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10) 한양대 신지원 “궂은일 좋아하는 헌신적인 선수가 될래요!”

이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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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인터넷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수년. ‘25슬램게임’은 드래프트 지명과 KBL 무대 데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 농구 일원들의 생존기록을 담았다. 010번 참가자는 한양대 신지원이다.

#001_Scan. 010번 참가자: 신지원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농구와 거리가 있던 삶을 살아왔던 신지원의 농구 시작 계기와 어울리는 말이다. 신지원은 농구를 좋아하던 친구를 따라 우연히 한 농구 캠프에 가게 된다. 단순히 친구 손에 이끌려 갔던 곳에서 농구 선수를 시작할 줄 그때는 전혀 몰랐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고향 부산에서 열린 ‘SIBA 바스켓’이라는 농구 스킬 캠프가 있었어요. 친구가 농구를 워낙 좋아해서 거기 한 번 가보지 않겠냐는 말을 계속하더라고요. 친구가 혼자 가는 게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 수락하고 따라갔어요. 그런데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잖아요? 저를 보신 금명중 김일모 코치님께서 ‘너 키 크고 신체 조건도 좋은데 농구해 볼 생각 없니?’라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주셨어요.”

그저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받은 농구부 코치의 명함. 신지원은 곧장 집으로 달려가 그의 부모님께 스카우트 제의 소식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말에 돌아오는 부모님의 대답은 예상대로 ‘NO’였다. 그렇지만 좋은 제의를 받은 신지원은 농구를 배우고 싶은 의지가 강했고, 결국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제조건 포함.

“당연히 부모님은 처음에 완강하게 반대하셨어요. 시기도 중학교 때였으니까 너무 늦다고 생각하신 것이죠. 그렇지만 제가 농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크다 보니 계속해서 부모님께 강하게 저의 의사를 표출했어요. 부모님이 저의 설득이 계속되니 딱 한 마디 해주셨어요. ‘그래. 네가 좋다면 시작해 봐. 그런데 절대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포기하지마.’ 바로 ‘그럴 일 없다, 포기 안하겠다’라고 이야기하고 금명중 농구부에 들어갔죠.”

남들보다 늦게 농구를 시작한 신지원에게 엘리트 농구부의 일과는 ‘신세계’였다. 쉴 틈 없이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흘러가는 운동 일과는 그의 빠른 농구력 상승을 도왔다.

“사실 그간은 엘리트 스포츠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으니 모든 게 신기했어요. 단체 생활을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그저 색다르고 ‘이런 경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일이었어요. 단체로 밥 먹으러 다니고 단체로 움직이고 이런 것도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고 느낀 중학교 시절이었어요.”

훌륭하게 1차 농구 적응기를 마친 신지원은 부산중앙고로 걸음을 옮긴다. 시작 시기는 늦었지만, 농구 흡수력은 누구보다 빨랐던 신지원은 점차 부산중앙고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우성희(동국대)와 함께 든든하게 골밑을 지켰고, 과거 서명진(울산 현대모비스), 양홍석, 곽정훈(이상 상무) 삼각 편대가 이끈 이후 잠잠하던 부산중앙고 농구부에 활력을 더하는 역할까지 했다. “선후배가 굉장히 친했고, 팀 분위기도 워낙 좋았어요. 저학년 때 저를 담당해 주신 박영민 코치님은 물론 중도에 부임하신 박훈근 코치님도 저를 잘 가르쳐주셨어요. 두 분 각자의 지도 스타일로 저를 한 단계 더 도약시켜 주시려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신지원의 골밑 지배력과 강한 수비 능력은 자연스레 고등 농구계 전체에 큰 인상을 남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한 결과, 신지원은 고3 시절인 2021년, 한 학년 선배인 조석호(고양 소노)와 함께 부산중앙고 출신으로 당당히 U19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발전한다.

“제가 키는 컸지만, 구력이 짧아 투박한 면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코치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생각의 전환을 해보려 했어요. 투박하다는 평가와 생각을 오히려 활용해 보자고 말이죠. 빅맨의 기본적인 역할인 스크린 걸고 빠르게 롤을 하거나 누구보다 리바운드 경합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 그 두 가지였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다 보니 자연스레 좋은 결과가 조금씩 나왔던 것 같아요.”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2차 농구 적응기까지 마친 시기이자 완전히 농구 선수 신지원으로서 거듭났던 부산중앙고 시절. 신지원은 이 기억을 이어 나가고자 부산에서 약 398km 떨어져 있는 한양대 서울캠퍼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속공 농구를 추구하는 한양대는 그의 진학 이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박훈근 코치님께서 추구하시는 농구랑 한양대가 추구하는 농구가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달리는 농구, 속공 농구를 한양대가 하는데 저도 달리는 농구를 좋아하고, 잘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박훈근 코치님도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농구를 한다. 진학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죠. 그렇기에 고민 없이 한양대 진학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한양대는 신지원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확실한 빅맨 자원이 없던 한양대 뎁스에 신지원의 합류는 그야말로 단비와도 같았고, 신지원 역시 1학년부터 많은 평균 출전 시간(22분 33초)을 가져간다.

단순히 출전 시간만 많았던 것이 아니다. 신지원은 학년을 거듭할수록 무럭무럭 성장하는 퍼포먼스를 골밑에서 보여줬다. 1학년 시절과 2학년 시절, 각각 5.4개와 6.4개를 기록한 평균 리바운드 개수는 3학년이었던 지난해 10.6개로 끌어올렸다. 이는 팀 내 1위이자 리그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무엇보다 운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1학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드는 생각은 몸싸움에서 이기려면 연습도 많이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굉장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하나하나 빅맨으로서 갖춰야 하는 것들에 대한 연구와 노력을 곁들이다 보니 점점 안정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스타일로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지원이 리바운드만 많이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 시즌까지 신지원의 3년간 평균 득점(7.3점→9.4점→14.1점)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4학년인 올 시즌 역시 꾸준함을 이어간다. 신지원은 20일 기준 14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12.5점 12리바운드를 기록 중이다. 강점인 리바운드의 평균 기록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그의 2점슛 성공률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50%에 달할 정도로 순도 높다.

그런 신지원에게 물었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잖아요. 이런 어려운 일을 달성한 (신)지원 선수가 생각하는 비결은 뭔가요?” 신지원은 이러한 기자의 질문에 2학년 시절 입은 발목 부상으로 재활의 시간을 보내면서 좌절하지 않고 반등 계기를 찾은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말을 전했다.

“사실 1학년 때는 어떤 경기 결과가 나오더라도 ‘적응 중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지낼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2학년 때 발목이 안 좋아지면서 수술하고, 재활의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혼란을 겪었어요. ‘왜 이러지?’, ‘발목 때문에 앞으로 농구 실력이 떨어지거나 다른 팀 포워드, 센터들에 밀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냥 좌절하기보다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더 열심히 하고 농구에 필요한 보강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려 했고, 그렇게 했어요. 그 덕분에 3학년 들어 자신감을 더 찾은 것이 성적으로도 나온 것 같아요.”

자신감이 더해질 수록 농구를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도 더 커졌다. 지난 3월 26일 건국대와의 리그 경기에서 보인 그가 보인 눈물이 그 증거다. 신지원은 당시 건국대 빅맨이자 리바운드왕인 프레디 무티바보다 2개 많은 리바운드(프레디: 14개, 신지원: 16개)를 잡아내며 골밑에서 대등한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팀의 승리로 활약이 연결되지는 못했고, 신지원은 아쉬움 가득한 눈물을 장시간 쏟기도 했다. 올 시즌 포함 프레디를 상대로 매번 고전하다가 처음으로 대등한 경기 내용을 보였기에 신지원이 강한 아쉬움을 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신지원은 3학년 시절부터 프레디에 밀려 계속해서 리바운드왕을 놓쳤다. 올 시즌 마무리를 향해가는 20일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프레디의 존재가 미웠을(?) 법도 했을 것이다. “에이… 원망스럽거나 밉지 않아요. 그저 프레디 선수가 리바운드를 워낙 잘 잡고, 몸싸움도 강하다 보니 이겨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프로 무대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한 번은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 생각했어요. 비록 정규리그에서의 맞대결은 모두 끝났지만, 나중에 프레디 선수를 다시 만나면 그때는 꼭 잡아보려고요.”

날로 성장하는 농구 실력과 커지는 발전 욕구에는 동료들의 힘도 컸다. 신지원은 현재 주장인 김선우와 박민재까지 한양대 4학년 트리오와 코트 밖에서 누구보다 크게 의지하며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깊어진 우정은 코트에서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저희 22학번들이 워낙 친해요. 동계훈련 갔을 때도 그렇고 평소에도 항상 같이 모여다니거든요. 동계훈련 때는 매번 인생 네컷 사진도 찍을 정도로 말이죠. 졸업을 앞둔 지금도 시간이 되면 밥도 먹고, 외박을 나가서도 모여서 같이 지내요. 그정도로 (김)선우와 (박)민재, 농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개척중인 친구들 포함 4학년 동기들의 힘이 컸어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대학교 4학년 선수들에게 후반기 일정의 재개는 곧 프로 도전의 마지막 관문,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가 성큼 다가온 것을 의미한다. 신지원은 남은 기간, 약점 보완에 매진하여 완성형 빅맨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가 약점으로 말한 것은 외곽슛 능력과 오른쪽 공간 활용이었다. 특히 빅맨도 누구나 3점슛을 장착하는 요즘, 외곽 공격 옵션을 장착하는 것은 어쩌면 필수다. 실제로 신지원은 올해 들어 3점슛 시도를 더 늘리고 있다.

“항상 고등학교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3점슛에 대한 이야기는 매번 듣고 있고, 꼭 잘하고 싶어요. 빅맨도 외곽 공격을 안 하면 가치를 잃는 시대니까요. 제 롤모델이 정효근(원주 DB) 선수와 이대헌, 이승현(이상 울산 현대모비스) 선수에요. 저랑 키도 비슷하고, 세 선수 다 3점슛을 던질 줄 알아서 더 그런 것도 있어요. 제가 프로 무대에서 살아 남으려면 세 선수와 같이 외국 선수들과의 매치업에서도 버텨주고, 팝아웃을 하여 3점슛도 잘 던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슛 연습에도 매진할 계획입니다.”

“오른손 활용 공격을 주저하고, 하지 않는 약점도 줄이고 싶어요. 무의식적으로 계속 주손인 왼손 활용 공격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상대가 왼쪽만 집요하게 막더라고요. 이것도 고쳐야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물론 계속해서 잘하던 것을 신경 쓰는 건 당연하고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신지원은 자신을 ‘궂은일을 좋아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뭐가 됐던 제 자신은 궂은일부터 해야 하고, 그것을 잘할 수 있는 선수라 생각해요. 저는 궂은일 하는 것 좋아하거든요. 전혀 싫지가 않더라고요. 리바운드가 장점이다 보니 공격 리바운드, 수비 리바운드 가리지 않고 리바운드 하나로 팀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선수가 저라고 생각해요. 수비도 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지금의 플레이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잘 살려서 몸 사리지 않고, 팀을 위해서는 열심히 뛰어다니겠습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신지원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신지원은 ‘책임감 넘치는 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벌써부터 떨려요. 프로 무대가 간절한 만큼 감사하게도 지명이 된다면, 정말 얼떨떨할 것 같아요. 프로에 간다면, 무엇보다 책임감을 더 크게 가지는 선수가 될 것 같고, 그래야 합니다. 팀이 원하는 플레이에 있어서 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면 팬들께 ‘신지원만큼 적극적이고 열심히 뛰면서 노력하는 선수는 없다!’라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농구를 시작하게 해준 코치님들은 물론 여러 지도자분들께 감사한 요즘이에요. 특히 부산중앙고 박훈근 코치님은 제 농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주신 분입니다. 한양대에서 4년 동안 많은 것을 알려주신 정재훈 감독님, 김우겸 코치님께 감사한 것은 당연하고요. 처음 농구공 잡을 때만 하더라도 프로 도전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저 자신한테 ‘열심히 했고, 정말 수고했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인구 및 농구 선수를 꿈꾸는 자원은 점점 감소한다. 그런 의미에서 빅맨은 늘 귀하다. 신지원은 그 귀한 빅맨들 중에서도 더욱 귀한 가치를 지녔다. 림을 향하여 공이 던져지면, 누구보다 로우 포스트에 빠르게 뛰어 들어가 박스아웃에 참여한다. 여기에 부지런히 현대 농구에 맞춰 스타일 개선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실제로 신지원은 약점 개선에 대한 의지를 말하는 데 인터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정도로 농구를 잘하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한 남자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궂은일에 참여하고, 매일 같이 체육관을 먼저 찾는 성실한 자원을 찾는 팀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신지원. 그의 프로 무대 도전을 응원한다.

#사진_신지원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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