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듀얼 가드(Dual Guard)’, 1번 포인트가드와 2번 슈팅가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뜻하는 말로 ‘콤보 가드(Combo Guard)’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적인 표현이고 일반적으로 듀얼가드라고하면 리딩, 패싱게임보다는 돌파, 슛 등 공격에 좀더 비중을 두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포인트가드를 뜻한다.
한창 농구가 인기가 좋았던 농구대잔치, 프로농구 초창기 시절까지만해도 1번하면 퓨어 포인트가드가 각광받았다. 듀얼가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숫자만 놓고보면 더 많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주희정 등 정통 포인트가드를 위협할 눈에 띄는 듀얼가드가 적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신기성 같은 경우 현재의 시선에서 보면 퓨어와 듀얼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1번이었다.
넓은 시야, 패싱센스 등 퓨어 1번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더불어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다.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경우에는 듀얼가드 쪽이 성장에 더 편한 경우도 많다. 당시에는 신장이 작으면 어쩔 수 없이 1번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때문에 슈팅가드, 포워드 성향을 가진 선수가 포인트가드를 맡기도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않다. 공격 성향이 강한 1번 중에는 학창시절 에이스 역할을 했던 선수가 많다. 자신이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에 익숙해져있다가 갑자기 팀원들을 조율하려고하니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다. 림만 쳐다보면서 슛쏘고 돌파하던 선수가 자신이 아닌 팀원들의 경기템포까지 조절하면서 리딩을 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KBL은 듀얼가드 전성기로 불린다. 주전급 정통 1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듀얼가드 일색이다. 과거처럼 억지로 끼워맞춘게 아닌 일찍부터 듀얼가드로 자리를 잡고 성장한 것을 비롯 팀시스템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다. 전략‧전술 등에서 많은 부분을 포인트가드에게 의지하던 예전과 달리 팀원들이 함께 나누는 경우가 많아 듀얼가드가 활약하기 한층 좋아졌다.
여자농구는 예전부터 사정이 조금 달랐다. 좀더 아기자기하다는 점에서 퓨어 1번과 더불어 이것저것 고르게 할 수 있는 올어라운드형 1번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현재 트랜드처럼 공격력을 앞세워 일찌감치 명성을 날리던 듀얼가드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김지윤(46‧169c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지윤은 그야말로 가공할 득점력을 뽐내던 듀얼가드였다. WKBL 통산 499경기(정규리그, 플레이오프 합산)에 출전해 총 7,418점, 2,879어시스트 1,730리바운드, 497스틸을 기록했다. 득점형 1번답게 득점왕도 차지한바 있으며 어시스트 타이틀을 무려 10회나 거머쥐었다. 2004년 겨울리그에서는 금호생명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며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농구대잔치 시절 SKC 기록은 빠져있다는 점이다. 좀더 일찍 프로가 시작되었다면 그렇지않아도 엄청난 누적기록은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김지윤의 수상내역에서 눈에 띄는 기록은 10회의 어시스트왕 타이틀이다. 공격성향이 강해 ‘탱크가드’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로 대표적인 듀얼가드였지만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엄청난 숫자의 어시스트를 뿌려댔다. 듀얼가드가 이정도로 어시스트왕을 휩쓰는 경우는 이전은 물론 지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김지윤이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냉철한 리딩, 컴퓨터같은 패스를 자랑하던 선수는 아니었다. 패스, 리딩을 못한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어디까지나 주옵션은 공격을 통한 돌격대장 역할이었다. 끊임없이 내외곽을 휘젓는 플레이로 수비수를 몰고다니다가 빈틈이 생기면 빈공간 동료들에게 패스를 잘줬다. 얼마나 부지런하게 코트를 누비고 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한방울의 연료마저 쥐어짠채 최고 속도로 달리며 기관총과 대포를 쉴새없이 쏘아대던 작지만 단단한 탱크! 김지윤의 현역시절 플레이가 바로 그랬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경기도와 WKBL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유소년 농구지도를 하고 있어요. 은퇴선수들이 많이 참여하는 일이기도해요. 현재 그것 외에는 평범하게 7살 딸아이 키우면서 주부로 살아가고 있죠.
Q.와우! 탱크가드에게 수업을 받다니 영광일 듯 해요.
하하핫…, 알아보지도 못해요. 제가 누군지.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것인가요?
초등학교 3학년때 마산시에서 육상대회가 있었어요. 제가 거기에 출전해서 100m, 50m, 넓이뛰기까지 3관왕을 차지했어요. 그때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마침 학교에 농구부가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빠르고 운동신경 좋다고 농구를 적극 추천하셨어요. 그래서 농구의 길로 처음 접어들게 됐죠. 사실 그때는 잘 달리기는 했지만 키도 작고 별다른 것은 없었던 듯 싶어요. 어찌어찌하다가 농구공을 잡게 됐고 그게 인생이 된 것 같아요.
Q.본래부터 가드 포지션을 맡았나요?
고정적으로 1번을 맡지는 않았고 슈팅가드처럼 플레이했어요. 사실 당시는 배우는 과정이라 포지션이 확실하게 정해지지도 않았고 저는 키가 작으니까 앞선에서 뛰어다녔던 것 같아요. 그때 저희 초등학교 농구부가 워낙 강했어요. 소년체전에서 우승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그냥 묻어가는 개념으로 팔만 흔들고 다녔어요.
Q.농구를 배우면서 ‘와, 저선수는 정말 잘한다’고 느낀 또래가 있을까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인가 대전여상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그때 장선형 선수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정말 잘했어요. 뭐랄까.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농구를 하는데 여유가 넘치고 경기력 자체가 대단하더라고요. 저는 발바리처럼 빨리 그리고 많이 뛰어다니는 스타일이잖아요.(웃음) 그런데 장선형 선수는 좀 달랐어요. 막 빠른 스타일은 아닌데 할 것은 다하면서 공수의 맥을 딱딱 짚는다고 할까요. 공격할 때든 수비할 때든 있어야 할 곳에는 항상 있더라고요. ‘어, 언제 왔지?’싶을 정도로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어요. 공격도 잘하고 수비도 잘하는. 프로에서도 물론 잘했지만 학창시절에 봤던 만큼은 아니에요. 프로에서는 수비나 궂은일 열심히 하면서 공격에 참여하는 블루워커나 살림꾼이었잖아요. 당시에는 그냥 플레이 자체에서 빈틈이 없는 완전체 에이스같은 느낌이었어요.

Q.빠른 발과 돌파력이 특기였어요. 지금으로보면 듀얼가드로 보면 되겠죠?
2번처럼 플레이하면서 포지션은 1번이었죠. 틈만나면 돌파하고 슛던지고 그러면서 저한테 수비가 몰리면 빈자리 여기저기에 패스주고요. 당시는 아기자기하고 기술적으로하는 1번이 많았는데 저처럼 파워풀하게 힘으로 부딪히고 마구 뛰어다니는 돌격형 가드는 보기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된 것도 있는 듯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같은 유형의 가드가 되게 많아진 것 같아요. 하나같이 파워풀하고 빠르고…, 남자농구든 여자농구든 가리지않고 듀얼가드 전성시대가 온듯한 느낌도 들어요. 에너지 넘치는 듀얼가드가 한두명이 아닌지라 막 그런 선수들끼리 충돌하면서 농구하면 전쟁터에 온 것 같아요. 폭격기에, 탱크에,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등, 정말이지 어떨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요.(웃음) 일찍부터 체계적인 몸관리가 되다보니 하나같이 신체적 능력이 무척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불어 저희 때는 주전 위주로 경기를 많이 소화했는데 지금은 백업 선수들도 기량이 좋아서 로테이션을 잘 돌리잖아요. 체력적인 부담도 적어져서 그런지 잠깐 동안에도 엄청나게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Q.빠른 76이세요. 75년생들과 동기이신거죠?
그렇죠. 75년생들하고 함께 농구를 했죠.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주로 학번으로 선후배관계가 이뤄지다보니까 나이가 더 많은 선수가 후배가 되기도하고 그런 경우도 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종애가 저보다 한 살많더라고요. 학번으로는 후배가 되지만요. 농구할 때는 몰라도 사회나와서는 편하게 말놓으면서 지내자고해도 그러지않네요.(웃음) 종애랑은 지금도 가끔 안부정도 묻고있어요.
Q.농구를 하면서 롤모델이 있었을까요?
의미가 없는게 제가 농구를 배워나갈 때는 참 잘하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아, 나는 언제 저 언니들처럼 농구할까’싶을 만큼 기술적으로 혹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가는 선배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 높은 벽같이 느껴진 적도 한두번이 아니죠.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고요. 특히 (전)주원 언니같은 경우는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득점, 리딩, 패싱능력 등 가드가 갖춰야할 모든 영역에 걸쳐 정말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잖아요. 리더십도 좋고요. 선수시절에도 완벽했고 이후 지도자 생활을 잘해나가시는 것을 보면서 늘 감탄하고 놀라게되요. 지금도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언니에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여자농구계의 레전드가 아닐까 싶어요.
Q.탱크가드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자선수 입장에서는 완전 좋은 별명까지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찌보면 무식하게 농구했다는 뜻이니까요. 저희 엄마도 맨날 저한테 ‘야, 그놈의 노가다 농구 힘들지도 않냐’고 말했던 기억도 나요.(웃음) 좀 더 편하고 쉽게쉽게 농구했던 선수들도 있던 반면 저는 그야말로 우당탕탕 치고나가서 힘들게 플레이했죠. 그래도 파워도 있고 탄력도 있고 스피드도 좋았던지라 그렇게 노가다 농구도 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멋있는 별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그렇게 플레이하라고하면 못할 것 같아요. 아니 또 젊어지면 되려나요…?(웃음)
Q.국내에서는 파워풀한 가드로 이름이 높았는데 국제대회에서는 어땠을까요?
사실 저는 국제대회에서는 국내에서만큼 활약을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일단 주원 언니가 굳건하게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고 저는 중간중간 백업 역할을 했죠. 그러다가 주원 언니가 은퇴한 이후 참가했던 체코 세계선수권대회인가 거기서 좀 많이 뛰었던 기억이 나요. 국제대회에서는 제 스타일이 잘 먹히지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원체 힘좋고 빠르고 사이즈까지 좋은 선수가 많은지라 상대적으로 작은 제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한계가 느껴졌어요. 세계 무대의 벽은 참 높은 것 같아요.

Q.1994~95 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했고, 이후 SKC의 세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의 주역이었습니다. 정말 그 시절 신바람나게 농구했을 것 같아요.
그랬죠. 저를 믿고 신인 때부터 중용해줬던 팀에서 처음부터 신바람 나게 뛸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고 (유)영주 언니, (정)선민 언니, (강)현옥 언니 거기에 (이)종애까지, 전체적 밸런스가 참 탄탄했어요. 센터, 포워드, 가드의 조화가 좋아서 모든 플레이에서 각자가 플러스 효과를 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경쟁팀인 삼성생명, 국민은행 등도 만만치 않았어요. 삼성생명은 정은순, 박정은, 왕수진, 손경원, 한현선 국민은행은 박현숙, 이강희, 한현 등 내외곽에 걸쳐 빼어난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SKC가 강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큰 경기에서 만나면 서로가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등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이른바 전국시대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Q.1997~98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을 확정지은 다음 날, 팀이 해체되었습니다.
배신감, 허탈감 등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프랜차이즈 개념이 강했어요. 내가 입단한 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축하받으면서 은퇴하는 것은 많은 선수들의 꿈이잖아요. 원하지않게 트레이드만 당해도 뭔가 내집에서 쫓겨난 기분도 들고 그랬다는 선수도 많은데 하물며 이건 팀 자체가 없어진 것이니까요. 하나같이들 힘들었을거에요. 경기 출전수가 많지 않던 백업 멤버들 중에는 그대로 강제 은퇴하는 선수도 생겼을 것이고, 이래저래 눈물바다였죠. 기량이 한창 때거나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은 타팀으로라도 갈 수 있지만 당장 얼마 전까지만해도 치열하게 경쟁했던 팀으로 들어간다는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슬픈 기분이 들었을거에요. 우승까지하면서 얼마나 팀이 잔치 분위기였겠어요. 우승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죠.
Q.국민은행에서 잘하기는 했는데 WKBL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사실 상당수 분들께서 제가 국민은행에 가서 잘 못했고 팀과도 서로 삐걱거렸던 것으로 알고 계신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마도 우승을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 저나 팀이나 서로 불편하고 그런 것은 없었어요. 오히려 저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기량적 전성기였죠. 정규리그는 우승했는데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요. 확실히 농구는 골밑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드는 팬들을 즐겁게하고 센터는 감독을 즐겁게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당시 가드, 포워드진은 나쁘지 않았는데 경쟁팀들과 비교해 센터가 좀 약했어요. 지금 국민은행봐요. 박지수가 딱 버티고 있으니까 팀 자체의 무게감이 다르잖아요. 다른 포지션까지 다 살아나고요. 결론은 국민은행과 저는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개인 성적은 좋았다는 것. 하지만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내지못해서 오해도 생기고 그런 것 같아요.
Q.오히려 신생팀 금호생명 이적 후 첫 우승을 차지하셨어요.
외국인선수를 2명을 쓸 수 있던 시절이었다는 점도 영향이 컸다고 생각되요. 제가 가기 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안좋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가면서 밸런스가 맞춰져서 성적이 잘났던 것 같아요. 외국인선수들이 포스트를 든든하게 지켜주면서 제가 휘젓고 다니기 매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거든요. 그때 외국인선수들이 센터 셔튼 브라운(193cm), 포워드 디애나 잭슨(188cm)이었어요. 높이는 물론 기동성까지 좋아서 넓은 활동반경에서 위력을 뽐냈던 기억이 나요. 전천후 트윈타워였다고나 할까요.
Q.함께 뛰어본 외국인선수 중 인상 깊었던 선수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랑 제일 잘맞았던 선수는 셔튼 브라운이었어요. 국민은행에서 정규리그 우승할 때도 함께 했고 이후 금호생명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같이한 선수에요. 이래저래 인연이 깊죠. 정통센터 스타일이었어요. 캐나다 국가대표 출신인데 체격도 크고 운동능력까지 겸비해서 제 패스를 참 잘 받아 득점해줬던 선수에요. 가드 입장에서 플레이하기가 편했죠. 국민은행 시절만 해도 루키 티가 났는데 금호생명에서는 노련미까지 장착해서 기량이 더 업그레이드 됐어요.

Q.중국 여자프로팀에서 영입 제의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SKC시절에 팀이 한번 해체되어서 이래저래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데, 말년에 열심히 뛰던 신세계마저 팀이 해체되어버리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다른 선수들은 한번도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저는 두 차례나 겪게 된 것이잖아요. 더 이상 국내에서 농구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중국에서 좋은 조건에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좋은 기회다 싶어서 꼭 한번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연맹소속 선수더라고요. 이런저런 제약이 걸리면서 못 가게 되어서 좌절이 컸어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저를 그렇게 괴롭히던 안면마비증세가 그때 왔어요. 물론 연맹 입장도 이해는 가요. 신세계가 해체가 되면서 대체할 신생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빠지면 곤란한 부분도 있었을거에요. 연맹으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고 봐요. 저는 저대로 제 상황이 있었고, 서로 안 맞았던 거죠.
Q.2012~13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셨어요. 안면마비 후유증이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나외환 창단했을 때 몇게임 못뛰고 은퇴하고 말았죠. 의욕도 엄청 떨어져 있었고 안면마비로 인해 정상적으로 경기력을 소화할 몸 상태가 아니었어요. 지금까지도 살짝 후유증이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안면마비가 왔던 초기만 해도 금세 나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가더라고요.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서 테이핑을 하고 경기를 뛰었어요. 얼굴 한쪽이 마비되어서 눈이 안감길 정도니까 말 다했죠. 얼굴에다가 테이핑을 했어요. 그때 사진 보면, 어찌 그랬을까 싶기도 해요.
Q.2년간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서 코치 생활을 하셨어요. 선수 시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전통있는 신한은행이라는 좋은 팀에서 임달식 감독님께 많은 것을 배워나갔죠. 코치로서는 초보니까 이것저것 배울 것 투성이였습니다.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퓨처스리그를 제가 감독을 해서 이끌어 본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멍한 부분도 있었지만 경기를 거듭하다 보니까 노하우도 생기고 참 소중한 시간이었죠. 그래도 3위까지 갔으니까 처음치고는 나름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저랑 같이했던 선수들과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Q.지금 리그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 중에서 본인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선수가 있나요?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요즘은 워낙에 선수들이 파워풀하고 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선수를 콕 찍어서 얘기를 못하겠어요. 단단하고 빠른 듀얼가드가 원체 많아졌으니까요. 시대가 바뀐건지 아님 제가 나이를 먹어서 조금 물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선수들 몸 싸움하는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에요.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중년이 되어 예전의 패기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후배들을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기술적인 부분은 예전 선배들도 대단했지만 몸이나 신체능력 만큼은 지금 선수들이 확실히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Q.마지막으로 여전히 농구선수 김지윤을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농구장을 떠난지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기억하고 궁금해하시는 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코트에서 마구 뛰어다니던 탱크가드였지만 지금은 7살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주부와 유소년 농구 지도자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새해가 밝았는데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이 많은 듯 싶어요. 올 한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물러가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래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 제공,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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