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서 만난 정락영, “농구 인기 회복에 기여하겠다”

이재범 / 기사승인 : 2019-09-29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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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기자] “농구 인기가 죽었다고 하는데 제주도에서 제가 밑바닥부터 농구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 삼성과 부산 KT는 9월 중순 제주도 서귀포시 강창학공원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3차례 연습경기를 가졌다. 평소 프로농구를 접할 수 없는 제주도 도민들이 많이 찾아 양팀의 연습경기를 관전했다.

장민국(삼성)은 “관중들이 많아서 좀 더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다. 평소에도 열심히 하지만, 좀 더 승부에 연연한다”고 연습경기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보통 연습경기보다 뜨거운 열기와 관심 속에 경기가 펼쳐질 때 눈에 익은 은퇴한 선수 한 명이 보였다. KT의 전신 KTF에서도 활약했던 정락영(44)이었다.

정락영은 KBL 최초의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4순위로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에 뽑혔다. 동양은 당시 주축이었던 김병철, 전희철, 김광운, 정재훈, 신인 박재일 등을 한 번에 입대시킨 뒤 1998~1999시즌을 맞이했다.

신인 정락영에게 1998~1999시즌은 기회였다. 그렇지만, 동양은 시즌 초반 그렉 콜버트가 야반도주하며 전력이 더 약해져 32연패의 늪에 빠졌다. 정락영은 제대 선수들이 복귀한 2000~2001시즌을 앞두고 여수 골드뱅크(코리아텐더, KT)로 이적했다. 정락영은 2002~2003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신화를 경험한 뒤 2005~2006시즌부터 서울 SK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정락영은 1998~1999시즌 데뷔해 2008~2009시즌까지 11시즌 동안 477경기에서 평균 22분 5초 출전해 5.3점 2.5리바운드 3.4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은퇴 후 SK에서 전력분석 업무를 맡았던 정락영은 2010년 농구계에서 사라졌다.

프로농구 초창기 활약한 정락영을 제주도에서 만나 근황을 들었다. 다음은 동호회에서 농구를 즐기면서도 스킬 트레이너로 활약 중인 정락영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은퇴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어떻게 지냈나?
은퇴한 뒤 농구와 상관없는 다른 일들을 했다. 3년 전에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평생 한 게 농구인데다 많이들 알아봐주시며 주위에서 도와주셨다. 유소년과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제주도와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클럽(JSC, 제주스포츠클럽)에서 중고등부, 성인부 스킬 트레이닝을 맡고 있다. 앞으로 클럽 자체에서 전문 선수반을 운영하려고 한다. 현재는 농구 관련해서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제주도가 농구 불모지라고 하지만, 농구인구가 꽤 된다. 중고등부뿐 아니라 성인부 등록인원도 40명 가량이다. 농구 인기가 좋아서 잘 가르쳐 드리고 신경을 쓴다. 서귀포에서는 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농구도 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건가?
(웃음) 처음에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서귀포시에 살았다. 그 때 피버스라는 팀과 인연을 맺어서 계속 이어온다. 육지는 30분 거리도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여기는 30분이면 굉장히 멀게 느끼며 남의 동네, 다른 동네라고 여긴다. 막상 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왔다갔다 하는데 좋은 분들이 많아서 잘 해주신다.
(정락영이 속한 피버스는 ‘2018 전도 스포츠클럽 농구리그’ 동호인부 한라리그(선수 출신 2명 출전 가능)에서 우승함)

어떻게 제주도에 내려왔나?
제주도가 살기 좋다. 예전부터 제주도의 좋은 부분을 유심히 보며 한 번 내려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기회가 와서 내려왔다.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이후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웃음), 주위에서 ‘너 해외에 나갔다며?’, ‘해외에서 뭐 했다며?’라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라. 정확한 건 외국에서 어떤 사업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그 일을 했었던 거다. 중국도, 베트남도 갔었다. 그 일이 다 끝나서 그 회사를 나온 뒤 제주도에 내려온 거다. 그게 정확한 거다(웃음).

선수 시절을 돌아보시면 어떤가?
못했다(웃음). 저도 스킬 트레이닝을 하며 공부를 한다. 제가 기존에 했던 것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습을 하니까 지금 더 농구를 잘 한다.

한 스킬 트레이너가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을 선수 시절에 했다면 더 잘 했을 거다”는 말을 하더라.
똑같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그런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도, 곳도 없었다. 유튜브 같은 사이트도 없어서 기술을 찾아볼 수 있는 게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넘쳐난다. 넘치는 대신 부작용도 있다. 제가 가르치는 건 단편적인 기술보다 실제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어느 상황에서 활용해야 하는지 중점적으로, 세세하게 가르친다. ‘정락영이 가르쳐준다’고 해서 한 번 왔다가 제가 실력이 안 되면 다시 안 온다. 제가 실력이 되고, 실력만큼 좋은 말로 설명을 잘 해주면 계속 믿음을 가지고 따라온다.

정락영 선수 하면 32연패의 대구 동양이 떠오른다.
솔직히 잊고 싶지 않다. 자랑스러운 기억이 아니지만, 잊고 싶은 기억도 아니다. 그 당시 우리가 가진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해서 결과가 그렇다면 수긍을 한다. 최선을 하지 않고 32연패를 당했다면 욕을 먹고 비난을 해도 그에 대해 반박을 할 수 없다. 선수들은 어떻게든 연패를 끊고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노력을 했다. 결과가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서 그 결과에 대한 선수 책임은 크지 않다고 본다.

콜버트가 야반도주했다. 그 당시 콜버트를 원망하진 않았나?
(콜버트가 있었다면) 좀 더 나았을 거다. 그렇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어난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하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어차피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남은 선수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서 그 부분에 대한 미팅을 매일 했다. 사실 실력의 한계가 뚜렷해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못해서 진 거다.

코리아텐더 4강 신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극과 극을 맛봤다.
전 골드뱅크로 트레이드가 되었는데 그 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최명룡) 감독님께서 배려를 해주셔서 경기를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뛰었다. 트레이드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체되어 있는 선수가 트레이드 되면 새로운 동기유발이 되어서 꽤 좋다.
그때가 저에겐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 그 부분이 맞았고, 팀 컬러와 선수 구성이 제가 좋아하는 농구였다. 달리는 농구, 빠른 농구, 요즘 런앤건처럼 주고 달리고, 주고 달리며 득점하는 빠른 공수전환에 딱 맞아서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
(이상윤) 감독님께서 오픈 마인드셨다. 여러 가지 선수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같이 동참하고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선수들의 의견이 함께 들어간 작전을 만드니까 우리 다 같이 하자는 동기유발이 더 생겨서 다른 팀보다 더 끈끈했다. 이런 부분이 하나하나 합쳐지니까 올스타, 슈퍼스타 없이도 신나는 농구가 가능했다.

국내선수들도 잘 했지만, 두 외국선수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맞다. 그 친구들도 머리가 영리한 게 그런 팀 분위기에 잘 융화되었다. 외국선수들이 영리해서 국내선수들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이버츠와 페리가 잘 했다. 국내선수들이 이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친구들도 한국 선수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프로농구는 조금씩 보나?
여기서 육지로 나가는 경우는 1년에 1~2번 밖에 없어서 현장에서 보지 못하고 TV로 본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선수들의 하드웨이가 확실히 좋아졌다. 제가 선수생활을 했던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는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길을 알고, 농구를 아니까 훨씬 유기적이고, 훨씬 잘 하게 보인다. 1대1이 좋은 국내선수도 많았다. 확실한 국내선수 에이스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부분에서 조금 안타깝다. 에이스라고 불릴만한 확실한 선수가 안 보이고,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도 부족하다.
제가 스킬 트레이닝을 하면서 느끼며 배운다. 스킬 트레이닝의 방향이 단순하게 드리블을 잘 치는 선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최근 전문 슈터가 없는데 슈터의 풋워크를 스킬 트레이너가 가르쳐줄 수 있다. 팀 훈련을 하기 바빠서 개인훈련으로 익혀야 하는 이런 걸 팀에서는 못 가르쳐준다. 스킬 트레이너도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해서 한국농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주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엘리트 농구부가 있다. 최근 제주시 농구협회에서 고등학교 농구부를 만든 뒤 대학까지 연계학교를 만들려고 계획을 잡고 있다. 이렇게 진행이 된다면 저도 엘리트 농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습경기지만, 오랜만에 현장에서 프로농구를 봤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이런 분위기와 기분을 느끼는 게 10년 만인 거 같다. 확실히 기분이 좋다. 살아있는 느낌이다. 매일 가르치기만 하다가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보며 공부도 하니까 느낌이 색다르다. 현장에는 웬만하면 잘 안 가려고 했다. 가도 딱히 할 것도 없고, 즐기는 입장이니까 TV로만 봤다. 중계를 보며 한국농구의 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제주도에서 농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농구동호회, 스포츠클럽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농구 불모지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할 정도로 농구에 관심이 크다. 요즘 농구 인기가 죽었다고 하는데 제주도에서 제가 밑바닥부터 농구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이런 부분에서 협회, 주변 지인들이 도와주신다.

#사진_ 이재범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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