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우 전주 KCC 전감독은 프로농구 초창기 최고의 지략가로 명성을 떨쳤다. 한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는 꼼꼼한 성격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략 전술을 코트에서 펼쳤고 그로 인해 ‘신산(神算)’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속공 상황에서 상대 수비가 골밑에 집중할 때 허를 찌르는 외곽 3점슛으로 마무리 짓던 패턴은 신선우표 농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실 신감독은 있는 전력만 잘 추스르고 나아갔어도 1~2번의 우승을 더 차지하며 전성기를 길게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농구를 추구했고 이를 코트에서 실험했다. ‘이조추’트리오와 조니 맥도웰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신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이 있었다.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의 트윈타워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트윈타워에 꽂힌 신감독은 2번째 우승의 일등공신인 재키 존스를 내주고 SK로부터 파워 센터 로렌조 홀을 데려온다. 샌안토니오가 그랬던 것처럼 홀-맥도웰의 트윈타워를 통해 힘으로 상대 골밑을 부숴버릴 복안을 세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신감독이 구축한 트윈타워는 분명 위력적이었지만 상대적으로 SK 골밑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바람에 역풍을 맞아버렸다.
기동력과 외곽슛 거기에 패싱력까지 겸비했던 테크니션 빅맨 존스는 서장훈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고 내외곽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로데릭 하니발까지 더해져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변화에 대한 신감독의 의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골밑만 높아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그는 전 포지션의 장신화를 통해 아군의 미스매치를 없애고 역으로 상대팀은 높이로 제압해버리는 이른바 ‘토탈농구’를 시도한다.
신감독은 단신 슈터 조성원을 양희승과 바꾸며 평균 신장을 끌어올렸고 존스를 다시 불러들여 베스트5 전원의 기동성을 살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감독의 토탈농구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이상민, 추승균, 양희승, 제런 콥, 재키 존스의 베스트 5는 이전처럼 미스매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타 선수들을 압도할 만큼의 높이도 아니었다. 이상민의 리딩 부담은 여전했고 외려 조성원이 빠진 해결사 구멍만 크게 느껴졌다.
결국 신감독은 토탈농구를 포기하고 조성원을 다시 데려와 잘나가던 시절의 ‘이조추’를 재결성한 후에야 또 한번의 우승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신장이 좋은 선수들로 멤버를 구축해 다같이 달리고 다같이 슛을 쏘는 발상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농구를 펼치기 위해서는 이후 신감독의 회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멤버들이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 탄탄한 조직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멤버구성도 쉽지 않거니와 시간도 오래 걸리는 스타일의 농구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서울 SK를 보고 있노라면 ‘토탈 농구가 떠오른다’는 의견이 많다. 토탈농구라는 개념 자체가 워낙 어려운 형태를 띄고 있어 완성도 자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당시 신감독의 KCC가 시도했던 토탈농구의 업그레이드판임은 분명해 보인다.
SK를 이끄는 주축 멤버인 김선형(33·187cm), 최준용(27·200㎝), 안영준(26·196cm), 허일영(36‧196cm), 자밀 워니(27·199㎝)의 베스트5는 평균 신장이 195cm를 넘는다. 이른바 초장신은 없지만 어느 포지션을 둘러봐도 미스매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전원이 기동성과 외곽슛을 갖추고 있어 수비시 구멍이 생겨나지 않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내외곽을 넘나드는 득점이 가능하다. 거기에 허일영을 제외하고는 수년동안 호흡을 맞춰온 멤버들인지라 조직력 부분에서도 탄탄하기 그지없다. 신감독 시절의 KCC는 말이 토탈농구지 야전사령관 이상민의 볼 핸들링, 리딩부담은 여전히 컸다. 그나마 패싱능력이 좋은 존스가 도움을 줬을 뿐 나머지 멤버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의 역할에 특화된 선수들일 뿐이었다.
SK는 다르다. 1번 포지션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김선형이지만 가드와 포워드를 넘나들 정도로 다재다능한 최준용이 포인트 포워드로서 상당 부분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안영준 또한 볼 핸들링이 좋은 선수다. 워니 또한 득점형 플레이어이기는 하지만 패싱능력도 나쁘지 않다. 단순히 특정 선수를 틀어막아 볼 흐름을 빡빡하게 만들 수 없는 구조다.
KCC가 포지션별 불균형, 평균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는 배경에는 여러명의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볼 핸들러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이 컸다. 핸들러가 많으니 속공, 세트오펜스 등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패턴의 공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재의 SK는 여기에 포지션별 균형이 맞춰지고 평균 신장이 업그레이드가 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오재현(21‧186cm), 최원혁(29·183㎝)등이 왕성한 활동량으로 에너지레벨을 더해준다. SK가 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좋은 멤버와 탄탄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SK표 토탈농구가 올 시즌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프로농구를 즐기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전망이다.
#글 / 김종수 객원기자
#사진 / 백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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