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BA WC] 집중분석 : 첫 실험 보고서에 남겨진 과제

김윤호 기자 / 기사승인 : 2018-02-24 02:03:0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점프볼=김윤호 칼럼니스트] 3개월 만에 치르는 A매치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KBL 정규시즌 막바지로 가면서 생긴 체력 저하 때문일까. 홍콩과의 경기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다. 앞서 중국과 뉴질랜드는 홍콩을 각각 52점차, 59점차로 대파했다. 하지만 한국과 홍콩의 점수차는 불과 21점차였다. 쉽게 갈 줄 알았던 경기, 리카르도 라틀리프 합류에 따른 실험으로 삼으려 했던 경기에서도 해결과제는 있었다.

건아의 합류, ‘Big-to-Big’을 제시하다

‘라건아’ 라틀리프의 대표팀 합류 자체가 한국에게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남은 1차 예선 경기에서, 그리고 1차 예선 통과 시에 펼쳐질 2차 예선 경기에서 라틀리프의 활약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체인 홍콩을 상대로 라틀리프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실험을 펼쳤다.

라틀리프가 들어오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빅맨 2명이 연계를 펼치는 ‘Big-to-Big’ 작전의 빈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이미 라틀리프는 국내에서도 하이 앤 로우 전술을 통해 득점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수없이 보여왔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빅맨 간의 연계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는데, 라틀리프가 오면서 또 하나의 전술적 무기를 갖게 되었다.

‘Big-to-Big’을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위에서 말한 하이 앤 로우 게임이 가장 대표적인데, 하이 앤 로우 외에도 여러 가지 패턴이 가능하다. 라틀리프가 포스트에서 공을 갖고, 나머지 1명의 빅맨이 하이포스트에서 기다리다가 컷인을 하면서 라틀리프의 패스를 받아 득점을 노릴 수 있다. 혹은 라틀리프의 킥아웃을 나머지 빅맨이 미드레인지 점프슛으로 마무리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Big-to-Big’은 직접적인 득점으로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로 포스트와 하이 포스트에 각각 빅맨이 1명씩 서게 되면서 전술의 폭이 넓어진다. 라틀리프의 패스를 받은 빅맨이 한 번 더 밖으로 공을 빼주면서 오픈 찬스 창출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라틀리프가 픽앤롤을 할 때 파트너 빅맨이 골밑 몸싸움을 통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전술이 효과를 거두려면, 라틀리프와 조합이 잘 맞는 빅맨을 내세우는 것이 최우선이다. 홍콩을 상대로 허재 감독은 최부경, 김종규를 라틀리프와 같이 기용하면서 방법을 찾았다. 각각의 비교 우위가 있었지만, 라틀리프가 골밑에 있을 때 더 활발히 움직인 쪽은 김종규였다. 라틀리프가 리바운드를 잡을 때 같이 달릴 수 있다는 점, 라틀리프의 박스아웃을 통해 공격 리바운드를 쉽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상대가 김종규를 자주 놓치게 된다. 김종규가 2쿼터에 보여준 풋백 덩크는 홍콩의 수비가 라틀리프 쪽으로 쏠리면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더구나 김종규는 라틀리프의 킥아웃을 점프슛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으니, 라틀리프-문태영과 유사한 형태의 조합이다.

그렇다면 왜 ‘Big-to-Big’이 필요할까? 간단하다. 신장을 잘 활용하면 적어도 흐름을 완전히 내 주는 경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신 라인업을 내세운 상태에서 슛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낮은 높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높이를 잘 활용하면, 슛을 실패하더라도 리바운드 싸움을 통해 상대의 공수 전환을 늦출 수 있다. 상대의 속공을 막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공격 리바운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시아 무대에서 라틀리프의 몸싸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는 빅맨은 없다. 중국처럼 스피드가 뛰어난 장신을 보유한 팀에게는 박스아웃을 통한 사전적인 속공 저지가 필요할 때가 많다.


백코트를 통한 트랜지션 수비에도 효과적이다. 보통 높이가 낮은 팀들은 리바운드 참여를 위해, 공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여러 사람이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탑에서부터 하프라인에 이르는 공간을 막아줄 사람이 없어지고, 이것이 쉬운 속공 실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빅맨 2명이 모두 골밑에 들어가면 백코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빅맨 1명만 로 포스트에 들어가고 나머지 1명이 하이 포스트나 엘보우 지점에 있다가 가드와 같이 백코트를 하게 되면 설사 공격 리바운드를 내주더라도 빠르게 수비를 정비할 수 있다. 더구나 가드와 같이 백코트하는 빅맨이 라틀리프나 김종규라면 더 빠르게 속공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허재 감독 체제에서 ‘Big-to-Big’이 제대로 구현된 적은 없다. 그래서 어설픈 면도 많다. 하지만 라틀리프에게만 골밑 공략을 맡긴다면, 서울 삼성과 다를 게 없다. 라틀리프의 위시로 파생되는 세련된 전술을 갖춰야, 그의 존재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그 세련된 전술이 ‘Big-to-Big’이라면 한국은 기동력과 높이를 모두 잡는 효과를 누린다. 대표팀에 선발할 빅맨을 모으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을 엮어줄 전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빠른 2점이 필요하다

한국은 상대가 득점을 성공시키고 백코트하기 전에 빠르게 인바운드 패스를 넣어 득점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최준용이 멀리 던진 인바운드 패스를 최부경이 그대로 덩크슛으로 마무리 지은 장면이 대표적이다.

속공을 반드시 수비 리바운드나 스틸 직후에만 할 이유는 없다. 실점을 하더라도 빠르게 인바운드 패스를 넣어서 2점을 올리는 것도 속공의 한 방법이다. 추격하는 입장에서는 빠르게 2점을 넣으면 역전에 필요한 시간을 벌게 되고, 앞서는 입장에서는 빠른 2점으로 점수 차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의 속공은 미국 대표팀이 자주 썼던 방법이기도 하다. 가드들이 처음부터 인바운드 패스를 넣고, 포워드들이 패스를 받고 바로 하프라인을 넘어 득점을 성공시키는 패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슈팅 감각이 늘 좋을 수는 없다. 3점슛 성공률이 44.0%나 될 정도로 감각이 좋았던 홍콩과 달리, 한국은 3점슛을 34개나 던지고도 단 10개만 넣는 데 그쳤다. (성공률 29.4%) 이마저도 두경민과 이정현 두 사람이 3점슛 17개 중 8개를 넣은 덕에 나온 수치이다. 상대의 전력이 약하면 외곽슛이 터지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상대의 전력이 강하면 외곽슛 없이 경기를 이끌어나가기 어렵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거 없이, 지난 중국과의 홈 경기에서 3점슛이 기대처럼 터지지 않아서 경기 내내 끌려 다녔다.

여기서 활용할 수 있는 패턴이 빠른 2점이다. 같은 2점을 넣더라도, 24초를 다 쓰고 넣는 것이 아니라 7~8초 이내에 하프라인을 넘어 득점까지 마무리짓는 패턴이다. 한 번의 공격권을 사용하는 데 소모되는 시간을 최대한 절약했으니, 이후에 슛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설사 득점을 못해도 자유투를 얻어낸다면 상대의 흐름을 끊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끌려가는 팀들은 역전을 위해 24초를 최대한 쓰면서 확률 높은 득점으로 따라가려 한다. 단 하나의 슛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술을 잘 구성해도, 그날의 슈팅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한국은 키가 작은 홍콩 가드들과 매치업되고도 3점슛을 번번이 놓쳤다. 오픈 찬스를 계속 만든다 해도, 마무리시키지 못하면 그 움직임은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도 득점을 못해서 역전에 실패하게 된다.

이번 경기처럼 외곽슛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굳이 차근차근 따라가는 방법을 택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투박하고 정신없어 보여도,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어서 공격을 시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투라도 얻어내면 적어도 1점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전술로 만든 오픈 찬스에서 던진 3점슛을 실패한다고 해서, 예술 점수를 따로 주지는 않는다.

신속하게 인바운드 패스를 던져서 2점을 넣는 전술에서 굳이 5명 모두가 달려나갈 이유는 없다. 한 명이 공을 받고 나머지 한 명이 반대편에서 뛰어나가기만 해도, 속공을 성공시킬 조건은 충분하다. 만일 공 없이 뛰어가는 그 한 명이 빅맨이라면 더 효과적이다. 설사 슛을 실패하더라도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서 다시 공격을 전개하거나, 박스아웃을 통해 상대의 역공을 우선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틀리프의 존재는 이러한 면에서 더더욱 필요하다. 라틀리프는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고 직접 드리블을 해서 속공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만큼 속공 농구에서 경쟁력이 있다. 2쿼터 초반에 그가 얻어낸 바스켓 카운트는 빅맨이 같이 달리는 속공의 정석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가드와 같은 템포로 달리는 빅맨이 있으면, 그만큼 속공이 쉬워진다. 그 동안 한국은 김종규가 없으면 가드와 빅맨이 같이 달리는 속공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김종규가 없어도 효율적 속공이 가능해졌다.

빠른 경기 템포로 3점을 폭죽처럼 넣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런 경기가 매번 나올 수는 없다. 오히려 선수들의 몸 상태가 확실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번 홍콩과의 경기처럼 슛이 말을 안 듣는 경기가 더 일반적이다. 따라서 외곽슛의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공격 템포를 늦추지 않는 전략은 항상 준비될 필요가 있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 대등하게 싸우려면, 더욱 다듬어진 속공이 있어야 한다.


가드의 수비에 뒤는 없다

약체 홍콩에게 3점슛을 11개나 허용한 수비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상대가 손끝 감각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막아도 슛을 넣었다면 지적할 게 딱히 없지만, 와이드 오픈 찬스를 계속 내줬다면 문제가 된다. 이 경기에서의 한국의 수비는 명백히 후자에 가까웠다.

외곽에서 오픈 찬스가 발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뉜다. 공의 흐름이 상대 수비의 발보다 빨라서 선수가 공을 잡는 족족 오픈 찬스가 되는 경우, 혹은 수비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대를 막지 못하는 경우이다. 수비의 문제가 되는 쪽은 후자인데, 수비의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뒤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홍콩이 픽앤롤을 시도할 때, 한국의 가드들은 리 키와 같은 가드들을 주시하는 게 아니라 스크린을 서고 들어가는 빅맨들에게 신경을 썼다. 스위치 디펜스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드와 빅맨 모두 홍콩의 빅맨들을 의식하다가 외곽에 공간을 내 주는 장면이 여러 번 발생했다. 이는 수비수, 특히 가드들이 본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뒤로 들어가는 상대에게 신경이 집중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역방어를 활용한 수비 전술을 계속 쓴다면, 가드들은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뒤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자신이 맡아야 할 구역만 봉쇄하면 성공이다. 자기 뒤통수 주변에서의 수비는 빅맨들의 몫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가드가 뒤를 돌아본 순간 수비 실패이다. 빅맨의 수비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쉬운 득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격적인 수비이다. 블리츠 (Blitz) 와 같은 형태의 공격적인 수비로 상대의 발을 묶어놓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뒤를 신경쓰지 않고, 전방 압박을 할 수 있다. 오늘날 NBA에서 가드들의 선제적인 수비가 각광을 받는 것도, 이러한 전방 압박이 전제되어야 팀 수비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NBA 단장들이 매년 여름마다 3점슛과 수비에 특화된 가드를 찾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 한국농구에서 이러한 공격적 수비는 크게 일반화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내 가드들은 골밑으로 상대를 끌어들이거나, 페인트존에서의 헬프 디펜스를 펼친다. 외곽에서의 더블팀은 벤치에서의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자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홍콩처럼 조금만 빈 공간이 있어도 지체 없이 슛을 쏘는 팀에게는 유인책이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드리블의 공간을 주고 끌어들이려다 3점슛을 얻어맞게 된다. 3쿼터에 홍콩에게 10점차까지 추격당한 것도, KBL에서 늘 하는 것처럼 수비하다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오픈 3점슛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뒷공간을 신경 쓰는 것보다, 내 앞의 수비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게 묶어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홍콩보다 전력 수준이 높은 뉴질랜드는 더 저돌적으로 골밑을 파고들거나, 더 변칙적인 슛을 시도할 것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수비로 상대를 먼저 압박해야만 야투 허용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상대 공격수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다.


#사진=홍기웅, 한필상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