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야기] ‘최소 출전’ 1순위 LG 박정현, 데뷔전이 아쉬운 이유

이재범 / 기사승인 : 2019-11-08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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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기자] 박정현이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 역대 1순위 중 데뷔전에서 가장 적은 2분 53초 출전했다. 박정현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굉장히 아쉽다.

박정현은 지난 4일 열린 2019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이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창원 LG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1순위 확률 5%를 가졌던 LG는 2013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선발한 김종규가 원주 DB로 떠나자마자 박정현을 데려오는 행운을 누렸다.

더구나 박정현은 마산동중에서 농구를 시작했으며 마산고에서 삼일상고로 전학간 뒤 고려대를 졸업했다. LG는 지역연고 선수를 1순위로 영입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경우 이런 사례는 송영진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LG는 정규경기에서 한 번 우승했지만, 아직까지 챔피언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여기에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LG 소속으로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가 전무하다.

DB(김주성), 서울 삼성(이규섭), 서울 SK(김민수), 고양 오리온(김병철), 인천 전자랜드(정영삼), 전주 KCC(추승균), 안양 KGC인삼공사(은희석, 양희종), 울산 현대모비스(양동근, 함지훈) 등은 소속팀에서 데뷔한 뒤 이적 한 번 없이 10시즌 이상 소화한 선수를 배출했다. 부산 KT에는 KT에서 데뷔한 건 아니지만, 2005~2006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10시즌을 소화한 송영진이 있다.

LG에서 가장 오래 활약한 선수는 9시즌 동안 356경기 출전한 기승호다. 기승호는 10번째 시즌을 앞두고 2018~2019시즌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LG는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직접 선발한 선수와 FA(자유계약 선수) 계약을 체결한 게 기승호가 처음이자 유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 선수를 키우지 못했다. LG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LG 관계자는 “김종규와 다른 팀에서 왔지만, 김시래, 조성민까지 프랜차이즈 선수로 키우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LG는 김종규를 놓친 대신 창원에서 농구를 시작한 박정현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면, 박정현을 여기에 맞는 대우를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현의 프로 데뷔 무대가 부산이 아닌 창원이라면 어떨까? 더더욱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역대 1순위들의 데뷔전 기록을 한 번 살펴보자. 최다 득점은 조상현의 27점(3점슛 4개, 최다)이다. 20점 이상 득점한 선수는 현주엽(26점)과 방성윤(21점) 등 3명이다.

데뷔전부터 더블더블을 기록한 선수는 김주성(19점 11리바운드)과 김태술(11점 11어시스트)이며, 김주성의 11리바운드와 김태술의 11어시스트는 각각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최다 기록이다. 김태술은 최다 스틸(4개)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한 쿼터 최다 득점은 장재석의 10점(2쿼터). 장재석은 2점슛 4개, 자유투 2개 등 슛 6개를 모두 성공했다. 김동우는 1순위 중 데뷔전에서 연장 득점을 올린 유일한 선수다.

데뷔전부터 선발로 출전한 1순위는 13명. 다만, 비시즌을 소화한 1순위 15명(김시래 이전) 중 12명이 선발로 출전(교체 출전 김동우, 전정규, 하승진)했다. 드래프트 직후 곧바로 데뷔 가능한 1순위 8명(장재석 이후) 중 1명, 박준영만 선발로 데뷔전을 치렀다.

의외로 데뷔전에서 승리하며 웃은 1순위는 8명으로 적다. 특히, 2003년 김동우부터 2011년 오세근까지 9시즌 연속 1순위가 모두 데뷔전에서 패배를 맛봤다.

여기에 역대 1순위가 데뷔한 장소를 찾아보면 창원실내체육관이 6회가 가장 많다.

역대 1순위가 가장 많이 데뷔한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창원(마산과 창원, 진해가 창원으로 통합) 출신 박정현이 LG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다는 것만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LG는 이런 기회를 놓쳤다.

박정현은 4일 드래프트를 거쳐 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신인선수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뒤 밤 10시 즈음 부산에서 팀에 합류했다. 더구나 다른 신인 선수들과 달리 박정현은 10월 한 달 동안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한 달 가량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몸 상태가 70~80% 정도로 완벽하지 않았다. 운이 없게도 LG가 이번 시즌 초반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해 박정현이 6일 KT와 경기에 바로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신인 선수들은 팀에 합류한 뒤 몸 상태부터 점검 받았다. 박정현은 그런 과정을 건너뛰었다. LG가 하위권에 처져 당장 코트에 나서야 했다. 다만, LG에서 박정현의 대안이 없는 게 아니었다. 김동량과 박인태가 버티고 있다.

LG 현주엽 감독은 KT와 경기 전에 경기 상황을 보며 박정현을 투입할 거라고 했다. LG는 1쿼터 중반 박준영에게 골밑에서 실점한데다 공격자 반칙까지 범하자 김동량 대신 박정현을 투입했다.

박정현은 코트에 나서자마자 박준영에게 3점슛 기회를 내줬다. 다행히 빗나갔지만, 공격 리바운드를 뺏긴 뒤 돌파로 실점했다. 뒤이어 3점슛을 얻어맞았고, 훼이크에 완벽하게 속아 골밑 실점까지 했다. 박정현은 박준영에게 연속 7점을 뺏겼다.

박정현이 코트에 나설 때 9-13이었던 점수는 12-20으로 벌어졌다. 박정현은 골밑 슛 하나를 놓치고, 공격 리바운드 1개만 잡은 뒤 벤치로 들어갔다. 박정현의 데뷔전 기록은 리바운드 1개다.

박정현이 코트에 나서는 순간으로 되돌아가보자. 이 때 박정현 대신 투입할 수 있는 박인태가 있었다. 박인태는 김종규와 공존을 위해 외곽수비까지 익혔다. 박인태가 들어갔다면 골밑을 지키는 습관이 있는 박정현과 달리 박준영에게 그렇게 쉽게 3점슛 기회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박준영과 박정현은 고려대 선후배다. 박준영이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박정현을 상대할 수 있다. 김주성은 LG와 경기에서 데뷔했는데 당시 LG에는 중앙대 인연의 김태환 감독과 조우현, 송영진 등이 있었다. 김주성은 이 때문에 데뷔전임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준영도 마찬가지다. 박정현과 매치가 된 그 짧은 순간에는 박준영이 1순위다웠다. 결과만 놓고 보면 LG는 준비가 안 된, 박준영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나쁜 선택을 하는 바람에 힘든 1쿼터를 보냈다. LG가 만약 졌다면 경기 초반 조상열에게 8실점하고, 박준영에게 7실점한 게 뼈아팠을 것이다. 박정현과 교체되어 코트에 나선 선수도 다름 아닌 박인태였다.

역대 1순위 중에서 박정현처럼 데뷔전에서 무득점에 그친 경우(김시래, 문성곤, 박준영)도 있다. 또한 10분 미만으로 출전한 선수(김시래, 문성곤)도 있다. 그렇지만, 박정현보다 적은 2분 53초 출전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LG는 KT와 경기 후 8일 서울 삼성과 홈 경기를 갖는다. 박정현이 조금 더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며 팀에 적응한 뒤 창원 홈에서 데뷔했다면 어땠을까?

DB 이상범 감독은 데뷔전이나 부상 등으로 오래 쉬었던 선수가 복귀할 때 가능하면 홈 경기에 출전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원정이라면 부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한 홈 코트에서 좀 더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경기에 나서라는 의미다.

부산사직실내체육관은 박정현에게 원정이었다. 물론 요즘 늘어난 LG 인기를 반영하듯 LG 팬들도 많았다. 박정현이 부산에서 데뷔한다고 미리 확정했다면 창원에서 부산으로 응원 갔을 팬들도 있었다.

현주엽 감독은 김시래와 조성민의 부상을 언급하며 시즌이 길다고 했다. 시즌이 길기 때문에 한 경기만 참았다면 박정현이 더 많은 홈 팬들의 응원 속에, 자신의 고향에서 데뷔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래프트가 끝난 직후 나온 이야기 중 하나는 이윤수가 유력한 신인왕 후보라는 것이다. 이상범 감독은 그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며, 더불어 출전시킬 때 확실하게 출전시간을 보장한다. 주전으로 활약할 선수가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신인 선수들임을 감안하면 일리 있는 예상이다.

김종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때 펄펄 날아다녔지만, LG로 돌아오면 대표팀만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김종규는 올해 반대다. 국가대표팀에서 부진했지만, DB에서 제몫을 해주고 있다. 최근 LG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이 LG에서보다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LG는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 선수가 가진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말이다. 박정현은 최소 6시즌(데뷔 시즌은 계약 기간에 포함되지 않으며, 1순위는 보통 5년 계약함) 동안 LG에서 활약할 기둥이며, 프랜차이즈 선수로 키워야 하는 선수다. 이런 선수의 데뷔전이 좋게 포장하면 경험 쌓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대 선수만 빛낸 조연으로 다뤘다.

결과론이지만, 김동량 대신 박정현이 아닌 박인태로 교체 가능했다. 박정현을 꼭 출전시켜야 했다면 KT가 박준영에게 경험을 쌓게 하듯 승부와 연관이 덜한 선발로 내보내는 것도 좋았다. 교체 선수로 내보낼 거였다면 적은 시간을 뛰더라도 가능한 빨리 데뷔해서 더 많은 경기를 뛰며 경험을 쌓자고 언질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박정현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LG는 그러지 않았다. 박정현의 평균 기록을 낮추는 경기수 하나만 추가했다.

최상의 방법은 가장 가까운 벤치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보게 한 뒤 삼성과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드래프트 직후 ‘창원의 아들 1순위 박정현, 8일 창원에서 데뷔 예정’라고 충분히 홍보와 마케팅으로 활용 가능했다. 이럴 경우 삼성과 홈 경기는 좀 더 많은 팬들이 몰릴 것이며, 박정현에게 창원은 더더욱 남다른 곳이 될 수 있었다.

박정현의 데뷔전은 대안이 있었고,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직까지 10년 이상 함께 보낸 선수가 없는 LG는 박정현을 프랜차이즈 선수로 키우기 위해선, 6년 뒤 FA 계약 때 박정현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선 그에 맞게 기용해야 한다. 선수도 구단을 위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지만, 구단 역시 선수의 위상에 맞는 대우를 해야 구단과 선수가 상생 가능하다.

박정현은 8일 삼성과 맞대결에서 홈 팬들 앞에 처음으로 선다.

#사진_ 점프볼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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