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프로농구의 로맨티스트 ‘뇌섹남’ 추일승 감독

민준구 / 기사승인 : 2019-03-05 13:49: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민준구 기자] 프로농구 최고의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추일승 감독은 ‘공부하는 감독’의 대표 주자다. 이미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만족을 모르며 항상 발전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주류가 지배하고 있는 스포츠계에서 비주류의 성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추일승 감독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성공을 꿈꿨다. 프로농구 감독은 물론 구단 프런트, 매니저, 농구 매거진 대표, 해설위원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돌아봤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9년 2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추일승 감독의 농구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홍대부고 재학 시절,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했고, 홍익대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1985년 기아 농구단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지만, 한 시즌을 치른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 선수 인생은 길지 않았다. 상무 제대 후 은퇴했고 농구와는 인연을 잠시 끊었다. 추일승 감독의 농구인생이 재개된 것은 기아자동차 농구단을 지원하는 프런트로 발령받으면서부터였다. 작은 매니저와 경기운영 팀장이었다. 그러다 1997년 상무에서 코치 제의를 받게 되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Q. 1997년 상무에서 코치를 맡으신 이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지도자로 활약하고 계십니다. 지도자의 매력에 빠져든 건 언제부터였나요?
당시 실업팀이었던 기아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어요. 최인선 감독님과 함께 한 기억이 있죠. 그때는 이상하게도 코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코치 겸 매니저 역할을 했고, 선수들을 도와주는 보조 역할까지 혼자 다 했습니다(웃음).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도자 역할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또 최인선 감독님의 말동무를 해들면서 농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경기를 유심히 지켜봤죠.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어느덧 1990년대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감독이 되고 있어요.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걸 보면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정말 한순간인 것 같아요.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잠시 한숨을 돌리니 경쟁자였던 감독들은 나가고, 어느새 최고참 감독이 되어 버렸어요. 하하. 예전에는 정덕화, 이상윤 같은 감독들을 신세대라고 부를 때가 있었는데…. 감독이든, 선수든 세대교체는 숙명이잖아요. 속도가 빠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베테랑 감독들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젊은 세대 감독들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많은 생각이 듭니다.

Q. 흔히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고되고 힘든 자리잖아요?
전 더 고됐던 것 같아요(웃음). 엘리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해선 안 됐거든요.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가대표도 해보고, 한 팀의 에이스였으니까 전 경쟁이 되지 않았죠. 지금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감독 선임의 필수 요소이기도 했어요. 젊었을 때는 정말 부담스러웠죠. 눈치도 많이 보였고요.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나이를 먹고, 속된 말로 짬밥도 먹어서인지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죠. 남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Q.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남들은 실패해도 한,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제게 있어 실패는 곧 죽음이었죠. 주류, 비주류라는 프레임 속에 차별을 받기도 했고, 끌어줄 선배도 없었으니까요.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았어요. 사실 상무에서 감독을 하고 있을 때도 프로팀에서 코치 제의가 몇 차례 왔었어요. 모두 거절했죠. 예를 들어, 제가 모시는 감독님이 경질됐을 때, 코치들도 모두 짐을 싸야 해요. 비주류에 속한 저에게 다음 기회가 있었을까요? 추구하는 농구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끝내는 건 억울할 것 같았어요. 그만큼 절실했던 때였죠.

Q. 감독 이전에 프런트, 농구 매거진 대표, 해설위원 등 다양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셨나요?
처음에는 농구를 가르치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KTF에서 물러난 뒤, 잠시 공백기가 있었잖아요. 뒤를 돌아보니 제 농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또 농구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바스켓코리아」라는 매거진을 만들게 됐죠. 또 해설위원을 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농구를 보게 됐고, 프런트, 매니저 생활을 통해 마케팅의 역할, 그리고 효과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전부 농구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한국체대 사회체육대학원 석사학위도 그렇게 받을 수 있었어요(추일승 감독은 홍익대 대학원 석사, 한국체대 대학원 석사, 동신대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렵게 잡은 기회, 그러나 길은 험난했다. 추일승 감독은 매번 패배의식에 젖은 팀들을 맡아야 했다. 하나, 포기는 없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며 끝내는 정상까지 바라봤다. 추일승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쉽지 않았지만, 끝은 찬란하게 빛났다.

Q. 코리아텐더를 시작으로 프로 감독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시작부터 힘든 시기가 찾아왔었죠?
프로팀에서 코치 생활을 겪지 않았으니 배운 게 없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알아서 해야 했죠.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책이 없었어요. 어렵게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해외에 있는 선배들에게 농구 원서를 받기도 했죠. 당시 국내에 있는 농구 서적들이 용어조차 개념을 잡지 못한 수준이었어요. 한계가 분명했죠. 어렵게 적응하다 보니 개념이 잡히더라고요. 먼저 지도 철학이 생겼어요. 기준을 세우고 선수구성과 전술, 규율을 만드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죠. 공부하는 것과 현장에서 느끼는 건 큰 차이가 있어요. 감독이 최고였던 때라서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코치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나를 보며 성장하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Q.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큰 성과를 이루었잖아요. KTF 때는 ‘포워드 농구’로 챔피언결정전 준우승까지 해냈고요.
KTF를 맡았을 때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구단이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거든요. 해외농구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포워드 농구’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때였죠. 유럽농구를 보니 장신 포워드를 활용한 스페이싱 농구가 대세였어요. 코트를 넓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때부터 기회가 되면 스페인을 찾아가 공부를 하곤 했죠. 애런 맥기를 스페인에서 데려올 때가 이때였어요.

Q. ‘포워드 농구’를 ‘추일승 농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좋은 가드, 센터를 만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매해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죠. 오세근, 김종규, 이승현처럼 좋은 센터, 그리고 이상민, 김승현처럼 좋은 가드들은 최소 5년에 한 번씩만 나오잖아요. 대신 애매한 신장을 가진 포워드들은 많아요. 그들을 극대화하면 엄청난 위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팀을 구성하는 데 편하기도 하고요. 농구 철학보다는 변해가는 흐름에 빨리 대처할 수 있었던 방법이라고 봐요.

Q. 전성기로 비교했을 때, KTF와 오리온 중 누가 더 강한가요.
오리온이 조금 더 낫죠. 포워드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조 잭슨이라는 변수가 있잖아요. 그 당시에는 잭슨을 막을 선수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또 (이)승현이를 일대일로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잖아요. 포워드 쪽에선 KTF가 더 좋을 수도 있겠네요. (송)영진이와 애런 맥기, 필립 리치가 있으니 우위를 보일 수도 있겠어요. 또 (김)도수가 미스 매치를 만들어내면 이길 수도 있겠네요(웃음).

Q. 감독님의 농구 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같은 신장을 가진 포워드라도 각자 활용법은 다르거든요. 추구하는 방향은 1~2명이 많은 득점을 하는 것보다 5명의 선수가 고른 활약을 하는 거예요. 이루기 힘든 일인가요(웃음)? 희박하지만,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어요.



추일승 감독은 유재학 감독에 이어 제2대 경기력향상위원회(경향위)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서동철(KT), 이상범(DB), 이상윤(상명대), 양형석(중앙대) 감독과 함께 경기력향상위원회 관련 규정에 의거 농구 경기 기술의 연구,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 기본 계획 및 훈련 계획 수립, 훈련 감독 및 평가 분석, 선수 선발 등의 기능을 수행할 예정이다.

Q. 경향위 위원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한국농구를 위해 큰 역할을 맡게 됐는데요.
많이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다른 분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강력히 추천했어요. 주어진 역할이 크기 때문에 잘 활용할 생각입니다. 먼저 국가대표는 모든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해요. 지도자부터 선수들까지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죠. 매번 국가대표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연습경기에만 치중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지도자의 철학이 녹아들어야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최대한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역할 수행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청소년 레벨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쓰고 싶어요. 냉정히 말해서 성인 대표팀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대신 청소년 대표팀은 노력 여부에 따라 세계 상위권도 가능하다고 봐요. 농구 붐을 일으키려면 국제대회에서의 선전도 필수 요소잖아요. 사실 많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는데 신경을 기울이면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Q. 경향위의 시선은 8월 FIBA 중국 월드컵에 향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8월에 열리는 월드컵이죠. 사실상 경기에 뛰는 건 10명 정도에요. 남은 두 자리는 유망주로 채워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가능하거든요. 국가대표팀에 대한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선수들만이 나서야 하죠. 몇몇 선수들은 몸을 사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바에는 유망주들로 자리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일승 감독은 1963년생으로 유재학 감독과 KBL 최고령 현직 감독이다. 만 56세로 아직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구사할 때지만, 추일승 감독은 슬며시 은퇴를 이야기했다. 1999년 상무 감독을 시작으로 쉼 없이 달렸던 추일승 감독. 그는 농구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Q. 감독직은 언제까지 이어갈 생각이신가요?
오래 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정말 피곤하거든요. 일단 가족들의 희생이 안타깝습니다. 기아에서 매니저 생활을 할 때부터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정도 집에 갔던 것 같아요. KTF 시절에는 집에 간 날을 세어 봤는데 1년에 68일이 가장 많을 정도였죠. 수십년을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자식들 크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지금 생활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아요.

Q. 후계자라고 하면 이상할까요? 뒤를 받쳐줄 든든한 제자가 있어야 할 텐데요.
김병철 코치가 적격이라고 봐요.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많이 비슷해진 느낌이 있거든요. 또 나름의 철학이 있어요.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있고요. 경기 계획을 세우고 난 뒤, 김병철 코치에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전부 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90%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데요? 제 뒤를 잘 이어갈 거예요.

Q. 오랜 시간, 농구 하나만을 바라보셨습니다.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제 인생이죠. 집에 있어도 이틀만 지나면 체육관에 오게 돼요. 외국선수 정보를 따로 모아놓은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그걸 꼭 봐야 마음이 편해요(웃음). 외국선수는 365일 살펴야만 실패 가능성이 낮아요. 또 집에 가도 아들과 농구 이야기만 해요. 농구 동아리 회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하하. 은퇴하면 아들과 농구 이야기로 남은 세월을 보낼 것 같아요.

BONUS ONE SHOT_‘공부하는 감독’ 추일승 감독의 뜻 깊은 조언
추일승 감독은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음에도 만족을 모른다. 지금도 하나, 둘씩 변해가는 세계농구의 추세를 읽기 위해 노력하며 오리온에 접목하려 한다. 그런 그가 한국농구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방법론적으로 다가서면 대부분 코치들이 아는 지식은 공통된 부분이 많아요. 다만, 어떻게 가르칠 것에 대한 고민은 덜한 편이죠. 1 더하기 1은 2라는 걸 누구나 다 알아요. 그러나 2가 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똑똑한 선수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러나 모두가 똑똑하지 않잖아요. 그런 선수들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인 남자들의 집중력은 오래 가지 않아요. 우리는 훈련 시간을 최대 1시간 30분 정도로 잡습니다. 그 이상을 하게 되면 도움이 안 되거든요. 또 훈련법이 같으면 효과가 덜 해요.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지도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스킬 트레이닝도 마찬가지죠. 좋은 게 있으면 공유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훈련 과정을 모두 개방하고 있어요. 동영상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제공을 해주기도 하죠. 한발 더 나아가려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해요. FIBA 지도자 강습회 역시 중요합니다. 대부분이 감독들은 등한시하는 부분이 있어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도자가 왜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또 의구심을 가져야만 성장할 수 있어요. 지도자가 성장해야 선수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사진_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민준구 민준구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