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열다섯 번째 미생은 성균관대 주장 안세영(G, 181cm)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성장으로 보답한 안세영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희망찬 출발, 머지않아 찾아온 위기
어린 시절 안세영은 농구선수 출신인 어머니(손지선 씨)의 영향으로 농구가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원래 축구에 흥미가 있었던 그는 농구 경기를 보면서 축구와 달리 득점이 많이 나오고 템포가 빠르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권할 수 없었다. 먼저 농구공을 잡아본 선배로서 힘든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기 전에 약속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학생 되기 전까지는 그만두겠다는 말 절대 하지 말라고요”. 단호한 제안에도 그의 대답은 “YES”였다.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운동은 힘들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다. 농구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즐거웠다고.
초등학교 6학년 땐 이철호 코치의 가르침을 받아 코트 위를 자유롭게 누볐다. 포지션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진 않았지만 리바운드, 패스, 득점 등 모든 걸 주도적으로 해냈다. 이에 안세영은 “무서운 게 없었다”며 당찼던 시절을 돌아봤다. 좋은 기억을 지닌 채 동아중으로 진학한 안세영. 하지만 그의 농구 인생에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동아중 코치였던 이상열 코치(現 성균관대 코치)는 운동이 혹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신입생 안세영도 각오를 한 상태였지만, 실제로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상열 코치 밑에서 적응을 마치기도 전, 동계훈련이 끝나자마자 지도자가 바뀌었다. 수차례 반복되는 지도자 교체에 그는 혼돈에 빠졌다.
팀 자체가 온전치 못한 상태였기에 농구공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정도였다. 그는 스킬 트레이닝을 받으며 개인적인 훈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좋은 데로 가고 싶었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환경이 좋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로요”. 걱정 없이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안세영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실력을 키웠다. 이런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학교는 광신이었다.

불안정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광신정산고(現 광신방송예술고)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안세영.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혼란 그 자체였던 중학교 생활에 불어난 체중으로 훈련에 임한 것이 무리가 됐다.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로 인해 영양소가 급격하게 부족해진 것도 부상의 원인이 됐다.
발날이 부러진 탓에 동계훈련에 불참하게 됐고 종별선수권 대회에 맞춰 복귀했지만 이후 반대쪽 발날에 똑같은 부상이 찾아왔다. “그 일 때문에 정말 농구공을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어요. 맨날 재활센터에만 있고 학교 가서 형들 하는 거 보면 하고 싶은데 하지도 못하면서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죠”.
농구를 그만둘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상황. 그때 이흥배 코치가 나타났다. “2학년 때 이흥배 코치님이 오셨는데 제 농구 인생에 진짜 큰 전환점이 됐어요. 부모님이랑 옛날얘기를 할 때도 항상 ‘코치님한테 정말 감사하다, 그분 안 만났으면 아무것도 안 됐을 거다’라는 대화를 나눠요”.
부임 초반에도 농구에 대한 회의감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었다. “(초반에는) 가르쳐주시는 만큼 못 따라갔고 그러던 와중에 주말리그를 치르다 또 손을 다쳤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죠”.
이흥배 코치는 그를 놓지 않았다. 광신은 매년 시즌을 마치면 중, 고등학교가 여행을 떠나는 전통이 있다. 그곳에서 이흥배 코치는 안세영에게 믿음을 줬다. “(저를 부르시더니) ‘작정하고 키워줄 테니까 따라오라고, 따라오면 전혀 다른 선수가 되어 있는 거고 못 따라오면 책임 못 진다’고 하셨어요. 제 인생을 걸었는데 힘들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저는 무조건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고대로 쉬운 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의지할 선배도 없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했지만,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흥배 코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열정을 잃지 않도록 지도하면서 끝까지 밀어줬다. “답답한 부분이 있고 못 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가끔은 혼도 내셨지만, 대신 제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건 절대 없었어요. 평생 감사한 분입니다”.
그는 이흥배 코치 주도하에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실력과 자신감은 배가 됐고 그 노력이 코트 위에서 드러났다. 2018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남고부 예선 삼일상고와의 경기에선 더블더블(26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을, 2018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송도고와의 맞대결에선 31점 6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기량을 마음껏 발산했다.
이후 제48회 추계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남고부 경기에선 득점상을 수상하면서 생애 첫 개인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광신에선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이흥배 코치님이 오신 게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고 대학에 올 수 있던 것도, 기록을 만들 수 있던 것도 다 그분 덕분입니다”.

사실 그는 성균관대 입학 전 걱정이 앞섰다. 가드 포지션 선배로는 이재우(삼성), 양준우(한국가스공사), 조은후(KGC)가, 동기로는 송동훈과 박민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팀이지만 경쟁으로 출전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는 김상준 감독의 농구를 느껴보고 싶었다.
“제 마음을 끌었던 건 조직적인 농구를 중시한다는 감독님의 철학이었어요. 제가 해본 적이 없는 농구고 알아야 할 농구니까요. 다섯 명이 같이 하는 농구를 했던 적이 없으니까 이제 그런 농구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싶었거든요”.
대학에서의 배움은 끝이 없었다. 성균관대만의 로테이션과 수비에 애를 먹었고 저학년 땐 그 부분에서 지적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도 성장임을 인지하면서 흡수하기 바빴다. 벤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땐 엔트리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고 2학년 때도 출전시간이 긴 편이 아니었어요. 경기 끝나고 제가 뛴 거뿐만 아니라 형들이 경기한 거 챙겨보면서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올해 4학년이 된 그는 주장을 맡게 됐다. 이 또한 깨달음을 주었다. 주장이었던 선배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동시에 팀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분에서 주장다운 모습이 갖춰졌다. 플레이오프가 달려있던 대학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6월 8일 경희대전). 작은 실수가 시즌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팀원들을 다잡으면서 승리를 이뤄냈다.
“부담감 아닌 부담감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팀원들 전부 다 경희대한테 질 생각 전혀 없었고 전 경기 전에 딱 한 마디 했어요. ‘오늘 지면 끝인데 지지 말고 우리 하던 거 하면 경희대 이길 수 있으니까 자신감 갖고 하자’라고요”.

수많은 벽을 넘으며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온 안세영. 힘들었던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그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무언가를 잃으면 무언가를 얻게 되는 거 같아요. 중학교 땐 이 키로 센터를 봤는데 그게 리바운드에 도움이 됐어요. 대학을 선택할 때도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에 갔으면 혼자 농구는 했겠지만, 지금 성균관대에서 배운 걸 못 배웠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뭐가 됐든 무언가를 거칠 때 얻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이어 “모든 선수에게 배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프로팀이랑) 몸으로 부딪히면서 연습경기를 하는데 뭔가 많이 느꼈어요. ‘이래서 프로선수가 되셨구나’, ‘감사하게도 프로에 가게 된다면 정말 하루하루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많겠구나’ 이런 걸 깨달았던 거 같습니다”라며 연습경기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긴 시간을 뛰진 않더라도 들어갈 때마다 임팩트 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어느 팀에 가든 하나의 역할을 주신다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스카우트들에게 전하는 진심이다. 먹구름이 걷히고 성장을 위한 햇볕을 쬐고 있는 안세영. 과연 그의 농구에 신바람이 불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