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제가 많이 돌아왔잖아요.”
상명대 4학년 안정훈(25, 197cm). 그의 농구인생을 잠깐 들어다본다면 그가 말하는 “돌아왔다”라는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잇따른 부상과 군 입대, 대학 편입 등을 거치며 그의 나이는 어느새 25살이 됐다. 프로 데뷔 3년 차인 김종규, 이재도 등과 동갑. 중간에 농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하나로 버텼다. 현재 상명대 주장이자 얼마 전 끝난 이상백배 한국대표팀 주장으로도 활약한 그를 상명대 천안캠퍼스에서 만나보았다.
▲ 우승을 몰고 오는 사나이
어릴 때부터 큰 키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인 안정훈은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두루 경험했다. 농구도 그 중 하나. 농구가 좋아 친구들과 길거리 농구를 한 게 눈에 띄어 중학교 3학년, 체육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청주신흥고 농구부에 입단하며 농구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초등학교 땐 잠깐 육상을 하기도 했어요. 제가 운동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육상부에 들어가 활동했었죠. 그런데 전지훈련만 가면 절 빼놓고 가는 거 에요. 알고 보니 아버지가 운동을 시키지 않겠다고 뒤에서 미리 말해놨더라고요. 제가 외동아들이고 아버지가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 운동선수가 게 얼마나 힘들고 배고픈 직업인지 아셨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든 운동하는 걸 말리셨어요. 그런데 핏줄이 어디 안가더라고요(웃음).”
안정훈은 청주신흥고에서 잠깐의 시간을 보낸 뒤 신흥강호로 떠오른 안양고로 전학한다. 안양고 진학 이후 그의 농구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약체였던 청주신흥고에서 패배에 익숙했던 그였지만 안양고에선 달랐던 것. 당시 안양고는 이승현이 버틴 용산고, 문성곤과 이종현, 김기윤 등이 있던 경복고 등을 모두 제치고 고교무대 3관왕에 오르는 위엄을 뽐내며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학년 때였어요. 우리 팀 식스맨들끼리 팀을 먹고 중위권 학교의 베스트 멤버와 붙었는데 비등비등 했어요. 상대팀이 같이 벤치멤버로 나올 땐 한 쿼터에 20점차 이상씩 벌어지며 승리를 거뒀죠. 결국 제가 3학년이던 해에는 대통령기와 종별선수권,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거두며 3관왕에 올랐어요.”
당시 안양고는 코트 위 5명 전원이 모두 뛰는 속공 농구로 전국대회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낮은 높이를 엄청난 활동량과 빠른 공수전환으로 만회했다. 김정년, 한성원, 이재협 등이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안정훈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골밑 살림꾼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안양고에서 활약한 선수들 대부분은 부상과 개인사정 등으로 오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안정훈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부상 후 복귀했을 때 어떤 기사의 댓글 중에 제가 돌아온 것이 반갑다며 예전 안양고 베스트 멤버를 다 적은 팬 분이 계셨어요. 그리고 이어진 다른 댓글에는 역사상 이렇게 우승을 많이 하고도 프로에서 안 된 경우는 없었다는 웃지 못 할 글도 있더라고요.”
안정훈의 우승 복은 대학에서도 이어졌다. 경희대 진학 후에 고교 시절보다 더 많은 승리와 우승을 맛본 것. 당시 경희대는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의 빅3와 김철욱, 한희원, 최창진, 맹상훈 등 재능 있는 1학년들로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뤘다. 이런 전력을 바탕으로 대학무대 44연승을 거두는 등 한동안 ‘경희대 전성시대’는 계속됐다.
“제가 우승 바이러스가 있나봐요(웃음). 경희대에서도 우승을 진짜 많이 했어요. 우승하는 게 기쁘지 않을 정도로요. 처음엔 당연히 정말 좋았죠. 그러다 우승이 반복될수록 점점 그 기쁨이 반감되더니 나중엔 ‘아 또 우승을 했네’하는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아마 경기를 안 뛰고 우승을 해서 승리에 대한 소중함을 잊었던 것 같아요. 계속 이기니까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 부상→수술→재활, 그리고 다시 부상
안정훈의 농구 인생에서 우승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부상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어진 부상은 한동안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그는 이 때 심정을 묻는 질문에 “멘탈이 완전히 나가 있을 때라 기억도 잘 안 난다”라고 회상했다.
“대학 가자마자 오른쪽 어깨 수술로 8, 9개월 동안 재활만 했어요. 부상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선 훈련하다 오른발 피로 골절로 5개월을 쉬었죠. 또 복귀해서는 대만 동계훈련 도중 어깨가 빠져서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어요. 이외에도 자잘한 잔부상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2년을 수술과 재활로만 보낸 거 같아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를 결정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반복되는 부상과 재활로 정신은 지쳐있었다. 이 상태로 계속 농구를 하기엔 힘들다고 판단했다.
“멘탈이 나갔어요. 빨리 군대를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죠. 2년 넘게 수술과 재활. 복귀. 또 수술과 재활, 복귀를 반복했어요. 만약 기자님이시라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한 번도 아니고 오랜 기간 많은 부상을 당하다보니 정상적인 멘탈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또 그 당시 경희대 멤버들이 짱짱했잖아요. 제 위에는 김종규 선수가 있었고 밑으로는 (김)철욱이가 있었죠. 사실 그 때 농구를 놓으려고 했어요. 학교를 옮기려다 그것마저 잘 안되면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결정했죠. 고향이 청주라 그곳에서 사회복무 생활을 했어요.”
2년간의 사회복무요원 생활동안 그는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무너졌던 멘탈을 다잡으며 농구선수로서의 복귀를 꿈꿨다. 충분한 휴식과 재활, 간단한 운동을 병행하자 아팠던 부위들이 하나 둘 회복되어갔다.
“재활이라는 것 자체가 웨이트를 하며 다친 부위의 근력을 강화시키는 거 에요. 오랜 재활기간을 겪으면서 저 스스로 어떻게 재활을 하는지 노하우를 터득했어요. 지금은 부상에서 모두 회복된 상태에요. 물론 쉬기만 하진 않았어요. 전문적으로 농구를 한 건 아니지만 사회인 농구를 하며 조금씩 몸을 풀었죠. 청주에 아는 사람을 통해 사회인 농구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 1,056일만의 복귀
“긴장을 엄청 많이 했어요. 다행히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까 떨리는 게 없어지더라고요. 경기에 뛰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많이 떨었거든요. 그런데 점프볼을 하자마자 긴장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렸어요.”
무려 1,056일만의 복귀전. 상명대로 편입해 약 3년만의 가진 복귀무대에서 그는 25점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대학리그 7경기에 나서 평균 13.7득점 6.1리바운드를 올리며 곧바로 상명대 중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시즌에 대해 “정신없이 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라 돌아본 안정훈. 우승을 밥 먹듯 하는 상위권 팀에 있다 하위권인 상명대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라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안양고, 경희대 시절에 많이 이긴 게 사실이지만 돌이켜 보면 농구를 처음 시작한 청주신흥고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패배에 익숙했어요. 청주신흥고 때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적응이 안 되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다만 내가 공격과 수비에서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죠.”
올해 4학년이 된 안정훈은 팀의 맏형이자 주장으로서 상명대를 이끌고 있다. 그의 올 시즌 평균 기록은 12.67득점(팀 내 2위) 8.92리바운드(팀 내 1위). 높이가 낮은 상명대의 골밑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얼마 전 끝난 이상백배에선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아무 생각이 안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먼 길을 돌아왔지만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네’하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군대도 다녀오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잖아요. 정말 많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해주시니까 기뻤어요.”
현재 상명대는 3승 9패로 성균관대, 명지대와 함께 대학리그 공동 9위에 올라있다. 8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기 위해선 승리가 절실한 상황. 안정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4학년인 지금, 팀 승리와 고참이라는 책임감 속에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대학 1, 2학년 때와 지금 느끼는 부담감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하자 그는 호쾌한 웃음부터 터트렸다.
“1, 2학년 때 경기를 안 뛰어봐서 모르겠어요(웃음). 작년보단 확실히 부담감이 커요. 주장이니까 후배들을 잘 이끌고 솔선수범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안정훈은 시즌 초반 겪었던 부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상명대는 올 시즌 유독 접전상황에서 역전패 하는 경우가 잦았다.
“올해 유난히 비등비등하게 하다 진경기가 많아요. 아쉬우면서 이렇게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하하하. 시즌 초반 되게 많이 어수선했어요. 부상선수들도 있고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패배 후유증이 오래 간 것 같아요. 하지만 차츰 경기력이 좋아지면서 지금은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건국대와의 경기에서 이번 대학리그 첫 승을 한 게 농구 10년 하면서 제일 기쁜 것 같아요. 1승하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욕심은 없다. 팀 승리가 나에게도 이득”이라는 안정훈. 본인이 생각하는 안정훈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답해달라고 하자 대뜸 “기자님이 생각하는 제 장단점은 뭐에요? 단점은 많은데 장점이 생각 안 나서, 하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무래도 제 장점은 궂은일이죠. 수비와 2대2에서의 모습, 스크린, 볼 없을 때의 움직임 등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하기 꺼려하고 저도 하기 싫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이것뿐인지라 하하하. 프로에 가서 무리하게 포지션을 바꾸기보단 계속 4번을 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프로에서 득점 할 수 있는 선수는 되게 많잖아요.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저는 골밑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고 팀원을 살리는 플레이에 힘쓰고 싶어요.”
어느덧 인터뷰 막바지. 대학 4학년들에게 으레 하는 단골 질문을 던져봤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원하는 순위와 가고 싶은 프로 팀이 있나요?”
“많이 돌아왔잖아요. 그냥 뽑아주시면 감사해요. 물론 앞 번호에 뽑힐수록 좋죠. 하지만 전 정말로 순위에 신경 쓰지 않아요. 몇 순위, 어느 구단에 가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프로에 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의미가 있어요.”
그의 말대로 멀고 먼 길을 돌아왔다. 농구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후회를 안 하려고 농구를 하는 거죠”라는 안정훈은 자신에게 농구는 ‘인생의 첫 숙제’라며 하루 빨리 이 숙제를 풀고 싶다고 밝혔다.
“(농구는)제 인생의 첫 숙제죠. 아직 답을 적지 못 했어요. 먼 길을 돌아온 만큼 빨리 답을 내고 싶어요. 지금은 그 답이란 게 프로라고 생각해요. 만약 프로에 가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해서라도 빨리 이 숙제를 없애버리고 싶어요(웃음). 프로에 간다면.. 글쎄요. 그 때가서 다시 농구가 저에게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프로에 가서 방금 질문에 대답을 하고 이런 인터뷰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사진_유용우 기자
영상 촬영 및 편집_김남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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