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_Scan. 007번 참가자: 김선우
김선우의 농구는 우연에서 시작됐다. 수영 수업을 마친 뒤 들른 고양체육관에서 처음 본 KBL 경기가 인생을 바꿨다. “사실 농구는 하나도 몰랐는데 이벤트가 너무 재밌었어요. 새총으로 선물 쏘고 그런 게 신기했거든요.” 그렇게 농구교실에 발을 들였고, 삼광초로 전학 간 뒤 소년체전 우승과 MVP를 차지하며 타고난 재능을 증명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강한 피지컬과 빠른 템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2학년 때 최종훈 코치를 만나며 돌파구를 찾았다. “내가 줄 수 있는 거 안 보고 줘보라고, 화려하게 줘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창의적인 농구를 배운 그는 왕중왕전 우승과 어시스트상, SK 빅맨캠프 MVP, 춘계대회 수비상 등 굵직한 성과를 남기며 또래 중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휘문고 입학 후 1학년 시절, 체계적인 훈련 속에서 그는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성장의 뿌리를 다졌다. 혼나는 것이 두려워 악착같이 뛰던 시간이 오히려 수비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지금도 그의 가장 큰 무기다.
“공격할 때 턴오버가 나오면 혼나니까 위축돼서 수비를 엄청 열심히 했죠. 근데 그때 수비가 많이 늘면서 지금까지 장점이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잘 배우긴 했지만 그 시점에서 팍 터진 게 제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해요.”
2학년 때 송영진 전 감독을 만나며 두 번째 전환점을 맞았다. 앞서 창의적인 농구를 배웠다면, 이번에는 ‘진정한 가드’의 역할을 배운 시간이었다.
“아직도 코치님께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선수 경험과 좋은 가드들과의 호흡으로 쌓아온 경력을 바탕으로 팀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가드는 슛이 안 들어가도 속공 전개하고 팀 운영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 과정에서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회도 얻었고, 코치님께서 제 장점을 살려주시면서 단점은 보완해 주시려 노력해 주셔서 그때 농구에 대한 눈이 많이 트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휘문고 전승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대회마다 기량을 입증하며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2020년 주말리그에서 트리플더블(21점 14리바운드 13어시스트)을 기록했고, 2021년 협회장기에서는 3점슛 6개 포함 33점 7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올리며 대회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같은 해 추계대회 결승에서는 26점 4리바운드 6어시스트 2스틸로 '42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고, 종별대회에서는 '감투상'을 수상하며 실력뿐 아니라 헌신적인 팀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한양대에 진학한 김선우는 3학년 시절, 큰 벽에 부딪혔다.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결국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난해 5월, 그는 부모님께 처음으로 솔직한 심경을 전했지만 가족의 위로와 응원 덕분에 다시 농구에만 몰두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지도자들의 기대와 바라는 사항에 미치지 못해 스스로가 위축된 것이다. 들어갈 슛마저 림을 외면하며 답답한 시기를 보냈지만, 한 번 그 고비를 넘자 오히려 풀리기 시작했다. 당시 지도자들도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줬다.
“당시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한 농구를 1년 남기고 그만두면 후회할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농구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진짜 슛이 다 튕겨 나가고 억까(?)도 많이 당했는데, 한 번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니까 오히려 잘 풀리더라고요. 1학년이라 생각하고 기본적인 수비랑 궂은일부터 하자고 생각하니 공격은 자연스레 따라오더라고요.”
왜 하필 악재는 겹치는 걸까.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던 올해 4월,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불운이 찾아왔다. 발날이 부러진 것이다. ‘설마’하며 애써 외면한 후 10분을 더 뛰었지만, 결국 통증 앞에 멈춰야 했다. 진단 결과는 뼈 골절. 마지막 학년에 찾아온 시련은 충격이었다. “발에서 뚝 소리가 났거든요. 그런데 4학년이니까 ‘아니겠지, 아니어야 되는데…’ 하면서 현실 부정을 했던 것 같아요. 참고 뛰었는데 너무 아파서 결국 감독님께 말씀드렸고 병원에 갔더니 부러졌다고 하더라고요.”
수술은 병원 일정 탓에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목발을 짚고 홀로 기숙사 방에 남아 있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외출하는 동기들과 달리 방에만 머무르며 우울감이 찾아왔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오히려 독이라는 걸 알았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긍정으로 전환했고, 작은 부분까지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식습관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며 회복 속도를 앞당긴 그의 태도는 성실함과 자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처음엔 왜 하필 4학년인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 많이 힘들었어요. 저 혼자 방에 있으니 너무 힘들고 외로운 거예요. 부모님과 감독님이 멘탈을 잡아주셔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 탄산이 뼈에 안 좋다고 해서 아예 끊고, 콩이나 두부 같은 음식들을 일부러 챙겨 먹었어요. 야식을 먹어도 곰탕 먹고요. 그러다 보니 뼈도 빨리 붙더라고요. 그 덕분에 지금 몸상태는 좋습니다. 앞으로 평생 탄산은 안 마실 것 같아요(웃음).”
재활 과정에서 그는 기본기를 다시 다지며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였다. 깁스를 한 채 앉아서도, 한 발로 버티면서도 드리블을 놓지 않았다. 벤치에서 팀을 바라보는 시간을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뛰지 않는 동안 팀의 약점이 눈에 들어왔고 이를 메모하며 복귀 후 어떤 방식으로 보탬이 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끊임없이 기본을 다지고 시야를 넓힌 과정은 농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증명했다.
“벤치에 오래 있다 보니 뛸 때와 다르게 다 보이더라고요. 계속 메모하면서 ‘내가 돌아가면 뭘 해야 팀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했어요. 수비 압박이 약해진 것과 속공이 부족해 보였죠. 그런 부분을 ‘이런 식으로 내가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시야를 넓힌 것 같아요.”
묵묵히 준비한 끝에 맞이한 MBC배 복귀 무대에서 그는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3경기에서 평균 14.6점 3.6리바운드 5.3어시스트 2.3스틸 3점슛 성공률 45.4%를 기록하며 ‘정말 부상이었던 선수가 맞나’라는 감탄을 이끌어냈다. 벤치에서 보낸 시간은 허송세월이 아닌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시련 속에서 그가 얻은 교훈은 명확했다. 다치지 않고 코트에 설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사하다는 것이다.
“작년엔 슬럼프가 있었고, 올해는 부상이 있었는데 두 번 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는 걸 크게 느꼈고, 힘들어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게 됐어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장착된 것 같아요. 어떤 시련이 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큰 무기가 생겼죠.”

고통 속에서도 김선우의 수비는 기복이 없다. 상대 볼 핸들러를 막는 데 있어 ‘대학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큼 집요했다. 지도자들이 “프로에서는 볼을 뺏는 게 쉽지 않다. 따라가면서 압박만 해줘도 인정받는다”라는 조언을 마음에 새기며, 그는 스틸보다 끈질긴 압박에 집중했다.
“저는 수비할 때 ‘얘한테 먹히면 난 죽는다’고 생각해요. 제 상대가 득점하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어떻게든 막고 싶은 의욕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맨날 이런 말 들었어요. 제가 뺏으려고 하다 보니 ‘전생에 도둑이었냐’고요(웃음). 그런 말도 많이 들었을 정도로 뺏고 싶은 의욕이 있었죠.”
그 마음은 기록으로도 드러났다. 대학 무대에서도 수비는 빛을 발했고, 특히 단국대전에서는 한 경기 7스틸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를 새겼다. 2024시즌에는 스틸 평균 2.07개로 리그 전체 4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올해 LG와의 연습경기에서는 한양대 선배이자 베테랑 가드 한상혁에게서도 인정을 받기도.
“연습경기에서 LG 형들을 다 수비로 괴롭히려고 했죠. 한상혁 선배님께서 ‘선우 압박 장난 아니다’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이 됐죠. 수비 압박하는 거에서는 정말 자신이 있어요. 아무한테도 안 뚫릴 자신이 있다는 거를 어필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김선우는 일반 학생들에게도 종종 한국가스공사 정성우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외모뿐 아니라 농구 스타일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는 정성우를 롤모델로 삼으며, 언젠가 선배가 걸어온 길을 자신도 밟아가길 바라고 있다.
“일단 정성우 선수도 수비가 장점이고, 신인상도 받으셨고 수비로 차근차근 올라가서 FA로 대박 나시고 주전 가드가 되셨잖아요. 저도 정성우 선수처럼 처음에는 프로에 와서 수비로 기회를 얻고,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결국 국가대표까지 가고 싶어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를 받는 선수다.”
“기본적으로 공격에는 기복이 있을 순 있지만, 수비는 기복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장점인 수비와 활동량으로 초-중-고-대학교까지 기회를 많이 받았죠.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주어진 시간과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간절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있어요. 한양대 육상 농구잖아요. 속공 전개와 슈터들을 살려주는 게 저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제가 능글 맞게 웃음이 많은 성격이거든요(웃음). 어느 팀에 가든 잘 어울리고 빠르게 잘 녹아들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프로가 되면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걸 이뤘기 때문에 인생의 첫 번째 목표는 달성한 기분일 것 같아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인 거잖아요. 가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가자마자 바로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놓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수비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고 수비상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팬들이 제 수비를 보며 눈이 즐겁다고 느끼고, 감독님과 팬들께서 ‘정말 죽기 살기로 뛰는 선수’라고 불러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대학에서 들었던 ‘볼 핸들러 수비는 최고’라는 평가도 프로 무대에서 이어가고 싶습니다. 분위기를 살리는 선수, 분위기 메이커이자 게임 체인저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김선우’ 하면 성장의 아이콘이라는 말이 따라붙었으면 합니다!”
‘미니 정성우(작성우)’가 되고 싶은 김선우는 농구 인생에서 수차례 시련을 마주했지만 이를 극복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집요한 수비와 끊임없는 활동량, 긍정적인 태도는 프로 무대에서도 빛을 발할 무기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팀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플레이어라는 점은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제 김선우는 수비와 열정으로 관중의 눈을 사로잡으며, KBL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성장의 아이콘으로 불릴 준비를 마쳤다.
#사진_김선우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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