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 전력분석원 이대혁, "나의 농구인생은 계속된다"

진위재 / 기사승인 : 2017-09-05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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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진위재 기자] 2008년 제40회 대통령기대회 승자는 우승 후보였던 용산고, 경복고가 아닌 홍대부고였다. 그 중심에는 이대혁(28)이 있었다. 이대혁이 당시 엘리트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선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대단한 성과였다.

고교 시절 늦게 농구부 제안을 받은 이대혁은 긴 고민 끝에 도전을 선택했다. 큰 키와 운동 신경 덕분일까. 이대혁은 짧은 시간에 고교 최고의 리바운더로 올라섰다. 그 기세를 타 건국대에도 진학, 농구팬들의 기대를 끌었다. 십자인대 부상은 한동안 상승세를 타던 이대혁 앞을 막아섰다.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안양 KGC에 지명되었지만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그리 길지 못했다. 2015년, 더 이상 프로선수로 커리어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오랫동안 잡아온 농구공을 놓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의 농구인생이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Q.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제가 전력분석관 일을 시작한 지 2년차인데 항상 똑같아요. 시즌 중에는 전력분석을 하면서 비시즌에는 대학경기가 주 업무죠. 다른 대회도 챙겨보다가 9월이 되면 대학 플레이오프를 체크하고요. 가끔 외국선수 작업도 필요시에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어요.

Q. 늦은 시기에 농구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면.
19살이었어요. 9월 모의고사 보고 늦은 시기에 농구부 제안이 들어왔어요. 전례가 없던 일이기도 하고 너무 늦기도 해서 당연히 생각도 안 했죠. 당시 제가 1년 반 정도를 체대 입시 준비했는데 체대학원 선생님들께 말씀드려보니까 한길로 가는 것도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머님이 제 손을 잡고 뭔가 하나를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주신 좋은 신체조건과 나도 이제 뭔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Q. 부상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당시 심정은.
다쳤을 당시 무릎에서 저만 들을 수 있는 ‘뚝!’ 소리가 났어요. 속으로 ‘정말 큰일 났다. 내 몸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 끊어졌다’라는 생각만 가득했죠. 검사 결과 듣고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고 했을 때는 더 충격을 받았고요.

Q. 재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재활을 시작할 때 재활 센터 선생님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무릎 수술이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아는 게 전혀 없었는데 선생님들이 수술한다고 무조건 나빠지는 게 아니고, 수술하고 처음 재활만 잘한다면 수술 전보다 더 좋은 몸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말들을 듣고 더 열심히 했고요. 그리고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Q. 선수 생활 당시에 가장 아쉬운 점은?
신인 시즌에 경기를 거의 안 뛸 때 재활하고 원래 엔트리에도 없는 상황에 갑자기 원정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도 안 하고 따라갔는데 무릎이 워낙 안 좋을 때여서 테이핑을 꼭 해야 했어요. 근데 그럴 시간도 없이 갑자기 감독님이 뛰라고 하셔서 출전했죠. 들어가자마자 최부경 선배한테 점수 다 주고 아무 준비가 안 돼서 그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 좋은 모습만 보인 게 제일 아쉬워요. 그 일 이후로 항상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준비를 항상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은퇴를 택한 이유는.
당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도 잘 만들었어요. 이번 시즌은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관계자분들이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팀에서 먼저 전력 분석원 제안을 해주셨어요. 운동 생활보단 사회생활을 빨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자리가 항상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은퇴를 선택했죠.

Q. 전력 분석원 길을 택한 계기는 뭔가요.
분석원이 엄청 명예로운 역할이고, 이 팀에서 계속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팀의 형들한테 배울 점도 많고 이 팀에 있으면 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 같았고요. 은퇴 선수 대부분이 농구 교실과 시간강사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저도 계약 끝인 시기여서 자문하고 다녔죠. 물어보면 전부 농구팀에 남아있는 걸 부러워하면서 저더러 남아 있으라고 했어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해보고 농구 교실 같은 일은 퇴직 이후에도 할 수 있으니까 선택한 거 같아요.

Q. 분석원의 정확한 업무는 무엇인가요.
스카우트 업무를 겸임한다고 보시면 돼요. 시즌 때는 매 경기에 앞서 감독, 코치님께 상대편의 공격성향, 수비성향 패턴을 분석해서 리포트로 제출해요. 그거 하다 보면 24시간이 부족 할 때가 많아요. 비시즌 땐 8~90% 정도를 대학리그를 보고 대학 선수들을 분석해요. 가끔 외국선수 드래프트를 도와주기도 하고요. 근데 전력분석원이 맡은 일은 팀마다 다른데 리포트를 안 쓰고 외국선수만 보는 곳도 있고요.

Q.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일단 장비 만지는 일이 어려웠어요. 시간 있을 때마다 엄청 만져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강의도 들었어요. 그리고 리포트 쓰는 게 제일 어려웠고요. 제가 농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농구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땐 몰랐는데 농구를 말로 풀어낸다는 일이 어렵더라고요. 글을 길게 풀어내야 하니까 움직임을 상세하게 쓰려고 해도 전반적인 글의 단어 선택도 힘들었고요. 코치님께서 옆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 덕에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처음에 엄청 막막했는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서 먹구름이 빨리 걷혔죠.

Q.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역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선수 때는 같은 팀에 있으면 내가 배울 게 있는 선수가 대부분이니까 이런 부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수를 바라봤죠. 지금은 선수들이 보완되어야 할 부분을 먼저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니까 더 자세히 보게 되고요. 관점의 차이인 거 같아요.

Q. 여전히 농구가 좋은가요.
지금 하는 일은 농구를 싫어하면 절대 못한다고 생각해요. 농구 경기를 많이 봐야 하니까 농구를 싫어하면 일이 고문이 되겠죠. 근데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아요. 힘들긴 하지만 일이 지루하고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여전히 농구를 많이 좋아하다는 증거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 목표가 있다면.
직업을 꿈으로 삼지 말라고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꿈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이 일을 하며 생긴 꿈은 통합 우승이었는데 이뤘어요. 제가 뛰는 건 아니지만 저는 한 팀의 일원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나중에 코치가 되고 그런 것보단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고 꿈이에요.

# 사진_KBL 제공,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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