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터처블' 꿈꾸는 최준용의 부활 스토리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1-12-13 11: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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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십자인대를 다친 선수가 돌아오는 데 채 9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리그에서 손꼽히는 활약을 펼치며 서울 SK의 선두권 질주를 이끌고 있다. 최준용의 극적인 부활 스토리다. 회복력이 빠른 몸을 타고난 걸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악동 이미지가 강한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농구를 대하는 최준용의 자세는 진심이었다. 악재를 딛고 돌아온 최준용이 시즌 초반 MVP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본 기사는 점프볼 12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화불단행
화불단행. 불행이나 난처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지난 시즌의 최준용이 그랬다. 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빚어 KBL로부터 출전정지, 제재금을 부과받았던 최준용은 이어 팀 훈련 도중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악재까지 맞으며 시즌아웃 됐다. 이전 시즌에 한 단계 레벨업, 기대 속에 맞은 시즌에 일어난 악재였기에 충격 여파도 더 컸다. ‘농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올해 초 수술을 받았던 최준용의 근심은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Q.지난해 12월 30일 팀 훈련 도중 왼쪽 무릎인대가 파열됐습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면?
A.양지체육관에서 5대5 훈련 중이었어요. 점프하는데 수비하던 동료와 충돌한 후 넘어졌죠. 수비가 너무 터프해서 무슨 라이벌전, S-더비인 줄 알았어요. 다친 후 몇 분 동안 기억이 없어요. 쇼크를 먹어서…. 무릎이 완전히 뒤틀린 느낌이었죠. 한참 누워있다가 팀 동료들이 옮겨줬어요. 아예 못 움직이는 상태다 보니 실려서 방으로 갔죠. 다쳤을 때 이미 ‘끝났다’ 싶었어요.

Q.농구하면서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요?
A.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는데 발등 부러진 적도 있고, 경복고 다닐 때는 (송)교창이처럼 손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었어요. 여수에서 열린 대회 도중 다쳐서 비행기 타고 고려대병원으로 가서 수술했어요. 고려대에서 저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진학은 연세대로 했죠(웃음).

Q.십자인대 파열, 시즌아웃 얘기를 들었을 땐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A.십자인대고 뭐고 할 것 없이 여러모로 안 좋은 시기였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농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죠. ‘다칠 만하다. 안 다치는 게 이상한 거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Q.수술 경과는 어땠나요?
A.너무 아프더라고요. 다리에 호스 끼워서 피 빼고, 링거만 맞았죠. 입원 후 4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엄마는 옆에서 다 잘 드시더라고요.

Q.어머니가 많이 속상해하셨겠어요.
A.가족끼리는 농구 얘기를 안 해요. 제가 그걸 싫어하거든요. 엄마가 그동안 다쳤을 땐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는데 이번에는 많이 우시더라고요.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아요.

Q.‘농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란 걱정도 했을 것 같아요.
A.많이 했죠. 걷는 것 정도가 아니라 발도 디디지 못했으니까요. 화장실도 혼자 못 가는 게 충격이었어요. 가족들이 부축해줘야 이동할 수 있었죠. 한동안 심리적으로 극복을 못했어요. 2, 3개월 정도는 현관문 밖을 못 나갔어요. 집 앞 편의점조차도 안 갔을 정도였죠.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주치지 못하겠더라고요.

Q.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시기는 언제인가요?
A.강성우 재활 트레이너가 집으로 찾아와서 재활훈련을 받았는데 3개월 이후부터 서서히 멘탈이 회복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차 직접 운전해서 재활센터에도 나갈 수 있게 됐죠. (이)대성이 형, (김)효범이 형, 강성우 트레이너, 함께 재활한 신지현 선수가 제 멘탈을 잘 잡아줬어요. 진짜 이분들 없었으면 재활 못했을 거예요.

Q.농구에 대한 간절함도 더 커졌을 것 같아요.
A.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는 스스로가 농구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요. 농구를 좋아하는 열정의 레벨이 다른 선수보다 높아야 농구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 마음은 진심이에요. 부상 당한 후 더 간절해진 건 당연한 거였고, 지금은 다시 농구를 할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해요.

Q.재활을 하다 보면 회복세가 좋을 때도 있지만, 갑자기 더뎌질 때도 있다고 하던데?
A.매일 매일 컨디션이 달라요. 너무 아플 때도, 아예 안 아플 때도 있어요. 아무래도 새로운 운동을 하게 되거나 강도가 높아지게 되면 아프죠. 그래서 강성우 트레이너에게 엄청 짜증 냈어요. 아마 저보다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못하겠다면서 욕도 엄청 했거든요. 아픈데 아픈 걸 계속 시키냐며 못 믿었던 적도 있었죠. 그 형은 진짜 부처님이에요.

Q.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재활을 하다 보면 예민해질 것 같아요.
A.저는 흘러가는 대로 사는 스타일이었는데 재활할 때는 아프다 보니 예민해지더라고요.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요. 예민한 건 재활할 때가 최고조였죠. 그걸 지켜봐야 하는 제 주변 사람들이 제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최준용이 벌써 돌아왔다고?’
시즌 개막이 임박했던 9월의 어느 날. SK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한 영상은 기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빨라야 12월 복귀가 점쳐졌던 최준용이 수원 KT와의 연습경기를 통해 깜짝 복귀한 것. 심지어 속공 상황에서 덩크슛까지 터뜨리며 귀환을 알렸다. 당초 컵대회 출전 예정이 없었던 최준용은 컵대회를 통해 공식 복귀전까지 치렀고, SK의 컵대회 우승에 이은 정규리그 초반 순항을 이끌고 있다.

Q.처음 코트훈련을 하게 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A.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요?)그냥 모든 플레이가 다 안 됐어요. ‘지금껏 재활한 건 뭐였지?’, ‘의미 없는 일을 했나 보다’ 싶었죠. 그런데 코트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점차 감각이 돌아오더라고요.

Q.오프시즌 연습경기를 통해 복귀했습니다. 너무 빨리 복귀한 것 아닌가요?
A.많이 빨랐죠. 제가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 연습할 때 몸이 너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다 보니 욕심을 냈죠. 코치님들도 “이 정도면 컵대회를 연습경기 삼아 조절하면서 뛰어도 될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컵대회도 공식전이잖아요. 다른 선수들 죽기 살기로 뛰는데 저만 연습경기처럼 뛰는 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컵대회는 안 뛰겠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괜찮으니 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Q,당초 복귀 시점은 언제였죠?
A,빠르면 12월, 늦으면 내년 1월이었어요. 그런데 잭 라빈(시카고), 러셀 웨스트브룩(LA 레이커스)은 십자인대 다치고도 말도 안 되게 잘 뛰어다니잖아요. 저는 심리적인 부분도 많이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좀 안 좋아도 ‘할 수 있다’ 마음먹으면 되는 거고, 안 아픈데 ‘아프다’ 생각하면 못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아프면 무작정 쉬고 재활만 해야 하잖아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건 외국선수니까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시스템상 디테일의 차이가 분명 있어요.

Q.디테일의 차이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A.대부분 무릎 수술하고 나면 다리에 기계 끼워서 힘주는 연습하고, 스쿼트만 시키잖아요. 그걸로 데이터 보고 ‘아직 안 된다’라고 결론 내리고요. 저는 코트에서 재활을 가장 많이 했어요. 뛰어다니면서 농구 할 때 쓸 수 있는 동작을 계속하면서 운동했죠. 조금 다른 얘기지만 솔직히 말하면 농구계에서 바뀌어야 할 문화 많아요. 어릴 땐 욕 듣고 맞는 게 너무 무서워서 못 그만뒀을 정도였죠. 하루 종일 뛰기만 한 적도 있어요. 그런다고 농구 잘하면 대성이 형은 지금도 하루 종일 뛸 거예요. 머리 짧게 자른다고 농구 잘하면 전 당장이라도 삭발할 거고요. 이 위치에 오기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해야 한다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Q.연습경기, 컵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데 이어 1라운드 MVP까지 선정됐어요. 시즌 개막 후에는 어떤 부분이 잘 풀렸던 것 같나요?
A.솔직히 1라운드 MVP는 운이죠. 첫 라운드여서 다른 팀의 잘하는 선수들이 주춤한 반면 저는 동료들 경기력이 좋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직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하면 만족 못해요. 야투 성공률이 더 좋았어야 하고, 쉬운 찬스를 놓친 장면도 너무 많았죠. 1라운드 MVP 받았지만 제 경기력은 전부 만족 못하고 있어요.

Q.정효근, 김준일, 송교창 등 유독 올 시즌은 초반부터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선수가 많습니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라는 동기부여도 될 것 같아요.
A.(정)효근이 형은 저랑 완전 똑같은 부위를 다치고 수술한 거라 매일 연락이 와요. “네가 잘해야 나도 포기 안 할 수 있다”라고요.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더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Q.SK 역시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희철 감독이 목표로 내건 ‘부상자 0명’도 오프시즌부터 줄곧 이어가고 있는 중이고요.
A.팀이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부분도 아직 만족스럽지 않아요. 솔직히 우리나라 선수들 실력은 거기서 거기예요. 기회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해요. D리그에 있는 선수들도 1군 와서 35분 뛰면 20점씩 넣을 수 있어요.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일단 시즌 초반에는 SK가 기회를 잘 잡은 것 같아요.

Q.KGC에겐 유독 약했어요. 2라운드 맞대결까지 다 졌습니다.
A.그래서 사람들은 ‘SK가 KGC한테는 약하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뭐, 결과가 그렇게 나오긴 했으니까…. 약하다면 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2라운드 맞대결까진 결과가 그렇게 나왔으니 인정하지만, 다음에 또 만나면 안 질 것 같아요. (KGC에 져서 목표로 내걸었던 홈 전승도 깨졌는데?)그래서 목표 바꿨어요. 홈 1패로요(웃음).

Q.국내선수 득점 1위를 바탕으로 1라운드 MVP에 선정됐어요. 공식 인터뷰에서 별 의미 없는 기록이라고 했는데?
A.여전히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득점 1위하면서 팀도 잘 되면 좋은 건데 팀 성적 안 좋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팀이 1위만 하면 득저 꼴찌해도 된다”라고 했는데?)그땐 너무 나갔던 것 같아요(웃음). 꼴찌는 조금 그렇네요. 그럼 뛸 이유가 없는 거죠. 그래도 (득점)상위권은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Q.사실 2라운드 중반 들어 기록을 찾아 보니 국내선수 득점 2위로 내려갔더라고요. 공교롭게 1위는 이대성입니다.
A.아, 왜 하필 대성이 형이에요. 뭔가 기분이 안 좋으면서도 좋네요. 다른 선수가 아닌 대성이 형이라 다행인 것 같아요. 그래도 팀 성적은 저희가 훨씬 좋잖아요.

언터처블을 꿈꾼다
최준용은 프로 입단 2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꿈을 이뤘다. SK로선 무려 18시즌 만에 달성한 V2였다. 최준용 역시 기쁨을 만끽했지만, “생각만큼 기쁘진 않았다”라는 게 그의 회고였다. 우승을 해도 만족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와, 쟤한테는 안 되겠다.’ 선수가 인정하는 선수가 돼 팀 우승의 주역까지 되는 것. 최준용이 궁극적으로 그리는 목표였다.

Q.이대성과 굉장히 친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단순해요. 그냥 농구죠. 농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했어요. 대표팀에서 함께 운동하다 친해졌고, 그 이후 제가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요. 농구는 제가 더 잘하지만 농구 외에 배울 게 많은 형이에요.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Q.이대성은 안정적인 환경 대신 G리그에 도전했던 부분을 높이 평가받았잖아요. 옆에서 지켜봤을 땐 어땠나요?
A.아직 정신 못 차린 형이라 또 갈 것 같아요(웃음). 저도 도전해보고 싶죠. 당장 내년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볼 생각이 있어요. 부딪쳐보고 싶은 거죠. 대성이 형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쳐요. 항상 “우리도 가능하다”고 말해주세요.

Q.시즌 MVP에 대한 욕심도 있나요?
A.주신다면 당연히 욕심나죠. 근데 굳이 나서서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제가 흘러가는 대로 사는 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다 보면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상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받는다고 기분이 크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기분 좋아지는 건 노래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상 받는다고 연봉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올라가죠)아, 그럼 받아야겠네요.

Q.경복고 시절 추계연맹전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후 인터뷰에서 “케빈 듀란트처럼 되고 싶다”라고 했잖아요. 당시 등번호도 듀란트를 따라 41번에서 35번으로 바꾸기도 했고요.
A.지금도 좋아해요. 지구에서 제일 농구 잘하는 선수잖아요. 주위에서 비슷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완전 다르죠. 레벨도, 스타일도 다 달라요. 농구를 대하는 자세나 멘탈 때문에 좋아하는 건데 NBA 선수는 웬만하면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스테판 커리(골든 스테이트),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도 좋아해요.

Q.프로에 입단할 때도 등번호가 35번이었는데 2년차 시즌부터 2번으로 바뀌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별명이 ‘초이(CHOI)’잖아요. 계속 그렇게 불리다 보니 2번을 쓰게 된 건데 하고 보니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의미가 많더라고요. 브이도 되고, 피스할 때도 손가락 2개 펴잖아요. 행운의 2달러도 있고요.

Q.최준용의 시그니처하면 달러 세리머니잖아요. 어떤 계기로 하게 된 건가요?
A.저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달러 문신 새기기 전부터 했던 건가요?)세리머니 보다 문신이 먼저였죠. 뭐 날려줄 것도 없는데 그렇게 했겠어요?

Q.유관중으로 전환됐는데도 ‘세리머니 장인’ 시절만큼 세리머니를 하진 않는 것 같아요.
A.득점을 해야 말이죠. 유관중된 후 득점이 많이 줄어서…. 차차 해야 하는데 요새 보면 개나 소나 다 세리머니 하더라고요. 골밑슛만 해도 세리머니 하던데 임팩트 있는 상황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바운드로 세리머니하는 선수도 있더라고요. 농구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농구 작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거예요(웃음).

Q.개인적으로는 달러 세리머니보다 활 세리머니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A.LOL(게임)을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애쉬라는 캐릭터가 활을 쏴요. 게임 도중 ‘이거다’ 싶었어요.

Q.KT 위즈 야구선수들도 활 세리머니를 하던데 구단의 공식 코멘트는 “‘애쉬와 같은 명사수가 되자’라는 의미”였어요.
A.저 따라한 거겠죠. 강백호(KT 위즈)가 저희 집에 자주 놀러와요. LOL도 같이 하고요.

 

 

Q.최준용의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요?
A.통합우승이죠. (강)백호 있는 KT위즈도 했잖아요. 저는 솔직히 프로 온 후 첫 우승(2017-2018시즌) 했을 때 생각만큼 기쁘진 않았어요. 대학 때 우승한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죠. 제가 잘해서 한 우승이 아니라 삔또(?) 상했나 봐요. (애런 헤인즈 유니폼 가지고 와서 세리머니 한 걸 봐선 굉장히 신난 것처럼 느껴졌는데?)즐길 건 즐겨야죠. 울컥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올 시즌에는 제가 잘해서 통합우승해야죠.

Q.더 멀리 내다봐서 선수 최준용, 사람 최준용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A.다른 선수들이 봤을 때 ‘와, 쟤한테는 안 되겠다’ 할 수 있는 레벨의 선수가 되고 싶어요. NBA 선수들이 듀란트 바라보는 것처럼 같은 선수라도 더 높이 있다는 게 느껴지는 존재 있잖아요. 연예인을 예로 들면 GD가 연예인의 연예인이잖아요. ‘농구계의 GD를 꿈꾼다’ 이렇게 쓰진 마시고요.

Q.허웅-허훈 형제가 농구 인기를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TV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A.진짜 두 선수가 한국농구를 위해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형제 덕분에 한국농구 인기가 높아진 건 사실이고요. DB, KT랑 경기할 때 보면 형제 팬들밖에 안 보여요. 그런 활동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선수는 일반인들에게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직업이잖아요. TV에 많이 나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죠. TV 나오고 농구 못하면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둘 다 훈련할 거 다 하고 자기 시간 할애해서 나가는 거예요. 안 좋은 시선으로 안 봤으면 해요. 그 누구보다 농구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라는 건 제가 잘 알고 있어요. (허)웅이 형, (허)훈이는 제가 아는 사람 중 농구에 대한 열정은 TOP5에 들어요. 제가 “훈이 복귀하면 곧바로 20점할 거야”라고 했는데 진짜 했잖아요. 괜히 허재 아들이 아니죠. 우리 아빠가 허재였으면 전 지금 NBA에 있었을 텐데….

Q.최준용 선수는 TV 출연할 생각 없나요? 예능감이 충만해서 잘할 것 같아요.
A.나중에 기회가 된다면요. 저는 농구를 더 잘하는 게 우선이고요. 웅이 형, 훈이도 농구를 잘하니까 TV 나갔을 때 빛나는 거잖아요. 물론 열정은 저한테 한참 안 되지만…. 대성이 형, 효범이 형의 열정은 저보다 높다고 인정해요. 제 목표가 이 형들 열정 따라잡는 거예요.

 

최준용 프로필_1994년 4월 4일, 포워드, 200cm/95kg, 회원초-마산동중-경복고-연세대,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사진_홍기웅 기자, 백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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