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08) 중앙대 김휴범 “안정적인 포인트가드, 제가 적임자라 생각해요!”

이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9-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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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인터넷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수년. ‘25슬램게임’은 드래프트 지명과 KBL 무대 데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 농구 일원들의 생존기록을 담았다. 008번 참가자는 중앙대 김휴범이다.
 

#001_Scan. 008번 참가자: 김휴범


김휴범과 농구의 인연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다니던 울산 연암초에는 여자농구부가 있었고, 여자 엘리트 선수들을 보며 나고 자란 그는 자연스레 농구와 가까운 일상을 보냈다. 농구공을 들고 연암초를 누비던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여자농구부 코치는 그에게 자연스레 엘리트 농구 시작을 권하게 된다.

“연암초에 다닐 때 방과후 활동으로 계속 농구를 했어요. 부모님도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 저를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주시려 하셨어요. 울산 현대모비스 유소년 농구 클럽을 갈까 아니면 축구교실을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죠. 농구에 조금 더 재미를 느끼고 있던 때였는데 연암초 여자농구부 감독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송정초에 남자 농구부가 있다. 가서 테스트 한 번 받아 볼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바로 테스트를 받으러 송정초로 갔고, 어떻게 결과가 잘 나와서 그때 농구를 전문적으로 시작한 것이죠.”

송정초로 둥지를 옮긴 그는 부지런히 농구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쳤다. 이후 화봉중으로 진학한 그는 김현수 코치의 혹독하면서도 세심한 코칭을 받으며 더 큰 성장세를 보이게 된다. 화봉중의 야전사령관으로 떠오른 김휴범은 매서운 시야와 같은 리딩 능력을 선보였다. 동료인 문유현(고려대)과의 앞선 호흡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화봉중은 김휴범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주말리그 왕중왕전 진출과 제48회 추계연맹전 결승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이요? 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시는 그 시기로 못 돌아갈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힘들었던 만큼 많이 성장한 시간이라 생각해요. 김현수 코치님께서 기본기는 물론이며 가드로서 갖춰야 하는 능력들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알려주셨거든요. 힘들었긴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이 많다 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오르는 시기가 화봉중 시절 같아요.”

“3학년 때는 대구 한국가스공사 신주영 형이 저희 집에서 홈 스테이를 했어요. 주영이 형이 서울에서 농구를 하러 울산으로 왔는데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어서 저희 집으로 부른 것이죠. 이때 주영이 형 말고도 부산에서 농구를 하러 온 형도 같이 지냈어요. 어쩌면 힘든 시기에 타인과 힘을 모아 버티는 능력을 이때 기른 것 같아요. (문)유현이와도 장난도 많이 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주영이 형도 그때는 나이가 어리고, 저보다 형이다 보니 지금보다 말도 엄청 많고 그랬어요. 코트 밖에서도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은 만큼 우승 한 번 하고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늘 호계중한테 발목이 잡혔어요. 그건 두고두고 아쉬워요.”

확실한 성장을 보인 김휴범은 무룡고로 진학했지만, 1차 위기를 만났다. 실전 감각을 본격적으로 길러야 할 시기가 되자 코로나19 펜데믹이 찾아온 것이다. 당시 한국중고농구연맹이 주최하는 대회들은 속속들이 취소됐고, 김휴범은 ‘다음’ 실전 경기까지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의지가 정말 큰 상태였어요. 선배인 (양)준석(창원 LG)이 형, (문)정현(수원 KT)이 형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거든요. 특히 준석이 형의 플레이는 매일 같이 따라 하면서 실전에서 써먹어 봐야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2학년 때 형들도 다 대학에 간 상태에서 코로나19로 대회들이 다 취소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요(웃음). 많이 아쉽긴 했지만, 다시 대회들이 재개될 때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자연스레 찾아왔다. 김휴범은 재개된 각종 대회에서 무룡고의 포인트 가드 자리를 완벽히 꿰찼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물론 번뜩이는 시야를 자랑한 그가 무룡고의 메인 가드로 올라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3학년 시절이었던 2021년 제46회 협회장기에서는 한 경기에 17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선배이자 롤모델인 양준석의 모습을 하나하나 닮고자 한 의지는 그대로 코트에서 드러났다. 양준석은 김휴범이 프로 도전을 앞둔 단계에서도 롤모델로 꼽는 사람이다. “지금도 저는 준석이형의 플레이를 제일 많이 봐요. 저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느끼거든요.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많이 보고 배울 사람이라 생각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형의 존재가 든든하기도 했어요.”

안정적인 공격 전개, 화려한 패스 능력의 가치는 곧 모두에게 인정받기까지 했다. 김휴범은 2021년,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U19 대표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경험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대표팀에서 같이 한 형들과 동기들이 워낙 쟁쟁했다 보니 ‘내가 여기에 간다고?’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좋으면서도 부담도 많이 됐죠.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받으니 기분 좋게 대표팀에 다녀왔던 것 같아요.”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성공적인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김휴범은 중앙대에 진학하게 된다. 무주공산이었던 중앙대의 포인트 가드 자리는 고교 최고 포인트 가드의 진학 이유로 자리 잡는 역할을 했다. “기회를 그래도 어느 정도 잡고 싶은 의지가 컸어요. 당시 중앙대에 가면 포인트 가드 자리에서 두각을 그래도 나타낼 수 있겠다고 봤어요. 양형석 전 감독님도 출전 시간을 보장해주겠다고 이야기해주셨고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대 다빈치 캠퍼스로 이동하고 있는 저를 볼 수 있었죠.”

고교 무대를 사로잡은 김휴범의 리딩 능력이 대학교에서도 이어지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휴범은 1학년 시절, 전 경기(14경기)에 출전하며 팀 내 평균 어시스트 1위(4.8개)를 기록하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2022년 5월 30일 고려대와의 경기에서는 고려대의 무패 행진을 저지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휴범은 고려대를 잡은 경기가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갈피를 잘 못 잡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고려대를 처음 만났어요. 당시 6월에 있던 지방선거의 영향으로 화정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경기를 했는데 왠지 모르게 부담감이 덜해지더라고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상대가 강하게 프레스하는 것을 네가 좀 뚫어봐라’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잘 풀리는 시발점 역할을 했어요. 팀은 물론 저의 경기 내용이 좋아지면서 고려대라는 대어를 잡게 된 것이죠. 자신감이 조금 있었던 것이 경기에서 그대로 나왔어요. 고려대를 잡은 이후로 흐름을 타면서 이후 경기들에서도 좋은 경기력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감독님도 더 저를 믿어주셔서 자신감이 더 커졌죠.”

좋았던 대학 생활의 시작. 그러나 김휴범은 2, 3학년 농구 인생 2차 위기이자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지속되는 허벅지 근육 부상이 그의 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김휴범은 그렇게 2, 3학년 각각 4경기와 3경기 출전에 그쳐야 했다. 마음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몸 상태는 ‘농구를 포기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뚝이’ 김휴범은 긴 재활의 시간을 더 단단한 몸과 마인드를 장착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처음 다쳤을 때는 한 번 다쳤다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은 곳을 다치고 또 다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재활하는 것도 저 혼자 만의 싸움이다 보니 농구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묵묵히 지원해주시는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그래도 결국 계속해서 농구를 이어가고자 한 데에는 주변의 응원이 큰 역할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쳤던 순간 덕분에 마인드적으로도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봐요. 또 같은 상황이 나올 것을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고, 저를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지 깨달았거든요. 물론 재활의 시간이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시간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돌아온 4학년, 김휴범은 프로 진출을 앞둔 시기에서 어쩌면 그의 농구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순간을 맞이한다. 바로 윤호영 신임 감독과의 만남이다. 기자는 윤호영 감독의 부임 첫 경기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령탑 데뷔 경기를 마친 윤호영 감독은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그러나 지친 윤호영 감독의 눈은 단 하나의 질문에는 번뜩였다. “(윤호영)감독님이 가장 눈여겨보는 선수이자 잘 키워보고 싶은 선수는 누구인가요?”

“(김)휴범이죠. 주장이기도 하고, 중앙대는 휴범이가 살아나야 전체적으로 살아날 것이라고 봐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지만 4학년이라 시간도 촉박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만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윤호영 신임 감독은 자신의 말처럼 팀 내 유일한 4학년이자 부상에서 복귀하여 출전 시간이 간절한 김휴범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김휴범 역시 사령탑의 굳건한 믿음 속에 메인 포인트 가드로서의 면모를 되찾았다. 16일 기준 팀 내 2위인 그의 평균 어시스트 개수(4.1개)가 이를 말해준다. 김휴범 개인뿐만 아닌 중앙대 역시 강호의 면모를 되찾고 있다. 중앙대는 16일 기준, 대학리그 공동 3위(9승 4패)의 성적으로 상위권 다툼 중이다.

“솔직히 감독님이 팀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조금 걱정도 했어요. 워낙 강인한 이미지가 있으신 분이라서 무서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다 저의 편견이었어요. 저희를 엄청 잘 챙겨주시거든요.”

“팀의 플레이 스타일도 더 좋아지고 있어요. 감독님께서는 그 어떤 지도자분들보다 수비와 팀 플레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세요. 전에는 볼 없는 움직임이 적었는데 지금은 모션 오펜스를 더욱 많이 가져가고 있어요. 조금 더 유기적인 농구를 하게 됐어요. 스크린 활용 플레이가 특히 많아졌는데 쌍포 군단(고찬유, 정세영)이 있는 저희 팀에게는 더욱 긍정적인 현상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리그 성적도 공동 3위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신임 감독의 믿음은 곧 성과로도 이어졌다. 김휴범은 지난 7월 열린 제41회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에서 고찬유와 함께 앞선을 진두지휘, 중앙대를 4강으로 이끄는 결과를 만들었다. “MBC배는 우승할 생각으로 나갔어요. 고려대와 연세대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차출됐으니까요.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지금이 기회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너무 자신감이 컸을까요. 예선 첫 경기인 성균관대와의 경기에서 졌죠. 좌절 아닌 좌절을 했었는데 감독님의 ‘괜찮아’ 한 마디에 바로 다잡을 수 있었어요. 감독님이 워낙 상대 분석을 잘해주셔서 저도 홀가분하게 남은 경기들을 나설 수 있었죠.”

목표에서 알 수 있듯 김휴범과 중앙대는 본격적으로 우승 사냥에 나섰다. 먼저 우승의 1차 관문인 4강전에서 고려대를 60-57로 제압했다. 김휴범은 56-54로 앞선 종료 30여초 전, 고려대의 의지를 꺾는 3점슛을 올리는 등 13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어렵게 오른 결승전. 중앙대는 연세대와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질긴 승부를 펼쳐야 했다. 승리로 한 발짝 다가가면 곧바로 연세대가 뒤쫓는 형국의 반복이었다. “결승전이요? 하… 4쿼터 종료 직전, 스틸하고 레이업슛을 넣을 때만 해도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곧바로 이해솔 선수에게 3점슛을 내줬어요. 그때는 모든 것이 훅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2차 연장전에는 김휴범의 속을 더욱 썩인 장면도 나왔다. 2차 연장 종료 2.1초 전, 김휴범은 천금 같은 자유투 기회를 얻었지만, 1구를 실패했다. 83-82의 스코어와 남은 시간을 고려할 때 2구 역시 실패하는 게 당연했고, 김휴범도 그런 마음으로 대충 림을 향해 공을 던졌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김휴범이 대충 던진 공은 림 상단을 한 번 맞추더니 그대로 통과했다. 이는 곧 연세대의 타임 아웃과 또 하나의 세팅된 상황에서의 수비가 찾아옴을 의미했다. 들어가야 할 때는 빗나가고, 정작 들어가지 말아야할 때는 들어간 자유투. 벤치로 들어가는 김휴범은 ‘미치겠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우승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다시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자유투 1구가 안 들어갔을 때부터 2구는 무조건 놓치자는 생각으로 던졌어요. 그런데 그게 들어가더라고요. 정작 들어가야할 때는 안 들어갔는데… 이런 ‘억까(?)’가 따로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허탈했죠. 그래도 빠르게 진정하고 남은 2.1초의 수비를 잘하자고 생각했어요. 이 상황이 오히려 우승을 더 짜릿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남은 2.1초의 위기 상황을 이겨낸 김휴범과 중앙대는 그렇게 MBC배의 주인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윤호영 감독 체제 첫 우승컵이자 2010년 이후 15년 만에 들어 올린 MBC배 우승컵이었다. 김휴범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 더해졌다. 대회 기간, 팀을 안정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MBC배 MVP로 선정된 것이다. 부상으로 고생하던 그간의 설움을 우승과 MVP로 보상받은 그는 동료들의 힘찬 헹가래를 받으며 크게 웃었다. 더불어 농구 선수 김휴범으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도 했다.

“제가 이렇게 메인으로 뛰면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졸업하기 전에 우승 한번 하고 싶었는데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많았어요. 감독님께서 자신 있는 공격을 많이 이야기해주셨는데 동료들을 살려주다 보니 마냥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어떻게 해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 많이 깨달았던 대회라 얻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경기 감각도 점점 살아나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고 여유가 생겼음을 느꼈죠. 1인분은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성공적인 4학년 초반을 보낸 김휴범. 이제 그는 더 훌륭한 대학 생활 마무리와 프로 무대 노크 두 가지 과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김휴범은 남은 기간, 부상 없이 건강하게 리그를 끝마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남은 경기는 부상 없이 마무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리그에서는 또다시 이기는 농구를 해서 중앙대 팬들께 승리로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고요. 결국은 리그는 플레이오프를 위해서 하는 것이잖아요? 후배들과 의기투합해서 또 한 번 우승하고 마무리할 거에요. 팀이 잘 되어야 저도 잘 되니까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김휴범은 ‘포인트 가드 적임자’라며 자신의 장점을 적극 어필했다.

“각 팀들에 공격을 잘하는 선수는 워낙 많잖아요? 저는 그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만큼 안정적으로 경기 운영할 수 있어요. 정통 포인트가드를 찾으신다면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개인 공격에서는 리딩보다 약점이 있지만, 저는 잘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리딩과 동료들을 살려주는 것에 있어서 주안점을 두는 선수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면 공격도 자신있게 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김휴범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김휴범이 말한 자신의 칭호는 ‘이타적인 선수’였다. 인터뷰 내내 그가 전한 리딩 및 어시스트 능력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감사하게 프로에 가게 된다면, 지금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할 것 같아요. 볼 잘 운반하고, 동료들 잘 도와주는 역할. 그게 제가 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플레이라 봐요. 제가 코트에 들어가면 볼이 잘 움직이고, 동료들이 더 살아난다는 말을 팬들께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고, 그럴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팬들에게 인성 좋은 선수라는 말을 듣는 것도 목표입니다!”

“늘 감사한 분은 부모님이에요. 부상 입었을 때도 버틸 수 있게 제일 많이 도와주셨어요. 특히 플레이필드라고 재활센터에 오랜 시간 다녔는데 거기에서 방향을 잘 잡고 복귀를 할 수 있었어요.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게 힘써주신 재활센터 한길규 선생님께 다시금 감사해요. 저와 같은 케이스는 처음 본다고 하시면서 ‘어떻게든 해결해주겠다.’라고 해주셨어요. 지금도 꾸준하게 몸 관리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부상을 잘 털고 일어날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중앙대 후배들에게는 특히 더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후배들 덕분에 복귀도 잘했고, 우승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누구나 살다보면 즐거운 순간은 물론이며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중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정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순간을 만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김휴범은 다르다. 자신을 괴롭혔던 부상 및 재활의 시기를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결과 김휴범은 프로 진출이라는 목표가 성큼 다가온, 대학 4학년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서 제일 빛났다. 경기 운영 능력이라는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근성 하나는 드래프트 참가자들 중 최고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김휴범. 그를 10개 구단이 지나칠 이유는 극히 적어 보인다.


#사진_김휴범 제공, MBC Sports + 중계화면 캡처,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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