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이제 한국 농구사를 논할 때 라건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12-2013시즌 리카르도 라틀리프로 KBL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그는 2018년 1월, ‘라건아’란 이름으로 특별귀화에 성공, KOREA 유니폼을 손에 넣었다. 국내무대 접수는 이미 끝마쳤다. 현대모비스에서 4번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정규리그 역사상 더블더블을 가장 많이 기록한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또 지난 9월에는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에서도 25년 만에 첫 승을 선사했다. 이처럼 한 해 동안 수많은 대기록을 달성하며 자신의 포지션처럼 한국농구의 센터에 섰던 라건아. 그가 바로 2019년, ‘올해의 농구인’ 수상자다.
다사다난했던 2019년
2018-2019시즌 친정인 현대모비스로 돌아온 라건아는 그야말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경기당 평균 16.9득점 14.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소속팀의 정규리그 1위 등극을 이끌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 전자랜드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평균 33분 이상 뛰며 4번째 챔피언반지를 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점프볼은 지난 2019-2020시즌 개막 특집호 표지의 주인공으로 라건아를 내세웠다. 라건아가 건재한 이상, 현대모비스는 여전히 우승후보로 꼽히기에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2달이 채 지나지 않아 라건아는 새로운 유니폼과 함께 점프볼에 등장하게 됐다. 지난 11월 11일, 현대모비스가 KCC와 단행한 4대2 트레이드(라건아, 이대성↔리온 윌리엄스, 박지훈, 김국찬, 김세창)를 통해 팀을 옮기게 됐기 때문. 라건아는 “혼란스러웠다”며 당시 심경을 전하는 한편 새로운 소속팀에서 새 목표를 향해 정진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Q. 급작스럽게 트레이드를 당했다. 유재학 감독이 많이 미안해했다고 들었는데, 심경은 어땠나.
처음 통보를 받았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팀이 3연승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뭘 잘못했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나를 환영해주는 팀에 가서 기쁘다.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 중이다. 내가 언제 볼을 잡고, 언제 슛을 쏴야 하는지 등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현재 KCC의 선수 구성이 좋기 때문에 서로 희생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맞춰가려고 노력 중이다.
Q. 개인적으로 서운한 마음은 없었나?
개인적으로 미리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한다. KCC랑 트레이드를 진행하기 전에 또 다른 팀과 접촉을 했다고 들었는데, 팀 사정을 이야기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됐을까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소식을 들은 뒤에는 빨리 마음을 추슬러서 새로운 팀에 가야한다는 생각만 했다.
Q. 그래도 절친한 사이인 이대성과 같이 이적한 건 불행 중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이대성도 같은 말을 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군데, 같이 와서 다행이다. 나는 2012년, ‘DASH(이대성의 별명)’는 2013년부터 KBL에서 뛰고 있는데, 커리어가 비슷하다. 베스트 프렌드며, 앞으로도 도움이 많이 될 친구다.
이대성과 라건아가 가세하면서 KCC는 국가대표만 4명(이정현, 송교창, 이대성, 라건아) 보유한 일명 ‘슈퍼팀’이 됐다. 게다가 2014-2015시즌 전창진 감독과 특급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던 찰스 로드가 교체선수(조이 도시)로 합류했다. 트레이드 이후 3경기에서 패-승-패를 기록하며 ‘빅딜 휴유증’이란 이야기도 들었지만, 라건아는 ‘융화’가 중요하다며 시간이 흐른다면 분명 우승 가시권에 다시 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Q. 새롭게 온 KCC는 어떤가,
일단 KCC에 오게 돼서 좋고, 정말 많이들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KCC의 선수 구성을 보면 지난해 현대모비스의 초반과 비슷하다. 이종현이라는 확실한 골밑 자원이 있고, 양동근, 함지훈, 이대성 등 훌륭한 자원들이 많았는데, 지금 KCC도 그렇다. 개개인의 희생이 조금씩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데, 적응 시간은 필요하다. 융화가 중요한데, 시간이 흘러 선수들이 뭉치게 된다면 구성이 훌륭하기 때문에 분명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
Q. KCC로 이적한 이후 첫 경기부터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정규리그 통산 더블더블 1위 기록(11월 20일 기준 231회)을 가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
큰 의미가 있다. 일단 이전 조니 맥도웰(227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을 깨지 않았나. 더 많이 치고 나가서 선수들이 깨기 어려운 기록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
Q.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정한 목표가 있나?
개인적으로 KBL의 기록을 많이 세우고 싶다. 팀으로는 우승이 목표다. KCC 선수들을 보니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테크니컬 파울을 받는 등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건 앞으로 줄여나갈 것이다. 부정적인 언행을 안 하도록 하겠다. 그런 부분들은 내가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한국 농구국가대표, 라건아
라건아에게 국가대표는 자부심, 그 자체다. 서울 삼성 소속이던 2017년 1월 1일, 그는 새로운 목표에 대해 ‘PASSPORT’란 이야기를 꺼내며 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고, 그 뒤 1년여 만에 귀화에 성공했다. 이후 출전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9 FIBA 중국월드컵 예선에도 합류해 기어이 대한민국 남자농구를 세계농구 축제로 이끌었다. 농구월드컵에서도 그 활약은 이어졌다. 세계 정상급 빅맨들 틈에서도 라건아는 기죽지 않았다. 평균 23득점 12.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국이 25년 만에 농구월드컵에서 승리(vs 코트디부아르)를 챙기는데 중심에 섰다.
Q. 김종규가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라건아, 이승현 선수가 있어 첫 승을 따낼 수 있었다. 그동안 본인이 꿈꿔왔던 월드컵과, 직접 몸으로 겪어본 월드컵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
원했던 대표팀의 자리였다.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꿈을 이뤄 기쁘다. 매 경기 승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센 팀이 된 것 같다.
Q. 앞으로 계속해서 한국 대표팀으로 뛰게 될 텐데, 우리 젊은 선수들이 갖춰야 할 부분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선수기 때문에 운동 능력이 부족하고, 신장이 낮다는 것은 스스로 못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점은 보완하면 된다. 만약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면 웨이트를 보강하면 된다. 한 예를 들자면 김종규의 경우는 운동 능력이 좋다. 외국선수들이 봐도 김종규는 확실히 좋다. 하지만 왜 자신감이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Q. 대표팀 생활에 있어서 이대성과 최준용이 도움을 많이 줬다고 들었다. 두 선수는 어떤 동료인가.
먼저 이대성은 G리그를 경험하고 왔기 때문에 미국 문화를 알고 있다. 생활을 하다 보면 오해를 살 경우가 생기는데, 서로 잘 도와준다. 나 또한 그를 통해 한국문화를 많이 배운다.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좋은 친구다. 최준용은 외국사람 같은 부분이 있다.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자유분방하면서 개성도 강하고, 본인 생각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게 좋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최준용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이 봤을 때 ‘돌+아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자기 색깔이 강한데, 나 역시도 그런 마인드기 때문에 보기 좋다.

목표는 오로지 우승, 좋은 남편+아빠
라건아는 ‘올해의 농구인’ 수상으로 개인이력에 또 하나의 커리어를 추가했다. 라건아는 “시간이 지나 레아와 이야기를 할 주제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이제 KBL에서는 세 번째 팀인 KCC에서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오늘도 목표는 ‘챔피언십=우승’이라며 묵직한 각오를 전했다.
Q. ‘올해의 농구인’은 2019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남자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소감은?
정말 영광스럽다.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딸이 컸을 때 자랑할 만한 것을 하나 더 만든 것 같다. 내게 투표를 해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Q. 2018년에는 이정현이 수상하면서 아쉽게 떨어졌다. 올해는 상황이 바뀌었다. 이정현이 아쉽게 떨어졌다.
작년에 내가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생각해보니 이정현이 (정규리그)MVP이지 않았나. 그도 받을 만 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내가 받았고, 내년에는 이대성, 그 후년에는 최준용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웃음).
Q. 개인적으로 2019년은 어땠나?
음. 다사다난했다. 업, 다운도 있었다. 트레이드라는 쇼킹한 일이 있긴 했지만, 사실 다운(down)도 아니다. 좋은 팀에 오게 돼서 좋다. 한 해 동안 가족들과 잘 지내고, 많은 일이 있었던 한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업(up)은 두 가지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 그리고 국가대표팀 당시 농구월드컵에서 첫 승을 챙긴 것이다. 새로운 팀에 왔으니 새로운 ‘업(좋은 일)’을 만들고 싶다.
Q. 안 좋은 일도 있긴 했다. 이로 인해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는데.
오해가 있었겠지만, 나도 내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경기(11월 17일 삼성 전)의 경우에는 11개의 야투를 시도해 1개만을 성공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누구 때문이 아닌데, 나 역시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Q. 스스로가 보는 라건아는 어떤 사람인가.
일단 나도 좋은 아빠다. 또 좋은 친구들의 친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반갑게 반겨주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믿음도 가진다면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팬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라건아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팬에게 모두 말이다.
좋아하는 분들께는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을 때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판정을 받아 속이 상해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 교훈을 얻고 있다.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날 좋아하지 않는 팬들에게는 싫어하는 것 역시도 관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부분인데, 좋아하지 않다가도 내 플레이를 보다보면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아니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웃음). 나도 열심히 해보겠다.

선수들이 말하는 라건아
김준일(서울 삼성)
박스아웃, 리바운드가 정말 철저한 선수다 (연세)대학 때 최준용, 안영준이 리바운드를 걷어내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프로에서 라건아가 그런 느낌이다. 삼성에 있을 때 같이 뛰면 정말 든든했다. 코트 밖에서는 정말 가정적이고, 딸 바보다. 알려졌다시피 자기관리는 정말 철저하다. 부딪히면 정말 돌덩이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운동 시간 역시 철저하게 지킨다.
강상재(인천 전자랜드)
대표팀에서 같이 뛰면 정말 든든한 느낌이다. 득점, 리바운드 가담은 물론이고, 속공 참여, 백코트까지 잘 해준다. 그런 부분에서 제 몫 이상을 해주고 있다. 상대로 만날 때도 속공 참여를 너무 잘 해서 나를 정말 힘들게 한다(웃음). 코트 밖에서는 은근 개구진 모습이 있다. 웬만한 대화는 보디랭귀지나 눈치껏 건아가 캐치하는 편이다. 코트에서는 포커페이스지만, 밖에서는 잘 웃고, 장난도 많이 치는 선수다.
이승현(고양 오리온)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나. 올해 월드컵 예선전에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김)종규 형이 아파서 거의 풀타임에 가깝게 뛰었고,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 라건아가 없었다면 힘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경기장에서 만나면 좀 따뜻하게 해줬으면 한다. 건아가 장난을 치는 건 친근함의 표시라는 건 알고 있다(웃음). 한국 라면도 정말 좋아한다. 너구리, 짜파게티 등도 같이 끓여먹고, 잘 어울려서 정말 좋다.
전창진 감독(전주 KCC)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정확하게 스타일을 알 순 없지만, 정말 묵묵히 열심히 하는 선수다. 팀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다. 외국선수로서 그 정도 성실함을 보이는 건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꾸준한 것도 쉽지 않은 것인데, 자기 관리도 정말 열심히 한다.
최준용(SK)
라건아는 ‘올해의 선수’가 아니라 에브리데이, 올데이 선수다(웃음). 다른 팀으로 옮겼지만, 항상 라건아한테 하는 말이 있다. 내 마음속에 최고의 선수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온 선수다. 지금은 가족이다.
아이라 클라크 코치(현대모비스)
라건아는 그냥 ‘짐승’이다. 내가 아는 선수들 중 가장 열심히 일하고, 농구를 정말 사랑한다. 매번 성장을 하고, 본인이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공격이 뛰어난 선수지만, 수비적으로도 뒤처지지 않는다.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젤 같다. 이번 시즌 때 3점슛을 연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앞으로는 더 위험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건 본인에 대한 투자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투자를 하다 보니 큰 부상도 없다. KCC로 가게 됐는데, 잘할 거라고 믿는다. GOOD LUCK, 행운을 빈다.
# 사진_ 홍기웅 기자
# 영상_ 김남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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