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중은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는 6월 예정된 NBA 드래프트 참가 뜻을 밝혔다. 현재 데이비슨대 3학년인 이현중은 대학 무대 1년을 남겨두고 NBA 도전을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 대학농구 무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이현중은 공식적으로 NBA 문을 두드리게 됐다. 이현중이 NBA에 입성하면 2004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된 하승진에 이어 한국인 2호 NBA 선수가 된다.
NBA는 해외 타 종목 리그와 달리 여전히 한국인에게는 난공불락으로 꼽힌다. 신체적인 조건이 미국, 유럽 선수들에게 월등히 뒤지기 때문이다. 많은 유망주들이 늘 도전에 인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역대 한국인 가운데 NBA 도전 사례는 얼마나 있었는지 알아보았다.
한국인으로서 첫 번째 NBA 진출의 꿈은 지난 2004년 하승진이 실현시켰다. 하승진은 2004년 6월, 2004-2005시즌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6위로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로 NBA 입성을 일궈냈다.
NBA에서 뛴 두 시즌 동안 46경기에 출전, 경기당 평균 1.5점 1.5리바운드라는 기록이 말해 주듯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결국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 된 직후 방출됐다. 이후 D리그 애너하임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국내로 유턴했다.

아시아 선수로 G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았던 소속팀 서울 SK에 합류했다. 이후 방성윤은 다시 미국진출을 꾀했지만 매 시즌 국내프로농구 무대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미국으로 나가지 못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투웨이 계약(G리그와 NBA팀 동시계약)이 없어 NBA 진출의 길이 좁았던 점도 빅리그 도전을 가로막는 방해요소가 됐다. 김주성은 2007년 토론토 랩터스의 트레이닝캠프에 초청됐지만, 무릎 부상으로 중도 포기했다.

최진수는 한국 최초로 NCAA 디비전 I 대학에서 뛴 경험을 지닌 선수다. 그런 최진수에게도 미국무대는 쉽지 않았다. 체격조건도 열세였지만 농구 외적인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에서 운동만 하면서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무작정 건너간 것이 큰 장벽이 됐다. 미국에서 운동은 물론 학업까지 병행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2학년 시즌에 학사문제가 터졌고, 고민 끝에 한국무대 유턴을 선택했다.


모두가 단 1분만이라도 뛰면서 겨루고 싶어하는 무대다. 이미 많은 이들이 도전했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 한국 농구의 NBA 진출 역사의 한획을 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이 길을 걷는 여정 자체가 한국농구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란 점에서 이현중의 도전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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