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용호 기자] 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 감독. 2018년의 끝이 보이던 시점에서 그의 이름 앞 수식어가 한 번 더 바뀌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코치’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2회 연속 FIBA 농구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일등 공신이 됐다.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농구팬들에게 값진 선물을 안겼다. <올해의 농구인> 감독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상식 감독. 그는 지난 2018년 한 해를 가장 밝게 빛낸 한국농구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9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12월 17일, 김상식 감독을 직접 만나 그의 2018년을 돌아봤다. <올해의 농구인> 수상 소식에 연신 겸손함을 보이던 김상식 감독. 한 해를 돌아보는 첫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대답은 “당황스러웠고, 정신없었어요”였다. 그는 한국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지도자 생활을 보낸 이 중 한 명이다. 프로 무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그랬다. 2005년 안양 SBS 스타즈(現 안양 KGC인삼공사)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3년 정도가 흘렀다. 노련함이 물씬 더해졌지만, 김상식 감독은 “지도자 경력이 오래됐지만, 아직도 항상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요”라며 발전 의지를 놓지 않았다.
■ 1Q : 오히려 자신감 있었던 AG
2018년 ‘코치’ 김상식의 행보는 2월 말 2019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 window-2 홍콩, 뉴질랜드와의 홈경기로 시작됐다. 홍콩에 승리, 뉴질랜드에는 패배를 기록한 대표팀은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가 종료되고 다시 소집됐다. 그리고 6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열렸던 window-3 중국과 홍콩과의 원정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모두 승리. 덕분에 2018년 상반기 대표팀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마침내 농구팬 모두가 고대하던, 대표팀으로서도 많은 과제가 걸려있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대표팀의 가시밭길이 시작된다. 주전 센터들의 부상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치며 대표팀은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는 아시안게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죠”라며 입을 열고는 “허재 감독님과 열심히 노력했어요. 하지만, 부상도 많았고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최상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죠. 전력이 정상가동 되지 않았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김 감독은 “필리핀 전도 그렇고 오히려 자신감을 가졌었어요. 조던 클락슨이 대단한 선수지만, 상대팀에 NBA급 센터가 있는 건 아니어서 겨뤄볼 만 하다고 생각했죠.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쳐서 잘 따라줬어요. 저도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맞설 수 있는 실력이라고 생각했죠”라며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 속 동메달을 따낸 건 정말 의미 있는 결과였던 것 같아요”라고 아시안게임을 돌아봤다.

■ 2Q : 감독대행 김상식 “보란 듯이 해보자”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9월 5일 대표팀에 또 한 번 풍파가 몰아쳤다.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 window-4 일정까지 단 8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결국 그를 보좌하던 김상식 감독은 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한 차례 신분이 바뀐다. 예상치 못하게, 그리고 급작스레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당연히 나가려고 했었죠”라고 말했다.
“당연히 허재 감독님과 같이 나가려고 했어요. 협회에 저도 함께 책임이 있다고 의사를 밝혔죠. 근데 코치는 저 한 명이었잖아요. 저까지 떠나면 선수들만 남으니까…. 그래서 허 감독님도 남은 경기를 잘 치르라고 다독여주셨어요. 저는 정말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나가려 했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감독대행을 맡게 된 거죠.” 김상식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익숙하기도 했다. 그는 “감독대행을 여러 번 했잖아요. 처음이었으면 더 당황했을 텐데, 경험이 있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충 답이 나왔던 것 같아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빠듯한 일정 속에 선수들이 다시 모였지만 제대로 훈련을 진행할 여건이 안됐다. 김 감독은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았어요. 경기력향상위원회도 모두 사퇴했으니…. 소집했더니 부상때문에 9명뿐이더라고요. 당황스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화도 났었죠. 연습을 해야 하는데 5대5도 안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당시 김 감독은 중앙대 농구부에 도움을 요청해 인원수를 맞춰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음이 절실했다.
김 감독은 결코 리더십을 잃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보란 듯이 한 번 해보자”라는 말을 수차례 건넸다. 그는 “상황이 좋지 못해 선수들과 더 많이 대화했어요. 국가대표를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남은 사람들끼리 뭉치자고 했죠. 뭉쳐서 하나가 되기 시작하면 그게 국가와 한국농구를 위하는 거란 생각이었죠”라고 말했다. 김상식 감독의 리더십 덕분에 대표팀은 충분히 하나로 뭉쳤다. 요르단 원정과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모두 승리,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 3Q : 감독 김상식 “본선행, 걱정이 많았죠”
단 두 경기였지만 위기 속에서 대표팀을 구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상식 감독. 대한민국농구협회는 결국 10월 2일 그를 대표팀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 선임했다. 그리고 window-5의 개최지가 부산으로 확정, 팬들의 기대가 한 층 더 높아지면서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부상 선수도 복귀했고, 팀이 더욱 단단히 뭉치면서 한국은 레바논과 요르단을 모두 꺾고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본선행 확정의 순간을 돌아본 그는 “긴장한 건 없었지만 사실 걱정은 많이 했죠. 준비 기간이 짧으면 오히려 덜 했을 텐데, 시간이 주어지다 보니 뭐가 더 좋은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혼선도 왔었죠. 그러다 결국 원래 하던 대로 밀고 나가자는 게 결론이었어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어 “결국 우리는 파워와 리바운드, 신장이 해결되지 않으면 승리가 쉽지 않아요. 아시아에서 이란이나 레바논의 실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잖아요.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게 목표인데, 그러기 위해선 압박 수비는 물론, 보다 빠른 공격으로 상대를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라며 대표팀 밑그림을 전했다.
단순히 경기에만 신경 쓴 것도 아니다. 수장답게 선수들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썼다. “각 팀의 에이스들이 모이지만 결국 경기를 뛰는 선수와 못 뛰는 선수가 생겨요. 그래서 출전 시간이 적은 선수들에게 일단 월드컵 진출이 중요하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벤치에서 응원도 많이 해주고 또 투입이 되면 에너지를 쏟아 달라 부탁했었죠. 솔직히 섭섭했을 겁니다. 홈에서 A매치를 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죠.”
그 중 정효근은 유독 김 감독의 눈에 띄기도 했다. 그는 “가장 많이 달라진 선수였어요. 가비지 타임에만 뛰었지만, 앞으로 양희종의 역할을 해야 할 선수죠. 노련한 움직임이나 보이지 않는 공헌을 더 배워야 하지만, 예전보다 정말 많이 늘었어요. 에이스보다는 궂은일을 도맡았던 선수라 눈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정효근에 대한 기대감을 덧붙였다.

■ 4Q : 지도자 김상식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너무 좋아”
김상식 감독은 프로 무대에 몸담던 시절 안양 KT&G, 대구 오리온스, 서울 삼성에서 코치를 지내다 감독대행을 맡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감독과의 인연은 깊지 않았다. 대구 오리온스에서 한 차례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지만 오래 인연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자신의 지도자 시절을 돌아본 그는 “인터뷰 때 많이 얘기했었는데, 감독대행을 하면 보통 감독이 되잖아요(웃음). 근데 저는 희한하게 그렇지 않더라고요. 대행 때 성적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에 더 전념했던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미국에 머문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대학은 물론 다수의 NBA 팀을 돌며 새로운 농구를 배워갔다. 김 감독은 “시간만 되면 자비를 들여 공부하려 했어요. 농구를 보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게 너무 재밌었거든요. 내가 감독이 돼서 여기서 배운 걸 써먹겠다기보다는, 그냥 농구를 보는 게 너무 좋았죠. 해외의 농구를 그대로 한국에 가져오면 당연히 맞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만 바꾼다면 정말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거든요. 제가 바라는 방향은 그런 거예요”라고 이상향을 내비쳤다.
2018년을 무사히 마친 ‘지도자’ 김상식의 시선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일단 대표팀 감독이 2019년 2월까지 계약되어 있어요. 남은 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잘 마무리 지어야죠”라며 현재의 목표를 전한 그는 “그 이후는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요. 지금은 남은 일정에 최선을 다해 더 나아진 경기를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2월에 모일 대표팀의 방향성은 어떨까. 김 감독은 “다시 현장을 돌며 선수구성을 할 거에요. 지난번에 10개 구단과 D-리그를 찾았을 때도 젊은 선수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이 이번에 대표팀에 뽑혔던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부족하지 않아요. 다만 중요한 일정이었던 만큼 경험을 우선시했던 거죠. 이번에는 더 눈여겨볼 예정입니다. 많은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목표는 가까이에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시선은 멀리 뒀다. 김상식 감독은 “대표팀에 있으면서 좋은 기억이 많아요. 좋은 기억, 재밌는 기억, 안 좋고 힘들었던 기억까지. 모든 게 머릿속에 남죠. 개인적으로는 선수들과 겉돌지 않는, 운동적으로나 그 외적으로나 재밌게 얘기할 수 있는 사이만 돼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혼나는 건 코트에 있을 때 뿐이죠. 경기장을 벗어나면 속에 있는 말도 주고받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늘 그래왔듯 2018년에도 한국농구를 위해 헌신한 김상식 감독. 그의 2019년은 긍정적으로만 다이내믹하길 바래본다.
# 사진_ 유용우, 한필상 기자
# 영상편집_주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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