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6세? 39분 출전? NO PROBLEM! ‘철의 여인’ 한채진

강현지 / 기사승인 : 2019-12-06 2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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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강현지 기자] 1라운드 평균 출전시간 39분 30초. 사실상 풀타임에 가까운 이 어마어마한 기록은 서른여섯 한채진의 이야기다. 그보다 나이가 어린 각 구단의 에이스 박혜진(5경기 평균 34분 19초), 박지수(4경기 평균 33분 45초), 강이슬(3경기 평균 37분 06초), 구슬(5경기 평균 32분 02초)보다도 많다. 어디 출전 시간뿐이랴. 플레이를 봐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공을 향한 악착같음은 물론, 감독의 작전지시도 훌륭히 이행한다. 리그 최고령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경쟁력을 발휘중인 한채진을 두고 팬들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선사했다.

* 본 기사는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국제농구연맹(FIBA) 도쿄올림픽 여자 프리-퀄리파잉 토너먼트 2019 일정으로 인해 하나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일정이 잠시 휴식기를 갖던 11월 중순, 인천 신한은행의 훈련 현장을 찾았다. 새 시즌을 준비 과정에서 주력 선수들의 갑작스런 은퇴로 위기를 맞은 정상일 감독은 타 팀에서 벤치에 있던 선수들을 불러들였다. 워낙 이 팀, 저 팀에서 선수들이 모이다보니 신한은행 앞에는 ‘연합팀’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을 정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연합팀의 조직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중에서도 한채진의 영입은 이경은, 김단비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나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와 이를 뒷받침할 오랜 경험이 그만큼 대단했던 것. 지친 기색 없이 코트를 누비며 WKBL 대표슈터 강이슬의 혼을 쏙 빼놨으며, 옛 식구 BNK의 동생들도 넘어섰다. 그러자 코트 사이드에서 또 자주 듣던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채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고. 그렇다면, 과연 그가 이처럼 시계를 되돌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Q. 점프볼 지면 인터뷰가 참 오랜만이라고 들었습니다.

KDB생명 시절 이후 처음일걸요? (한채진의 말에 목차를 뒤져봤다. 2008년 11월, 금호생명에서 처음 인터뷰를 했고, 이후 한채진의 말처럼 KDB생명 시절이던 2012년 3월에 사진 촬영을 동반한 인터뷰가 있었다. 그리고 무려 7년 만이다.) 얼마만인지(웃음). 그때 얼굴이 하얀 비결이 뭐냐고 질문을 받아서 빈혈기가 있다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Q. 막내 선수가 최지선 선수죠. 나이차가 얼마나 나는 건가요?

막내라인이랑 한 16살 정도 차이가 날 걸요? 아이, 그런 건 적지 말고(웃음). 근데, 저는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27살 정도까지 뛸 생각이었어요. 물도 날라보고, 벤치 멤버도 해봤고, 식스맨에 주전까지 다 겪어 보고 이 자리까지 온 거잖아요. 어렸을 땐 ‘스물일곱까지만 해야지’란 목표가 있었던 것 같아요.

Q. 와, 그런데 그 시기를 훌쩍 넘겼네요.

금호생명으로 이적할 때가 스물여섯이었어요.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이적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비로소 운동을 제대로 하면서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만둘 시기가 지나갔고, 다시 서른 둘, 셋 정도까지만 하자고 했는데, 막상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몸이 아프고, 운동을 못 따라간다면 그만둬야지 했는데, 계속 뛰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Q. 여러 번 들은 질문이겠지만, 한채진의 체력관리 비결은 뭔가요?

젊은 선수들보다 회복력이 느리긴 하죠. 나이가 들면서. 요즘은 일단 잘 먹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오히려 쉴 때 더 잘 먹죠. 주말에 쉴 때 좋은 걸 찾아서 먹고, 그걸 저축했다가 일주일 동안 쓰는 느낌?(웃음). (이)경은이랑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래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고기를 먹고, 염포탕도 좋아해요. 영양제도 한 움큼 챙겨 먹고요.

Q. 그래서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생겼습니다. 이 별명, 마음에 드나요.

지금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 있어 그 자리를 제가 대신해서 뛰다 보니 붙은 것 같아요. 팬들이 인정해줘서 붙은 별명인 거 같아 기분이 좋고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수생활 마무리를 잘 하고 싶거든요. 언제 마무리할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있어서 쉽진 않지만, 그래도 감독, 코치님들이 훈련에 있어서 조절을 잘해주세요.



정상일 감독과 한채진의 이별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지난 시즌 몸 담았던 OK저축은행은 KDB생명 시절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한채진의 비중은 전과 달리 많이 줄어 있었다. 정상일 감독은 젊은 선수 위주로 팀 개편에 나섰고, 그러면서 한채진이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어졌다. 잔부상에도 불구 결장 없이 30분 이상 소화해온 그였기에, 주변에서는 두 사람간의 불화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그랬던 두 사람의 인연은 정상일 감독이 팀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생사는 역시 속단할 수 없다. OK저축은행에서 BNK로 새 단장한 친정팀이 한채진과 이별을 택했던 것. 그러자 신한은행에서 먼저 자리를 폈던 정상일 감독이 한채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어있던 한채진의 마음이 스르르 녹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Q. 정상일 감독과의 첫 만남, 그리고 신한은행에 오기 전까지 마음은 어땠나요.

솔직히 시즌이 끝나고 쉴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BNK에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허탈했죠. 농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해 온 게 무너진 느낌이었거든요. 힘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선생님(이종우)과 이야기도 하고,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그 무렵에 (김)수연이랑 (이)경은이, (김)단비에게 연락이 왔어요. 같이 하자고. 그래서 마음을 먹게 됐어요. 감독님은 새로운 곳에서 만났으니 다시 잘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바뀐 것 같지 않으세요?(웃음). 코치님들(이휘걸, 구나단, 하숙례)이 각자 분야에서 잘 잡아주시잖아요. 마음도 편해 보이시고. 또 저도 운동할 때면 안 좋은 부분 잘 잡아주시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하세요.

Q. 사실상 신한은행도 언니들을 중심으로 리빌딩에 돌입했어요. KDB생명 때와 상황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해요. 언니들과 동생들의 나이 차가 크잖아요.

다른 부분이 있을걸요. 여기에는 단비가 있잖아요. 하하. 사실 처음에 왔을 때 (유)승희랑 (김)아름이가 있었는데, 부상을 당했어요. 이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뛰면 좋은 농구, 즐거운 농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혜미도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선수들이 부상으로 다치면서 제 출전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이 나이가 들면 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꾸준히 훈련을 시켜주세요. 그러다보니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운동을 쉰 적이 없어요. 지난 시즌에는 비시즌에 수술을 했다보니 빠진 날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허리도 안 좋고 했는데, 올해는 태백 전지훈련부터 훈련을 안 빠지고 하다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노력은 땀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주변에서 제가 체력이 타고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코치님들이 정말 저를 잘 관리해주세요.

Q. 프로생활 12년차 김단비 막내 라인업이 화제가 됐어요. 선수들끼리 분위기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주로 모이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김단비는 11월 2일, KEB하나은행 전 라인업을 개인 SNS에 올렸다. 당시 라인업은 한채진-이경은-김단비-김수연-비키 바흐였다 김단비는 이 포스팅에 ‘프로 12년차에 막내생활, 막내가 코칭해야지’란 글을 남겼다.)

농구 이야기도 하긴 하는데, 주로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잘 맞거든요. 밥도 같이 먹고. 경은이가 빠지면 수연이와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내요. 영화도 보고요. 그리고 평소에 이야기를 잘 하다 보니 경기장에서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로의 말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려고 해요. 다들 농구를 오래한 선수들이다 보니 한 마디 하면 그렇게 들을 수도 있는데, 선후배라기보다 좋은 동료인 것 같아요.



Q. 농구 이야기를 제외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눠요?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고, 고기도 먹으러 가요. 경은이, 수연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단비는 가끔 빠져요. 남자친구가 있잖아요. 저는 조카랑 노느라 바빠요. 너무 귀엽거든요. 둘째 동생이 4살 아래인데, 지금 한국에 들어와서 있어서 자주 놀아요. 너무 귀여워요.

Q. 동생이 있으세요? 세상에.

네, 여동생 두 명이요(웃음). 둘째 동생은 네 살, 막내 동생은 열 살 차예요. 대화도 잘 하고, 필요한 거 있음 이야기도 잘 하고. 쉬는 날 막내랑 밥을 먹으면서 돌아다니고, 잘 놀아요. 남자친구는 없어요. 애들이랑 다니느라 만날 시간이 없죠. 지금이 너무 좋아요. 편하고, 자유롭고, 즐거워요. 아, 그러고 보니 선수들끼리 포지션이 다 다르네요.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하하.

Q.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그려볼 법한 시기예요. 어떨 것 같은가요?

올 시즌 끝나봐야 (더 뛸지, 은퇴할지) 알 것 같아요. 그 어떤 것도 ‘당연히’라는 건 없잖아요. 아프지 않고, 시즌을 잘 마무리하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구단과의 계약도 있으니까요. 지금으로서는 확실하지 않아요. 아, 이 멤버가 그대로 가면 더 하고 싶긴 해요. 우선은 지금 시즌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PROFILE | 한채진
#7, 1984년생, 포워드, 174cm, 성덕여상, 2003년 데뷔



BONUS ONE SHOT | 동생들이 본 언니 한채진

프로 17년차 언니가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프로 15년차, 14년차 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쉽게도 막내 김단비는 국가대표팀 일정 소화 탓에 뉴질랜드에 있어 두 동생들의 이야기만 들어봤다. 한채진의 다소 요염한(?) 사진촬영 포즈를 지켜본 김수연은 “올 시즌 다시 만나기 전까지 언니가 저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니까요”라며 놀라워했다. 최근 들어 휴대전화의 저장 이름도 ‘채진 언니’가 아닌 ‘맑음이 언니’로 바꿨다고.

이경은 역시 언니들과 함께 뛰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쉬는 날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하는데,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운동하고, 사우나도 같이 하고요. 운동이 힘들어도 공유할 수 있으니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신 평균 연령이 높기 때문에 책임감은 어느 때보다 무거워요. 우리는 들어가면 잘해야 하잖아요. 대화를 계속 주고받다보니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요. 아직 2승이지만.”
이 날 역시도 정상일 감독의 호통이 있었지만, 한채진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애썼다. 그러면서 동생들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애썼다. 스파링 파트너를 자처하며 김이슬, 한엄지, 김연희 등과 맞부딪친 것이다.

이처럼 ‘연합팀’이라고 불리며 시즌을 시작했던 신한은행은 경험 많은 언니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한때 WKBL을 호령했던 ‘왕조’였던 그들이 세대교체와 ‘재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길, 그리고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이는 한채진이 지금의 놀라운 경기력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사진_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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