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서울/김용호 기자]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까.
2012년 우리은행 부임 직후 통합 6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역사를 썼던 위성우 감독. 그는 지난 시즌 WKBL 최초로 감독으로서 정규리그 200승을 거두면서 다시 한 번 명장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많은 농구팬들에게 ‘선수 위성우’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던 그는 어떻게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본지 취재기자들은 매거진 고정 코너인 <1대3 인터뷰>에 위성우 감독을 초대했다. <1대3 인터뷰>는 프로 구단 감독의 모든 것에 대해 본지 취재기자 3명이 함께 질문 보따리를 던져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코너다.
선수 시절부터 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위성우 감독은 당시 대학 약체로 평가받던 단국대에서 실업 최강으로 불리는 현대전자로 향해 한 차례 목표 달성을 해낸다. 위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도 그렇듯 벤치 멤버들은 한 번 실수하면 내일이 없다. 선수 시절 남들에게 체력이 밀리지 않았던 건 그만큼 간절하게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또, 몇몇 선배들이 상위권 대학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실업팀 혹은 은행팀으로 진출하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지기도 했었다”라며 자신의 선수 시절을 돌아봤다.
결코 찬란하지는 않았던 선수 시절이었지만, 위성우 감독은 은퇴와 동시에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신한은행 코치로서 전주원 코치와 첫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이후 우리은행에서는 감독이라는 더 막중한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
감독이라는 무거운 이름표를 달았지만, 위성우 감독은 첫 시즌부터 모두의 예상을 깨며 챔피언의 칭호까지 차지했다. 이후 5시즌도 항상 정상에는 위성우 감독과 우리은행이 있었다. 만약 위성우 감독과 우리은행이 만난 2012-2013시즌, 그들이 탈꼴찌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질문에 위성우 감독은 “첫 시즌 결과가 그랬다면 바로 감독을 그만뒀을 거다”라고 웃어 보이며 자신의 가치관을 밝혔다.
그만큼 위성우 감독은 당장의 현재를 보고 살았다. 지도자로서 먼 미래의 계획도 세운 적이 없고, 매 시즌 ‘지금’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온 사력을 다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성우 감독은 마냥 독하기만 했던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임영희 코치가 선수로서 유니폼을 내려놓던 날 흘린 눈물을 많은 팬들이 보지 않았는가. “임 코치가 은퇴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정이 벅차오른다”라며 자신의 제자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보인 참 스승이기도 했다.
WKBL의 대표 감독인 위성우 감독이 더욱 궁금해지지 않는가. 위 감독의 선수 생활 시절부터 지도자로서의 모든 이야기를 오는 9월말 발간 될 점프볼 10월호 <1대3 인터뷰> 코너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사진_ 유용우 기자
점프볼 / 김용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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