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지훈은 강을준 전 오리온(현 소노)감독의 장남이다. 집에는 농구공이 늘 굴러다녔고, TV에서는 항상 농구 경기가 나오고 있었다. 농구와 친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지만, 정작 강지훈은 야구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직접 동아리 야구부를 만들 정도의 열정을 보였고, 엘리트 야구 선수 테스트까지 보게 된다. “초등학교 때 경희대 우상현 선수랑 같이 우지원 농구 교실에서 농구를 배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농구를 잘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어디 가서 ‘저희 아빠가 농구 감독이십니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농담하실 정도였죠. 같이 한 상현이는 삼일중으로 진학, 엘리트 농구를 바로 시작했지만 큰 흥미도 못 느끼겠더라고요.”
“사실 저는 야구가 더 좋았어요. 동아리 야구팀을 하나 만들어서 용인시 지역 내 학교들과 경기를 할 정도로 빠져들었어요. 이기는 경기도 많아졌고, 제 나름대로는 두각을 나타냈다고 느낄 정도였죠. 아버지께 ‘야구 선수하고 싶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친분이 있으셨던 휘문고 감독님께 연락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휘문중 야구부 테스트를 보게 되었어요.”
동아리 야구로 갈고닦은 실력을 호기롭게 뽐냈다. 열심히 펑고를 받고, 라이브 배팅을 소화했다. 그러나 강지훈은 야구 선수의 꿈을 단 1초 만에 지웠다. 같은 날 우연히 보게 된 휘문고 투수 안우진(현 키움 히어로즈)의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 때문. 동아리 야구와 엘리트 야구의 크나큰 격차를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따라잡을 수 없는 ‘넘사벽’을 느꼈다. “테스트가 끝나갈 무렵에 안우진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 선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바로 야구의 꿈을 접었어요. 공이 정말… 살벌하다는 말밖에 안 나올 정도더라고요. 특히 휘문중 야구 코치님이 덧붙여주신 말씀들도 크게 다가왔어요. ‘곧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친구들은 매년 몇백 경기를 하고 올라온다. 네가 그 공백을 채울 수 있고, 경험을 실력으로 메꿀 수 있다면 시작해라.’ 빠르게 야구는 취미로만 즐기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야구와 멀어지니 비로소 농구가 보였다. 강지훈은 중학교 2학년 시절 커진 키를 바탕으로 교내 스포츠 클럽 반 대항전 농구를 지배했고, 농구에 대한 흥미를 뒤늦게 느꼈다. “학교 스포츠 클럽 반 대항전 때문에 학원 끝나고 매번 밤에 친구들이랑 동네 농구장에서 만나서 농구를 했었어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키도 엄청 컸는데 그거 덕분에 농구 반 대항전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었어요. 예전에 농구를 배운 것도 어느 정도 좀 써먹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잘 되니까 농구가 재밌더라고요.”
흥미는 곧 전문적으로 농구를 배워보겠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을 때처럼 강지훈은 아버지인 강을준 전 감독에게 “저 농구 해 볼래요”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나 돌아오는 강 전 감독의 답은 ‘NO’였다. “아버지는 농구 선수가 되는 것이 힘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하고 싶다, 괜찮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좋아. 그러면 너 유급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저는 어린 마음에 유급 안 해도 잘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당돌하게 말씀드렸죠. 그런데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서 절대 농구 안 시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는 자세부터 글러 먹었다’라고 하시면서요.”
아버지의 반대는 세 달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농구의 꿈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결국 강지훈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세 달간 ‘NO’였던 답을 ‘YES’로 바꿨다.
“아버지가 약주를 한잔하시고 새벽에 늦게 들어오신 날이 있어요. 바로 가서 ‘저 유급 하고 농구 제대로 해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비로소 ‘알았다’라고 하셨고, 학교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호계중 오충열 코치님이 오라고 해주셔서 엘리트 농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에 유급 후 비로소 시작한 엘리트 농구. 강지훈은 아버지 앞에서 말한 “제대로 하겠다”라는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출발은 늦었을지언정 농구인 DNA와 노력이 합쳐진 강지훈의 농구력은 나날이 좋아졌다. 호계중 농구부 입단 두 번째 경기만에 33점을 올리는 괴력을 과시했고, 삼일상고(현 삼일고) 진학 후에는 아예 팀의 메인 빅맨으로 자리 잡는다. 철저한 박스아웃에서 비롯된 리바운드 능력은 그의 튼튼한 기본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삼일상고 1학년 때 3학년이었던 임동언(서울 삼성) 형이랑 이중원 선생님의 집중 지도를 받았어요. 빅맨이 할 수 있는 움직임과 개인기 같은 것을 선생님이 알려주시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 코트에서 써먹으려 했죠. 정승원 선생님은 수비의 길을 잘 짚어주셨죠.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회들이 속속들이 취소될 때였는데 선생님들 덕분에 정체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경험도 있었어요. 당시 (이)현중이 형이나 프로, 대학교 형들까지 삼일상고 출신 형들이 픽업 게임을 하러 오셨어요. 고교 1학년에 높은 레벨의 형들과 자주 붙어보는 것은 정말 값진 시간이었어요. 농구 선수로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죠.”

강지훈도 인터뷰의 1/4가량을 이 시간을 추억하는 데 사용했다. 그 내용이 매우 길어 다 담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강지훈의 농구에 대한 간절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5월 연맹 회장기 때 의욕만 앞서는 플레이를 했다가 발목 부상을 당했어요. 한 달 반 정도 운동을 쉬어야 했는데 동료들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4강까지 가긴 했지만, 제가 있었다면 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죠. 독기를 품고 재활하며 종별대회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요. 종별 예선 두 번째 게임에서 이동근(고려대) 선수가 이끄는 동아고에게 충격패를 당했어요. 고등학교 와서 우승을 한 번도 못 해서 우승이 간절했고, 우승권 전력이라 생각하고 나선 대회였는데 조 2위라는 성적표로 16강에 올라갔죠.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16강부터 시작했죠. 그러면서 결승전까지 갔어요. 그런데 결승 상대가 용산고였네요?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지만, 승부처 때마다 ‘용산고만 계속 우승할 수는 없지 않냐. 우리도 한 번 해보자!’라는 코치님들의 말씀이 생각나서 더 집중했어요. 우승 한 번 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MVP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2차 연장까지 갔는데 17점 16리바운드. 제가 보기에는 평범했거든요. 정신없이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성공적인 고등학교 마무리를 지은 강지훈은 행복하면서 어려운 고민을 겪게 된다. 고려대와 연세대 모두 진학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대다수의 인물들은 그가 강을준 전 감독의 모교인 고려대에 진학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집까지 찾아온 윤호진 감독의 구애는 강지훈의 발걸음을 신촌으로 옮기게 했다. “윤호진 감독님이 저희 부모님을 찾아오셨어요. 제가 필요하다고 어필을 많이 해주셨고, 저에 대한 진심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감독님이 보여주신 열정이 연세대 진학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아버지요? 당연히 모교에 진학하는 것도 바라셨죠. 그런데 ‘네가 내 말만 듣고 고려대를 갔다가 후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너 가고 싶은 학교로 가’라고 지지해 주셨어요. 마냥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독수리 군단의 일원이 된 강지훈은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고교 무대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대학에서도 이어가고 싶었지만, 더 큰 경쟁의 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첫 경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건국대랑 경기였는데 정확히 4점 4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하고 5반칙 퇴장을 당했어요. 당시 프레디 선수가 1년 만에 대학 최고 센터 반열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잘 막아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감독님도 ‘(강)지훈아 너 프레디 1:1로 막을 자신 있냐?’라고 물어보셔서 ‘네!’라고 답하고 나갔죠. 그런데 확실히 고등학교랑 다른 것을 이때부터 크게 느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관중이 꽉 차 있는 경기장도 압박 아닌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당시 MBC배 가기 전에 감독님이 또 저희 빅맨들 운동도 많이 시켜주시면서 슛도 자신 있게 던지라고 조언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잘했나? 코너, 윙, 탑 가리지 않고 감독님과 연습했거든요. 그런 것도 큰 자신감에 한 몫했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으로 연세대 베스트 5 한 자리를 꿰찬 강지훈은 본격적으로 가치를 증명한다. 큰 키에 긴 윙스팬을 바탕으로 하는 림 프로텍팅 능력은 상대를 압도한다. 3학년인 올 시즌은 10경기 평균 22분 25초의 출전 시간 동안 9.4점 2점슛 성공률 55.1% 7.7리바운드 1.2블록슛이라는 좋은 기록까지 남겼다. 무엇보다 빅맨임에도 빠른 움직임은 연세대의 2대2, 속공 옵션 하나를 추가했다. 강지훈의 안정적인 골밑 사수가 없었다면, 연세대의 전반적인 공격도 쉽게 풀리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 그러잖아요? 저는 제 플레이에 만족 못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매번 경기 영상을 다시 보면서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했으면 넣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막 그러거든요. 대한민국 대학 중 농구 제일 잘 한다는 학교 와서 경쟁도 치열하게 해야 했고, 더 잘하고 싶음 마음밖에 없었어요.”
“연세대에서의 모든 기억은 저한테 값진 경험들이었어요. 정기전 뛴 것도 남들은 못하는 것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죠. 저한테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나중에 비로소 학교를 떠나는 날이 오면 신촌의 냄새가 그리워질 것 같아요(웃음).”

겸손한 강지훈의 말과 달리 그의 노력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정도였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한일 남녀대학대표 농구대회(이상백배)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7월에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나섰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그가 더욱 단단해졌다는 증거다. “여러 국제 무대 출전 기회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부터가 그동안 고생해서 나온 값진 결과라 생각했어요. 올해는 부상으로 못 갔지만, 작년 이상백배를 통해 저 스스로만의 긴장 푸는 방법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유니버시아드는 이상백배보다 긴장이 안 됐어요. ‘상대도 나의 정보를 잘 모르니까’라는 생각으로 나섰죠. 그렇게 하다 보니 8강 이상의 성적(6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유럽 강호들은 물론 세계 여러 국가와 상대하면서 경험도 잘 쌓았죠.”

“유급을 안 했다면, 올해 드래프트에 나갈 나이에요. 기회가 왔을 때 원래 나이에 맞는 시기에 프로 무대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선발되고, 프로 형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이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일찍 프로 무대로 가서 깨져보고 실패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고민 끝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강지훈은 자신을 ‘장점이 많은 선수’라고 소개했다.
“저는 장점이 많은 선수입니다. 리바운드나 속공 가담, 세로 수비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 보완해야 할 점도 있지만, 그러한 것들도 빠르게 보완할 자신도 커요. 어느 팀에 가더라도 그 팀 스타일에 맞게 잘 적응해서 빠르게 팀에 녹아들 것이라 확신하고요.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강지훈은 이에 대해 ‘2대2 능력자’라는 말을 전했다.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2대2입니다. 2대2를 하면서 파생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옵션들을 팬들께 보여드릴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될 것 같아요. 팀 수비에서는 상대 공격을 블록슛으로 멋지게 저지하고, 도움 수비로 척척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_강지훈 제공, 점프볼 DB, 정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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