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04) 연세대 안성우 “자리 비우면 바로 생각나는 선수가 될래요!”

이상준 기자 / 기사승인 : 2025-09-08 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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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인터넷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단 하루. 그 하루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수년. ‘25슬램게임’은 드래프트 지명과 KBL 무대 데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대학 농구 일원들의 생존기록을 담았다. 004번 참가자는 연세대 안성우다.
 

#001_Scan. 004번 참가자: 안성우


안성우와 농구의 인연은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안덕수 현 WKBL 사무총장이다. 농구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잠시 보내기도 한 안성우는 늘 농구와 가까운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다. 이런 그가 농구 선수를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6살 때부터 8살까지 일본에서 있었어요. 아버지(안덕수 사무총장)께서 당시 일본 팀 샹송화장품 코치로 있으셨으니까요. 농구를 접할 기회가 어렸을 때부터 많았던 것이죠. 자연스레 농구 선수의 길을 걷는 권유도 있었지만, 워낙 농구가 좋았어요.”

 

고국으로 돌아온 안성우는 삼선초에 입학, 또래보다 더 일찍 엘리트 농구 선수 도전에 나섰다. 삼선중 시절에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박정환(고려대)과 함께 삼선중 앞선을 진두지휘한 그는 삼선중의 2018년 소년체전 금메달을 이끄는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와 함께 안성우는 활약의 가치를 인정받아 남중부 MVP로 선정되는 기쁨을 즐기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그저 농구를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아직 잘 몰랐던 상태로 했지만, 중학교 들어 더 재미있게 했습니다. 또래들보다 체격도 더 좋고 그랬던 것도 한몫한 것 같아요.”

안성우는 이후 삼선중의 연계 학교인 경복고가 아닌 홍대부고로 진학했고, 농구 인생 1차 전환점을 맞이한다. 중학교까지는 주로 슈팅가드를 보던 그에게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가 더 큰 발전을 근거로 들며 포지션 변경을 권유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넘어가면서 제가 점점 또래들보다 큰 키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크게 느끼게 됐어요. 포워드 포지션은 당연하고, 주로 보던 2번(슈팅 가드)로서의 장점도 크게 활용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이무진 코치님께서 ‘너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1번(포인트 가드)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죠. 핸들링이나 동료들에게 패스를 더 하기 위한 시야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포인트 가드를 보려면 그동안과는 다른 시각에서 코트를 봤어야 했죠. 중학교 때도 코트를 보는 시야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코트 전체를 넓게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고, 보완하는 과정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슈터의 포인트 가드 변신. 안성우가 이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성우는 3학년 시절, 많은 스텝업을 달성하며 홍대부고의 주전 가드로 도약한다. 특히 3학년 시절이었던 2021년 열린 제58회 춘계연맹전에서는 첫 공식 경기 트리블 더블(28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크게 다른 건 없었는데 팀원들이 잘 도와준 덕이라 생각해요. 그때 당시에 저를 잘 도와준 슈터 (이)건희(고려대)도 있었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죠. 가드 선수들도 많아서 부담 없이 플레이한 것이 좋은 결과로 나왔던 것 같아요.”

“그때는 농구 전반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야가 많이 닫혀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건 확실해요. 팀원들을 돕는 것은 그때 좀 많이 기른 것 같아요. 슈터가 잘 터지면 계속 밀어줘야 하고, 동료들이 2대2를 더 잘하는 날에는 빠르게 2번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 그것이었죠.”

완벽한 공격형 가드로 성장한 고3 시절의 안성우. 그는 활약을 인정받아 U19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즐거운 기억이 남았어야 할 대표팀 무대에서 안성우는 큰 시련을 만난다. 무릎 부상을 입으며 긴 시간 재활에 매진해야 했던 것이다.

“속공 상황에서 레이업슛을 올려놓는 과정에서 상대 선수와 무릎이 부딪혔어요.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죠. 그때의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갔죠. 대학에 온 이후 (윤호진)감독님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런닝 스텝 밟지 마라’입니다. 지금까지 농구하는데 있어서 온갖 영향을 준 순간이 아닐까요.”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큰 기대를 가지고 진학한 연세대. 그렇지만 안성우에게 대학교 초반 시간은 시행 착오의 연속이었다. U19 대표팀 기간 입은 부상의 여파도 강했고, 양준석과 유기상(이상 창원 LG) 등 그 말고도 득점을 해줄 자원은 연세대 로스터에 넘쳐 났다. 고교 시절까지 메인 가드로 활약하던 그에게는 어색하고 힘든 순간으로 다가왔다.

“많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기간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제 연세대 선배들 때문이었죠. (유)기상이 형, (양)준석이 형까지 지금 프로 무대에서 슈퍼스타가 된 형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것들이 많았어요. 형들은 멘탈적으로도 강했고, 농구를 대하는 자세도 너무 진지했어요. 본받을 점들이 수두룩했죠. 이런 좋은 형들 밑에서 배우려 대학, 특히 연세대에 진학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니까 힘든 시간이 곧 발전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의 강인한 말에서 알 수 있듯 안성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져오던 색채를 내려놓으면서까지 발전과 출전을 위한 열망을 이어갔다. 안성우는 대학교 2학년, 공격을 진두지휘하기보다는 수비와 궂은일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주도적으로 득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팀에 도움이 되는 길을 스스로 모색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난 스코어러야’라는 생각으로만 농구를 해왔으니까요. 스스로 득점을 더 할 수 있다는 야망도 컸는데 현실의 벽도 컸죠. 주변의 말처럼 코트 내에서 다른 역할을 찾는 게 맞았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주변의 이야기가 틀린 적은 없더라고요.”

달라진 마음가짐은 곧 농구 인생의 2차 전환점이 되었다. 수비와 궂은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안성우는 곧바로 연세대의 핵심 멤버로 거듭난다. 이유진과 이주영, 김승우까지 연세대의 주득점원들이 마음 편히 슛을 시도하는 배경에는 안성우의 ‘수비 퍼스트’ 정신이 담겨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격할 때 코트에서 종종 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게 수비할 때 악영향을 미쳤어요. 태도를 고쳤죠. 10분~15분을 뛰더라도 40분 내내 뛴 것처럼 다 쏟아내는 게 당연했고, 그래야 했어요. ‘남들보다 열심히 하자! 그러면 뭐라도 하나 더 얻어가겠지’ 이게 제가 2학년 시절부터 코트에 나갈 때 늘 하던 생각이에요. 열심히 하다 보니까 바뀐 역할에도 금세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여 공격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1학년 시절 3점슛 성공률 22.2%에 그친 안성우는 2학년 시절 3점슛 성공률을 무려 8% 가량(30.2%)을 끌어올렸다. 3학년인 지난 시즌에는 웬만한 슈터 뺨치는 42.9%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올 시즌 역시 40.7%의 높은 성공률(8일 기준)을 자랑하고 있다. 대학 농구를 처음 접하는 자라면 안성우를 ‘왼손잡이 슈터’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3점슛은 순도 높다.

“개인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을 잘 몰랐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개인 운동 지시가 있으면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무작정 슛만 쐈어요. 사실 할 수 있는 개인 운동은 많잖아요? 드리블 훈련을 할 수도 있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그것도 어떻게 할지 잘 몰라서 ‘그냥 슛이나 쏘자’라는 생각으로 개인 운동 시간을 슈팅 연습으로 많이 사용했어요. 이 시간이 오히려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됐어요. (김)승우나 (이)유진이에게 수비가 몰리면, 저한테 3점슛 기회가 많이 났는데 그때 1~2개 넣어줄 수 있었던 것이죠. 큰 계획 없이 달려든 것이 때로는 약이 될 줄 몰랐어요.”

코트 밖 대학생의 삶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안성우는 신촌캠퍼스 체육관을 떠나면 학업에 열중하며 연세대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하기도 했다. “1학년 때 수업에 들어가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아요. 제가 이 대학의 수업을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업이 어렵고, 체계적이었달까요. ‘역시 연세대구나’라는 생각을 수업에 들어갈 때 더 하게 됐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일반 대학생들 못지않게 공부를 많이 했어요. 교수님들도 운동부 학생들을 많이 챙겨주시고, 좋아해 주셨어요.”

귀중한 경험도 쌓았다. 안성우는 연세대 재학 기간, 농구 강국 미국과 필리핀은 물론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대학생 자격으로 프로농구 팀들만 경험할 법한 일들을 연달아 경험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홍콩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아 대학 농구 챌린지(AUBC)에 참가, 각각 우승과 8강에 오르며 한국 대학 농구의 힘을 아시아 전역에 알리는데 일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2학년 미국, 3학년 필리핀과 홍콩, 4학년에는 스페인과 중국까지… 대학 와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순간은 해외 팀들과의 교류입니다. 외국 선수들과 매치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도 많았어요. 선수들이 체격은 물론 개인 능력도 다 좋더라고요. 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해야겠음을 느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 같았어요. 대학리그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절대 안 되더라고요. 패스를 편하게 주는 것은 어림도 없었고, 최대한 정확한 공격을 해야 했죠.”

“다 좋았지만, 8월에 다녀온 항저우에서의 기억(AUBC)이 많이 남아요. 중국 팀 가드들의 시야가 다르다고 느낄 정도였어요. 다 보면서도 여유 있게 하는 것을 배우고 왔죠. ‘나도 저렇게 잘했으면’이라는 생각도 더 하게 됐죠.”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대학교 4학년 선수들에게 후반기 일정의 재개는 곧 프로 도전의 마지막 관문,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가 성큼 다가온 것을 의미한다. 안성우는 잔여 일정 속에서 ‘성실한 면모를 놓치지 않는 선수’의 모습을 남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금 단계에서 농구 스킬을 더 늘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있어요. ‘안성우 쟤 경기 좀 뛰었다고 느슨해졌고, 수비 안 하네’ ‘몸을 사리는 것 같은데?’ 같은 말들이요. 드래프트를 남겨둔 4학년 선수로서 더욱 듣지 말아야 할 말들 같아요. 그만큼 편견을 주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집니다. 특히 부상은 더 이상 안 당하고 싶어요. 부상 없이 대학리그 잘 마무리하는 것, 그것만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오는 19일에는 연세대생 안성우로서 중요한 일전도 남겨두고 있다. 고려대와의 정기전이 바로 그것이다. 연세대는 지난해 열린 정기전에서 57-54, 길었던 정기전 10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올해 역시 정기전 승리의 기쁨을 이어가고 싶은 열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클 것이다. 특히 안성우는 지난해 정기전에서 고려대의 핵심 문유현을 원천 봉쇄했고, 2쿼터 종료 버저비터까지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대활약을 펼쳤던 4학년인 안성우에게는 마지막 정기전이다.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정기전이요? 꼭 이겨야죠. 패배라는 단어는 정기전에서는 특히 용납이 안 됩니다. 한 번 이기니까 더는 못 지겠습니다. 고려대도 저의 수비에 대해 대비책을 가지고 나올 텐데 말려들지 않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저는 드래프트에 나올 선수들 중 가장 열심히 할 자신이 있고, 그렇게 할 선수입니다. 팀의 분위기도 더욱 올려줄 수 있고, 팀이 힘들 때는 에너지원으로서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요. 농구는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생활 면에서 누구보다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자신도 있습니다. 그것도 농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안성우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안성우는 이에 대한 물음에 ‘자리를 비우면 티가 나는 선수’가 될 것 같다는 대답을 전했다.

“프로 무대에 가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플레이 스타일로 코트를 누비고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하지만, 저는 오히려 자리를 비우면 팬들이 저를 자연스레 찾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안성우가 이럴 때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듣고 싶고, 또 들을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기상이 형, (최)형찬이 형 같은 성실한 형들을 보고 온 게 있으니까 맡은바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는 인식을 남기도록 해야죠. 매번 응원해주시고,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시는 부모님과 지인들, 동료들 덕에 프로 도전의 시간까지 왔네요. 좋은 결과로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코트 내에서는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 주득점원인 선수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는 이들이 없다면 그들이 주목을 받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령탑들은 매번 궂은 일을 행한 선수들을 집중 조명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성우가 가진 가치는 그 어떤 도전자들보다 크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 정신을 갖춘 이를 찾는 팀이 안성우를 지나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어 보인다.

#사진_안덕수 사무총장, 안성우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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