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G의 희로애락 함께한 남자, 박도경

서호민 / 기사승인 : 2019-01-04 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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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서호민 기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있다면, 음지에서 궂은일을 담당해야하는 조연도 있다. 박도경(44) 창원 LG 세이커스 홍보책임도 그 중 한 명이다. 남들처럼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은퇴 후 구단 매니저와 전력분석관, 전력분석코치, 외국선수 스카우트까지 LG에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해냈다. 선수 시절부터 LG와 함께한 시간만 어느덧 햇수로 18년. 20년된 LG 세이커스의 역사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한 사무국 홍보팀의 일원으로서 구단 홍보 업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세이커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를 만나봤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전담수비→백업 센터’ 서장훈과의 질긴 인연
박도경 홍보책임의 농구인생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국보급 센터 서장훈(예능인)이다. 서장훈의 질긴(?) 인연은 한국 농구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90년대 농구대잔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대 농구부에 속했던 박도경은 연세대와 경기를 맞붙을 때마다 서장훈의 전담수비수로 나섰다.

“서장훈 선수와의 인연은 대학교 때부터 시작됐죠. 그 당시 저는 중앙대 농구부에 속해 있었고, 연세대와 경기를 붙을 때마다 서장훈 선수의 전담수비수로 나섰죠. 대한민국 최고 센터를 막는 건데 왜 안 힘들겠습니까. 정말 죽기살기로 막았던 기억이 나네요. 대단히 힘들었죠. 평균 30점 넘게 득점하니까 절반만 주자라는 생각으로 수비를 했던 것 같네요.”

중앙대 졸업 후, 그는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해 2라운드 전체 20순위로 청주 SK 나이츠에 지명됐다. 그런데 SK에서 또 한 번 서장훈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이번에는 전담수비수가 아닌 주전 센터 서장훈의 뒤를 받치는 백업 센터 역할을 맡게 된 것. 입단 2년차인 1999-2000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이·조·추(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트리오와 조니 맥도웰이 속해있던 대전 현대를 4승 2패로 꺾고 생애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끼어보기도 했다.

“그 시절 우승했을 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죠.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장훈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제가 우연찮게 출전할 수 기회를 얻었어요. 그 당시 상대팀 외국선수가 조니 맥도웰과 로렌조 홀이었는데 제가 그 선수들의 전담수비를 맡았죠. 제가 수비를 잘했기보다는 그냥 팀 전체가 다 잘해서 이뤄낸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참 좋았던 순간이었죠.”



▲ KBL 최초 전력분석관…이것만큼은 자부해!
2001년, 박도경 홍보책임은 농구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LG 센터 허남영(SK 코치)과의 1대1 맞트레이드에 의해 김태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LG로 팀을 옮긴 것. 골밑 전력이 약했던 LG 입장에선 높이와 파워를 두루 겸비한 박도경 카드가 제 격이었다. 그러나, LG 이적 이후 박 홍보책임은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대학시절 때부터 안고 있었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이미 두 번의 무릎 수술로 인해 그의 무릎은 닳고 닳았다. 그렇게 그는 2001-2002시즌을 끝으로 5년간의 짧은 프로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LG 구단은 그런 그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당시 KBL에는 도입되지 않았던 전력분석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농구판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구단의 제안이 다소 꺼려질 법도 했지만, 박도경은 한 치 고민도 없이 바로 OK를 했다. 그렇게 KBL 최초의 전력분석원이 탄생했다. “제가 이 타이틀 하나만큼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는 ‘KBL 1호 전력분석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축구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 옆에 비디오 분석관으로 일했던 압신 고트비 씨가 있었어요. 이 분이 선수 출신이자 공학도이신데 분석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에요. 이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경기 비디오만 대충 보고 분석을 했었는데, 분석력이 뛰어난 고트비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체계적인 전력분석 시스템이 갖춰지게 됐습니다.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컴퓨터로 분석한 뒤 그 정보를 감독에게 전달하고,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각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훈련에 접목을 시킵니다. 하지만, 당시 농구에서는 전력분석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거든요. 월드컵이 끝난 이후 K-리그에서 먼저 고트비 전력분석 시스템이 유명세를 타자, LG 구단에서도 그 시스템을 농구에 도입해보고 싶다고 제게 제안해주셨죠. 솔직히 생소한 일이라 두렵기도 했는데, 이왕 할 거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분명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공부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뒤 지금 현재 KGC인삼공사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손창환 코치와 고상준 前 SK 전력분석원, KT 배길태 코치 등 세 명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공유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또, 미국으로 건너가 NBA와 G-리그 전력분석원들은 어떻게 하는지 노하우를 듣고 배우기도 했죠.”

인터넷이 거의 보급되지 않던 시절 그는 전국 각지를 오가며 전력분석 DVD를 직접 선수단이 있는 곳으로 조달했다. 물론 이 또한 지금은 웃으며 말하는 추억이다.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중계방송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경기 영상을 촬영했어요. 촬영한 다음에는 비디오 편집을 해서 직접 선수단에게 찾아가 조달했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발달된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이야기죠. 그 당시 제가 타고 다니던 차가 그랜저-XG였는데, 4년 좀 안되게 탔는데 무려 17만km를 탔어요. 그만큼 이 일을 하면서 이리저리 많은 곳을 다녔다는 얘기죠. 아 물론 지금 그 차는 팔았습니다. 하하.”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전력분석계의 최고가 되길 원했다. 선수 출신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을 없애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그가 향한 곳은 대학원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전력분석과 기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경험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과 배경 지식을 전수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다면 그가 전력분석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였을까. 박도경은 “제가 준비한 분석 자료가 경기에 활용되어 팀이 이겼을 때 가장 짜릿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아마 이 기분은 전력분석원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거예요.”

김진 감독 재임시절에는 본격적으로 외국선수 스카우트 업무를 총괄하며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갔다. LG에서 엄청난 기량을 뽐냈던 데이본 제퍼슨과 트로이 길렌워터가 그의 작품이다.

“제퍼슨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러시아 전역을 돌았죠. 그 때 러시아에 가서 본 선수가 (데이본) 제퍼슨, (안드레) 스미스, (트로이) 길렌워터에요. 그 당시만해도 안드레 스미스가 저 세 명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구단은 제퍼슨이 스미스보다 폭발력이나 득점력에 있어서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그 당시에는 외국선수를 자유계약이 아닌 드래프트로 뽑았으니까 우리가 제퍼슨을 데려오고 싶어도 마음대로 데려올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운 좋게도 2순위를 뽑으면서 제퍼슨을 영입했습니다. 제 덕분이 아니라 결국 김진 감독님이 최고의 선택을 하신거죠. 운이 잘 따라주기도 했고.”



▲ 홍보 업무, 혼나면서 많이 배우는 중
LG 입사 18년차인 박도경은 지금 변신 중이다. 이제는 어엿한 사무국 홍보팀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창원체육관을 찾는 기자들에게 기록지, 보도자료 등을 배포하는 것은 물론 SNS를 활용해 팬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고, 또 구단 안팎의 실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금도 혼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웃음). 현장에서는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내가 해야 될 부분만 하면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데, 프런트는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야 될 부분도 있고, 단장님과 국장님이 추구하는 방향을 따라 가야 하는 부분도 있다 보니 힘든 점이 있습니다. 후배들도 챙겨야하고요. 그런 부분들이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또 이게 업무 특성상 사람 대하는 일이 많잖아요. 제가 좀 다가가기 무서운 외모이다 보니까 타 구단 사람들이나 외부인들로부터 ‘저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다’, ‘다가가기 힘들다’ 같은 말도 종종 듣곤 합니다. 그런데 저 절대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 하하.”

▲ LG 소속으로 꼭 우승 반지 끼고 싶어
LG는 아직까지 우승컵이 없다. 2013-2014시즌에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경기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모비스(당시 현대모비스)에 시리즈 스코어 2승 4패로 패하며 아쉽게 첫 우승의 꿈을 다음으로 기약했다. 세이커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박 홍보책임도 그 누구보다 LG의 우승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LG 소속으로 반드시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며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LG 세이커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물었다. “저의 청춘이죠. 20, 30대를 거쳐 40대인 지금도 함께 하고 있고,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수많은 선수들이 저와 함께 했잖아요. 또 지금도 그게 계속 이어지고 있고요.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물론 우승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재임하고 계신 현주엽 감독님께서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셨으면 좋겠고, 또 모든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필_1975년 4월 28일생, 202cm, 부산중앙고-중앙대-한국체육대학 대학원 석사졸업, 1998년 SK → 2000년 LG 입단(2002년 은퇴)

# 사진_박도경 홍보책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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