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멜버른 올림픽 대표선수 선발

/ 기사승인 : 2022-02-17 14: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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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⑬
▲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농구대표팀. 왼쪽부터 김정신, 백남정, 최태곤, 안병석, 김형일, 김영수, 김춘배, 고세태, 안영식, 김영기, 조병현. 출처=韓國籠球八十年

 

김영기는 타이베이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국내에서 입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농구선수로서 성장하는 데 치명적인 공백을 감수해야 할 위기를 맞았다. 그가 타이베이에 가 있는 동안 고려대 아이스하키 팀이 불상사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한 징계로 학교는 1년 동안 전 종목 출전금지 명령을 받은 것이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팀은 1956년 1월 23일 한강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결승에서 연세대와 경기했다. 2-3으로 뒤진 가운데 시도한 고려대의 슛을 심판이 노골로 처리한 데 격분한 고려대 선수 두 명이 본부석에 난입해 고등부와 일반부 우승팀에 수여하려는 트로피를 파손했다. 고려대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고, 당연히 여러 가지 징계가 따랐다.

김영기는 아찔했다. 전 종목 출정정지니까 당연히 농구부도 포함됐다. ‘(1956년에 열리는)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건가?’ 고려대 농구팀은 대표선수 선발경기에 참가할 수 없으니 태극마크를 향한 김영기의 열망도 구제받기는 어려웠다. 김영기는 그때까지 가슴 속에 품어온 야망이 일시에 무너지는 기분을 맛봤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것, 이 목표는 그 해 김영기의 지상과업이었다. 그것이 좌절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영기에게나 우리 농구에 모두 다행으로, 그는 멜버른 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김영기가 고려대에 진학한 이후 줄곧 멘토 역할을 해준 인물, 주기선의 노력과 배려 덕분이었다.

고려대 농구팀은 어느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이때 주기선은 ‘전고대(全高大)’ 팀을 결성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고려대학교 농구팀으로는 출전할 수 없지만 졸업생과 재학생 혼성팀이 참가한다면 받아준다는 대한농구협회의 ‘내약(內約)’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고려대 혼성팀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훈련이 부족했고, 선수들끼리 손발을 맞출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대에는 대표선수로 뽑을 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 농구계의 중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기선이 전고대 팀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사실 김영기를 생각해서였다.

주기선은 헌신적이었다. 그는 선배를 찾아다녔다. 산업은행 농구부에서 은퇴한 이인성, 김성태를 설득했고 오래 전에 유니폼을 벗은 이혜재에게도 참여를 권했다. 동분서주한 보람이 있어 김영기를 중심으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팀이 구색을 갖추게 됐다. 팀이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배들은 김영기만 바라보고 헌신했다. 훈련비도 없는 팀. 선수들이 허기질 때마다 주기선은 시계를 풀어 맡겼다. 그의 시계는 전고대 팀 선수들의 빈속을 채우기 위해 우동가게와 설렁탕집을 전전했다.

주기선은 경기 중에도 김영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슛을 할 기회가 있어도 김영기에게 양보했다. 다루기 어려운 공을 살려내 김영기에게 어시스트했다. 그 결과 빛나는 득점 장면을 김영기가 독점할 수 있었다. 전고대 팀에서 김영기는 가장 빛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주기선은 기꺼이 조역을, 아니 엑스트라 역할을 감내했다. 김영기는 고마운 마음을 훈련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도와주는 선배들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어떻게든 멜버른에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표선발전이 끝났을 때 김영기는 명단의 아랫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름을 확인한 김영기는 쏜살같이 주기선에게 달려갔다.

“형!”
“정말 기쁘다.”
“정말 감사해요, 형!”
“뭘, 다 실력인데.”
주기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쪼록, (멜버른에) 가면 모교를 위해서라도 힘껏 싸워야 해! 이를 악물고 말야!”

지금 읽어도 가슴 찡한 이야기다. 고려대 농구부가 명문임을 모르는 농구팬은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스포츠 부문에서 이 대학의 기여는 일일이 예를 들어 말하기 어렵다. 나는 고려대 스포츠의 가장 큰 위업을 수많은 트로피(우승기록)에서 찾지 않는다. 고려대 스포츠는 수많은 인재(스타)를 키워 배출했고, 이들은 경기 부문 뿐 아니라 현역 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각 스포츠 영역에서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했다. 고려대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이 연세대이다. 김영기는 고려대 스포츠의 대표 격이다. 스포츠의 영역에서 그는 농구를 밑바탕 삼아 실로 전인적인 활약을 했다. 그가 금융인으로서도 성공한 인물이며, 체육행정가로서 우뚝하다는 점은 별개로 친다 해도.

인생은 아이러니. 고려대 진학이 소년 김영기의 가장 큰 꿈은 아니었다. 그의 진학에는 우여곡절이 따랐다. 시곗바늘을 잠시 뒤로 물리겠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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