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보장된 길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한 양재민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3-11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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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내가 만든 선로 위를 당당히 걸어가고 싶다.”

일본의 유명만화 「메이저」의 주인공 시게노 고로는 성공이 보장된 명문고교에서의 생활보다 그들을 꺾고 올라서는 꿈을 꾸게 된다. 이미 명문고교의 1군을 꺾고 에이스 투수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음에도 야구부가 없는 학교로 전학, 당당히 맞서게 된다.

이미 성공이 보장된 길을 걷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있어 ‘몽상가’와 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직접 걷는 시게노 고로와 같은 남자가 대한민국 농구계에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양재민이다.

양재민은 대한민국 농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초특급 에이스였다. 2015 FIBA U16 아시아청소년농구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이끌었으며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1년 뒤 2016 FIBA U17 세계청소년농구대회에선 8강 진출을 달성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스페인 진출, 연세대 입학 등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며 대한민국 농구계의 최대 유망주로 꼽혔지만 끝내 미국으로 다시 떠나고 말았다. 이유는 확실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그 마음 하나로 당당히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미 스페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기억이 있었음에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미국은 더욱 힘들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그곳에서 양재민은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텼고 지금은 전미전문대학체육협회(NJCAA) 리그 소속 니오쇼 CC의 주전 포워드로서 활약했다. 2019-2020시즌 성적은 32경기 출전 평균 12.0득점 6.6리바운드.

졸업을 앞둔 현재, NCAA 디비전Ⅰ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양재민. 일주일의 짧은 휴식을 끝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음은 미국 현지에 있는 양재민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일문일답이다.

Q. 2019-2020시즌도 이제 모두 마무리됐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난주 월요일에 2019-2020시즌이 끝났다.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그동안 시즌을 소화하면서 살이 많이 빠진 만큼 보강 운동을 철저히 하고 있다. 주니어컬리지 특성상 트레이너가 따로 관리해주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잘해야 한다. 다음주에 봄 방학이 끝나는데 니오쇼CC 코치님과 함께 기술 훈련을 할 예정이다.

Q. 미국 농구에 대한 적응은 문제없었나?

첫 시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저 경험하는 시간이었고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때였다. 그래도 두 번째 시즌부터는 때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다 보니까 순조롭게 적응했던 것 같다.

Q. 연세대에서 1년도 마치지 않고 나온 것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부터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확고하게 NBA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나은 곳에서 농구를 하고 싶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싶었고 그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말로 어떻게 해야 미국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지 몰랐다(웃음). SAT 시험을 준비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찾아봤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도 해외 진출에 대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20살이라는 나이가 젊을 수 있지만 스포츠 선수로서는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리그 전반기를 마치고 은희석 감독님과 상의한 후 결국 연세대를 나오고 말았다.

Q. 이후 과정 역시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연세대를 나오고 나서 무작정 미국 로스엔젤레스(LA)로 떠났다. 근처에서 하숙하며 미국 대학에 대해 알아봤다. 사실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어느 정도 경력도 있고 하이라이트 영상도 있으니 미국에 가면 대학은 들어갈 수 있을지 알았다. 근데 한 달 반이 넘어가는 시점까지 아무도 찾아주지 않더라.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돌아왔고 좌절감을 느끼던 사이에 니오쇼CC의 제레미 쿰스 감독님께서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장학금부터 모든 비용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찾아가게 됐다. 그전까지는 캔자스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몰랐다. 대학농구팀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니오쇼CC는 캔자스 공항에서 2시간 정도 차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Q. 니오쇼CC에서의 생활 역시 매우 힘들었다고 들었다.

주변에 맥도날드, 서브웨이 등 패스트 푸드 가게가 몇 개 있고 큰 마트 하나 정도가 있다. 한식당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웃음). 다른 음식이 먹고 싶으면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야 하더라. 일단 먹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 농구도 내가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첫 시즌 때 크게 느낀 점이 있었는데 바로 경쟁이었다. 여기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안고 있다. 니오쇼C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NCAA 디비전Ⅰ으로 가는 것. 그래서인지 패스보다는 자기 공격만 주로 보는 경향이 심했다. 쿰스 감독님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 지적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경쟁에 더 무게를 두셨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났고 두 번째 시즌에는 다른 마음을 먹게 됐다. 출전시간을 보장받아야 했고 그러려면 많은 득점을 기록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대일 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전과 달리 정말 많이 늘었다.



Q. 니오쇼CC에서의 시즌은 모두 끝났다. 개인 훈련 계획은 어떻게 준비했나.

여기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아는 교수님이 계신다. 대한민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주변 체육관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다고 해서 다니고 있다. 봄 방학이 끝나면 코치님들이 준비한 기술 훈련을 해야 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NCAA 디비전Ⅰ 편입 준비도 하고 있고 여름에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잠시 쉬려 한다. 근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후 계획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Q. NCAA 디비전Ⅰ으로의 편입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대학농구의 특성상 마지막 계약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확실한 게 없다. 몇몇 학교에서 관심을 보여주고 있고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아마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방문 일정을 잡아놓은 학교도 있다. 4월 말에는 어떻게든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열심히 해온 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

Q. NCAA 디비전Ⅰ에는 이미 이현중이 뛰고 있다.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락은 자주 하는지 궁금하다.

요즘 연락 수단이 워낙 좋아져서 (이)현중이와는 자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보이스톡을 하고 있다. 서로 잘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힘든지 이야기하면서 위로하고 있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을 제외한 일본, 중국, 대만은 이미 어느 정도 미국으로의 진출에 대한 길을 뚫어놓은 것 같다. 우리는 아직 그렇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현중이나 나나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현중이는 NCAA 디비전Ⅰ으로 바로 가는 길, 나는 NJCAA를 통해 NCAA 디비전Ⅰ으로 가는 길을 그려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어린 선수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힘을 내려 한다.

Q. 성공이 보장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힘들 것이란 예상 속에서도 묵묵히 달려나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어릴 때부터 농구 선수로서의 길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좋은 학교를 거쳐 프로 진출에 성공하면 몇몇 뛰어난 선수들은 30대 중반까지 뛰다가 은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농구 선수로서의 길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 자기소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농구를 할 때도 대한민국에서처럼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꺾일수록 더 일어서려 했다. 하루를 버티면 그 시간이 아까워 이틀을 버티고 한 달을 버티면 그 시간을 돌이키며 두 달을 버텼다. 미국에서도 똑같았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미쳤다고 할 수도 있다. 성공이 보장된 연세대를 떠나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미국으로 간 선택을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만든 길 위에 당당히 서고 싶다.

# 사진_점프볼 DB(유용우 기자), 양재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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