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데이비슨 대학의 이현중의 활약에 국내 농구 팬들은 NCAA 디비전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농구의 변방인 한국의 유망주가 농구로서는 대항마가 없는 미국 땅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현중이 한국 최초의 NCAA 디비전Ⅰ 주전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0년대, 한국여자농구가 최전성기를 맞이했던 그때 미국 루이지애나 몬로 대학(당시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활약한 ‘E.J’ 이은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찬숙, 성정아, 김화순, 최경희, 김영희 등 한국여자농구 최고의 스타들이 등장했던 1980년대. 당시 1984 LA올림픽 은메달, 1986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획득한 그때는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 한국여자농구의 황금기였다.
그중에서도 이은정이란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그 이유는 바로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소식이 국내로 전해지기 힘들었던 1980년대. 당시 이은정의 활약을 다룬 자료는 찾기 힘들지만 최근 들어 이현중의 NCAA 디비전Ⅰ 진출과 함께 조금씩 전해지고 있었다.

1982년 숭의여고를 졸업한 이은정은 NCAA 디비전Ⅰ 소속인 루이지애나 몬로 대학에 입학, 교내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단순한 주전 정도가 아니었다. 1984-1985시즌에는 교내 최초의 NCAA 파이널 포 진출을 이끌었던 에이스였다.
이은정은 루이지애나 몬로 대학에서의 4년간 2,208득점을 기록했고 878개의 어시스트, 또 297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그의 등번호였던 5번은 영구결번됐고 루이지애나 몬로 대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30대 중반에 WNBA가 출범함에 따라 최초의 진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도전했다면 여전히 경쟁력을 지녔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고교 시절 이은정과 함께 명승부를 펼쳤다고 자부한 한국여자농구의 전설 김화순 전 감독은 “파워형 가드로서 왼손잡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그곳에서도 대단한 선수였다는 것을 듣게 됐다. 아쉽게도 국가대표 생활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박)양계 언니와 주전 경쟁도 가능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은정은 선수 은퇴 후 코치로서도 활약했다. 김화순 전 감독의 딸이자 여자농구선수로서 2번째 NCAA 디비전Ⅰ 진출자인 신재영을 지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최초의 NCAA 디비전Ⅰ 주전 선수는 이은정이다. 이후 최진수, 신재영도 NCAA 디비전Ⅰ에 진출했지만 확실한 주전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은정 이후 이현중이 데이비슨 대학의 확실한 주전으로 올라서며 남자선수로서는 최초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이은정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그러나 이현중 이전에 이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농구의 변방에서도 특출난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은정의 현역 선수 시절 영상_
http://youtu.be/wRyASHVimgY
# 사진_점프볼 DB(손대범 기자), 루이지애나 몬로 대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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