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창환 기자] “야, 너 이거 찍고 바로 (KCC)갔잖아. 그때 내가 갔어야 하는 건데….” 나란히 표지모델로 나섰던 점프볼을 보며 정영삼이 내뱉은 인사다. 멋쩍게 웃은 강병현은 “와, 유준이랑 유하네요(두 아들의 이름)”라며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정영삼과 강병현은 2008년 10월에 ‘전자랜드의 첫 우승을 이끌 기대주’라는 제목으로 점프볼 표지를 장식한 바 있다. 정영삼, 강병현이 이후 14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나란히 정든 코트를 떠나게 된 이들은 추억이 깃든 점프볼을 함께 보며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본 기사는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오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기분은?
정영삼_홀가분해요. 시즌 끝나자마자 은퇴 얘기도 다 마쳤었거든요.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예요. 그동안 휴가 2개월을 받아도 다음 시즌 대비해서 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기술적인 부분은 어떻게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휴가 기간에도 마음이 불편했었거든요. 제가 편히 못 쉬니 와이프,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았고요. 와이프도 제가 팀에 안 돌아가도 되니 너무 마음 편하대요. 지금이 살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강병현_저는 단장님, 국장님, 감독님 미팅을 거쳐 전력분석이라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어요. 축하 연락도 많이 받았고요. 은퇴가 결정되기 전까지 현역 연장에 대해 고민했는데 구단의 제의를 받아 고민 끝에 결정했죠. 솔직히 말해 전력분석 맡게 된 후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28년 동안 농구만 해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워드, 엑셀, PPT 등 할 일은 많은데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외국선수 영상이나 기록도 찾아야 하죠. ‘미리 배워놓을 걸’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잘하고 싶은 욕심은 큰데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겠죠.
Q.은퇴에 대한 고민은 언제부터 해왔나요?
정영삼_전자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2020-2021시즌) 때부터였어요. 남은 계약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구단 인수 문제도 있었죠. 인수가 안 되면 바로 은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인수가 되면서 1년 더 뛸 수 있었죠. 사실 와이프는 그때 대구 내려가지 말고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끝내라고 했었어요. 저는 오히려 대구로 가는 게 아니었다면 안 왔을 것 같아요. 제 고향이잖아요. 선수생활을 줄곧 인천에서만 하느라 대구 지인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대구에서 한 시즌 치르면서 틈틈이 선배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죠.
강병현-저도 계약만료여서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1년 더 선수로 뛰어도 그 팀이 LG면 괜찮은데 다른 팀이라면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나이도 많은데 다른 팀에서 1년 더 뛰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새로운 감독님, 코치님, 스태프에 적응하다 끝날 것 같았죠. 이 고민에 대해 (정)영삼이 형과 얘기도 했고요. 선수라면 누구나 이런 결정을 하는 순간이 오는 건데 와이프가 제일 아쉬워했어요. 더 할 수 있는데 그만두냐고 했죠. 아이들이 9살, 6살인데 삼촌들 도와주는 일 하게 됐다고 얘기해도 아빠가 아직 선수인 줄 알고 있어요.
Q.조상현 LG 감독은 “선수생활에 단 1%라도 미련이 남는다면 도와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강병현_너무 감사했죠. 저는 감독님과 연고가 없었거든요. 선수생활을 같은 시기에 조금 한 정도였죠. 감독님도 정신없었을 텐데 1년 더 뛰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셨어요. 선수든 전력분석이든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감독님과 면담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죠.
Q.정영삼 선수는 명예롭게 은퇴했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은퇴선수로 공시되지 않았습니다. 팬들도 의아하게 여긴 부분이었는데?
정영삼_시즌 끝나자마자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은퇴가 결정됐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먼저 구단에 얘기해서 은퇴 공시가 됐어야 했는데 아직 사무국이 오랫동안 운영하는 팀이 아니잖아요. 첫 업무다 보니 은퇴동의서에 사인받고, KBL에 공문 보내는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 잘 모르셨던 것 같아요. 이미 마음을 정리했기 때문에 FA 협상기간에 대해 신경도 안 쓰고 있었거든요.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어느 날인가 전화가 빗발치더라고요. 지인이 “너 뭐하고 있어?”라며 알려줘서 그제야 기사를 찾아봤죠. 이상한 기사가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분명 은퇴 얘기를 했는데 제가 선수생활에 대한 의지가 남아있는 것처럼 기사가 나왔죠. 2박 3일 동안 잠들 때까지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어요.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일일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죠. 그래도 가스공사로선 다 처음 해보는 업무였잖아요. 다행히 KBL도 처음이라는 걸 감안해서 은퇴선수 공시로 정정됐죠. KBL, 땡큐!
강병현-역시 쿨하네요(웃음).
정영삼_원클럽맨으로 600경기를 뛰었다는 위안거리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나마 이런 거라도 했구나’ 정도인 것 같아요. 크게 대단하거나 중요한 기록은 아니에요. 한 팀에서 오래 뛰었을 뿐이죠. 그러면서 우승을 했거나 더 대단한 기록을 쌓은 건 아니잖아요. 은퇴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만 우승반지 없는 건 아쉽긴 해요.
Q.은퇴 후 거취는 결정됐나요?
정영삼_음…. 저는 한 팀에서만 뛰었잖아요. 한 감독님과 13년 동안 함께 하기도 했고요. 선수생활하는 동안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스트레스받고 힘들었던 부분도 많았어요. 쫓기듯 선수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저만 힘든 게 아니었어요. 와이프, 아이들도 다 저에게 맞춰줬다는 걸 너무 간과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분간 쉬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요. 와이프도 너무 좋대요. 당분간 돈 못 벌어도 괜찮으니 쉴 만큼 쉬고 일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도 쿨해요. 아들이 초6, 딸이 중2인데 학교에서 아버지 뭐하시냐고 물어보길래 “개백수예요”라고 했대요(웃음).
Q.강병현 선수는 반대로 많은 팀에서 뛰었잖아요. 이 부분에 대한 장단점으로는 어떤 게 있었나요?
강병현_영삼이 형은 모르겠지만 일단 트레이드 얘기 들으면 기분이 정말 안 좋아요. 특히 첫 트레이드 될 때요. 그런데 은퇴 후 돌아보면 각 팀마다 장단점이 다 달라요. 팀을 옮길 때마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달리 말하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각 팀의 문화, 색깔, 생활방식이 다른데 뭐가 됐든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한 팀에서 뛰다 은퇴한 것도 장단점이 있겠죠.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건 기왕이면 트레이드보단 FA 때 돈 많이 받으며 새로운 팀으로 옮겨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에요.

강병현_제가 엄청 큰 기대를 받으며 전자랜드에 입단했는데 실패로 돌아갔죠. 최희암 감독님이 1번을 맡기셨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농구 잘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20분 동안 그냥 뛰기만 하는 기분이었죠. 구단뿐만 아니라 팬들도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쫓기다 보니 더 주눅 들었던 것 같아요.
정영삼_워낙 능력이 좋은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강)병현이가 오게 돼 뭔가 될 것 같은 기대도 들었죠. 그런데 (역할이)겹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Q.전자랜드에서 만나기 전에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병현 선수가 정영삼 선수의 결혼식 사회도 맡았을 정도인데?
강병현_그게 제 인생의 첫 결혼식 사회였어요. 영삼이 형이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죠. 그때부터 연습경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대학 때는 이상백배도 같이 뛰었고요.
정영삼_중학교 코치님끼리 친해서 중학생 때도 연습경기 엄청했어요. 그때는 병현이가 이렇게 클 줄 몰랐죠(웃음). 진짜 ‘애기애기’했거든요. 예쁘장하고 뽀얗고 마르고…. 근데 고등학교 때 보니 키가 이만해졌더라고요. 덩크슛도 자유자재로 하는 걸 보며 ‘얘 뭐야?’ 싶었죠.
강병현_기분 안 좋았죠. 훗날 KCC에서 그렇게 잘 될 줄도 몰랐고요. 기분 안 좋긴 했는데 한편으로 ‘여기를 벗어나는구나’라는 생각에 만세 아닌 만세를 불렀던 것 같아요.
정영삼_전자랜드에서 나가는 선수들은 꼭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아쉬웠죠. 병현이랑 더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고, (서)장훈이 형이 와서 ‘어떡하지?’ 싶은 마음도 있었죠. 장훈이 형 와서 11번 뺏겼어요(웃음). 그래도 팀과 팀을 봤을 땐 윈-윈이었죠. 장훈이 형 온 후 팀 성적도 대체로 괜찮았고요.
정영삼_그때가 제일 아쉬웠던 것 같아요. KCC 이겼으면 우승하지 않았을까 싶긴 해요. 그때 KCC가 너무 강팀이기도 했지만 이길 수 없었죠.
강병현_저는 허벅지부상 때문에 6강은 못 뛰었어요. 4강 막판에 조금 뛰었다가 다시 안 좋아져서 챔피언결정전 중반에 복귀할 수 있었죠. 다행히 신인 때부터 우승할 수 있었고요.
Q.강병현 선수는 총 3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했는데 아무래도 우승을 결정 짓는 위닝샷을 넣은 챔피언결정전(2010-2011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강병현_그렇죠. 저는 그 슛이 조금 짧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영상 보시면 리바운드 들어가려는 모습이 보여요. 그 순간보다 영상으로 다시 보는 지금이 더 짜릿해요. 그때는 경기에 몰입하다 보니 함성소리가 안 들렸거든요. 그 경기가 인생경기였고, 그 슛을 던진 게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정영삼_600번째 경기가 지난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였어요. 제가 시즌 막판에 햄스트링부상을 당해서 조금 쉰 기간이 있었거든요. 앞으로 더 쉬면 600경기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는 경기가 갑자기 많아지더라고요. 결국 막바지에는 청정구역이라고 했던 저희 팀에서도 코로나19 이슈가 생겼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 상태도 좋아지고 600경기를 채울 수 있었어요. 천신만고 끝에 달성한 기록이라 기억에 남아요.
Q.정영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고란 드라기치와의 맞대결입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정영삼_사실 제가 아직도 프로선수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도 드라기치와 맞붙은 경기만큼은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때 ‘국가대표 한 번만 더 하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진짜 마지막 경기가 됐죠. 이후 어깨를 다쳤는데 회복이 쉽지 않더라고요.

강병현_너무 많은데…. 선배 중에는 추승균 감독님이요. (추)승균이 형이 36살에 플레이오프 MVP 받으셨잖아요. 대단한 업적이죠. 같이 운동할 때 보면 너무 신기했어요. 발도 안 빠르고 점프도 많이 안 뛰시는데 투맨게임하고, 풀업점퍼로 또박또박 득점하셨잖아요. 몸 관리, 농구를 대하는 자세 등 운동적인 부분에서 존경할 게 많은 선배였어요. 친구 가운데에는 하승진이죠. 잊을 수 없어요. (하)승진이 덕분에 하킬-강페니라는 좋은 별명도 얻었고요. 좋은 빅맨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인 것 같아요. (하승진과의 세리머니도 너무 보기 좋고 신났습니다)그게 KBL 세리머니의 시초였죠. 세리머니 하면 형들이나 다른 팀 선수들이 “주접떤다”라고 하던 시절이었죠. 말은 그렇게 해도 본인들도 하고 싶었을 거예요. 저희는 그런 소리 신경 안 쓰고 즐겼죠.
정영삼_저는 장훈이 형이요. 팬들은 장훈이 형이 안 좋은 모습만 보여줬던 걸 생각하시겠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에요.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요. 장훈이 형은 대한민국 최고였잖아요. 그런 사람도 코트에 들어가면 리바운드 하나로 더 잡으려는 승부욕을 보여주셨어요. 함께 하는 동안 선수가 농구를 어떻게 대해야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실히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가정생활은 좋지 않았지만…. 하와이 여행 갔을 때도 새벽에 운동하러 나갔다 와서 와이프한테 한 소리 들었었거든요(웃음). (박)찬희도 기억에 남아요. (신)기성이 형, (황)성인이 형 등 좋은 가드들과 많이 뛰어봤는데 찬희는 또 달랐어요. 일단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해요. 예를 들어 팀 훈련이 3시면 2시에 나와서 1시간 동안 혼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요. 야간훈련도 다 하고요. ‘잘하는 선수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죠.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은 선수예요. 저의 통산 600번째 3점슛도 찬희가 어시스트해줬죠. 찬스다 싶으면 기가 막히게 공이 왔어요. 프로에 온 후 잘 풀리진 않았지만 (박)성진이도 인성이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아요.
Q.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는?
강병현_마이카 브랜드, 아이반 존슨, 테렌스 레더, 데이비드 사이먼, 키퍼 사익스 등등 많아요. 그중에서도 아셈 마레이를 꼽고 싶어요. 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나는 선수였거든요. 농구를 대하는 자세도 너무 좋았고요. 대부분의 외국선수들은 트레이너가 시키는 어려운 동작은 안 해요. 근데 마레이는 다 소화하고, 팀 훈련 끝나도 30분을 또 해요. 인성이 좋았고 선수들과도 잘 지냈어요. 코칭스태프를 리스펙트하는 선수였어요. 다음 시즌에도 저희 팀과 함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영삼_식상할 것 같아서 고민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카르도 포웰인 것 같아요. 포웰은 KBL에 올 레벨이 아니었는데 한국에 왔던 선수예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경기 전 스킬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정)효근이도 덕분에 실력 향상이 많이 됐고요. 전자랜드뿐만 아니라 KBL에 끼친 영향력이 큰 외국선수였다고 생각해요.
Q.정영삼 선수가 참가한 2007 드래프트는 ‘황금 드래프트’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동기가 많았습니다.
정영삼_잘난 척하는 것 같은데…. (강병현_해도 돼요!)동기들 가운데 잘하는 선수가 정말 많았죠. 동기들이 오랫동안 선수로 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 갈 수 있을까 걱정했고, 대학 때는 2라운드 막판에 뽑힐 것 같다는 걱정을 할 정도였죠. 고등학교 때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대회에 갔는데 (양)희종이는 부상 때문에 못 왔어요. 그럼에도 (이)광재, (박)구영이, (신)제록이, (이)영현이 등등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았죠. 그래서 학교 돌아간 후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대학 가서 보니 1년 어린 선수들도 너무 잘하더라고요. 병현이도 대학 때 엄청났어요. 스핀무브 덩크슛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강병현_영삼이 형은 알고도 못 막는 농구를 하셨어요. “정영삼은 무조건 왼쪽이야”라는 걸 알고 들어가도 못 막았어요. 스핀무브에 유로스텝까지 자유자재로 스텝을 바꾸셨으니까요. 계성고 3학년 때 백덩크하는 거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죠.

강병현_영삼이 형이 분대장이었어요. 저랑 이훈재 감독님 방 찾아가서 협상하며 특박을 자주 받아왔었죠.
정영삼_분대장인데 바지사장이었어요. 저는 말주변이 없는데 병현이는 너무 좋았거든요. 같이 감독님 찾아가면 병현이가 이걸 다 터니까(?) 저는 꿀만 빨면 됐죠. 덕분에 진짜 편하게 군 생활했던 것 같아요. 허리 아파서 프로-아마 최강전을 못 뛰었는데 우승해서 왔더라고요. 덕분에 6박 7일 휴가 받았죠.

정영삼_선수를 오래 한 것이지 스태프 업무는 초보잖아요.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질 거예요.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병현이는 워낙 스마트한 선수였기 때문에 빨리 배울 것 같아요. 전력분석 업무를 잘 배우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코치나 감독으로도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병현이가 감독이나 코치로 있는 팀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려고요.
강병현_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웃음). 영삼이 형을 정말 어릴 때부터 봤는데 청소년대표, 대학대표, 상무까지 함께 했어요. 단체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나이가 들어 고참이 됐는데 고참에게도 기댈 수 있는 형이 필요하거든요. LG 있을 때는 (조)성민이 형, 밖에 나가면 영삼이 형이었어요. 영삼이 형은 잔잔한 강이에요. 마음의 기복이 없어요. 그래서 지도자 하면 잘할 스타일이죠. 당분간 푹 쉬면서 마음 정리 잘하시고 언제 시간 되면 한잔하고 싶네요. 이 형 잘 될 거예요. 응원합니다.

BONUS ONE SHOT I_“지훈이 형, 감동이에요”
함지훈은 정영삼, 강병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다. 함지훈 역시 정영삼이 참가한 ‘황금 드래프트’ 멤버 가운데 1명이었다. 2007 신인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후 ‘10순위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느덧 내년이면 마흔이지만,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영삼과는 청소년대표팀, 상무에서 함께 했다. 강병현은 함지훈의 중앙대 1년 후배다. 3년 동안 룸메이트를 맡아 누구보다 함지훈의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함지훈 얘기가 나오자,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에피소드를 터뜨렸다.
정영삼_고3 때 같이 청소년대표팀에 뽑혔는데 사실 그때까진 함지훈이 누군지 몰랐어요. 당시 대회에서 경기를 못 뛴 벤치멤버가 저랑 구영이, 함지(함지훈의 별명)였어요. 하프타임 때 나와서 공 몇 번 던져본 게 전부였죠. 함지가 햄버거를 좋아하는데 하루는 하프타임에 1대1 햄버거 내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졌어요. 덩치 크고 느린데 농구를 희한하게 해요. 얄밉게 하는데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이후 매일 했는데 결국 한 번도 못 이겼어요. 매일 맥도날드 가서 햄버거 사줬죠.
강병현_제가 그 형 때문에 탄산음료를 배운 거예요. 지훈이 형이 콜라 엄청 좋아하잖아요. 중앙대 자판기에 있는 콜라는 지훈이 형이 다 드셨다고 보면 돼요. 한 입 남은 콜라도 안 버리고 냉장고에 넣어둘 정도였죠.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는 형이에요. 그런데 저 은퇴한다고 하니까 전화로 수고했다 하더라고요. 별말 아니었지만 진짜 감동받았어요.

강병현은 점프볼이 떡잎부터 알아본 예비스타였다. 중앙대 재학시절 몇 차례고 유망주로 소개하는가 하면, 2008 드래프트를 앞뒀을 때는 하승진 등 드래프트 동기들과 함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색다른 프로젝트는 점프볼 일일기자였다. 강병현은 중앙대 4학년 진학을 앞둔 2007년 1월호에서 점프볼 일일기자 체험기를 썼다. 강병현은 당시 점프볼 기자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던 책 나르기부터 프로농구 현장 투입, 사진 촬영 등 색다른 체험을 했다. “정말 신기한 하루였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해본 적은 가끔 있었지만 내가 직접 기자들을 따라다니며 취재까지 해보게 되다니! 점프볼에 와서 기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실제로 보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필자의 선배였던 강병현 기자가 당시 남긴 소감이었다. 오래된 추억을 꺼내 보여주자 강병현도 흥미롭다는 듯 책을 훑었다. “기억나네요. 와, 얼굴 하얀 거 봐라. 완전 유준이네. 최근에 문경은 감독님이랑 예능 촬영을 했는데 ‘야, 너도 얼굴 많이 갔다(?)’라고 하시더라고요. ‘14년 해먹었으면 된 거죠’라고 말씀드렸어요(웃음).”
#사진_문복주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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