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장 근처를 전전하며 눈치를 보던 김영기는 며칠이 지난 뒤 축구부 학생들 틈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축구공을 들고 다니는 후보 선수도 햇병아리 선수도 아니고 ‘달걀 선수’가 되어 있었다. 축구부원은 40명이 넘었다. 이 가운데 반수는 김영기와 같은 처지였다. 농구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축구부에 들어가 운동하고픈 마음을 달래려는 학생들이었다. 김영기는 열심히 운동했다. 달리기부터 시작해서 공을 차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성의 있게 배우고 익혔다. 축구도 재미가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을 믿고 최선을 다해 훈련했다. 그는 매일 수업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장이 그를 불렀다.
“야, 김영기!”
“예!”
“너, 정말 축구를 하고 싶니?”
“…….”
“인마, 얘길 해봐!”
“예!”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암만 생각해도 너에겐 소질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
“첫째, 키가 너무 작단 말야. 어제 코치도 그런 말 하더라.”
김영기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키는 차차 커질 게 아녜요?”
“하하… 인마, 누구 키는 너 자라는 동안에 안 커진다든?”
“하지만 월반(越班)하는 식으로 키가 커지면 될 거 아니에요!”
“야, 키가 그렇게 네 맘대로 커지고 줄어들고 한다면 진작 키를 키우지 그랬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축구부에서 나가란 소리였다. 김영기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아… 이 축구부에서는 고무공을 차서 지나가는 아가씨의 엉덩이를 명중시킨 내 킥 솜씨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축구부를 떠났다.
김영기는 농구부와 축구부에서 잇따라 퇴짜를 맞고도 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탁구부를 들락거렸다. 탁구부에는 김영기의 키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체구가 작다며 그만두라는 사람도 없었다. 옳다구나! 그는 부랴부랴 탁구 라켓을 장만해 매일 탁구부 훈련장이 있는 3층으로 달려갔다. 탁구대 근처를 맴돈 지 한두 달 지났을 때, 김영기는 탁구라는 운동에 싫증이 났다. 조그만 공을 라켓으로 두들겨 좁은 테이블 이쪽저쪽으로 네트를 넘기는 동작의 반복. 이게 무슨 운동이 되랴 싶었다. 너무 단조롭고 단순했다. 여성에게나 어울리는 운동, 사내에게는 맞지 않는 간사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김영기는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다. 급기야 두 달 만에 탁구부와 작별을 고했다.
다음은 육상부. 이번엔 마라톤이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함기용, 손길윤, 최윤칠이 1, 2, 3위를 휩쓴 감격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 전이었다. 김영기는 의기양양했다. 작은 체구로 땀을 흘리며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이 전도유망한 종목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라톤도 오래 가지 않았다. 김영기는 어느 순간 마라톤에도 흥미를 잃었다. 이렇다 할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시간과 싸우는 마라톤은 스스로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는 좀 더 극렬하고 스릴이 넘치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유도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고 후회했지만 소년 김영기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작은 체격 때문에 정말 하고 싶었던 농구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축구부에서도 쫓겨난 그로서는 유도부의 문이라도 두들겨야했던 것이다. 그는 유도뿐 아니라 역도도 시작했다. 결과는 뻔했다. 무거운 바벨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 운동의 묘미도 의미도 그로서는 알기 어려웠다. 맹목적인 운동, 반복되는 훈련을 그는 견뎌내지 못했다. 알통이 생기기도 전에 바이바이.
겨울이 되면 거리에 스케이트 화를 둘러멘 학생이 넘쳐났다. 한강에 나가 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이다. 당시 한강에서는 전국 규모의 스케이트 경기도 열렸다. 김영기는 질세라 벽장 속에 잠들어 있던 스케이트 화를 꺼내 기름칠을 하고 날을 갈았다. 이번에는 진짜로 스케이트 선수가 되리라! 김영기의 다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는 배재 유니폼을 입고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욕만 가지고 되는 일이 있으랴. 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풀이 죽어 돌아온 김영기는 스케이트와도 헤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김영기는 스케이트 선수로 뛴 경험이 농구 선수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농구 코트에서 1m 이상 점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스케이트를 타면서 허리와 다리 힘을 단련한 데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영기는 이렇게 배재학원의 ‘운동부 순회대사’ 노릇을 착실히 해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한 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는 동안 그의 학업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아들의 성적표를 받아든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운동을 한답시고 나대는 것을 내버려두었더니 이 모양이 됐구나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다잡았다. 물론 김영기도 각오는 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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