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큰 꿈 품은 김완수 코치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김용호 / 기사승인 : 2019-11-18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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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어느덧 여자농구에서는 잔뼈가 굵은 지도자.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겸손을 놓지 않았던 김완수 코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늘 누군가의 뒤에서 묵묵하게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 기사는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아쉬움 씻고자 택한 길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공을 잡았다는 김완수 코치는 산곡북초-송도중-송도고-건국대를 거치면서 프로선수를 꿈꿨다. 송도중 故전규삼 선생, 송도고 박재수 감독, 건국대 주봉삼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2000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5순위로 인천 전자랜드의 전신인 신세기 빅스에 지명 받으며 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프로선수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김완수 코치는 “프로에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했던 탓에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일찍이 군 입대를 택했고, 제대 후에는 곧장 은퇴하고 전자랜드 사무국으로 입사하게 됐죠”라고 자신의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일찍이 택한 제2의 인생. 김완수 코치는 전자랜드 사무국에서 선수단 지원팀 소속으로 발 빠르게 뛰었고, 매니저도 역임하다 구단을 떠나 소위 사회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지도자의 기회가 찾아왔다. “선배님이 지도자를 한 번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셨었어요. 그래서 29살의 나이에 온양여중 코치를 하게 됐죠.”

그가 지도자의 길을 택한 건 선수 시절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잖아요. 사실 전자랜드 사무국을 떠난 이후에는 진짜 한동안 농구는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근데 살면서 해온 게 농구다보니, 결국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미련이 남은 거죠. 제가 선수를 하면서 배웠던 걸 제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선수 시절에 해보지 못한 성공을 지도자로서 해보자는 생각에 이 길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2006년 온양여중으로 향한 김 코치는 서울 대진고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2008년부터 약 8년 간 온양여고를 이끌었다. 아마추어 무대였지만 여자농구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꾸준하게 굳혀온 셈. 김 코치는 “여자 선수들이다 보니 심리적인 부분이나 성장 속도에 있어 남자 선수들과는 다르게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을 해보려 했는데 쉽지 않았죠. 그래도 연차가 쌓이면서 선수들을 잘 파악할 수 있었고, 선수들이 열정을 갖게 하는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지도자를 시작한지 5년 정도 지났을 때 쯤 이 길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남자 팀 제의도 있었지만, 재미를 알게 되면서 여자농구 지도자의 길을 지키려했던 것 같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적성에 맞는다는 확신을 가졌고, 재미까지 찾았다는 그는 선수들의 성장에서 동기부여를 찾았다. “지방에 있는 학교이다 보니 환경 자체에도 부족함이 많았죠. 하지만,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운동을 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지도자들도 힘을 합치면서 ‘하면 되는구나’라는 동기부여가 생겼어요. 그러니 선수들이 점점 좋아지는 게 보이고, 선수 수급도 원활해졌죠.”

온양에서의 지도자 생활은 결국 그에게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양분이 됐다. 다시금 온양 시절을 회상한 김완수 코치는 “온양여고를 맡은 첫 해에는 선수가 없어서 대회에 일반 학생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추계연맹전에서 4강까지 올랐을 때가 제일 기뻤죠. 지금 저희 막내 매니저로 있는 (장)유영이, 삼성생명의 (윤)예빈이 등 치고 받으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선수들이라 10년을 넘게 알았고, 많은 걸 알고 있으니 편했죠. 정말 많이 지지고 볶았어요”라며 추억에 젖었다.



프로의 문을 열어준 KEB하나은행

지도자로서 부지런히 달려온 덕분에 여자프로농구 무대도 그에게 문을 열었다. 2016년 KEB하나은행의 코치로 함께하게 된 것. “프로 무대에 입성하면서 지도자로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라며 또 다른 출발점을 돌아본 김완수 코치는 “아마추어 무대에 오래 있다 보니 선수 파악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시스템 자체에 대한 차이가 있고, 성인과 학생이라는 차이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적응하는 게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무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목표도 잡았었다고. 그는 “고등학교에 있을 때에는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됐을 때 어긋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고자 했었죠. 그래서 일부러 선수들에게 모질게 대한 적도 있었고요. 운동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면 사회에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극복해내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로는 아마추어와 달랐죠. 선수들이 스스로 뭔가를 느껴서 행동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아무리 뒤에서 밀어도 소용이 없거든요. 본인이 직접 동기부여를 찾는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라며 또 다른 무대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새롭게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회의감이 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김완수 코치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일념 하나로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제 마음 같지 않을 때, 소통이 안 됐을 때 속상할 때가 있었죠. 지도자로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낀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1년씩 시간이 흐를 때마다 배우면 배울수록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이지만, 농구가 특히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해요. 공부가 정말 재밌어요.”

그렇게 KEB하나은행에서도 부지런히 자리를 잡은 김완수 코치였지만 지난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웠다고 돌아봤다. 시즌 종료 후 구단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코칭스태프를 교체했다. 신임 감독으로 이훈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새로이 이시준 코치도 합류했다. 김완수 코치는 지난 스태프 중에서는 유일하게 팀에 남은 인물이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다시 남게 됐는데, 죄송한 마음이 크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잘 돼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고요. 지금은 이훈재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농구에 스며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감독님과 선수들 사이의 중간자로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좋은 분위기로 팀워크를 다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박신자컵 2연패, 부지런한 노력의 결과물

김완수 코치는 KEB하나은행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뚜렷하게 새기고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을 기울여왔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그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바로 박신자컵 서머리그 2년 연속 우승을 이끈 것. 사실, 코치들이 감독 역할을 맡는 박신자컵에서 코치들이 받는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완수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부담감을 이겨내며 선수들을 박신자컵 정상에 세웠다.

지난 8월 31일, 박신자컵 2연패 순간을 돌아본 김 코치는 “저 나름대로 올해 대회는 자신이 있었고, 한편으론 부담도 됐었죠. 작년에 우승을 했었기 때문에 그만한 성적을 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또, 감독님을 보좌하는 코치 입장에서는 감독님이 상무에서 어마어마한 연승 기록을 쓰시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제가 흐름을 끊으면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다행히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해준 덕분에 또 우승을 해서 한시름 놨죠”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박신자컵에서도 김완수 코치는 선수들이 이훈재 감독이 농구 컬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고 중심을 잡았다. 그는 “감독님의 농구를 선수들에게 어떻게 접목시킬지, 그 과정에서 뭐가 필요한지 고민을 많이 했죠. 다행히 박신자컵 무대에서는 잘 들어맞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승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죠. 경기 중에 어려운 상황이 와도 벤치 주문에 의해서가 아닌, 선수들이 스스로 뭉쳐 이겨냈다는 게 뿌듯했죠. 이런 현상이 정규시즌까지 이어지면 팀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라며 성장하는 선수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선수들의 성장도 하나의 성과였지만, 김완수 코치도 지도자로서 얻은 것이 있었다. “선수들과 벤치에서 이루는 케미스트리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할 수도 있지만, 선수들이 먼저 의견을 내기도 하고, 그걸 제가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볼 수 있으니까요.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들의 의견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저 혼자 판단했다면 풀리지 않았을 일들이 풀리기도 했죠.”

올해 박신자컵부터는 나이 제한 규정이 없어졌다. 덕분에 그는 베테랑 백지은, 고아라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은 아직 의견을 낼 때 눈치를 보기도 해요. 그래도 (백)지은이와 (고)아라가 농구를 더 알고 연차가 있다 보니 젊은 선수들의 의견을 대변해주기도 했죠. 저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시준 코치도 그렇고요. 이번 우승은 정말 제가 다 만든 게 아니에요. 모두가 하나 돼서 만든 승리랍니다.”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느덧 14년차 지도자가 된 김완수 코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보낸 그는 지도자로서의 목표가 뚜렷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도자상을 묻자 그는 송도중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故 전규삼 선생을 다시금 떠올렸다. “앞서 말했듯 선수로서는 실패하고 후회를 남겼지만, 지도자로서는 절대 그러지 말자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요. 늘 부족함을 느껴서 그걸 채우기 위해 코치 생활을 계속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훗날에는 전규삼 할아버지처럼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고 싶죠.”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응원하는 사람도 많다. 김완수 코치는 “제 스스로가 생각할 때는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열심히 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실 때면, 제가 그래도 옳게 가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 격려들이 정말 많은 힘이 되거든요”라며 주위의 응원에 감사함을 표했다.

부지런히 달려가다 보면 분명 인정을 받는 날도 오지 않겠는가. “저를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생기는 날 지도자로서 성공했다고 만족하지 않을까요”라며 먼 미래를 내다 본 김완수 코치는 “지도자로서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훗날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지도자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 저를 인간적으로 찾아봐줬을 때, 그 때가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밝은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김완수 코치, 지도자로서의 우승은 지난해 박신자컵이 처음이었다는 김 코치는 “KEB하나은행에서는 꼭 리그 우승을 이루고 싶죠.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모두 정상에 서고 싶어요. 그래야 지도자로서 진정 인정받을 수 있는 날도 오겠죠”라며 정상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KEB하나은행의 푸르른 앞날을 바라보며 마무리할 시간이 왔을 때 즈음, 김완수 코치는 선수단의 서포터답게 주위의 일원들을 챙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선수들은 당연히 주목을 받아야하는 게 맞죠. 그 다음은 감독님이고요. 그리고 나서는 저보다는 선수단을 뒤에서 묵묵하게 도와주는 스태프들이 조명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거든요. 저도 KEB하나은행의 코치로서 이 모든 사람들과 환히 웃을 결과를 남기는 날이 올 수 있게 더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 김완수 코치는
1977년 8월 28일생인 김완수 코치는 송도중-송도고를 거쳐 건국대(체육교육과)에서 농구를 했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에 입단한 그는 2002년 은퇴 후 온양여중, 온양여고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KEB하나은행 코치로 선임된 건 2016년으로, 2018년과 2019년 박신자컵 서머리그 우승도 이끌었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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