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인터뷰] 소리 없이 강한 남자, 고려대 정희원

맹봉주 / 기사승인 : 2016-06-21 07:15: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맹봉주 기자] 이종현, 강상재, 최성모, 김낙현, 그리고..?


올 시즌 대학리그 최고의 팀은 여전히(?) 고려대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려대 베스트 5 멤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이런 관심을 살짝 빗겨간 선수가 있다. 이번 시즌 고려대 주전 스몰포워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희원(22, 191cm)이다.


지금은 다른 동료들에 가려져있지만 정희원은 한 때 중등부 랭킹 1, 2위를 다투는 초특급 유망주였다. 고교시절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농구 인생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학 최강 고려대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코트 위에서 뛰는 것 자체가 기쁘고 감사하다”는 그의 농구 인생을 들여다봤다.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정희원을 만난 건 6월 14일. 기말고사 일정으로 대학리그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고려대는 일본 메이지 대학과의 교류전, 창원 LG와의 연습경기 등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그 어느 팀보다 바빴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치고 U-18 대표팀과의 오후 연습경기가 잡혀있었다. 지칠 법도 하지만 정희원은 “아픈 데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 무릎 부상은 만성이라 ‘완벽히 나았다’라는 게 없어요. 최대한 몸 관리를 하면서 운동을 이어가는 거죠. 하지만 요즘은 몸 상태가 신기할 정도로 좋아요. 통증도 거의 없고요. 오랫동안 부상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좋아지니 신기할 따름이죠.”


올 시즌 정희원은 문성곤이 나간 고려대의 3번 자리를 꿰차며 평균 10.17득점 3.83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 중이다. 특히 주목해 볼 부분은 3점슛. 3점슛 24개를 성공시켜 이 부분 팀 내 1위를 달리고 있다. 단순히 성공 개수만 많은 게 아니라 성공률 40%를 넘을(40.68%) 정도로 정확도 또한 겸비하고 있다.


고려대 이효상 코치는 정희원에 대해 “슛이 정말 좋다. 부상으로 오랜 기간 못 뛴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 점점 몸 상태가 올라올수록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고 평했다.


이종현, 강상재에 최성모, 김낙현까지. 고려대는 골밑 공격과 돌파에 특화된 선수들이 모여 있기에 정확한 외곽포를 갖춘 정희원의 존재는 팀 전술상 매우 중요하다. 정희원도 이런 팀 내 역할을 잘 알고 있기에 슛 찬스가 나면 주저 없이 던지고 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기회를 많이 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부상 때문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4학년이라 기회를 주신 거 같아요. 슈팅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공격에서 보여 줄 제 강점이 슛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제 외곽능력을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제한된 역할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것도 사실이다. 다가오는 드래프트에서 고려대 4학년 선수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도 정희원의 이름은 맨 마지막으로 밀리기 일쑤다.


“서운한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런 평가들이 틀린 말은 아니라서 따로 할 말은 없어요. 저는 제가 아직도 확실한 주전선수로 낙점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인 (전)현우나 (김)윤이와 실력 차가 많이 나지도 않고요.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팀에 좋은 선수들을 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지금은 좀 힘들어도 이 시기를 견디다 보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런 정희원에게 필자는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 붙여줬다. 단 몇 분만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플레이는 아니지만 경기 내내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팀에선 없어선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희원은 “좋은데요? 그 닉네임 마음에 들어요(웃음). 현재 추승균 감독님의 선수시절 별명이기도 하잖아요. 추승균 감독님의 플레이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어요”라며 새로 생긴 별명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중등부 에이스


지금은 고려대의 ‘소리 없이 강한 남자’이지만 임호중 시절의 정희원은 휘문중의 이종현과 함께 중등부 랭킹 1, 2위를 다투는 대형 유망주로 손꼽혔다. 큰 키에 폭발적인 운동능력,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는 중등부 레벨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호중 때 정말 재밌게 농구했어요. 주위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하니까 더 신나게 한 거 같아요. 중 2때는 제자리에서 투 핸드 덩크슛도 터트렸어요. 그때는 몸 상태가 정말 좋았어요. 그 당시 무리한 게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해요.”


당연히 정희원을 데려가려는 수도권 고등학교들의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했다. 고민 끝에 정희원은 임호중의 연계학교인 김해가야고가 아닌 용산고를 선택한다.


“중학생 때 텔레비전을 보면 항상 고교농구 결승은 용산고와 경복고 맞붙는 거 에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도 용산고와 경복고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왜 경복고가 아닌 용산고를 택했냐고요? 경복고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제가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기 때문에 너무 자유로우면 자기 관리가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용산고를 가게 됐어요. 당연히 중학교 코치님을 비롯해 학교 측 반대가 너무 심했죠. 방학 때마다 교장선생님이나 학교 관계자분들이 부모님을 찾아와 설득하던 게 생각나요. 전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이때부터 정희원의 농구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 닥쳤다. 바로 부상이었다.


“처음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양쪽 무릎에 있는 슬개건에 염증을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어릴 때부터 있었던 부상인데 별다른 통증이 없어서 계속 운동을 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거죠.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내내 재활과 운동을 병행하며 지냈어요.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만성이 돼버렸대요.”


통증을 안고 뛰니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올 리 없었다.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며 체중조절에도 실패해 장점이었던 순발력과 스피드도 사라졌다.


“고교시절 만해도 몸 관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 체중조절도 모르던 때라 운동을 쉴 때 체중이 많이 증가했어요. 먹는 건 똑같이 먹는데 운동은 안하니까 살이 엄청 쪘죠. 또 제가 잘 찌는 체질이기도 하고 중학교 때 마른편이어서 더 부각이 된 것 같아요.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왔는데 기대에 부응을 못하니까 저 스스로 화가 많이 났죠. 또 예전엔 저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는 저를 넘어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했고요.”


당연히 정희원에 대한 평가도 급락했다. 무릎 부상으로 장기였던 돌파능력이 떨어지며 특급 유망주에서 한순간에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하지만 정희원은 낙담하지 않고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여기에 슈팅능력까지 가다듬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중학교 때 빅맨을 보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포워드로 포지션을 올렸어요. 포지션 자체가 바뀌다보니 드라이브 인 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또 포워드라면 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외곽슛을 장착한 정희원은 점차 용산고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임호중 시절의 폭발력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3점슛 능력을 바탕으로 다득점을 올렸다. 3학년 땐 라이벌 이종현이 있던 경복고를 꺾고 서울협회장기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정희원은 웃지 못했다.


“1학년 때부터 부상을 달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일 지우고 싶은 시절이 고교시절이에요.”



에이스에서 에이스 스타퍼로


정희원의 존재감은 외곽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발휘된다. 이종현-강상재 트윈타워가 있는 고려대에서 3번의 역할은 공간을 넓혀주는 시원한 3점포와 강한 앞선 수비. 그리고 정희원은 선배 문성곤에 이어 이 역할을 100% 해내고 있다.


“주위에서 제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면서도 과분하다고 생각해요. 수비는 팀 수비나 투맨 게임 수비보다는 상대 에이스를 막는 일대일 수비가 자신 있어요. 제가 악착같은 면이 있거든요. 보통 상대팀 2, 3번에 에이스가 많다 보니 제가 전담 수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끈질기게 수비하려고 해요.”


지금은 외곽과 수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점점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그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구를 포기하려고 했단다. 대학 진학 후에도 계속된 무릎 부상의 여파 때문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농구를 안 할 생각도 했어요. 그게 대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때에요. 오랫동안 부상에 시달리면서 대학까지만 하고 농구를 그만 두려고 했거든요. 우선 몸이 지치기도 했고 위에는 (문)성곤이 형, 아래로는 (김)윤이 등이 있어 팀 안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농구하는 것보단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죠. 부모님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농구하기 힘들었을 거 에요.”


정희원의 말대로 그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3학년 때까지 대학무대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다. 그간 숱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고려대지만 벤치에서 이를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팀이 우승했다는 것 자체는 기뻤지만 그 속에 저의 역할이 없었어요. 그러니 마냥 좋아할 수 만도 없는 노릇이었죠. 작년 플레이오프 연세대전부터 조금씩 경기를 뛰었어요. 그렇게 우승을 하니 기분이 남다르더라고요. 제가 뛰며 우승을 했잖아요. 작년 대학리그 플레이오프 우승 이후로 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 때문인지 대학 4학년들에게 묻는 단골 질문인 “원하는 드래프트 순위가 있나?”라는 물음에도 “프로 진출에 대한 욕심이 없다”며 예상 밖에 대답을 내놨다.


“이번 드래프트를 두고 황금드래프트다라며 이야기가 많은데 저는 순번을 떠나 프로에 가는 거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농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거든요. 설사 프로에 못가더라도 대학생활을 미련 없이 마무리 하고 싶을 뿐이에요.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 붓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정희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부모님과 감독, 코치님, 트레이너 선생님들과 팀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특히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든 와줬어요. 좋을 때나 나쁠 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죠. 아버지도 초등학생이던 저를 이끌고 같이 운동을 하는 등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해줬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 힘이 돼요. 이제는 제가 부모님께 보답을 해야 될 때인 거 같아요.”


사진_유용우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맹봉주 맹봉주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