 성격이란 말이야.”
“선생님!”
“소용없어. 난 약속했다. 어머니께 약속을 드렸어. 널 무슨 운동이든 못하게 하겠다고! 내일부터 방과 후 훈련은 금지다. 곧장 집으로 가야 해. 농구부에서는 물론 나오고. 아까 체육주임하고도 이야기했어!”
“선생님!”
“돌아가!”
“선생님! 선생님 말씀은 옳습니다. 돌아가겠습니다. … 그렇지만 … 돌아가기 전에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
“그 전에 이 운동 저 운동 한 것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랬습니다. 음식도 일일이 먹어 봐야 맛을 알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 체격이 나쁘다고 딱지를 맞은 운동부도 많습니다.”
“…….”
“선생님, 저 이번만은 다릅니다. 농구만은 끝까지 하겠습니다. 무슨 고생을 해서라도 선수까지 … 꼭 되겠습니다. 이번까지만 두고 봐 주십시오, 선생님.”
“인마, 말로만 하면 무얼 해!”
“아닙니다, 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넌 선수 되려고 학교에 다니냐? 공부는 언제 할래?”
“집에 가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하겠습니다. 훈련한 시간만큼 잠을 자지 않고라도 더 하겠습니다.”
“…….”
담임선생은 할 수 없는 놈이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와 목덜미에 흥건한 땀을 닦았다. 그리곤 다시 담배를 피워 무는데, 김영기가 흘끗 보니 아까에 비하면 표정이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그래, 그걸 무엇으로 증명할래?”
“…….”
“이번 학기 성적을 훨씬 올릴 수 있어?”
“예!”
“녀석 대답은 잘한다. 김영기…, 뭐든지 지나치면 못써. 정도가 있는 거야. 부모님께서 너 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다지 않아. 장래 생각도 해야지…. 내 이번 학기까지만 묵인하겠다. 부모님에겐 비밀로 하고 말이야. 넌 머리 나쁜 놈이 아니야. 하면 아주 잘하는 놈이야. 잘할 수 있지?”
담임선생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포기를 모르는 농구소년, 김영기가 또 한 번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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