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숫자와 함께 가슴으로 추억하는 ‘Black Mamba' 코비 브라이언트

이종엽 기자 / 기사승인 : 2020-01-30 0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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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종엽 인터넷기자] 농구계에 큰 별이 졌다. 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41세 156일째 되던 날인 2020년 1월 27일 새벽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코비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허망하게 농구 팬들의 곁을 떠났다. 코비가 농구 팬들에 선사한 추억이 많은 만큼 살아생전 그의 업적을 숫자와 함께 알아보자. (시간은 한국시간 기준)

- 8, 24

코비를 논할 때 가장 빼먹지 말아야 할 두 숫자, 바로 코비의 백넘버다. 8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했던 백넘버이며, 24번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사용했던 백넘버다. 코비는 NBA 무대에서 20년을 뛰었는데, 정확히 10년씩을 양분해 두 숫자를 사용했다.

코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27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24초의 샷 클락의 불을 밝히며 추모의 뜻을 전했고, AT&T 센터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토론토 랩터스의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24초 동안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코비를 애도했다.

KBL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정규리그 3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 이어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원주종합체육관에서도 첫 공격을 개시하지 않으며 코비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추모 행사는 27일 서울 SK와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경기가 열리기 전 최준용이 먼저 구단 측에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전 만난 최준용은 “다들 농구 좋아하시지 않나. 코비는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데 이어 “(정)재홍이 형 생각도 났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하게 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전태풍 또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운을 뗀 뒤 “미국에서 농구를 했던 시간 동안 코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코비는 드리블, 훈련법, 수비 등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던 사람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늘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농구 마음껏 하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 또한 구단 성명서를 통해 “너무 놀랍고 슬픈 소식이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으며 앞으로 댈러스의 선수들은 ‘24’번 유니폼을 착용할 수 없을 것이다”고 밝히며 코비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 2

코비는 2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가지고 있다. 코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 ‘Team USA’로 나서 든든한 조력자로 존경받는 선배로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007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농구 예선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캠프에서 코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맘바-멘탈리티’를 발동했고, 이는 드웨인 웨이드, 르브론 제임스 등 당시 젊은 축에 속했던 선수들에게 큰 울림을 준 바 있다.

이때 코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얄려진 웨이드는 사고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 밤 전해진 소식은 악몽과도 같다”며 한숨을 내쉰 뒤 “그는 위대한 리더이자, 챔피언이자, 친구였다. 모든 선수들이 감정적으로 슬픈 감정일 것이다. 그는 내가 쫓고자 했던 이상향이었다”며 코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 또한 28일 코비의 사망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코비 브라이언트는 진정한 올림픽 챔피언이었다. 그는 스포츠의 힘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자 노력했다”고 발표하며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 4

코비의 올스타전 MVP 선정 횟수다. 코비는 올스타에 18번 선정된 바 있으며, 올스타전 MVP 선정 4회는 역대 최다 타이 올스타전 MVP 선정 횟수다. 이 밖에도 코비는 15차례의 올 NBA 팀에 선정된 바 있으며, 1번의 정규리그 MVP 선정된 바 있다.

- 33,643

코비의 현역 시절 통산 득점 기록이다. 현역 20시즌 동안 코비는 특유의 정확도 높은 슛과 화려한 드리블, 끈질긴 근성을 통해 이룩한 업적이다. 이 기록은 26일 제임스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에서 넘어서기 전까지 NBA 통산 득점 순위 3위에 올라있었다. 제임스는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29득점을 기록, 누적 33,655점을 올리며 코비를 뛰어넘은 바 있다.

이에 코비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33,644. 나의 형제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제임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는 코비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코멘트가 되었기에 NBA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코비를 뛰어넘은 후 제임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그는 전설이다. 코비는 내가 학창시절 우러러본 인물이다”며 화답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제임스는 “그(코비)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는 무결점의 선수였다. 그의 농구 기술과 선수로서의 열정은 NBA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81

코비의 커리어 최다 득점이다. 코비는 2006년 1월 23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경기에서 무려 81점을 폭격하며 NBA 역대 최다 득점 2위 기록을 세웠다. 1위 기록은 1961-1962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인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소속 윌트 체임벌린이 세운 100득점이다.

이날 레이커스의 홈구장엔 코비의 특별한 손님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바로 코비의 할머니가 경기장을 찾은 것. 코비의 할머니는 손자가 농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농구장을 찾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코비는 81득점을 올리기 불과 한 달 전인 2005년 12월 21일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홈경기에서 62득점을 기록, 자신의 커리어 하이 득점을 세운바 있다.

#NBA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1962년 3월 3일 윌트 체임벌린 - 100득점
2006년 1월 23일 코비 브라이언트 - 81득점
1961년 12월 9일 윌트 체임벌린 - 78득점
1978년 4월 10일 데이비드 톰슨 - 73득점
1962년 11월 17일 윌트 체임벌린 - 73득점
1962년 1월 14일 윌트 체임벌린 - 73득점

이날 경기 코비가 기록한 81득점은 두고두고 회자된 바 있으며, 미국 대학 농구 비버 카운티 소속 야지드 포웰은 29일 경기에서 코비를 추모하기 위해 81득점을 기록하고 이후 득점은 일부러 실패하며 코비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바 있다.

- 13

코비의 드래프트 순번이다. 코비는 NBA 1996드래프트에서 13번째로 드래프트 되었다. 당초 샬럿으로 지명되었으나, 레이커스 구단은 코비를 데려오기 위해 샬럿 측에 당시 팀 내 주축 센터이던 블라디 디박까지 내어줄 정도로 코비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레이커스의 유니폼을 입은 코비는 데뷔 첫 시즌 단 6경기 선발출장에 그쳤으나, 소포모어 시즌이던 1997-1998시즌 만에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크나큰 성장을 이뤄냈다. 은퇴 후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코비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시즌이 나를 성장 시킨 계기가 되었다”며 당시를 돌아본 바 있다.

또한 코비는 철저한 몸 관리를 통해 앞서 지명된 앨런 아이버슨(1순위), 마커스 캠비(2순위), 스테판 마버리(4순위), 레이 앨런(5순위) 등 보다 많은 시간 동안 NBA에서 활약하며 레이커스의 ‘별’로 거듭난 바 있다.

- 60

코비는 은퇴 경기였던 2016년 4월 14일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무려 60득점을 폭발시키며 화려한 퇴장을 했다. 이날 코비는 무려 50개의 야투를 시도해 22개를 성공시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날 레이커스는 유타에게 2쿼터 한때 15점차까지 뒤지며 패색이 짙었으나, 코비가 4쿼터에 23득점을 집중시킨데 힘입어 승리를 챙겼다. 이날 코비가 올린 60점은 역대 은퇴식을 치른 선수 중 최다 득점이었다.

이날 코비의 퇴장을 보기위해 스테이플스 센터에 모인 18,996명의 팬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영웅’의 마지막을 함께 축하했다. 코비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뭐라 더 할 말이 있겠나. Mamba Out”이라며 짧고 굵게 20년간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5,640

코비의 플레이오프 통산 득점 기록이다. 코비는 20시즌 동안 총 16번의 플레이오프 무대에 나서 220경기에서 8,640분 동안 총 5,540득점을 뽑아냈다. 경기당 평균 득점으로 환산 시 25.6득점에 해당한다.

코비는 16번의 플레이오프에 나서 5번의 파이널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첫 우승은 1999-2000시즌 이었다. ‘코비&샤크’라는 강력한 원투펀치를 거느린 레이커스는 이후 2001-2002시즌까지 연속으로 3번의 우승을 통해 당대 최고의 강팀으로 군림한 바 있다.

코비와 함께 3연속 우승을 합작한 오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비극적인 사고로 친구와 조카를 잃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고, 그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며 코비의 죽음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코비의 통산 4번째 우승은 2008-2009시즌 이었다. 당시 코비는 오닐이 떠난 빈자리를 파우 가솔과 함께 원투 펀치를 구성, 2009-2010시즌 까지 2연속 우승을 해내며 다시금 전성기에 접어든 바 있다.

1위 르브론 제임스 - 6,911점 (~현재 진행형)
2위 마이클 조던 - 5,987점 (명예의 전당)
3위 카림 압둘-자바 - 5,762점 (명예의 전당)

코비는 2003년 11월 당시 개봉한 영화 ‘킬빌’을 관람한 후 주인공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극중 더 브라이드는 남편의 복수극을 위해 지인들 앞에서 자신을 ‘블랙 맘바’라고 지칭하며 잔혹하고 차가운 킬러 본능 발휘했다.

이에 코비 또한 우마 서먼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블랙 맘바’로 칭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코비는 손가락이 부러져도, 아킬레스 건이 완전치 않아도, 무릎이 전성기에 비교해 제 기량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끝없이 몰아치며 NBA에서 살아남았다. 이에 27일 만난 전태풍은 “그렇게 열심히 훈련할 수가 없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완전 동물이다”며 그의 훈련 방법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또한 29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서울 삼성 소속 문태영은 코비의 사고 소식에 대해 “굉장한 비극이다. 그는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이자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문태영은 그간 코비와 비슷한 외모,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문코비’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이에 문태영은 “그와 비교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큰 영광이다. 그의 모든 플레이를 흡수하고자 많이 훈련을 했으며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선수다. 그처럼 노력하는 선수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코비의 정신력에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코비는 자신이 직면한 수많은 비판에 숙이지 않고 자신의 열정을 통해 이겨낸 2000년대 최고의 선수였다. 이는 전 세계 모든 농구 팬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농구 인들은 역사를 통해 그를 코비를 추억할 것이다. 코비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세상과 빨리 작별했지만, 농구 팬들의 가슴 속에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이름은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당신을 추모합니다. Rest In Peace. Kobe.

#사진=AP/연합뉴스, 점프볼 DB(문복주 기자), 이종엽 인터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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