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선! 프로농구 지도자를 열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름이다. 실업 농구대잔치 시절 무적 기아자동차를 지휘하며 오랜 시간 농구계를 평정한 것을 비롯 프로 원년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SK 나이츠의 창단 첫 우승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허재, 서장훈 등 걸출한 스타 선수들과 함께하며 이른바 선수빨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 현장 지도자들은 결코 그렇지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스타급 선수들은 기량은 빼어나지만 프라이드와 개성이 강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감독의 의지대로 팀을 지휘하기가 난감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차라리 신인급들이 더 편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모래알 팀과 스타 군단은 말 그대로 한끝 차이다. 각기 다른 색깔의 스타들을 하나로 뭉쳐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감독 본인의 많은 노력과 역량이 필요하다. 때문에 최인선에게는 ‘한국의 필 잭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최인선하면 흔히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만 떠올리지만 그는 산업은행(1974~1982)에서 주전가드로 활약하며 빼어난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팀원들을 살려주는 정통 포인트가드 스타일이었으며 어시스트, 스틸을 묶어서 주는 상을 당시 여러차례 수상했다. 빠른 발을 활용한 수비도 일품이었는데 원체 공격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던지라 ‘거머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연세대, 고려대가 대학 무대를 양분하던 시절 중앙대를 이끌며 2학년, 4학년 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최인선은 해병대 출신이다. 중학교 때 무릎 수술을 했던지라 군면제 대상이었지만 군입대를 선택했다. 군시절에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과 함께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인선의 선수 시절 이야기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최인선은 “늘 묘하게 타이밍이 조금씩 빗나갔어요. 물론 그런 것 조차 필요 없이 정말 잘했으면 그럴 일도 없었으려나요. 어설프게 잘해서 환경의 영향을 좀 탓습니다”라고 말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장수를 맹장(猛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의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최인선은 감독 시절 지장에 가까웠다. 뛰어난 지략과 견문을 갖춘 전략가형 감독으로 다양한 전략 전술은 물론 팀을 자신의 플랜에 맞게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서로간 시너지를 내는 방향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에 발이 묶여서 한국을 못가고 있습니다”
Q.어떻게 지내세요?
현재는 캐나다 밴쿠퍼에 있는 빅토리아섬에 있습니다. 여기 공기도 좋고 경관이 기가 막혀요. 좋은 공기 마시면서 하루에 4~5시간씩 골프치고 9km정도 걷는 것 같아요. 새벽에는 근력운동도 하고요. 단점은 사람이 많이 안사는 섬이다 보니 살짝 외로울 때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내고 겨울철 추울 때는 한국에 가고, 종종 동남아 골프투어도 다니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여있네요. 올 겨울은 이곳에서 그냥 지내야 될 것 같아요.
Q.말씀을 들어보니 골프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같아요.
이게 사연이 좀 있어요. 다들 알다시피 제가 2005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잖아요. 다행히 수술 이후 건강을 회복했어요. 건강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그랬죠.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좀 다르더라고요. 특히 농구계. 몇번이나 감독 등 농구 관련 일을 맡을뻔했는데, ‘아픈 분이 그 힘든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겠어’라는 편견 속에서 번번이 무산됐죠. 내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믿지를 않아요. 건강상태는 오히려 또래들보다 나은데 다들 나를 환자처럼 생각해요. 건강관리반, 증명반(?)의 마음으로 골프를 시작했어요. 골프 시니어 자격증까지 따고 레슨도 하게 됐죠. 골프를 통해 사람도 만나고 농구 해설도 하게 되고 그랬죠.
Q.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이번 겨울에 발이 묶여서 아쉬움이 크실 듯 싶어요.
많이 아쉽죠. 타국에 있다가 일년에 딱 몇 개월 고국에가서 회포를 푸는데 그게 막혔으니까요. 더욱이 저는 농구인이라 농구시즌에 맞춘다는 의미도 있거든요. 보통 한국에 가면 건강 관련 프로그램도 출연하고 초청 강연도 나가고 이것저것 했어요. 뭐랄까,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사랑과 성원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보답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제가 겪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나누는 것이죠. 농구방송 해설 같은 경우 후배들을 위해서 양보한지 꽤 됐어요.

“학벌에 의한 파벌이 참 많았던 시기입니다”
Q.선수 최인선도 나쁘지 않았는데 다들 지도자 최인선만 기억하는 것 같아요.
산업은행의 주전가드로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갔지만 이른바 이름값은 제대로 쌓지 못한 듯 싶어요. 아무래도 양대산맥인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아닌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거에요. 지금이야 중앙대도 명문이지만 당시에는 영향력이 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중앙대는 한기범, 김유택이 가세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위용을 쌓아갔죠. 전매청, 군인팀 등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한국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소위 금융권 팀들이 잘나갔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학벌에 의한 파벌은 존재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연세대 출신, 산업은행은 고려대 출신, 기업은행은 고르게 섞인 경향이 강했죠. 중앙대 출신으로 산업은행에서 주전으로 쭉 뛰었다는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실력은 검증된 아닐까요. 은퇴하던 시기까지 주전이었습니다.
Q.은퇴하던 시기까지 주전급이었다면 좀 더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아요. 만약 현대, 삼성 등 대기업들이 농구단을 창단한 시기였다면 그게 맞겠죠. 그런 팀들은 아파트도 주고 보너스도 팍팍 챙겨줬으니까요. 하지만 금융권 팀에서 뛰는 선수들은 너무 오래 뛰어도 손해에요. 말이 선수지 직장인 개념이었어요.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으면 해당 은행에 직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메리트라면 메리트였죠. 인생을 길게 본다면 어느 정도 뛴 다음 은행 업무를 빨리 배우는게 이익이었습니다. 저같은 경우 은퇴할 때쯤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제 위로 고참이 없었어요. 나름 오래 뛴거에요. 여전히 주전으로 경쟁력은 있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은퇴해야만 되는 분위기였어요. 오죽하면 당시 감독님이 고맙다고 코치를 시켜줬겠어요.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비 고려대 출신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였죠. 결혼해서 자녀도 둘이나 되던 시절인지라 향후 먹고사는 문제까지도 신경써야 했어요. 현역생활에 욕심을 내다가 은행 업무를 늦게 배운 꼴이 되어서 만약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Q.1990년 방열 감독이 사퇴하자 뒤를 이어 기아자동차의 감독이 되셨어요. 초보 감독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쭉 코치 생활을 해왔던 터라 경기운영, 전략 등에서는 별다르게 부담스럽다거나 어려운 점은 크게 없었어요. 그런 쪽에는 자신도 있고요. 문제는 역시 학교에 따른 파벌이었어요. 현역 시절만큼이나 당시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프로화가 되면서 학교에 따른 편 가르기 이런 것은 거의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하나의 문화처럼 존재했다고 보면되요. 당시 기아자동차는 연세대와 중앙대 출신이 주축이었어요. 솔직히 산업은행 당시 그 어려운 시절을 겪어왔던 저로서는 그런 것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원칙대로 하면 되지 학교가 무슨 상관이에요. 또 그게 맞는거고요. 하지만 선수들은 또 아닌 듯 싶더라고요. 저는 원칙대로 한다고 하는데 서로 온도차가 달라요. 연세대 출신들은 ‘어라, 중앙대 출신이라고 중앙대 편드는 것 봐라’, 중앙대 출신들은 “같은 학교 선배님이신데 중앙대편 안들고 서운하네‘ 뭐, 이런 분위기였어요. 이런 것을 신경 쓰고 조절하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라고 봐야겠지요.

”이충희-김현준 동시 기용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Q.당시에는 이충희, 김현준 등 슈터들을 앞세운 팀이 강세였어요.
맞아요. 기아자동차가 강호로 떠오르기 전까지 리그 판도는 한마디로 슈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구도였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 최고 스타는 현대 이충희와 삼성 김현준이었어요. 같은 슈터 스타일에 모기업도 경쟁 관계라 라이벌 구도로 가기 딱 좋았죠. 거기에 양팀 전력도 단연 좋았고요, 이른바 한국의 양궁농구를 대표하던 인물들이었죠. 문제는 센터를 너무 활용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팀에 좋은 슈터와 센터가 있으면 완전 찰떡궁합이잖아요. 당시는 안그랬어요. 좀 세게 말하면 센터들은 대부분 들러리였어요. 스크린이나 서주는 말 그대로 장승 같은 존재였죠. 그러다보니 국제대회 나가면 센터들이 힘을 못써요. 제대로 해본 것이 없으니까요. 슈터들의 그날 활약상에 따라 경기결과나 과정이 결정 나는 것이죠. 거기에 특정스타들의 팀별 영향력, 출신 대학별 존재감, 팬덤 등이 탄탄하다보니 최상의 베스트5도 짜기 힘들었던 듯 보였어요.
Q.좀더 자세히 들어볼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이충희, 김현준은 실력적인 부분은 둘째치고 현대-삼성, 고려대-연세대 이런 식으로 라이벌 구도가 강해요. 근데 당시 대표팀 감독이 고려대에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둘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써야만 해요. 안 그랬다가는 난리가 나요. 온갖 루머와 억측이 난무하겠죠. 제가 감독이라면 절대 둘을 같이 안썼을거에요. 상황에 따라 잠깐씩은 같이 쓸 수도 있겠지만 중용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에요. 둘은 슛에 강점이 있는 슈터에요. 기본적으로 플레이 스타일이나 포지션이 같아요. 그렇다면 둘은 슈터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 묶음으로 봐야죠. 둘 중에 컨디션이 더 좋은 선수를 쓰면 됩니다. 나머지 자리에는 리딩을 잘하는 선수, 수비에서 열정을 보일 선수 등을 넣어서 밸런스를 맞추는게 더 강한 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장신 슈터도 아닌데 단순히 공격력만 믿고 둘을 동시에 중용하는 시스템으로 가다가는 괜스레 평균신장만 깎이고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큽니다.
Q.당시 기아자동차에서 즐겨 쓰던 전술이 궁금합니다.
트라이앵글2, 박스앤1 등 전문용어나 우리끼리 쓰는 말로 설명하면 복잡할 것 같으니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해볼께요. 기아자동차 최고의 무기는 한기범-김유택의 이른바 ‘쌍돛대’였어요. 다른 팀에는 한명도 있을까 말까한 확실한 주전급 센터가 우리 팀에는 둘이나 있었죠. 이런 자원을 무조건 활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공격이야 골 밑에 둘 세워놓고 패스만 잘 들어가면 받아먹기만 해도 위력적이었죠. 수비시에는 앞선에서 상대를 적당히 압박해 안쪽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다음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웃음) 기아자동차가 강한 것은 당시에 없었던 압도적인 높이의 이유가 가장 컸어요. 거기에 그들만 신경 쓰기에는 국가대표 가드콤비 허재, 강동희도 있었고…, 선수도 좋았고 포지션별 밸런스도 잘 돌아갔어요.
Q.에이스 허재는 불세출의 스타이면서도 톡톡 튀는 개성이 강했어요. 사고도 좀 쳤고요. 감독으로서 관리법(?) 같은게 있었을까요?
은근히 많이 들어본 질문이에요. 허재가 선수로서는 완벽에 가까워요. 내외곽을 오가며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 슈팅가드지만 어지간한 1번 못지않게 시야도 좋고 패싱능력도 출중하죠. 거기에 개인기록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에요. 특급 에이스답지 않게 팀플레이도 잘하고 공 없는 움직임도 잘 가져가요. 팀이 이길 수 있다면 거기에 맞춰줄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감독은 그런 선수가 최상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돛자리만 잘 깔아주면 되는거에요. 문제는 주변에서 너무 외적인 부분으로 흔들어댄다는 것이에요. 허재라는 선수를 팀으로 데려온 이유가 뭘까요? 또 그런 팀에 저를 감독으로 임명한 이유는 뭘까요? 선수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저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조직력을 다잡아주면 되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달랐어요.

Q.사고칠 때마다 ‘감독은 뭐하고 있는거야?’라는 말도 많이 나왔죠.
맞습니다. ‘허재 또 사고 쳤는데 어쩔거야? 그런 기강도 못잡아. 그러고도 감독이야’ 등등 별의별 말이 다 나왔죠. 프로나 실업팀을 지휘하는 감독은 선생님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헤드코치에요. 선수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면서 지도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든 팀을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엔지니어에 가깝죠.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팀에 들어온 성인인데 사생활 등은 알아서 관리하고 조절해야죠. 어느 정도 충고나 조언은 할 수 있겠지만 지나친 간섭은 월권이죠. 다같은 성인끼리 관리라는 표현도 말이 안되죠. 선수 본인이 팀전력에 피해가 안가게만 하면 되는거에요. 술을 먹고 게을러져서 경기력이 안 좋으면 감독은 그 선수를 안 내보내면되요. 기용 여부는 감독의 몫이고 결과로서 책임지는 거죠. 하지만 허재가 사고 칠 때마다 언론에서는 이슈거리로 크게 다뤘고 주변에서도 시끌시끌했죠. 심지어 팀에서도 뭐라고 했고요. 솔직히 팀에 각종 직책이 있는 것은 거기에 대한 일을 하라는 것이잖아요. 감독에게 선생님의 역할까지 떠넘길 것이 아니라 선수는 팀에서 관리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팀에서 전체적으로 케어를 해주면서 감독과 선수가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도록 해줘야죠.
Q.국내에서의 단장과 감독은 해외와는 성격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죠. 미국 등 프로리그가 잘된 팀에서는 감독과 단장이 동급입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팀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최상의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단장이 상급자같은 개념입니다. 대부분 단장은 농구인보다는 기업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내려온 경우가 많은지라 최대한 해당기간 동안 사고없이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때문에 자기 주장이 강한 감독보다는 말 잘 듣는 감독이 편합니다. 경험 많고 나이 먹은 감독보다는 젊은 감독이 선호되는 이유죠.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농구에서는 NBA 그렉 포포비치 감독같은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50대 후반만 되어도 노감독 취급을 받으니까요.
”적지에서 초반 2연승은 제가 너무 순진했던 탓이었지요“
Q.프로 첫시즌, 테크니션+빅맨으로 뽑던 추세와 달리 클리프 리드와 로버트 윌커슨이라는 포스트형 외인으로 둘을 뽑았습니다.
외국인선수를 뽑는 가장 큰 목적은 전력강화잖아요. 당시 기아는 외곽에서 활약할 선수가 필요가 없었어요. 허재, 강동희에 김영만까지 있는데 거기서 또 테크니션 스타일을 뽑으면 역할이 겹쳐서 역효과나 나겠죠. 때문에 처음부터 기준은 기존 스타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유형이 첫 번째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파워포워드 클리프 리드는 장신이 아니에요. 탄력이 좋아서 리바운드를 잘하죠. 거기에 로버트 윌커슨은 신장 때문에 국내에서는 센터로 뛰었지만 본래 가드출신이에요. 패스가 좋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인성이 좋아요. 드래프트 장에서 윌커슨을 뽑았을 때 가족으로 보이는 10여명이 함성을 내질렀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참 훈훈한 분위기였죠. 첫 시즌 우승하고 다음 시즌에 제가 좀 욕심을 부렸어요. 윌커슨으로 그대로 갔어야 하는 건데…,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묵묵하게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는 드물거든요. 하나의 조각으로 참 좋은 선수에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윌커슨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명합니다. 다만 리드는 당시 기아처럼 국내 테크니션들이 탄탄하지 않으면 뽑지 않습니다. 지나고 나니까 더 알겠어요. 윌커슨은 정말 좋은 외국인선수였습니다.
Q.사실상 허재의 비중을 확 줄이면서 우승을 했는데요. 그 자체도 대단하고 더불어 허재와의 불화설도 많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실수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감독이라는 자리는 최상의 결과만 보여주면 됩니다. 거기에 맞게 선수기용을 하고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되는 것이죠. 첫시즌 어쨌든 우승을 했으니 결과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저도 후회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허재에 대한 부분입니다. 늘 감독은 선생님이 아니다고 생각하고 있어왔는데 그때만큼은 제가 선생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을께요. 방금 한 말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허재라는 에이스의 힘을 빌리지않고도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죠. 막판에라도 넣어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해줘야 됐어요. 그게 비즈니스인 것이죠.

Q.2번째 시즌 준우승은 많이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외인 한명이 사실상 못 뛰면서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챔피언결정전을 치렀어요.
당시 주전센터였던 저스틴 피닉스가 부상을 핑계로 사실상 태업을 했죠. 그 친구가 좀 탤런트 기질이 있었어요. 아프다면서 계속 재계약을 요구하는거에요. 재계약을 할 정도로 잘했다면 왜 재계약을 안했겠어요. 그리 특출나지도 않은데 챔피언결정전같이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그래 버리니…, 프로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여기서 재계약이 안된다고 해도 다른 구단에서 눈여겨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더불어 리그 우승을 이끈 주전 센터라면 그 친구에게도 좋은 훈장이 하나 붙는거고요.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죠. 그런 정신자세와 멘탈이라면 실력 여부를 떠나 대성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Q.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진에서 2번을 다 이기는 등 7차전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외국인선수 한명이 못 뛰다시피 한 것은 그렇다쳐요. 뭔가 아쉬운 요소가 너무 많았어요. 이제 시간도 지났고 하니까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릴께요. 그때 현대 홈인 대전에서 첫 2경기를 다 이기는게 아니었어요. 원정경기에서는 기세도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강하게 몰아쳐서 두게임을 다 잡아냈는데 한 경기 정도는 내줘야 나았겠구나 싶더라고요. 저희가 2경기를 이기고 시작하는 바람에 협회에서 진행하는 일정에 차질이 생겼거든요. 만약 4연승으로 부산에서 시리즈를 마무리 지어버리면 협회 측에서는 우승에 관련된 온갖 것들을 다 챙겨서 VIP들까지 모시고 내려와야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거죠. 일단은 서울로 올라가기를 바랬을거에요. 더불어 4번으로 허무하게 챔피언결정전이 끝나는 것보다는 최대한 길게 가는 쪽이 여러모로 이익될 것도 많았을 것이고요.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결국 외국인선수 한명이 못 뛰는 상황에서 장기전으로 갔고 아쉽게 7차전에서 패하고 말았죠. 노장 중심의 팀이 한창 젊은 팀과 맞붙었으니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허재가 관록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저쪽에서는 조성원이 엄청나게 터져버렸잖아요.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어휴…, 3차전 당시 휘슬을 얼마나 쏴대던지.
“현주엽 아닌 서장훈을 선택한 이유요?”
Q.당시 SK는 포인트가드가 문제였잖아요. 외국인선수도 토니 러틀랜드라는 혼혈 1번을 뽑았는데 결과는 별로였어요.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러틀랜드는 제가 뽑지 않았어요. 저는 중간에 들어왔으니 이미 뽑힌 상태에서 만난 겁니다. 그 선수가 잘한다 못한다는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에요. 외국인선수들 같은 경우 좋은 기량을 가지고있어도 팀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면 활약이 적고 반대로 해외에서는 별로였는데 국내리그에서 펄펄 나는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러틀랜드는 기대치만큼 못해줬습니다. 역량은 있지만 팀과 제대로 시너지를 못 낸 듯 싶습니다. 그 선수하면 기억나는 것은 한국말 실력이에요. 분명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는데 못하는 척 하더라고요. 별로 보기 안좋았어요. 한국말을 못하는 척하면서 타인들한테 정보를 얻으려는 것인지…, 정확한 속내는 모르겠지만 포인트가드로서 소통을 중시하려면 못하는 한국말도 적극적으로 내뱉어야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제 개인적으로는 1번은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SK 감독으로 취임한 시절 서장훈과 현주엽이라는 두 거물의 조화에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서장훈과 현주엽, 제가 딱 좋아하는 그림이었어요. 국가대표 센터와 파워포워드의 조합. 더군다나 한창 젊은 나이! SK가 신생팀 프리미엄을 받았으니까 그런 것이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구성이었잖아요. 이후로 따지면 김주성과 하승진, 이승현과 오세근이 한창때 기량으로 한팀에서 뛴다는 것인데요. 외국인선수가 2명이 뛸 수 있었던 시절임을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엄청난 주전라인업을 꾸리는게 가능했죠. 기아자동차 시절 한기범-김유택을 잘 써먹었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영광의 시절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쨌든 당시 저는 중간에 감독으로 들어갔으니 남은 시즌을 쭉 지켜봤어요. 그런데 이 녀석들이 은근히 서로간 알력이 있더라고요. 대학 때부터 스타들이니까 자존심도 세고,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라는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고 이래저래 조화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Q.최종 선택은 서장훈이었습니다.
누가 더 낫냐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희소성을 본거죠. 서장훈은 국내에 아주 드문 주전급 센터입니다. 희소성이 엄청납니다. 지금까지도 주전급 토종센터는 서장훈 외에 하승진 정도나 있었을까요. 정말 드물잖아요. 물론 현주엽같이 재능 넘치는 파워포워드도 귀하기는 하지만 센터만큼은 아닙니다. 서장훈 중심으로 팀을 꾸리기로 판단했습니다. 서장훈 옆에 외국인센터를 세워서 트윈타워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러려면 현주엽보다는 슈터가 더 잘맞는 퍼즐이죠. 그래서 현주엽을 트레이드해서 조상현을 데려왔습니다. 물론 제 플랜이 그렇다고해도 현주엽 트레이드는 정말 쉽지않은 일이었죠. SK입장에서는 우승여부를 떠나 서장훈-현주엽을 모두 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엄청납니다. 거기서 현주엽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기존 감독이었으면 불가능했을 공산이 큽니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들어왔으니 구단도 고민 끝에 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실패시에 엄청난 데미지를 각오해야되는지라 저도 감독 목숨을 걸었습니다. 트레이드가 결정되기 무섭게 상대팀 단장이 직접 현주엽을 모시러오더라고요.(웃음)

“하니발 선택, 현대 저격용이었습니다”
Q.로데릭 하니발의 선택도 탁월했어요. 공격력은 외국인선수 평균에 못 미쳤을지 모르겠지만 가드로서 황성인의 리딩을 도와주고 1~4번까지 수비가 가능했으니까요.
오~ 정확하게 봤습니다. 하니발의 장점은 그것이죠. 전천후 수비력에 리딩능력까지 겸비했다는! 사실 하니발 선발은 어떤 면에서는 파격적이기도 했습니다. 국내리그에서 단신 외국인선수에게 기대하는 것은 에이스 역할이었는데 저는 수비 등 궂은 일을 기대하고 뽑은 것이니까요. 지금도 그렇잖아요. 그런 목적으로 단신 외국인선수를 영입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하니발은 현대 저격용으로 뽑았습니다. 조성원은 현대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이자 약점이었습니다. 공격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지만 신장이 작아서 수비에서 한계가 있었죠. 신인 포인트가드 황성인으로 매치업이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하니발을 상대 야전사령관 이상민에게 붙여버렸습니다. 현대 조직농구의 핵심은 이상민이잖아요. 이상민이 막혀버리면 혈이 막히는 것이죠. 거기에 하니발은 리딩능력도 어느 정도 되는지라 황성인의 부족한 경험과 시야를 커버해 주는게 가능했습니다. 챔피언결정전이 한창 치러지던 시점에서 이상민이 ‘농구 못 해 먹겠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는 말을 건너건너로 들었어요. 외국인선수가 막아버리니까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죠. 누가 외국인선수로 상대 1번을 막을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때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번시리즈는 우리가 이겼다.
Q.로렌조 홀을 재키 존스와 바꾼 것도 신의 한수였어요. 당시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홀은 최대어로 꼽혔잖아요.
‘최인선은 남이 씹던 껌을 가져다 씹는다’ 제가 당시 그런 말까지 들었어요. 우승 경쟁팀에서 선수를 데려갔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추구하는 농구에서 맞는 퍼즐을 찾은 것 뿐인데. 서장훈과 홀도 위력적이었겠지만 기동성이나 팀플레이를 생각하면 존스가 맞는 조각이었습니다. 존스는 3점슛이라는 옵션이 있어요. 존스가 상대 센터를 끌어내면 서장훈이 편해집니다. 서장훈은 주로 상대 4번과 매치업이 되었던지라 신장에서 이익을 본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 존스의 아울렛패스는 속공시 굉장한 무기가 됐습니다. 서장훈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최적화된 멤버를 꾸린 것이죠. 국내선수를 살리자. 겹치면안된다는 것이 당시 제 신조였습니다.

“허재가 역대 최고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독의 취향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Q.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역대 최고 국내 선수는 누구인가요?
단순히 역대 최고라고하면 호불호가 갈릴까요? 허재죠. 한국의 마이클 조던같은 존재잖아요.
Q.선수들이 모두 전성기라고 가정하고 팀을 하나 꾸린다면 베스트5를 어떻게 만드실건지 궁금합니다.
센터는 서장훈, 이종현(전성기 기준) 둘 중 한명 파워포워드는 김주성, 스몰포워드는 이충희, 슈팅가드는 허재, 포인트가드는 강동희 혹은 이상민 정도입니다. 이거야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워낙 해당 포지션에서 독보적인 선수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무조건 해당 포지션에 잘하는 선수를 가져다 놓았다고 시너지가 확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감독은 각자가 추구하는 농구의 색깔이 다릅니다. 자신이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농구를 위한 멤버가 우선이죠. 저는 농구를 다섯손가락에 많이 비유합니다. 다섯손가락은 각각 길이도 다르고 쓰는 용도도 차이가 있지만 그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제대로 손을 사용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농구에서 베스트5도 바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Q.현재의 농구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물어봤으니까 제 의견을 말해볼께요. 최근 농구 팬들을 만나보면 ‘예전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인기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반증이겠죠.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남녀노소, 연령 불문하고 농구에 대한 성원이 엄청났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매니아 스포츠로 뚝 떨어졌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외국인선수 제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당초 외국인선수를 채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외국인선수가 가질 수 있는 상품성 그리고 팀별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전체적인 경기력을 향상시키자는 취지가 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오고 있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화려한 플레이? 프로 초창기에는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국내 선수들도 덩크슛 펑펑 찍어대면서 예전보다 훨씬 현란한 플레이가 가능해졌어요. 더 화려한 플레이를 보려면 NBA를 봐야죠.
Q. 외국인선수 제도에 대한 재검토 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이제는 외국인선수 제도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선수들이 특정 포지션을 빼앗아가면서 해당 포지션 국내 선수들이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는 포지션별 밸런스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게 안되고 있죠. 잘하는 선수 위주로 뽑기는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겹치고 있습니다. 외국인선수 제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빅맨들도 포스트플레이보다는 나가서 3점슛을 쏘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맞춰지고 있는 이유가 큰 듯 싶어요. 과거 농구대잔치가 인기가 많았던 이유가 뭘까요? 국제경쟁력이 높아서?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경쟁력은 높지 않습니다. 국내 선수가 주목을 받고 화제성을 끌었다는 부분이 당시 인기가 높았던 큰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에 ‘누구 누구의 아들이다’느니 어디 출신 어느 학교 나온 선수라는 등 한국문화 특유의 인맥, 학연 등도 좋은 쪽으로 섞여서 관심을 더 모았고요.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처럼 국내선수 중심으로 리그가 돌아가면 처음에는 주춤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흥행성은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빅맨 쪽에서도 스타가 나오고요. 국내리그인데 국내 선수가 잠식하는 시스템이 되어야죠. 물론 저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해도 현실적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국내 농구의 윗선인 로얄패밀리는 어차피 안 들을 겁니다. 귀를 막고 있으니까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아쉽습니다.
Q.마지막으로 여전히 농구인 최인선을 기억하고, 사랑해주는 팬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반평생을 농구판에서 살았고 팬분들에게 과분한 사랑도 받았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난지 한참이 되었음에도 알아봐 주시고 반가워 해주시는 팬분들을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뒤를 이을 후계자 양성 등 보답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수술 등으로 인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재능기부라도 꾸준히 하고 싶지만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인 점도 아쉽습니다. 기회가 닿는데로 조그만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행복한 일 가득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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