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단과 국가대표 통역을 두루 경험한 전주 KCC의 전천후 통역사. 김민영(32) 씨.
과거 에이전트로도 활동하며 통역으로서 차별화된 자격도 갖춘 그다.
외국인 감독, 코치와도 함께하며 외국선수 관리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자신의 재능을 뽐낸 김민영 씨는 '자타공인' 만능 멀티플레이어다.
그런 김민영 씨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Q.처음에는 구단 사무국(운영팀)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2015년 창원 LG에 입사했다. 입사했을 당시 단장이 사무국 쪽으로 왔으면 하는 제안이 있어 운영팀으로 가게 됐다. 통역뿐 아니라 어느 부서가 됐건 스포츠 구단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았다.
Q.그러다가 통역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다음 해 보직 이동이 있었다. 마침 통역 자리가 공석이었다. 팀에 요청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워낙 현장에서 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상당히 만족했다.
Q.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나?
스포츠 ‘오덕후’라고 하면 딱 맞는다(웃음). 농구뿐 아니라 스포츠를 전반적으로 좋아했다. 올림픽 때는 전 종목 가리지 않고 다 챙겨볼 정도였다. 지금도 축구, 야구, UFC(격투기)를 즐겨 보는 편이다. 스포츠 자체를 좋아한다.
Q.미국 생활을 오래 했다고?
총 연수로 따지면 10년 정도 된다. 쭉 지냈던 거는 아니고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미국 여러 지역에서 살았다. 8살, 처음 미국을 갔을 때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외곽지역에서 지냈다. 그리고 잠시 한국에 들어와 중학교 때 다시 갔을 때는 아이오와주와 애틀랜타에서 보냈다. 마지막으로 위스콘신에서 대학을 나왔다.
Q.여러 지역을 돌아다닌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부모님 직장 때문에 (미국을) 따라갔다. 이후 중학교 때부터 혼자 유학이었다. 학교를 옮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Q.미국에서 스포츠를 많이 접했을 것 같다. 자주 경기를 보러 다녔는지?
지역팀들은 거의 달고 살았다. 대학 농구서부터 NBA까지 미식축구(NFL), 야구(MLB) 등 많이 보러 다녔다. 아무래도 미국은 연고 개념이 강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팀을 응원하면서 즐겼다.
Q.NBA 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팀은?
사실. (내가) 한 번도 살지 않은 지역팀인 유타 재즈를 좋아한다(웃음).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 대부분 유타 소속이었고, 제리 슬로언 감독도 많이 좋아했다. 지금도 현역 선수 가운데 유타의 조 잉글스와 보얀 보그다노비치처럼 영리한 선수들을 선호한다.
Q.중간에 통역 일을 그만두고 에이전트로도 활동했다고?
LG에서 2시즌을 보내고 이후 약 2년 정도 에이전트로 활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뛰어들었다.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없다 보니 무지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들어갔다가 몸으로 많이 체험한 편이다. 활동하는 데 한계에 부딪혀 다시 통역으로 돌아왔다.
Q.에이전트 준비가 힘든 걸로 아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구단에서 평소 일하고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상당 부분 아는 내용이다. 따로 공부를 많이 안 하더라도 준비할 수 있다.
Q.에이전트 활동 당시, 주희정 감독(현 고려대)과 특별한 친분을 쌓았다고?
2017년 겨울로 기억한다. (주희정 감독과) 3주 정도 독일에서 같이 생활한 적 있다. 서로 뜻이 같아 농구 여행(?)을 함께 했다.
Q.더 자세히 듣고 싶다.
당시 희정이 형은 지도자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필리핀 연수를 다녀온 상태였다. 이후 아시아 외 다른 서양 국가들의 농구도 경험하고자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통역이 필요했고 내가 대상이었다. 서울 삼성 사무국 류진우 프로가 (내게) 희정이 형을 소개해줬고, (나도) 일을 도우면서 해외 고객 베이스를 넓히고자 합류에 동의했다.
Q.방문 시기와 나라 선정은 어떻게 결정했나?
시기와 일정은 희정이 형과 상의해 결정했고, 해외 방문할 구단은 삼성에서 연결 가능한 몇몇 팀을 제안했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될만한 팀을 선택했다. 독일의 브로스 밤베르크란 팀을 골랐다. 당시 안드레아 트린키에리(현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고 유럽에서 꽤 인정받는 지도자라고 판단해 희정이 형에게 추천했다. 이후 주로 반베르크 구단의 스케쥴을 따라다니면서 준비와 연습, 경기하는 모든 과정을 관찰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타 구단들과 미팅도 병행했다.
Q.다시 통역으로 돌아왔다. 구단이 아닌 국가대표부터 시작했다. 계기가?
에이전트를 그만두고 운 좋게 국가대표 통역을 맡게 됐다. 당시 라건아가 귀화를 마치고 막 국가대표에 들어왔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같이 준비하면서 진천선수촌도 들어가 보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
Q.국가대표팀을 경험한 통역은 그리 많지 않다. 구단과 대표팀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른가?
경기 통역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인터뷰가 굉장히 많다. 이때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발생한다. 가령 한 나라를 대표해서 국가 간 민감한 질문들이 나올 때, 스포츠면뿐 아니라 사회면까지 나갈 것을 고려해 답한다. 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Q.그럼에도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평소 선수촌을 들어갈 일이 없는데 선수촌에서 생활도 해보고 신선했다. 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러 나라는 다니며 경기를 치르는 게 좋았다. 구단과 구단의 대결이 아닌 나라 대 나라가 맞붙다 보니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랐다. 한일전의 또 다른 재미가 있듯 좀 더 몰입도 하고 긴장감도 하고 확실히 차이가 컸다.
Q.당시 허재 감독과 한방을 썼다고?
(나) 매니저 형, 허재 감독이 같은 호실을 썼다. 호실 안에 각자 방이 따로 있었다. 그래도 삼시세끼 함께 밥 먹고 얘기를 나누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말 기억이 남는다. (허재 감독이) 워낙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고 많이 들었는데 여러 부분에서 배려해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과거 KCC 시절보다 많이 유해지셨다고 했다(웃음).
Q.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첫 통역 시절,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처음 (LG에) 입사하기 전, 한 달간 합숙을 했다. LG 챔피언스 파크(훈련 체육관)에서 일종의 현장 검증 비슷한 통역 일을 했다. 외국인 스킬 트레이너를 초청해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한 농구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노하우를 터득해서 그런지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현장에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때가 더 힘들었다. 처음 보는 대상자들한테 통역해야 했는데 그 한 달간 많은 걸 배웠다.
Q.그럼 농구 통역으로서 적응하는 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단 용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소위 ‘현타’가 왔던 적이 몇 번 있다(웃음).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콩글리시로 외국선수한테 전달하면 이해를 못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미트아웃, 어라운드, 미들슛, 워킹 등은 실제 영어로는 없는 표현이다. 또 미국식 용어를 한국어로 바꿔 말할 때도 모호한 순간들이 있었다. 헤지 풀업, 쉬미 사이드 스탭백, 플레어 스크린, 스텝업 스크린 등 설명하기 힘든 용어들이 다양하다. 그냥 시범을 보이는 게 더 빠를 정도. 이를 많이 공부했던 것 같다.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유분방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는 대부분의 구단이 합숙을 할 때여서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생활이 다 오픈되는 느낌이었다.
Q.농구 통역으로서 가장 큰 고충은?
대인관계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점? 시즌 중에는 아무래도 주말에 경기가 많고 일반 회사 다니는 사람들하고 일정이 다르다 보니 약속 잡기가 힘들다. 보통 우리는 경기와 경기 사이 휴식이 길 때 휴가를 받는데 일반인들은 평일에 약속을 잡는 게 쉽지 않다. 피곤하니까.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안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직장을 다니던 고충이란 건 다 있다.
Q.농구 통역만의 매력은?
농구 통역만의 매력을 꼽자면 역시 현장감이다. TV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현장에서는 다 느낄 수 있다. 높은 데시벨과 선수와 지도자들의 승부욕까지 제일 특석에서 만끽하는 거다.
Q.평소 어떻게 쉬나?
코로나 시국 전에는 비시즌 때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했고 다른 종목들을 직관하러 많이 다니느 편이다.
Q.농구 통역으로서 가장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다른 종목에 비해 농구 통역은 급하다. 시간과 싸움이다. 1분 정도의 짧은 타임아웃 시간 동안 정확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는 시간 안에 설명하기 부족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아직 부족하다. 변칙적이고 다이내믹한 순간에 이를 빨리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Q.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는?
제임스 메이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만나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멋있는 친구다.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잘 맞았고 뭔가 오고 가는 게 있었다. 다른 외국선수들의 경우 내가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느낌이었다면 메이스는 자기가 필요할 때는 강력히 요구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 배려심이 많았다. 제일 성격이 잘 맞았다. 우리 둘 다 직설적 적인 편이었고, 그런 면에서 통하는 게 있어 소통하는데 가장 수월했다.
Q.통역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딱 한 가지 있다. KCC 처음 왔을 때 팀에서 직역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이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화가 많이 난 상태서 사용한 격한 표현을 그대로 여가 없이 전달한 적 있다. 욕이었다. 선수들 표정이 모두 놀랐다. (전)태풍이 형이 빵 터졌다. 시간이 지나고 그 정도까지는 내보낼 필요가 없었다며 주의를 좀 받았다(웃음).
Q.KCC에서 전태풍과 만남이 반가웠다고?
같은 애틀랜타 출신이어서 반가웠다. 미국에 있을 때는 나만 (전)태풍이 형을 알았지만, 이후 같은 지역 출신이란 걸 태풍이 형도 알고 (내) 편의를 많이 봐줬다. 태풍이 형은 지역에서 수여하는 스포츠상을 매년 받던 유명 형이었다. 지역을 빛낸 스포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그때부터 태풍이 형이 익숙했다.
Q.외국인 감독과 함께한 경험이 있다. 감독의 말도 전하느라 바쁘지 않았는지?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바빴다(웃음). 보통 국내 감독이 외국선수한테 얘기하는 것만 전달하면 됐는데 외국인 감독이 말하는 것을 다 통역하다 보니 여유가 많이 없었다. 당시 나도 새 팀에서 적응하는 단계였고 오그먼 감독도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라 둘 다 정신없었다.
Q.오그먼 감독 스타일은?
길게는 아니고 6개월 정도 같이 일했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편하게 해주시는 점이 인상 깊었다.
Q.그전 LG 시절 김진 감독과 그 후 KCC 전창진 감독의 차이점은?
거의 극과 극이다(웃음). 김진 감독의 경우 굉장히 차분하고 학구적인 스타일이라면 전창진 감독은 되게 열정적이고 진두지휘하는 느낌이었다.
Q.연차가 쌓이면서 나아진 점이 있나?
국내 선수들한테 전달하는 것이 확실히 편해졌다. 처음부터 외국선수들한테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오래 지내면서 문화적인 갭이 적어 편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국내 선수들의 성향이나 운동부 특유의 문화에 적응한다고 스스로 조심했다.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Q.외국인 코치와도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외국인 코치가 전달하는 내용도 통역해주고 있다. 2018-2020시즌 버논 해밀턴 코치는 한국에는 잘 없는 선수 개발에 특화된 친구였다. 지금 타일러 가틀린 코치는 D-리그를 전담으로 하면서 선수들 요청에 따라 개인 훈련을 해주고 스카우팅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Q.과거 에이전트 경험이 지금 도움이 되는지?
현재 팀의 스카우팅 업무와 관련해서 지원해주고 있다. 영상도 자주 보면서 도와주고 있다.
Q.라건아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아닌가?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먹는 거에는 호불호가 확실한 친구다. 요새 젊은 선수들은 피로회복에 지장 있다고 붉은 고기를 피하는데 라건아만 예외다. 붉은 고기를 엄청 잘 먹는다. 그리고 쌈장을 과할 정도로 먹는다(웃음). 하지만 양파를 싫어해서 냄새만 맡아도 질색한다.
Q.라타비우스 윌리엄스는 잘 적응하는지?
KBL 신인이 아니라 2년 차여서 한국을 어느 정도 다 파악했다. 관리해주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생활 관리는 거의 손이 안 가는 수준이다. 다만 음식 섭취가 좀 까다롭다. 입도 매우 짧아서 해산물은 거의 안 먹고 소고기 돼지고기도 안 먹는다. 유일하게 닭고기만 먹는데, 맞춰가는 단계다. 작년에 관리를 한 KT 김정래 통역(2020-2021시즌 안양 KGC 소속)에게 많이 물어봤다.
Q.고마운 사람들이 많다고?
일했던 팀마다 (내게) 도움을 준 분들이 많았다. 언급해야 할 분들이 많다. LG 때는 (김)영환이 형이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한참 형이지만 되게 순하고 착하다. 많이 신경 써줬다. KCC 시절에는 (하)승진이 형이 많이 (나를) 도와줬다. 중간에 팀에 합류했고 외국인 감독이 팀을 이끌던 시절이어서 한쪽을 신경 쓰면 한쪽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잘 커버해줬다. (이)정현이 형도 코트에서 (라)건아랑 소통을 잘 해줘서 고마웠다. 워낙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호흡을 보였던 터라 경기 도중이나 전달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움을 많이 줬다. 대표팀에서는 최준용이 개인적으로 고맙다. 아무래도 스태프와 선수가 가깝더라도 어느 순간 함께 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경기에서 지고 다운된 상태서는 선수들끼리 모여 풀 수밖에 없다. 당시 건아가 언어적인 한계로 인해 겉돌았다. 최준용이 그런 면에서 적극적으로 건아에게 다가갔고 잘 케어해줬다. 통역으로서는 굉장히 고마웠다.
Q.올 시즌 KCC 선수단 분위기는 어떤가?
그냥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팀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워낙 비슷한 또래가 많다. 또 다른 팀에 비해 막내와 최고참 간의 갭이 적고 촘촘하다. 세대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선수들 모두 가깝게 지낸다.
Q.올 시즌 KCC 농구의 매력을 꼽자면?
올 시즌 우리 팀이 박빙의 경기에서 많이 이겼다. 기본적으로 ‘위닝 멘탈리티’가 있는 팀이다. 경기 중 리드를 빼앗기거나 지고 있어도 충분히 역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따라서 뒤지고 있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팀이란 걸 생각해 준다면 KCC 농구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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