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손대범 기자] 4년에 한 번 오는 대한민국 여자농구대표팀의 월드컵은 3경기만에 종료됐다. 12위 아래부터는 순위결정전 기회조차 없어 아마 우리 대표팀은 0승 3패의 기록으로 순위표 아래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3경기 평균 20점차로 패했다. 169점을 넣을 동안 229점을 뺏겼다. 득실 마진만 보면 C조의 푸에르토리코(-89점)에 이어 2째로 낮다. 하필 유럽 정상권 팀(프랑스)과 북미 강호(캐나다)를 내리 만난 것이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다. 선수층이나 분위기, 지원 스태프 등 그 어떤 부분도 밀릴 것이 없는 팀들이었기에 우리의 8강 진출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나리오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너무 허망하게 날렸다.
아시안게임 대회 직후라고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거의 같은 멤버로 대회를 치르는 중국은 라트비아(64-61), 세네갈(75-66)에 승리를 거두었고, 미국을 상대로는 12점차(88-100)로 밖에 지지 않는 의외의 선전을 보였다. 4년 전 같은 대회에서 중국이 미국에게 56-87로 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일찌감치 월드컵을 넘어 2020년 올림픽에 초점을 맞춘 일본 대표팀도 아시아의 벽을 넘어섰다. 스페인에게는 13점차(71-84) 승부를 벌였고, 벨기에와는 연장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77-75)를 챙겼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팀을 이끈 도카시키 라무와 요시다 아사미가 빠졌지만 지난해 아시아컵을 비롯해 선전이 계속되고 있다. (2014년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0승 3패로 예선 탈락)
한국은 협회가 계획성 없이 대회를 준비해온 것이 너무 티가 난다. 축구에 비해 위상이 많이 떨어진 해도, 농구월드컵(전 세계선수권대회)과 올림픽은 세계 농구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월드컵 카드를 너무 안일하게 사용해왔다. 흐름을 쫓아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예전 방식만 고수했다. 정작 우리가 이야기하는 '한국농구'는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몇 차례나 확인해놓고도 똑같은 이유를 대고, 똑같은 말만 한다.
경기에서는 감독의 단조로운 운영이 아쉬웠다. 아시안게임 당시부터 지적됐던 부분 중 하나로 선수를 고루 기용하지 못했다.
박혜진과 박지수가 평균 36.5분, 32.5분을 소화했고 그 외 4명이 평균 22분 이상을 뛰었다. 2명은 2경기, 다른 2명은 1경기에 그쳤다. 물론, 경기 내내 접전이 이뤄질 경우에는 주력 선수들이 많이 기용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백투백 일정에서 31점차(58-89)로 패한 프랑스 전을 빨리 포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디까지 큰 그림을 그려뒀는지는 잘 모르겠다. 득실까지 고려해 더 점수차가 안 벌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주력 선수를 더 기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분위기가 완전히 기운 상태였기에 이 역시 맞는 판단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어진 캐나다전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열렸다. 일정의 불합리함을 탓하기에는 많은 나라들이 같은 조건에서 뛰었기에 할 말이 없다. 상대를 깜짝 놀래키는 출발은 좋았지만, 수가 읽혔을 때의 대책이 없어 보였다. 벤치멤버들은 자신들이 못 뛸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국가대표팀이라면 12명이 모두 뛸 간절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도 (적어도 화면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선수들의 '의지'만으로 뭔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자대표팀 경기는 KBS N을 통해 중계됐지만, 경기 촬영과 중계는 현지에서 제작해 각 국에 배포됐다. 한국을 제외하면 몇이나 우리 경기를 볼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농구 대표팀의 경기를 보는 이들은 화면에 잡힐 때마다 거의 100%의 확률로 화가 나있는 국가대표팀 감독의 이미지만 기억할 지도 모른다.
물론 감독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7~8년 전부터 걱정해온 선수층 문제는 앞으로도 대표팀을 맡는 모든 감독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선수를 키우지 못했고 동기부여를 주지 못했다. 기존 선수들이 부랴부랴 가세했지만 정상적이진 않았다. 김단비(신한은행)는 경기 감각과 체력이 한창때 같지 않았고, 김정은(우리은행)도 계속된 합류 요청에 월드컵 출전에 대한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몇몇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로스터를 추리는 과정에서 드나들기를 반복했지만, 그 과정이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지난 월드컵 로스터를 돌아보자. 2014년 월드컵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대표팀을 이원화했다. 시도 자체는 바람직했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김연주 - 신한은행 / 은퇴
배혜윤 - 삼성생명
최희진 - 삼성생명
홍보람 - 우리은행 / 은퇴
이승아 - 우리은행 / 은퇴
홍아란 - KB스타즈 / 은퇴
김수연 - KB스타즈 / 은퇴 후 복귀
박지수 - KB스타즈
강이슬 - KEB하나은행
신지현 - KEB하나은행
고아라 - KEB하나은행
김소담 - KDB생명
김시온 - KDB생명 / 은퇴
전보물 - KDB생명 / 은퇴
이들 중 기대치대로 성장한 선수는 박지수 뿐이다. 한국여자농구 입장에서는 2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인재다. WNBA를 거쳐 아시안게임에서 그 기량을 입증했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평균 19득점 8.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쉴 틈 없이 일정을 치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강행군을 부상없이 소화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이후 월드컵을 계기로 고아라와 김소담, 배혜윤 등이 국가대표가 됐지만 '성장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심어줬던 선수는 그리 없었다. 똑같은 얼굴이 선발되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대체자원은 계속 줄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당장 늘지 않는 인구와 농구선수 숫자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도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유럽처럼 현재 선발된 연령대별 청소년 대표팀이라도 확대, 관리하고 최대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럽농구가 다양한 색깔을 내기 시작하고 NBA, WNBA 선수들을 배출하게 된 건 겨우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인구가 많고 농구 저변이 넓은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유럽은 '축구'라는 죽었다 깨어나도 넘지 못할 산이 존재한다. 농구협회가 넘버원을 넘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력이 커지고 있다. '계획'을 잘 잡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각 국은 대표팀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시켰는지에 대한 계획을 공유해왔는데, 그 중 공통분모로 작용했던 부분이 바로 연령대별 대표팀 관리였다.
물론 선수가 넘쳐나는 미국, 중국이 아닌 이상, 그렇게 관리하고 투자를 해도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소위 말하는 'A급' 2~3명을 건지기가 참 힘들다.
2014년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기대주' 대표팀 선수들이 은퇴, 혹은 임의탈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동기가 제각각이듯 실행 오류의 원인은 대단히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박지수, 박지현 같은 선수가 등장한 것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우리농구계의 대단한 행운이라 볼 수 있다.
이제는 남아있는 유망주를 관리, 육성해서 새로운 꿈나무가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좋은 선수로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 일본 등은 월드컵을 앞두고 다양한 평가전을 통해 세계의 흐름에 적응했다. 반면 우리는 남중남고, 혹은 프로팀과의 연습경기가 전부였다. 사실, 국제친선대회는 효과는 있지만 이동(비행)과 체제비 부담이 있다. 그러나 몇 년째 똑같은 이유로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집행부의 직무유기라 볼 수 있다.
또, 남자농구와 마찬가지로 전임 코칭스태프를 도입해 데이터를 보존하고 공유하는 것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공모가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해보고 싶은 사람'을 뽑아서 '하고 싶다 했으니 해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농구에 꼭 필요한 사람을 모셔야 한다. 설령 그 적임자가 외국인일지라도 말이다. 예산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것만이 예산 확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여자대표팀의 여정은 통일농구로 시작해 3전 전패로 끝났다.
협회는 냉정히 여름의 성과를 돌아봐야 한다. 남북화합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숙영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은 아시안게임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통일농구와 남북 단일팀이 마치 농구 부활의 동앗줄인 것 마냥 붙잡고 행동하는 것도 곤란하다. 정말로 아름다운 스토리를 남겼지만, 없는 인력에 그것만 바라보다보니 정작 '경기'에 필요한 지원은 인력부족과 예산부족 핑계로 이뤄지지 않았다. 통일농구 당시부터 아시안게임까지 농구계에서는 "사람이 없어 다른 업무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서 3x3 대표팀은 유니폼만 대표팀이지 실질적인 지원은 받지 못했다.
또한, 아시안게임 결과는 농구 대중화나 저변 확대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자농구대표팀의 허재 전 감독 사태처럼 손가락질 받는 일이라면 모를까. 축하와 감동은 며칠이면 끝나고, 안 좋은 일은 후유증이 오래 간다. 이번 월드컵도 개막을 앞둔 여자프로농구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
#사진=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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