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서울/민준구 기자]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삼성국수. 칼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이곳에 8명의 노신사가 모였다. 길거리에서 보면 그저 노인일 수 있는 이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50년 전 태국 방콕에서 태극기를 아시아 정상에 꽂은 영웅들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 11월 29일. 김영기 감독을 위시한 12명의 태극전사는 당대 아시아 최강을 자부한 필리핀을 꺾고 정상에 섰다. 1967년부터 동고동락한 이들은 대한민국 농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한 주인공들이다. 1970 유고슬라비아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4승 4패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열린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따내며 황금기를 만들었다.
김인건, 신동파, 유희형, 이인표, 박한, 곽현채, 조승연 등 과거 대한민국 농구를 이끌었던 그들은 50년 후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지난 날을 추억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50년 전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잊지 않고 한자리에 모인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과거의 영웅담을 안주 삼아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옛 추억을 간직했다.
당시 코치로 부임했지만 감독과도 같았던 김영기 전 총재는 “우리는 그 어떤 선수들과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속에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하는 5명의 선수가 오더라도 나는 자신 있었다. 왜? 우리 선수들이 최고였으니까. 3점슛 제도가 만약 있었더라며 우리는 세계 대회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대한민국 올 타임 베스트5를 선정하라고 하면 이 선수들 중에 최소 2명을 들어갈 것이다”라며 자신의 제자들을 극찬했다.
33살에 국가대표를 이끈 김영기 전 총재.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이미 풍부한 지식을 갖춘 지도자였다.
“우리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아시아 농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건 미국으로부터 선진 농구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4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NBA의 전설적인 지도자 레드 홀츠먼 감독을 대한민국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대한민국의 대학 선수들을 지도해주고 있었는데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수비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배운 것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미국인 지도자가 대한민국 농구를 지도한 사례는 홀츠먼 감독 이후에도 존재했다. 주한미군(당시 사람들이 언급하는 미 8군) 소속 마크 혼, 가스 폴 코치가 대표적인 주인공들이다. 스위치 디펜스부터 속공 전개까지 그들의 지도는 대한민국 농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김영기 전 총재는 “아마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아시아에서 가장 미국다운 농구를 했을 것이다. 우리를 만나는 팀들마다 정신을 못 차렸다(웃음). 슛 성공률은 50%는 거뜬했으니까. 속공도 잘했고 볼 없는 움직임은 그 어떤 팀과도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유희형 전 KBL 경기본부장 역시 “우리 이전의 선배들, 즉 김영기 총재님 시절에는 원래 투 핸드로 슛을 던졌다. 하하. 미국인 코치들이 오면서 원 핸드 슛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하나, 둘 배우고 나니 우리가 아시아 정상까지 서게 됐다”라고 말했다.
신동파 전 대한민국농구협회 부회장도 “일본은 속된 말로 우리 밥이었고(웃음). 필리핀은 그때는 정말 강한 팀이었지만 50득점 넣고 결승에서 이겼다. 다음 해에 유고슬라비아 대회에서도 우리는 정말 잘했으니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었다. 아시안게임에만 나온 이스라엘은 미국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우리가 이겼으니까 상대할 팀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저 성적만 좋았던 시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국가대표라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쟁했으며 결과적으로 진지한 팀 분위기가 조성됐다. 얼마나 진지했는지 당시 박상영 감독이 선수들을 야단칠 일이 없어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혼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김인건 전 태릉선수촌장은 “나중에 김영기 총재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한 번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했다고 하더라(웃음). 한 번은 긴장감을 심어줘야 하는데 다들 너무 진지하게 운동을 하니까 그럴 틈이 없었을 것이다”라며 “어느 날 시간 안에 산을 타고 내려오라고 하더라. 10시 30분까지 오라고 해놓고 정확히 들어왔더니 혼을 내더라. 하하. 왜 그런 건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그저 한낱 추억처럼 웃으며 이야기한 그들이지만 대한민국 농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던 힘은 그저 쉽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가슴에 단 태극기는 그들의 영혼이었고 패배는 곧 죽음이라는 마음으로 나섰기에 가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3시간을 보낸 그들은 다시 한 번 만날 날을 기약하며 흩어졌다. 언젠가는 50년 전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방콕에서 모이자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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