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에서 만나는 위험 요소들, 곧 깊은 웅덩이, 바퀴 자국, 우회로 등은 당신이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다. 염려해야 할 때는 크고, 넓고, 쉬운 길을 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이다.’ - 조니 에릭슨 타다 -
사람들은 아주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경우가 많다. 안될거야. 내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때론 이러한 다수의 의견은 진실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에 높고 큰 벽이 있으면 어떻게든 타고 넘어가던가 뚫어버릴 생각을 해야되지만 대다수는 두드려볼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될건데, 전에 사람들도 안됐다고.
물론 모든 사람들이 벽 앞에서 돌아만 가는 것은 아니다. 벽에 귀를 대고 소리라도 들어보려는 사람, 벽 위로 밧줄을 던져보는 사람,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지언정 몽둥이로 벽을 쳐보는 사람 등등 다양한 형태로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세상은 그들을 도전자라고 부른다.
변화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아주 작은 행동에서부터 일어난다. 비록 당장 벽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궁리하고 부딪혀보는 이들의 노력이 모이게 된다면 언젠가는 문이 열린다. 그리고 피와 땀으로 열어낸 문은 후발주자들이 밟고 따라올 수 있는 길과 연결된다. 처음이 힘들지 여럿의 발자국이 모아질수록 길은 더 넓어지고 평탄해진다.
역대 2호 한국인 NBA리거를 향해 도전장을 던진 청년 이현중(22·201cm)은 거대한 벽 앞에 스스로 다가간 케이스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NBA라는 벽은 국내 농구인들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서도 높고 두텁다고 악명이 자자하다. 벽 너머 세상에서는 연일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데 유독 동양 선수들에게 만큼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아시아인의 한계’, ‘어차피 다른 자들의 무대’ 높고 두터운 벽을 가리켜 그동안 온갖 얘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현중은 듣지 않았다. 귀를 막은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눈으로 벽을 봤고 자신만의 의지와 마음으로 꿈을 키워나갔다. 올해 데이비슨 대학교 졸업반에 올라가게 될 그는 도전을 위한 칠부능선까지 다가가 있는 상태다. 희망적인 소식도 많지만 NBA 입성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가봐야 가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현중의 NBA진출 유무다.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보다는 가냐 못가냐에 대한 관심이 훨씬 크다. 때문에 지금부터 서서히 끓어오르고있는 이현중에 대한 관심은 NBA 신인드래프트 결과에 따라 온도차가 확 달라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 이현중은 다르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세상과의 간격이 한걸음씩 줄어드는 것에 의미를 두고 도전자의 마음을 잃지않고 있다. 그러한 행보는 이현중 개인은 물론 국내 농구계에도 큰 자산이 될 공산이 크다. 설사 NBA 드래프트에 지명받지 못하더라도 이미 그는 서있는 위치가 다르다. 미국 대학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했고 살아남았으며 선진농구의 시스템을 수년동안 몸으로 익혔다. 이현중이 한걸음씩 앞으로 더 나아갈수록 한국농구는 그에게서 받을 것이 더 많아진다.
앞선 명언처럼 이현중은 지금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대로 걷고 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은 본래 평탄하지 않다. 의심의 목소리, 곳곳의 장애물, 거기에 슬럼프라는 적까지…, 바로 그것이 이현중이 똑바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 능력으로 인정받다
미국 사회는 개방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민주주의를 전면에 앞세우는 국가답게 많은 부분에서 자유를 내세우지만 그들만의 사고와 시각이 짙은 영역도 적지 않은지라 거기에 맞지않을시 편견과 푸대접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이는 스포츠계도 다를바없다. 특히 흑인의 스포츠로 불리는 농구 쪽은 그 정도가 결코 약하지 않다. ‘비주류로 차별받던 흑인들이 농구에서는 역으로 다른 인종을 차별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흑인들의 자부심이 강한 종목이다.
역사가 쌓이면서 무수한 백인 선수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들의 능력을 증명했고 이제는 흑인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대등한 선에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동양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농구를 못한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숫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미국 농구계에서 증명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활약여부를 떠나 NBA 입성 자체에 성공한 동양인은 손에 꼽힐 정도며 각종 세계대회에서도 아시아팀은 여전히 약체다.
상황이 그런지라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동양인이 농구를 하거나 가르친다고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상당수다. 그런점에서 이현중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김효범 서울 삼성 코치는 “미국 NBA 산하 G리그 구단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시절 적지않은 편견에 시달렸다. 당시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선수들과 끝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경험도 적고 능력도 부족할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다가가 선수가 성장하는데 티끌만한 도움이라도 주고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선수들 시각에서는 별다른 커리어도 없는 동양인이 코치라고 다가오니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웃으면서 응원하고 격려해줘도 대놓고 무시하거나 날선 반응을 보이는 선수까지 있었다. "어느 정도 서양 사회에 대해 익숙한 저도 혼란이 오고 힘들었는데 한국에서 쭉 자라온 (이)현중이같은 경우 처음에 어땠을지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김효범의 말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해외 진출을 선택했던 이현중은 처음에는 적응 문제 등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 우월한 피지컬을 가진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단단하던 멘탈이 삽시간에 깨져버리며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밤마다 펑펑 울었을 정도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은 그는 꾸준하고 성실한 모습과 날로 늘어가는 경기력을 통해 지도자와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데이비슨대의 간판스타 중 한명으로 불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변화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일어난다. 이현중 한명의 노력이 미국 농구계에서의 한국인 혹은 동양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뽑아낼 수는 없겠지만 작은 시작점이 되어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백인들처럼 대등하게 인정받는 날이 오지말란법도 없다.

경험은 자료가 된다
그간의 역사가 증명하듯 모든 경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이른바 ‘정보전’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응용할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갈수록 스포츠 쪽에서도 분석, 전략 등이 강조되는 이유다. NBA로 대표되는 미국농구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축적된 엄청난 데이터에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개발이 이뤄지며 경쟁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
스포츠 과학 분야에서는 단순히 육체의 힘과 스피드를 올리는 것을 넘어 신경계의 움직임, 특정 선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 심리전 분석 등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 도래할 ‘메타버스(Metaverse)’시대에서는 사용자가 지각하는 것에 컴퓨터가 만든 정보를 추가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스포츠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훈련프로그램으로 들어설 것이다는 예측도 많다. 단순히 열심히만 하면 되는 단계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NBA는 전세계 모든 농구인의 꿈이다. 이는 국내 농구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가는 것이 아닌 못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겠지만 그 외에 NBA에 도전할 수 있는 노하우나 각종 정보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정보화 시대, 자료의 세상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현중은 개인의 성공에 앞서 한국 농구계에 자료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있다. 어려웠던 초창기 해외생활, 외국 선수들의 습성과 거기에 맞춰 적응해나가던 과정, 운동못지않게 중요한 공부의 필요성, 선진농구의 각종 분석시스템과 전술 등 이현중을 통해 쏟아져나올 자료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더불어 그런 자료는 한국농구의 발전은 물론 앞으로 뒤를 이어 미국무대에 도전하게될 유망주들에게 가이드북같은 역할을 할수도 있다. NBA 입성여부를 떠나 이현중의 행보 하나하나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야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이현중 부모님, 김효범 코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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