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라둘리차, 불량 외인으로 전락?

김종수 / 기사승인 : 2021-11-01 21: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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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1시즌 서울 삼성에 첫 번째 우승을 안겨줬던 아티머스 맥클래리(48‧191cm)는 국내무대에서의 전성기는 짧았으나 장수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입성 첫해 최우수 외국인 선수, 베스트5, 올스타전 MVP 등까지 싹쓸이하며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모두 잡아냈다.


그런 맥클래리가 다음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어떤 팀과 맞불을 것 같냐?”라는 질문에 조금도 주저 없이 언급한 팀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골드뱅크(현 KT)였다. 당시로서 상당히 예상 밖이었다. 골드뱅크는 객관적 전력상 우승을 노리기에는 여러모로 모자랐다. 그럼에도 맥클래리가 해당 팀을 언급한 이유는 딱 하나다. 그해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신입 외국인 선수 마이클 매덕스(45·204cm)의 존재 때문이었다.


터키·중국·베네수엘라 등에서 활약한 매덕스는 골밑 플레이는 물론 중장거리 슛까지 두루 갖춘 센터 겸 포워드였다. 트라이아웃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각 구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는데 맥클래리를 비롯 다수의 외인들이 ’우리들 중 최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아쉽게도 맥클래리의 예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첫 시즌 매덕스는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모두 두자릿수 기록을 남기는 등 성적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골밑장악력, 수비 등에서는 기대치에 못 미쳤다. 승부처에서의 해결사 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약 팀에서 스탯 쌓기만 했다‘는 혹평이 나왔던 이유다.


매덕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외리그 명성이 꼭 KBL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외려 지명 당시까지도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맥도웰(전체 19순위), 맥클래리(10순위) 등이 예상을 깨고 국내 무대를 초토화시킨 바 있다. 국내리그에서의 적응, 당시 몸 상태, 소속팀과의 조화 등 다양한 부분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고양 오리온 1옵션 외국인 선수 미로슬라브 라둘리차(34·213㎝)의 부진은 당시 매덕스를 연상케 한다. 9경기 평균 17분 22초를 뛰면서 8.1득점, 5.9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는데 당초 기대치에 한참 모자라는 성적이다. 이제 시즌은 시작되었을 뿐인지라 반등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경기 내용까지 좋지 못하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주고 있다.


시즌전 오리온이 라둘리차를 데려온다는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각 농구커뮤니티 등은 술렁거렸다. 팬들 사이에서 상당히 잘 알려진 거물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올 시즌 새 외국인 선수 중 이름값만 높고 보면 라둘리차는 최고 수준이다. 그는 전직 NBA리거이자 유럽 농구 강국 세르비아 대표팀 출신으로 국제경기에서도 맹활약한 바 있다. 중국, 그리스, 이탈리아 등 여러 수준급 리그를 경험한 베테랑이기도 하다. 라둘리차는 역대 2번째 세르비아 출신 선수로 공교롭게도 이전 보리스 사보비치(34‧208cm) 역시 고양 오리온에서 뛴 바 있다.


오리온이 라둘리차는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플레이 스타일상 팀과 잘 맞을 것 같은 부분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유럽산 백인선수들은 흑인들처럼 덩크슛을 펑펑 꽂아대고 엄청난 속도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등 운동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플레이를 펼치지는 않는다. 탄탄한 기본기에 여러 가지 테크닉을 섞어쓰며 영리하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가 많다.

 


라둘리차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창 좋았을 때 역시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췄거나 골밑 장악력이 엄청난 선수는 아니었다. 포스트업, 중거리슛 등 코트를 넓게 쓰며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을 올렸고 컷인, 2대2 등 동료들과 함께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시야가 넓고 패싱능력을 겸비한 포인트 센터라는 점에서 앞선 가드진에 아쉬움이 있는 오리온과 잘 맞을 듯 보였다(이정현 지명 이전) 현재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안양 KGC 2옵션 대릴 먼로(35‧196.6cm)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라둘리차에 대한 기대치였다.


라둘리차의 부진으로 인해 강을준 감독의 수심은 깊어지고 있다. 오리온은 즉시 전력감 루키 이정현(22·187㎝) 영입, 국가대표 출신 빅맨 이종현(27·205cm)의 부활, 1옵션같은 2옵션 머피 할로웨이(31·196㎝) 등이 제 몫을 톡톡히 해줌에 따라 기존 이대성, 한호빈, 이승현 등과 함께 내외곽에서 탄탄한 전력이 구축된 상태다. 선수층만 봤을 때는 SK, KT 등과 함께 빅3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1옵션 외국인 선수 라둘리차가 역할을 못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강감독은 창원 LG시절 악동으로 소문난 아이반 존슨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바 있다. 존슨의 제멋대로 플레이에 화가 난 강감독은 작전 타임 중 ’니가 갱기를 망치고 있어!’라고 소리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특유의 사투리가 섞여나온 이말은 이후 유행어같이 퍼져나갔고 강감독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사실 존슨은 지난 시즌 제프 위디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들어온 데빈 윌리엄스(27‧202cm)에 비하면 약과다. KBL에서 악동으로 소문났던 대부분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기량면에서는 뛰어났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본인에 대한 팀 의존도가 강한 것을 알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던 케이스가 많다.


반대로 기량이 떨어지거나 팀 공헌도가 적은 선수는 기가 죽어있거나 동료들에게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윌리엄스는 최악이었다. 수준 미달의 경기력을 보이면서도 뻔뻔스럽게 행동했다.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동료 이대성의 눈가를 찢어지게 하는 부상을 입혔음에도 사과 없이 상대 탓을 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작전타임 때에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빈축을 샀다.


심지어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강감독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모두를 경악케했다. 개인의 공헌도를 떠나 오리온 팀 분위기에도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강감독은 2시즌 연속으로 1옵션 외국인 선수로 인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라둘리차는 아직 지난 시즌 윌리엄스까지는 아니지만 경기력은 물론 팀에 섞이려는 노력도 부족한지라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다. 고의로 파울을 범하고 감독이 지시하기도 전에 스스로 벤치로 가는 것은 물론 작전타임 때도 거리를 두고 앉아 불만 섞인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갈등이 지속될 경우 지난 시즌 윌리엄스 사태의 반복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강감독 역시 이를 의식한 듯 “개인 면담을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등 라둘리차 살리기에 애를 쓰는 모습이다.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양쪽의 동행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라둘리차가 시즌 초 부진을 딛고 당초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 / 김종수 객원기자

#사진 /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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