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자농구에서 흔치 않은 205cm의 키로 ‘코끼리 센터’라 불린 김영희. 동주여중, 숭의여고를 거쳐 한국화장품에서 선수생활을 한 그녀는 19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한국여자농구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일조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이때의 공로로 1980년, 1984년에 체육훈장 백마장, 맹호장을 수상했다.
하지만 농구에서는 축복과 같았던 큰 체격이 인생에 있어서는 평생의 걸림돌이 됐다. 그녀는 1987년 11월 대표팀에서 훈련 도중 쓰러지고 말았다. 곧바로 뇌수술을 받았는데 이때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진단을 받고 코트를 떠나야만 했다.
이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말단비대증은 36년간 김영희의 인생을 짓눌렀다. 뇌종양을 비롯한 온갖 합병증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김영희는 지난해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출연했다. 이때 인터뷰에서 “87년도 수술을 받고 답답해서 가까운 백화점에 나가서 구경이라도 좀 할까 싶어 문밖에 나서면 등 뒤에서 남자분들이 ‘와~ 거인이다, 저게 남자야 여자야’, ‘저것도 인간이냐’하면서 웃는 모습에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는 자체도 김영희는 마음에 상처로 남을 뿐이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말단비대증으로 몸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늘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당연히 우울증에 시달렸고 매일 약으로 버텼다.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봉사에도 참여했다. 김영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종 합병증에 생활고를 겪으며 살아온 김영희를 위해 농구계 여러 곳에서 도움이 손길이 닿았지만, 지난해 10월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요양원에서 지내오다가 향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자신의 괴롭힌 말단비대증으로 인한 건강 악화에 생활고를 겪는 와중에도 장애인들을 위했던 따뜻한 마음의 김영희. 체격보다 더 컸던 그녀의 마음은 한국여자농구 역사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WKBL,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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