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까지 부산이야? ‘부산의 딸’ BNK 박인아의 농구 발자취

황민주 / 기사승인 : 2022-10-01 06: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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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황민주 인터넷기자] ‘부산대 박인아’에서 ‘BNK 박인아’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가 한창인 박인아(22, 166.6cm)의 농구 인생을 알아보자.

박인아는 올해 WKBL 신입선수선발회 3라운드 3순위로 부산 BNK썸의 선택을 받았다. 박인아는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프로팀까지 부산(부산 대신초-부산 동주여중-부산 동주여고-부산대-부산 BNK)으로 가게 되면서 진정한 ‘부산의 딸’로 남게 되었다. 대학을 거쳐 WKBL에 입성한 박인아의 농구 발자취를 살펴보자.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에서 농구 선수 지망생으로!
박인아의 농구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시작됐다. 학교에 농구부가 있는 줄도 몰랐던 박인아는 육상 대회에도 참가하며 선생님에게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로 눈도장을 받은 터였다. 그러던 중 담임 선생님이 농구부장이었던 해에 농구부로 발탁되며 농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인아는 “초등학교 때까지 담임 선생님과 연락하다가 중고등학교 때 연락이 끊겼었다. 대학교에 와서 연락이 닿으면서 최근 드래프트 전에는 응원차 연락도 주셨다.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농구를 시작하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했다.

박인아는 초등학교 때 연습경기를 중학교와,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언니들과 치렀다. 박인아가 고학년이 될수록 농구를 하는 후배들은 줄어갔다. 결국엔 총 6, 7명이 농구부를 끌고 나갔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선수가 부족하다 보니 포지션에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뛰어야 했다는 것이 박인아에겐 힘들게 다가왔다.

그러나 같은 포지션인 양동근, 이미선처럼 되고 싶었던 박인아는 선수들의 센스 있는 플레이를 보며 동경의 마음을 가졌다. 이 마음을 가지고 우직하게 농구를 해나갔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로, 대학을 두고 갈림길에 섰다. 박인아는 “100년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대학교 4년은 엄청 작게 느껴졌다. 멀리 봤을 때 ‘농구선수’라는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4년을 투자해서 가는 것이니 내 미래에 대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일 것 같았다. 또 공부를 많이 못 해봐서 대학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며 프로가 아닌 대학을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박인아에게 아킬레스건 부상이란?

힘들게 결정한 대학 입학 뒤엔 아킬레스건 파열이 박인아에게 닥쳤다. 대학교 3학년 때 부상을 당한 박인아는 1년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큰 부상이었기에 박인아의 20대 농구 인생에 큰 영향을 줬을 터였다. 그러나 박인아가 그린 인생그래프에는 부상을 당했던 22살, 조금의 굴곡 외엔 큰 변화는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인아는 부상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경기를 5분 정도 뛰고 7점 2스틸을 기록했다. 속공 전개를 하는 과정에서 옆으로 틀면서 공을 잡는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앞에 있는 언니에게 패스하는 과정에서 뒤에서 누가 찼다고 생각해 뒤를 봤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그때 바로 부상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사실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 복귀하는데 최소 14개월을 잡는다. 그러나 박인아는 11개월 만에 코트로 돌아왔다. 박인아는 “팀에서 내가 필요하기도 했고 어차피 복귀하려면 감을 잡아야 하니 조금씩 뛰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해 팀 훈련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프에 약간의 굴곡을 그린 이유로 “생각보다 큰 부상이긴 했지만 이때까지 운동한 것이 아까웠다. 억울했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는 재활도 하면서 지금보다 더 잘 뛰지 않을까, 더 좋은 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큰 부상이지만 농구 인생에서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현재

박인아는 16일 진행된 WKBL 신입선수 선발회 이후 부산대로 돌아와 전국체전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개인 운동을 하고 단체 운동 시간에 맞춰 오후 운동도 진행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박인아는 “확실히 가장 큰 일을 치르고 난 직후라 전보다 여유롭긴 하다. 아니었으면 또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뻔했는데 정말 거사를 치른 느낌이다. 드디어 하나가 지나갔다 싶어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모습의 박인아는 처음 경험했던 드래프트 현장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드래프트는)처음이라 우왕좌왕했다. 언니들한테 듣기로는 대기실 안의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경쟁하는 사이인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고등학생들이 낯도 안 가리고 밥도 같이 먹고 놀고 그러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더라. 그래도 감독님들이 선수 지명할 때는 조용해진다. 각자의 폰으로 중계를 보고 있는데 밖에서는 환호성이 먼저 들리고 그 후에 지명된 선수를 데리러 왔다. 지명이 되면 대기실 안에서 다들 축하해주고 선수가 나가고 나면 다시 조용해지는 분위기였다”며 드래프트 현장을 생생하게 전했다.

▶남은 농구 인생을 꽃길로 장식할 박인아의 목표

박인아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로를 선택하지 않고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대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고 프로 은퇴 후에는 임용을 치르는 것이 박인아의 목표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모교인 동주여고 체육 감독이 최종 목표다.

박인아가 교사의 꿈을 꾼 것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 프로에 목표가 있었던 박인아는 고등학교 3학년엔 교사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농구교실을 통해 아이들에게 농구를 직접 가르치게 되었고 실력이 금방 느는 친구들, 성적을 내는 친구들을 보며 교사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박인아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내가 배우는 점도 있다. 정말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4학년 때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결국 임용에 관련된 것이고 배운 것들을 과연 내가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교생 실습을 나가 실전에서 배운 것을 써보니 굉장히 뿌듯했다. 진짜 뭐든 해보고 느껴야 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국체전 이후 BNK 훈련에 합류하는 박인아는 “대학에 와서 또 배운 것이 옛날에는 주목받고 특별한 것이 좋은 건 줄만 알았는데 보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여자농구에서 대학생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팀에 해가 되지 않는 선수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소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BNK에서 잔잔하게 속해있으면서 오래오래 농구 선수도 하고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당장 앞에 닥친 상황뿐만 아니라 먼 미래도 바라보며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박인아. 이제는 대학 출신 성공 사례를 넘어 ‘부산’에서의 성공 사례로 박인아가 언급될 수 있을지 박인아의 선수 생활이 기대된다.

#사진_WKBL, 박인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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