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위성우 감독님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2012년, 22살의 나이로 우리은행에 입단했던 김소니아는 2년차 시즌이 한창이던 시기에 어머니의 나라 루마니아로 돌아갔다. 이후 4시즌 공백을 딛고 돌아온 2018~2019시즌에 핵심 벤치멤버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최정상급 포워드로 자리매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그렸다. 지난 시즌에는 공헌도 부문서 6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청주 KB스타즈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한계를 실감한 우리은행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FA 최대어 김단비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고, 이 과정에서 김소니아가 보상선수로 우리은행을 떠나게 됐다. 김소니아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Q.우리은행에서 김단비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A.(김)단비 언니가 우리은행으로 온다고 해서 같이 뛸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내가 팀을 옮기게 될지는 몰랐다. (보상선수가)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나는 기사를 안 보는 편이다. 나와 관련된 기사만 가끔씩 본다. 나와 달리 엄마는 WKBL과 관련된 기사를 잘 챙겨보신다. 엄마로부터 (최)이샘이가 “한 번 더 우승하고 싶다”라고 말한 인터뷰, 단비 언니가 “이샘이와 같이 하고 싶다”라고 말한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먼저 “네가 옮기게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 소식을 들었을 땐 쇼크를 받았다. 사무국장님을 시작으로 감독님, 코치님, 언니들, 후배들이 차례대로 전화를 해줬다. 아직 우리은행 사람들을 직접 만나진 못했다. 경주 전지훈련이 다 끝나면 장위동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릴 생각이다.
Q.신한은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한 심정은?
A.충격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풀리기도 했다. 아무도 정확한 얘기를 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소식이든 전달받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속상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한국에 온 후 우리은행에서만 뛰었던 선수다. 그만큼 추억도 많이 쌓였고, 같이 땀 흘린 동료들과 정도 들었다. 동료들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사실 우리은행을 떠나 다른 팀에서도 경험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따라 팀을 옮기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FA가 되어야 팀을 옮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경기장에서 우리은행을 상대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
A.경기 전까지는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가 시작하면 별다른 생각은 안 들 것 같다. 그저 모든 팀을 이기고 싶은 선수일 뿐이다. 팀이 바뀌었지만, 농구장에서 농구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A.외삼촌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가족들, 특히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셨다. 나를 다시 한국에 보내면 더 힘들 것 같다고 하셔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돌아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던 찰나에 전주원 코치님이 먼저 전화를 주셨다. 전주원 코치님은 나와 연락하기 전에도 어머니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는데 친구들은 가지 말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농구를 잘 못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꼭 가야 돼”라며 마음을 굳혔다. 그때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이)승준이 오빠도 못 만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운명이었다.
Q.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파울아웃된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벤치로 향했다. 이후 벤치 끝에서 눈물을 흘리던데 어떤 감정이었나?
A.아쉬운 마음이 컸다. 첫 챔피언결정전이었기 때문에 진짜 이기고 싶었다. 3차전이 홈에서 열렸기 때문에 1경기라도 이겨봤으면 했는데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즌이었지만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우리은행 팬들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결국 1경기도 못 이겼다.
Q.그게 우리은행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곤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A.아…. 그건 여전히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잠시 망설인 후)그래도 멋있게 마무리를 한 것 같다. 신한은행으로 이적하게 된 후 팬들이 항상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셨다. 덕분에 힘이 났다. 아직 신한은행 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떨린다. 단비 언니는 신한은행에서 워낙 존재감이 큰 선수였다. ‘단비은행’이라 불린 것도 알고 있다. 단비 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다.
Q.위성우 감독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있다면?
A.위성우 감독님은 나를 키워주신 분이다. 감독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위성우 감독님도, 전주원 코치님도 미안하다고 얘기해주셨다. 새로운 시작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란 격려도 해주셨다.
Q.박혜진과는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나?
A.우리끼리 찍었던 사진을 주고받으며 울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혜진 언니와 추억을 함께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이제 우리은행 선수가 아니지만, 우리은행 선수들 모두 안 다쳤으면 좋겠다. 모두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선수들이다. 이제는 새로운 팀에 왔으니까 우리 선수들을 생각해야 한다. 왔다 갔다 하며 신경 쓰면 안 될 것 같다.

A.모든 시즌이 너무 힘들었다(웃음). 지난 시즌에는 꼭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해보고 싶었다. 그전 시즌에 열린 삼성생명과 KB스타즈의 챔피언결정전을 2경기 보러 갔는데 분위기가 진짜 좋더라. 마침 관중 입장도 조금이나마 허용이 됐을 때였는데 팬들이 보여준 열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챔피언결정전을 목표로 삼았고, 달성하게 돼 기뻤다. 플레이오프에서 구나단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발목을 다쳤지만 이기고 싶은 마음에 약을 먹고 뛴 시리즈였다.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구나단 감독님이 발목 괜찮냐며 물어보셨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해보자는 말씀도 하셨다. “I will see”라고 말씀드렸는데 함께 하게 됐다. 구나단 감독님도 신한은행에서 만나자마자 그때 그 얘기 나눴던 거 기억나냐고 물어보시더라.
“신한은행, 머리 쓰는 농구를 하는 팀”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에 돌풍을 일으켰다.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비웃으며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시즌 초반에는 박지수의 연속경기 더블더블 행진에 제동을 거는 등 무패 질주 중이던 KB스타즈를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구나단 감독대행은 지도력을 인정받아 시즌 도중 정식 감독으로 임명됐다. 신한은행을 다크호스로 만든 구나단 감독과 성장세를 그리고 있는 김소니아의 만남. 올 시즌에도 신한은행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Q.신한은행에 합류한 후 팀 훈련, 전지훈련을 함께 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팀에 적응해나가고 있나?
A.구나단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데 우리은행, 신한은행을 비교하는 얘기는 안 나왔으면 한다. 신한은행은 새로운 팀이 됐고, 젊은 선수가 많다. 나를 비롯해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도 있다. 우리 팀만의 케미스트리를 잘 만들어야 한다. 아직 다듬을 부분이 많은데 시즌 개막까지 3개월 정도 남았다. 다들 힘들겠지만 잘 버티면서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Q.구나단 감독과는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나?
A.일단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편하다(웃음).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을 더 잘할 수 있다. 팀을 옮기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합류할 때 많이 긴장됐다. 감독님이 압박감이나 부담감 느끼지 말라고 말씀해주셨고, 3x3 월드컵에서 다치지 않고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케미스트리를 잘 쌓아보자고 하셨다. 감독님께 챔피언결정전을 목표로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 만약 올 시즌에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에는 이룰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Q.팀 적응을 위해 당초 예정보다 빨리 귀국했다고 들었다.
A.원래 8월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3x3 월드컵에 꼭 나가보고 싶었는데 팀에서 허락해주셔서 마음 편하게 경기를 치르고 왔다. 감사한 마음도 있었고, 1개월 앞당겨서 오면 그만큼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을 조정했다. 정리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사실 장위동 아파트를 2년 계약했는데 1개월도 살지 못했다. 다행히 세입자를 빨리 찾아서 이사도 잘 마무리됐다. 인천으로 이사 왔는데 승준이 오빠가 고생을 많이 했다.

A.나뿐만 아니라 벤치에서 기회를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에는 재미없을 거란 우려의 시선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국내선수들의 경기력이 많이 좋아졌고, 이는 국가대표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외국선수 제도가 다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국내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Q.2020~2021시즌에 기량발전상, 베스트5로 선정되는 등 최근 2시즌 동안 리그 최고의 포워드 가운데 1명으로 꼽혔다.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A.승준이 오빠가 기술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줬다. 함께 훈련할 때마다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줬다. 승준이 오빠를 가족처럼 대해준 우리은행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다. 농구를 너무 사랑하지만, 경기 끝나면 리뷰를 보기 싫을 때도 있는데 승준이 오빠가 옆에서 계속 봐야 한다며 나를 잡아줬다. 확실히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됐다. 리뷰를 계속 본 덕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승준이 오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패스했어야지”, “레이업슛하지 말고 점프슛 했어야지” 등등 조언을 많이 해줬다. 한 번은 위성우 감독님이 경기 후 수비 좀 가르쳐주라고 하셨는데 승준이 오빠가 “감독님, 죄송합니다. 저도 선수 때 수비 못했어요”라고 하더라(웃음).
Q.박지수는 WKBL에서 ‘어나더 레벨’로 꼽히지만, 그나마 잘 버티는 선수 가운데 1명으로 꼽힌다. 박지수는 어떻게 수비해야 하는 선수인가?
A.기술이 진짜 많이 좋아져서 감 잡을 수가 없다. 지난 시즌에는 나나 댕댕이(박지현의 별명)가 혼자 수비하는 상황이 많았다. 타이밍을 잘 맞춰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몸싸움으로는 (박)지수를 이길 수가 없다. 음…. 모르겠다. 지수를 혼자만의 힘으로 막을 선수는 없다.
Q.김단비는 신한은행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A.당연히 책임감은 있다. 우리은행 시절에도 우리은행 소속이라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신한은행에 온 후로는 리더십도 생긴 것 같다. 우리은행에 있을 때는 언니들이 다 부상을 입어 후배들과 경기를 치른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상황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아직 한국에서 해본 적 없는 역할도 해야 한다. 부담감보단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두 팀 가운데 어느 팀 훈련이 더 힘든가?)우리은행은 뛰는 훈련이 정말 많았다. 신한은행은 농구와 관련된 훈련이 많다. 내 역할도 잘해야 한다. 머리를 써야 하는 농구를 해야 하는 팀이어서 머리가 아프다. 개인적으로는 루카 돈치치(댈러스)가 머리로 하는 농구를 보여주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농구를 배우고 싶다.
Q.평소 신한은행이라는 팀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는?
A.항상 에너지 넘치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벤치 에너지가 항상 높아서 ‘여농티비’ 촬영할 때 “신한은행은 벤치 에너지가 넘쳐서 싫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지난 시즌에 단비 언니가 결장했는데도 이외의 선수들이 경기를 잘 치러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단비 언니가 빠져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구나’ 싶었다. 그 기억을 돌이켜보면 올 시즌 역시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를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Q.올 시즌에 임하는 각오는?
A.모든 경기를 이기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않겠나(웃음). 우리 팀 선수들은 진짜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그만큼 선수들 모두 좋은 시즌을 보냈으면 한다. 챔피언결정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데 못 갈 수도 있다. 만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팬들을 위해선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피하지 않은 시즌을 치르고 싶다.

김소니아는 한국인 아버지, 루마니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한국에서 5살까지 자란 김소니아는 이후 루마니아로 건너가 U16, U18 등 루마니아 청소년대표로 활약했다. FIBA(국제농구연맹) 규정에 따라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김소니아의 남편 이승준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 한국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승선한 선수였다. 남편처럼 한국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없는 점이 아쉽진 않을까. 이에 대해 묻자 김소니아는 위트 넘치는 답변을 남겼다.
“아쉽긴 하지만 아마도 아이를 낳게 되면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강압적으로 시키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오빠의 피지컬이 워낙 좋기 때문에 아이가 생긴다면 스포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두 선수의 아이라면 슈퍼 유전자가 탄생하는 것 아닌가?)주위에서 피지컬이 남다를 거란 얘기를 많이 듣긴 한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는 실력까지 된다면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김소니아 프로필
생년월일_1993년 7월 24일
신장/체중_177cm/67kg
출신학교_스피루 하레트고-피네시티대
경력_2012~2014 우리은행
2014~2015 올림피아 부쿠레슈티(루마니아)
2015~2016 CSU 알바이울리아(루마니아)
2016~2017 CEZ 님부르크(체코)
2017~2018 실리자 브로츠와프(폴란드)
2018~2022 우리은행
2022~현재 신한은행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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