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년간 ‘농구 명가(名家)’ 서울 삼성의 외국선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진 훗남 통역사. 이진석(36) 씨.
그의 가슴 속에는 팀과 본인은 ‘둘’이 아닌 ‘하나’ 된 마음이 박혀있다.
지금도 이상민 감독을 비롯해 삼성 선수단과 함께 하는 것이 꿈만 같다는 이진석 씨는 항상 설레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이진석 씨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Q.학창 시절을 다소 생소한 곳에서 보냈다고?
아프리카에서 보냈다(웃음). 나라는 가나였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서 갔다. 고등학교 때까지 있었고 가나에서 국제 학교에 다녔다.
Q.굉장히 낯선 곳이다. 처음 갔을 때 신기했을 것 같은데?
흔히들 아프리카라고 생각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달랐다. 살아보니 선진국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무엇보다 좋은 친구들이 많아 적응하는 데 문제없었다. 행복한 추억과 기억이 많은 나라다.
Q.가나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온 건지?
아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서 잠시 대학 생활을 했다. 입대를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Q.미국에서 지낸 곳은?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이라는 도시였다.
Q.그럼 그때부터 농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
농구는 가나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다. 농구대잔치 세대다. 가나에서는 아무래도 국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외국 친구들이 대부분 농구를 즐겨 했다. 현지에 사는 한인들도 (농구를) 가장 많이 즐겨 했다. 종종 농구장도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Q.미국서 지내면서 자연스레 지역팀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고?
당시 (나는) 페니(앤퍼니) 하더웨이 팬이었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근데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03년에 한 번 인디애나 홈구장에 간 적 있는데, 그때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레지 밀러가 인디애나 영웅이었던 시절, 홈팬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 이래서 홈팬이 되는구나 싶었다. 나름 페이서스가 그 당시 매력적인 팀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넘버원 팀으로 남아있다.
Q.대학 농구도 자주 봤다고?
내가 다니던 인디애나대 경기를 자주 봤다. 당시 패트릭 유잉 아들이 잠시 뛰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서 본 여러 선수도 몇 명 NBA에 진출했지만, 안타깝게도 활약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Q.돌고 돌아, 농구 통역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항상 스포츠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다. 영어가 가능하다 보니 통역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농구 쪽에서 일하고 싶었다.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와중에 2019년에 우연히 공고 글을 봤고 지원하게 됐다.
Q.그전에 했던 일들은?
무역회사와 출판사에서 일도 했었고, 영어 강사로도 활동한 적 있었다.
Q.첫 통역 일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사실 생각했던 거와 거의 비슷했다. 과거 아르바이트로 통역 일을 몇 번 해본 적 있었다. 해외 가수들이 내한 공연을 왔을 때. 무역 및 게임 박람회 등 행사가 있을 때 종종. 그때 느낀 게 꽤 많았다. 단순히 통역 일이 언어적으로만 전달하는 게 끝이 아니라 많은 희생도 뒤따른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크게 당황스럽거나 곤란한 일들은 없었다.
Q.그래도 농구 통역만의 차이점이 있었을 텐데?
순간에 예민하고 갑작스럽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거기다가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 다른 통역 일을 하다 보면 필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농구 통역은 쉽지 않았다. 우선 핵심을 잘 파악해 두고 중점 내용을 바로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농구를 봐왔기 때문에 당연히 이상민 감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처음에는 너무 긴장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 떨릴 때가 있다(웃음). (이상민 감독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있었고 살가운 사람이다. 지금도 먼저 안부를 물어보곤 한다. 가끔은 이게 현실이 맞는지 생각한다.
Q.이상민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일단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아무래도 포인트가드 출신이다 보니 번뜩이는 플레이를 많이 가르친다. 하나에 국한된 플레이가 아니라 여러 공격 옵션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중 (선수들이) 선택해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을 많이 심어주는 것 같다.
Q.1년 차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그게 가장 크게 힘들었다. 외국선수 음식 챙기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미리 음식점도 알아놔야 했고 영업시간이라든지 예약 여부를 다 파악해야 했다. 그런 부분들을 다 계획에 짜놓고 움직여야 했다. 가끔은 경기장까지 배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 그전에 일일이 다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지금은 어느 정도 데이터베이스를 쌓았지만, 그때만 해도 하나도 몰랐다(웃음).
Q.평소 성격은?
외향적이기도 하면서 내향적인, 평소에는 낯을 말을 가리는 편이다. 친해지면 대화를 많이 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Q.통역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믿음이다. 나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바로 믿을 순 없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이 쌓여가고 이해관계가 점차 형성됐을 때, 비로소 완전한 관계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조화를 이루고 나면 시즌 끝까지 잘 마무리가 되는 것 같다.
Q.믿음을 쌓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솔직한 게 최고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빠르고 정확히 솔직하게 알려주면 된다. 내가 제공해줄 수 있는 게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그래야지만 불만이 안 생긴다. 타지역을 가다 보면 옵션들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들을 미리 설명해주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사전에 알려준다. 그래야 선수들도 그때 돼서 당황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신뢰가 쌓이게 된다.
Q.첫 시즌 함께했던 외국선수들 기억나는가?
당연히 기억난다(웃음). 닉 미네라스, 델로이 제임스, 마지막이 제임스 톰슨.
Q.(닉) 미네라스는 화려한 문신으로도 유명했다. 성격이 궁금하다.
첫해라 나름대로 백그라운드를 조사했는데, 문신도 많고 지역색이 강한 디트로이트 출신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선수랑 무사히 한 시즌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거와 달리 반대로 너무 조용했고 낯을 많이 가려 말수가 적었다. 젠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훈련 태도가 지금껏 내가 만난 선수 중 최고였다. 쉬는 날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하며 몸 관리를 철저히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컸고,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Q.(델로이) 제임스는 채식주의자였다고?
맞다. (델로이) 제임스는 채식주의자였는데, 생선은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기는 안 먹었고, 우유도 아몬드 우유를 챙겨 먹었다. 워낙 장난기가 많아서 (제임스) 덕분에 미네라스랑 좀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Q.(제임스) 톰슨의 근황도 궁금하다.
최근까지 독일에서 뛰다가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Q.현 삼성의 외국선수 아이제아 힉스와는 2년을 함께했다. 배울 점이 많은 선수라고?
(힉스는) 굉장히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다. 이제껏 본 선수 중에 문화적인 부분에서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선수다. 대부분의 외국선수들은 찬 국수를 선호하지 않는데 힉스만큼은 잘 먹는다. 삼겹살에 냉면을 먹을 줄 안다(웃음). 이 친구 정말 오픈되어 있구나라고 느꼈다. 또 승부욕도 강하다. 남 탓도 절대 하지 않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스스로 삭히고 먼저 사과한다. 농구선수이기 전에 정말 좋은 사람이다라고 느꼈다.
Q.다니엘 오셰푸도 이와 비슷하다고?
그렇다. (오셰푸도) 한식을 잘 먹고 프로의식이 높다. 정해진 팀 훈련 시간이 있으면 그전에 미리 좀 하고 있어도 되는지 물어본다. 본인이 따로 시간을 정해서 몸 관리를 할 정도로 개인 훈련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Q.두 선수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다면?
두 선수뿐 아니라 내가 지금껏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모든 외국선수들이 호떡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호떡 안에 꿀과 약간의 계피 맛이 고향의 맛이 느껴진다고 말하더라. 그리고 가끔 팬케이크가 생각날 때 먹으면 너무 맛있다고 했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선수들도 있어 호떡을 판매하는 곳도 알려줬다. 그 정도로 좋아한다.
Q.스카우팅 업무도 하는지?
내 전담 업무는 아니다. 돕고 있는 정도다. 외국선수들의 최근 기록과 기본 프로필을 간단히 정리해서 전력분석원에게 보낸다. 그리고 선수들의 근황도 파악하고 영상도 많이 보면서 도움이 될 만한 선수가 있다면 팀에 제안한다.
Q.아직 해외 출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첫해에는 일본으로 갈 뻔했지만, 한일관계 악화로 제주도로 갔다. 이후 코로나가 터졌다. 앞으로 기회가 있길 희망한다(웃음).
Q.쉴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그동안 부족했던 수면을 채우는 편이다. 아니면 개인적으로 외국선수들이 원했던 걸 도와주기도 한다. 산책도 많이 한다.
Q.통역 일을 하다가 생긴 습관이 있다고?
방금 말한 쉬는 날 산책하는 것이 통역 일을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정 경기를 가서 호텔에 묵게 되면 근처에 음식점이 뭐가 있는지 검색해놨던 음식점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돈다. 그러면서 생각도 정리한다. 또 호텔을 가면 나도 모르게 화장실 위치를 파악한다. 외국선수들이 급하게 찾을 때가 있다. 조식 시간도 항상 물어본다.
Q.비시즌은 어떻게 보내는지?
비시즌은 보통 4~5월에 시작된다. 한 시즌 간 고생한 외국선수들의 출국하는 것을 도와주고 사택을 정리한다. 그러고 나서 내 개인 휴가도 다녀오고, 이후 차기 시즌 준비를 위한 팀 훈련에 합류한다. 올해는 우리 팀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갈지 숙지하면서 새롭게 합류할 외국선수들에게 이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Q.타 구단 통역들과도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인지?
비시즌을 활용해 한 두 번씩 보기도 한다.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을 좋은 기회다. 과거 고양 오리온 한준혜 통역과 현 전주 KCC 김민영 통역, 같은 해 동기인 수원 KT 김정래 통역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낸다.
Q.이별하는 외국선수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다고?
시즌을 무사히 다 마치고 보내는 선수도 있지만, 중간에 교체되어 떠나보내야 하는 선수도 있다.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지도 않는다. 재능이 있어서 한국에 왔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경기력이 나빠 한국을 떠나는 선수들에게 “지금 여기서 너의 커리어가 끝나지 않는다.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 다른 곳에서는 행복하게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해 주겠다”고 말해준다.
Q.통역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부터 너무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피로감을 잊는다. 또 개인 시간도 없다고 하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내가 개인 시간에 했던 일이 통역 일 찾기였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 또한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즐거움과 행복으로 바꿔 생각하고 있다.
Q.통역 중 가끔 말이 헛나올 때도 있나?
종종 있다. 분명히 머리는 A라고 생각하는데 B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수정해준다. 뱉으면서도 긴장을 많이 하고 신경쓰고 있다. 다행히 패턴과 관련해서는 실수한 적은 없다. 선수들이 잘못 움직이고 들어오면 본인 잘못이라고 인정을 했다. 다들 착했다.
Q.여전히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용어 관련해서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업데이트하고 있다. 감독마다 선수마다 사용하는 용어와 단어가 다 달라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용어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의 사용법에도 차이가 있다. 부족함을 느끼기에 더욱 배우고 싶다.
Q.예를 들면 어떤 용어들이 있는지?
픽앤롤 수비에서 같은 동작이지만 누구는 헤지, 누구는 쇼우, 누구는 스턴트라고 말한다. 픽앤롤도 그냥 투맨게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고 배운다. 요새는 유튜브가 잘 발달 돼 있어서 해외 실제 경기 중 해설위원이 말하는 단어들을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전술 설명 같은 것도 자주 본다.
Q.첫해가 가장 아쉬운 시즌이었다고?
맞다.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중단됐었다. 그때 아쉽게 7위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시즌이 정상적으로 끝났다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즌은 (선수들이) 무조건 플레이오프에 간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 6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이후 플레이오프 경험이 아직 없다.
Q.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제주도로 전지 훈련 가서 해물라면 먹었을 때다(웃음). 그 당시 외국선수들이 들어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국내 음식에 대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타지에 와서 음식이라도 고향 음식에 가까운 걸 먹일라고 3박 4일 동안 피자와 햄버거를 먹었다. 나도 같이.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 해물라면을 먹었는데 아직도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 너무 맛있었다.
Q.슈퍼 루키 이원석이 두 외국선수를 고마워한다고?
(이)원석이랑도 매일 짧게 대화를 나눈다. 그때마다 항상 두 외국선수 칭찬을 잊지 않는다. 힉스와 오셰푸가 본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따로 불러서 조언을 해준다고 하더라. 그게 정말 고맙고 좋다고 말했다.
Q.나머지 삼성 선수들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삼성 선수들 모두 좋은 성품을 지녔다. 많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모두 다 긍정적인 대화다. 또 예의도 바르다. 불평불만 가지지 않고 다들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Q.농구 통역의 가장 큰 매력은?
가장 큰 매력은 현장감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종목 중 벤치와 실제 경기장이 가장 가깝다. 현장감을 바로 즉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비록 코트서 뛰는 선수는 아니지만, 통역도 팀의 한 일원으로서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팀과 나는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라고 생각한다. 팀이 졌을 때는 나도 아쉽고 속상하고 승리했을 때는 그 이상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Q.앞으로 통역으로서 큰 계획이 있는지?
없다. 아직 3년 차로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먼 미래를 보고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표다. 향후 내 노력에 따라 어떤 길이 더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더 나아지기 위해 현재에 충실 하자는 생각이다.
Q.2라운드가 시작됐다. 순위가 많이 내려앉았다. 삼성 팬들에게 한마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그동안의 노력들이 있었다. 비록 1라운드에 비해 2라운드 출발이 좋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기대감은 분명히 크다.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좋은 결실을 볼 수 있게 노력하겠다. 팬분들의 끊임없는 사랑 부탁드린다.

#글_최설 기자
#사진_윤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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