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드래프트는 각팀간 전력 균형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리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직전 시즌 성적이 좋지못한 팀이 유리한 픽을 뽑도록 구성되어있다. 그런만큼 전체 1, 2순위는 큰 의미를 지닌다. 가장 높은 픽인만큼 그해 최대어 혹은 성장 가능성이 큰 선수가 지명을 받는다. 이는 NBA든 KBL이든 다를바없다. 1, 2순위 출신 중에 성공한 선수가 가장 많다.
하지만 3순위 역시 무시 못할 순번이다. 1, 2순위에서 고민하다 밀려버린 바로 다음 픽인지라 재능 등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성공 가능성도 높다. NBA를 둘러보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카멜로 앤서니, 제임스 하든, 루카 돈치치 등이 있으며 KBL에서는 김승현, 양희종, 윤호영, 최진수, 두경민, 정효근, 송교창, 강상재 등이 대표적 3순위 출신 선수들이다.
3순위에서는 출중한 가드가 뽑히는 경우가 많다. 농구가 높이의 스포츠이다 보니 건실한 센터와 테크니션 가드가 함께 나올 경우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대다수 팀은 빅맨을 택한다. 3순위에 유독 해당 년도 최고 재능을 지닌 가드가 자주 뽑히는 이유다. 조던이 뽑혔던 드래프트가 대표적 예다.
올해 KBL 드래프트 역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연세대 출신 가드 이정현(22·187㎝)은 신입생 시절부터 이미 아마농구 최고의 재능중 한명으로 평가받았다. 저학년때 워낙 잘했던지라 고학년으로 올라가서 발전이 정체되었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늘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동학년 최고 가드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현은 예상보다 낮은 3순위로 고양 오리온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정현이 최고 가드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느 리그에서나 귀한 수준급 빅맨 자원이 둘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과 KT는 이정현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원석(21·206㎝), 하윤기(22·203㎝)를 택했다.
물론 이원석, 하윤기, 이정현은 누가 1순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가치를 지닌 선수들이다. 실제로 즉시 전력감 신인이 고갈되었다는 평가를 받던 최근 몇 년 드래프트가 무색할 만큼 셋 모두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결국 현재 팀에 누가 더 필요하냐의 차이였을 뿐 셋 모두 KBL의 미래를 이끌어갈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모습이다.
오리온 팬들은 3순위에 아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하위권을 전전하던 무렵 3순위로 뽑힌 김승현이라는 걸출한 1번이 등장하며 첫 시즌부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신화를 지금도 회상한다. 이전까지 가드난에 시달렸던 오리온은 김승현이 건재하던 시절만큼은 가드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KBL 기준으로만 본다면 이정현의 3순위 입성은 마이클 조던 드래프트를 연상케 한다. 당시 조던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 2번 자원이었지만 강력한 빅맨 기대주였던 하킴 올라주원, 샘보위에 막혀 3순위에 지명될 수밖에 없었다. 이정현 역시 최고 2번 계보를 이어갈 확실한 자원임에도 빅맨의 희소성과 가치에 밀렸다. 물론 아무리 이정현이 앞으로 잘해도 NBA의 전설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스토리만 끼워 맞추자면 그렇다.
7경기를 치른 현재 이정현은 8점 1.6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주 대단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이정현에 대한 오리온 팬들의 기대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단순한 기록이 문제가 아닌 실제로 경기에서 보여주는 안정감과 센스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김승현, 이승현을 잇는 새로운 기둥이 탄생했다’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을 정도다.
현재 오리온은 당초에 예상했던 전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농구 강국 세르비아 대표팀 출신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1옵션 외국인 선수 미로슬라브 라둘리차(34·213㎝)가 기대만큼 못 해주고 있는 부분이 크다. 다행히 검증된 테크니션 머피 할로웨이(31·196㎝)가 1옵션 같은 2옵션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외국선수의 비중이 큰 KBL임을 감안했을 때 라둘리차의 부진은 뼈아프기만 하다.
그럼에도 오리온은 4승 3패로 나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 이승현(29·197cm)이 한결같이 골밑에서 버티어주고 있는 가운데 국가대표 출신 이종현(27·205cm)이 예전에 비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라둘리차의 부진을 상당 부분 메워주고 있다. 라둘리차까지 잘해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오리온 골밑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정현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볼만한 요소 중 가장 큰 것은 이른바 BQ가 높다는 부분이다. 폭발적인 운동신경이나 에이스 본능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특유의 차분한 성격을 바탕으로 위기상황에서도 신인답지 않은 냉정한 플레이를 펼쳐 보인다. 외곽슛을 쏠지, 돌파를 해야될지 아님 패스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신인답지 않다는 평가다.
이정현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볼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은 물론 볼 없는 움직임도 잘 가져간다. 아무래도 현재는 신인의 입장인지라 후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특유의 센스가 번뜩인다. 부지런히 빈 공간을 찾아다니다가 패스를 받아 외곽슛을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한다.
돌파 득점을 올리는 과정도 다양하다. 빠르게 치고 나가 빈공간을 뚫어내거나 다양한 속임 동작으로 수비수를 따돌리는 것은 물론 탄탄한 바디밸런스를 앞세워 외국인 선수를 앞에 두고도 몸을 부딪혀가며 레이업 슛을 올려놓는다. 거기에 상대가 자신보다 파워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포스트업까지 시도한다. 테크닉과 파워는 물론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현은 동명이인 KCC 이정현이 그렇듯 패싱감각도 매우 좋다. 돌파를 통해 자신 쪽으로 수비수들을 붙여놓고 비어있는 동료에게 손쉬운 패스를 넘겨주는가 하면 돌파할 듯 속임 동작을 섞어가며 외곽 찬스도 잘 봐준다. 속공시에 부지런히 뛰면서도 함께 달리는 동료들의 움직임을 읽어가며 플레이한다. 그야말로 전천후 2번이라 할 수 있다.
#글 / 김종수 객원기자
#사진 /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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